# 154
154. 광기.
154.
테세우스는 자신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사람, 호라티우스와 나디르, 에고르 등은 물론 사비누스를 비롯한 세르토리우스의 지휘관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일단은 이 정도였지만 테세우스가 가진 인맥은 그보다 더 방대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내용이지만 세르토리우스가 켈타이족과 관계할 수 있는 그 근간이 테세우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켈타이의 오피다니, 루시타니아, 베토네스 연맹에 속한 부족은 테세우스 님께서 요청하지 않아도 병력을 보내올 겁니다. 다만 나머지 켈타이족의 행태가 염려되는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
사비누스가 말을 꺼내자 에고르가 말했다.
“그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조금 저어되는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켈타이족에게 있어 세르토리우스 님께서 사망하신 소식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소식은 바로 테세우스 님의 귀환입니다. 테세우스 님께서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저들은 결코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세르토리우스의 죽음과 테세우스의 귀환이 전해진다면 오피다니 연맹과 그 오피다니 연맹에 가담한 솔리치족, 루시타니아 연맹, 베토네스 연맹에 속한 켈타이족까지 그와 함께할 것을 맹세하고 급히 병력을 이끌어 가데스에 합류할 것이다.
세르토리우스의 죽음뿐이라면 켈타이족이 침략이나 약탈할 기회로 여겼겠지만 테세우스의 귀환 소식이 전해진다면 저들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지금의 상황을 관망하며 먼저 추이(推移)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확신이 선 후에야 움직일 것이니 현재로서는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저들이 아군과 적대적인 켈타이족과 협력할 경우를 배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것이다. 미처 전쟁을 대비하기도 전에 몰아칠 테니까.”
테세우스의 대답에 게툴리족의 프레디에가 자신감 넘치는 말로 답했다.
“우리 게툴리족은 바람과 같습니다.”
자신이 귀환한 소식도, 게툴리족 1만이 가데스에 상륙한 소식도 아직 저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세르토리우스를 독살한 시점에서 가데스는 저들의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피레네 산맥의 토벌군에 저들, 배신자들의 이목이 쏠려있을 것이니 자신이 귀환했다는 것도, 아군이 얼만큼의 병력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도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내일 새벽, 바람처럼 달려서 발렌티아를 함락시키겠다. 일단 사비누스!”
“예. 말씀하십시오.”
“저들보다 먼저 토레툼 지역을 점령해야겠다. 레기온 오천을 전부 이끌고 토레툼을 점령하라.”
그렇게 되면 가데스가 무주공산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사비누스는 긴말없이 바로 대답했다.
“명대로 수행하겠습니다.”
사비누스가 지체없이 바로 대답한 것은 테세우스가 대안을 마련할 것을 믿었기 때문도 있지만 토레툼을 우선 점령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테세우스가 자신의 귀환과 더불어 협박 섞인 소문을 전 도시에 퍼트리게끔 명한 것도 이 일과 연관이 있었다.
흩어진 세르토리우스의 병력을 재집결하기 위한 지역으로 현재 토레툼만한 곳이 없었다. 이곳을 점령하고 기다린다면 지금은 흩어졌지만 세르토리우스에게 충성을 다하는 병사들이나 지휘관들이 토레툼 지역으로 합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합류한 병력을 모두 신뢰하기는 어렵겠지만 현 상황에서 저들이 이 일 가운데 야료를 부릴 이유나 여유도 없으니 합류한 병력을 온전히 신뢰해도 문제될 여지가 희박했다. 저들의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고 저들 역시 세르토리우스의 복수에 불타고 있을 것이니 강력한 힘이 되기에 충분했다.
“에고르.”
“말씀하십시오.”
“오피다니 연맹의 전사들은 가데스로, 베토네스 연맹의 전사들은 토레툼으로 이동하라 전하라. 루시타니아는 병력을 반으로 나눠서 두 곳 모두에 보내게 하라. 단 베토네스 연맹은 아무래도 네가 직접 발걸음을 하는 것이 확실할 것 같군.”
“지금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사비누스. 에고르와 베토네스 연맹이 합류하면 북상할 준비를 하라! 발렌티아는 그 전에 함락당할 것이니 나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 즉시 북상하도록!”
“명하신 대로 수행하겠습니다.”
테세우스는 좌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디르!”
“예. 말씀하십시오.”
“소우판을 비롯한 상인들과 연락이 닿는가?”
“물론입니다.”
“세르토리우스 휘하에 거하지 않는 도시는 약탈을 허용한다고 전해라. 아울러 너도 해군을 이끌고 그 일에 동참하라. 단 내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그건 내 이름으로 시행하라.”
소우판의 마사에실리족은 둘째치고 상인들이 무슨 약탈을 행하냐고 묻는다면 저들 역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병력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약탈이라 할지라도 아무렇지 않게 행할 자들이다. 약탈을 함부로 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보복이 두렵기 때문인데 그 뒷배를 테세우스가 봐주겠다고 하는 소리였다. 저들로서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테세우스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본 나디르는 마른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세르토리우스를 배신하려는 자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기세가 여실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들이 결의한 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확고하게 보여주겠다는 테세우스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세르토리우스가 자비와 관용으로 저들을 대했음에도 배신이라는 결과로 보답했으니 그것을 철저하게 징치하겠다는 의도를 말이다. 그 일이 악명을 쌓는 일이라 할지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을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명시하고 있었다.
“약탈을 말입니까? 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 명하겠습니다.”
“그리고 호라티우스!”
“하명하십시오.”
“병력과 함께 나를 수행하라.”
호라티우스는 군례를 취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제 영광입니다.”
*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 프레디에와 함께 병력을 이끌고 발렌티아로 바람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호라티우스가 이끌고 온 병력은 500명에 불과하지만 테세우스의 호위병으로 삼을만큼 숙달된 전투기술을 지닌 군단병이었다. 일반적인 전투기술은 1만 게툴리족을 상회하고도 남았다.
물론 기마술은 게툴리족의 기마술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히스파니아 역시 투창기병이라는 병종이 있을 정도로 기병이 제법 활성화된 곳이라 히스파니아에서 지내면서 말과 제법 익숙해졌기에 지금의 질주를 감당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두두두
밤낮을 가리지 앉고 들판과 산야를 마음껏 질주했고 하루 거리에 발렌티아를 앞둔 시점, 호라티우스가 조심스럽게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정말 주춧돌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하실 겁니까? 물론 그렇게 하시겠지만······. 그러니까 제 말은······. 괜찮으시겠습니까?”
호라티우스가 테세우스의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기본적인 성품은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호라티우스도 세르토리우스의 복수를 하고 싶지만 그 일이 가져다줄 파급력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르토리우스도 충성의 대상이지만 언제부턴가 그에게 더 중요한 존재는 테세우스가 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반절만한 시절부터 봐왔기에 테세우스를 생각하는 마음은 나디르 못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디르보다 더 깊이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디르는 해적의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으니 그렇다쳐도 호라티우스는 군인의 삶을 정석적으로 산 인물이다. 물론 호라티우스 역시 거친 사내이나 그런 삶을 지낸 자이기에 테세우스가 겪게 될 고통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세우스가 액면 그대로 어린나이에 불과하다면 이런 호라티우스의 태도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로 비춰져 정색했겠지만 그는 항우, 리처드, 서후의 경험과 기억이 혼재한 테세우스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아차렸다.
테세우스는 부지깽이로 눈앞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을 뒤집은 뒤 호라티우스에게 말했다.
“분노는 불과 같고 복수 끝에 남는 것은 재밖에 없지.”
“······.”
“무엇을 염려하는지 잘 알고 있다.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의 복수를 이행하려다가 종국엔 재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을 원치는 않으실 것이야.”
“하면?”
호라티우스가 반문하자 테세우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입에서 내뱉어진 이상, 그 말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지휘관이라는 자가 반드시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마찬가지로 광기는 지양되어야 하나 그게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
“······.”
그걸 호라티우스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이라고 해서 반드시 시행하는 지휘관이 많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군주나 왕이라 할 수 있는 자들도 상황에 따라,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따라 말을 뒤바꾸기 일쑤인데 하물며 테세우스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일 뿐이다.
또한 복수의 광기에 휩싸여 발렌티아의 로마인들을 학살한다면 로마와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로마의 시민권을 원했던 소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런 일을 자행하면 로마와 완전한 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민권은 영원히 물 건너 간다는 소리다.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자 후계자라고는 하나 로마의 법정에서 그것을 인정해줘야 진정한 효력을 갖는다. 그 이전에 로마가 세르토리우스를 반역자의 신분이 아니라 시민의 신분으로 회복해줘야 가능하다. 문제는 그 세르토리우스가 독살을 당했으니······. 호라티우스는 답답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물론 복수는 이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로마와는······. 그러니까 시민권은······.”
테세우스는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강렬한 눈빛으로 호라티우스를 바라봤다.
“무엇을 염려하는지 안다고 말했다. 설혹 로마와 완전한 적이 되더라도, 시민권을 얻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아들된 자가 아버지의 복수는커녕 원수된 자들과 손을 잡는다면 그게 아들인가? 아니면 원수인가? 로마와 원수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하오나.”
“그만 거기까지! 발렌티아의 일은 내가 말한 그대로 시행될 것이다.”
로마가 세르토리우스를 독살했다. 그렇다고 로마와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에 대한 징치가 우선이다. 훗날의 일을 염려하느라 원수된 저들과 타협할 수는 없다.
힘이 없다면 수그려야할 때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러고 싶지 않다.
보여주리라. 저들이 세르토리우스를 죽인 대가가 무엇인지 히스파니아와 나아가 로마에게 보여주리라. 세르토리우스라는 이름을 저들 마음에 두려움이 되도록, 세르토리우스를 독살한 일이 저들 마음에 지독한 후회가 되도록 뼛속 깊이 새겨주리라.
‘구태여 로마를 불태울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저들이 나의 적이 되고자 한다면 나 역시 피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이 일과 연관된 이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
그 일 가운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피와 살육으로 뒤덮인 항우의 삶을, 어쩌면 그보다 처절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 엄청난 악명을 쌓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모르지 않았기에 그는 더욱 차가운 눈빛으로 모닥불을 주시했다.
‘그렇게 될지 아닐지는 두고보면 알겠지.’
테세우스는 모닥불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곤 주변을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휴식은 끝났다. 지금부터 발렌티아까지 달려서 저들을 유린한다. 단 내가 너희에게 알려준 것 한 가지만 기억하도록!”
“알겠습니다.”
“전사는 죽인다!”
단,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그게 테세우스의 방식이었다.
퉁 퉁 퉁
방패에 검을 부딪치며 게툴리족 전사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의 반수 정도는 활을 가진 궁수였다. 테세우스가 가려뽑은 이들은 주로 말 위에서 활을 쏠 수 있는 전사였기 때문이다. 칭기스칸의 기병을 떠올려 구성한 것은 맞았다. 물론 칭기스칸의 궁기병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위협적인 구성임은 틀림이 없었다.
다만 발렌티아는 성벽이 있는 도시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격했기에 저들의 허를 찌른 공격인 것은 분명하나 공성 경험이 전무한 이들로 발렌티아를 어찌 함락시킬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테세우스가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