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156. 헤르쿨레스.
156.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를 들고 발렌티아 성으로 나아갔다.
터덕 터덕
활이 닿을 사정거리 안에도 서슴없이 들어선 테세우스는 이윽고 자신과 아랍 순종 흑마를 향해 날아오는 무수히 많은 화살을 바라봤다.
‘역시 그런 수준인가?’
그를 바라보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페르페르나군의 병사들은 테세우스가 화살받이가 되어 죽을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를 휘둘러 자신과 말에게 떨어지는 모든 화살을 걷어냈다. 그 주변 바닥으로 화살에 거세게 박혀 들어갔으나 테세우스와 흑마 주위에는 단 한 발의 화살도 꽂혀있지 않았다. 마치 테세우스 주변에만 화살이 빗겨나간 것마냥 말이다.
화살따위에 맞아 죽을 테세우스가 아니라는 건 게툴리족들마저 알았다. 그런 것에 맞아 죽을 자였다면 게툴리안에서 부족들을 통합시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테세우스는 항상 가장 극심한 공격을 받았고 그는 그 모두를 물리쳤다. 그랬기에 의심하지 않았고 요동치지 않았다.
*
아우피디우스가 테세우스의 모습에 황당해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무슨?”
페르페르나는 말없이 표정을 일그러뜨렸고 만리우스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알카이오스는 호승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라키우스가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대단한 무예로군. 그토록 많은 화살이 단 한발도 그의 창을 뚫지 못했어. 소문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저것만 봐도 무시무시한 실력자라는 걸 알수 있겠소이다.”
“흥! 그래봐야 애송이에 불과하다.”
페르페르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 때, 테세우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당황한 발렌티아의 병사들에게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며 발렌티아는 주춧돌도 남기지 않고 가루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단! 투항하는 자는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겠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은 죽음뿐이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테세우스의 선전포고에 발렌티아의 병사들은 싸우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 모습에 페르페르나의 얼굴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 알카이오스가 페르페르나에게 말했다.
“페르페르나님. 그와 싸우게 해주십시오.”
“뭐?”
“어차피 테세우스 저자만 죽으면 간단해지는 일입니다. 저토록 패기 넘치는 자라면 총사령관이라 할지라도 대결을 마다하지 않을 터, 제가 테세우스의 목숨을 취하겠습니다.”
“내 말을 헛으로 들었군! 테세우스 저자는!”
만리우스가 황당하는 표정으로 소리치자 페르페르나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게 겁먹은 개새끼는 필요없다.”
만리우스는 경직된 표정으로 페르페르나를 바라봤다.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세르토리우스를 배반했던가? 돈과 명예? 세르토리우스를 따르는 끝이 죽음뿐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는 언제나 자신을 인정해줬다. 자신의 뜻을 이루자마자 돌변한 페르페르나의 태도에 만리우스는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만리우스는 페르페르나를 탓할 수 없었다.
세르토리우스를 배신한 자신이 무슨 낮짝으로 페르페르나의 배신을 성토한단 말인가? 어리석은 놈이라.. 실로 그러했다. 만리우스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페르페르나는 만리우스의 표정이 굳거나 말거나 알카이오스를 바라봤다. 알카이오스 그가 뛰어난 지휘관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뛰어난 전사라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히스파니아로 후퇴하면서 목격한 그의 무용에 감탄한 적이 몇 번이던가? 하여 페르페르나는 기대감을 품고 알카이오스에게 말했다.
“가능하겠는가?”
“맡겨주십시오. 아군은 잃어야 저 알카이오스일 뿐이지만 적은 테세우스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과 같습니다. 대결을 거부한다면 그것대로 저자의 위신에 손상을 입힐 수 있겠지요.”
페르페르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알카이오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과연! 과연 그렇군! 어디 자네 뜻대로 해보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카이오스는 페르페르나에게 예를 표한 뒤 발렌티아 성 앞에 기세등등하게 서있는 테세우스를 향해 소리쳤다.
“내 이름은 알카이오스! 에트루리아인이다. 실력에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애송이가 아니라면 어디 나와 함께 생사를 논해보자!”
알카이오스의 말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테세우스에게 향했다. 총사령관으로 이같은 대결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지금껏 보인 행보에 스스로 물을 끼얹는 일이 될 터, 테세우스의 대답이 심히 궁금했다.
하지만 호라티우스는 알카이오스의 말이 어처구니 없었다. 거리가 멀어서 점처럼 보이지만 놈의 낮짝을 한 번쯤 감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말에 대한 테세우스의 대답이야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수많은 전장에 서왔지만 테세우스만큼 대단한 전사는 본 적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반절만한 시절에 벌써 완성된 전사였다. 지금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 심정은 비웃음이 되어 흘러나왔다.
“큭. 제 무덤을 스스로 파는군.”
옆에서 호라티우스의 말을 듣고 있던 프레디에가 말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게툴리족 가운데 무예가 뛰어다나는 전사란 전사들은 모두 테세우스에게 덤볐다. 그를 죽여 자신의 명성을 높여보고자. 하지만 저들 모두 테세우스의 창 아래 차디찬 시체가 된지 오래였다. 그들 가운데 테세우스의 몸에 상처 하나 남긴 자도 없었다.
그는 그런 사내였다. 게툴리족이 테세우스에게 토벌당했음에도 충성을 바치는 이유? 부족을 토벌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보상을 충분히 주기 때문에? 모두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테세우스가 전사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전사였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성 위의 알카이오스를 바라보다가 대뜸 말했다.
“와라.”
알카이오스는 테세우스를 노려보다가 자신의 무구를 챙기고 말을 탄 뒤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두르르륵 쿵.
다그닥 다그닥.
성문이 열리자마자 알카이오스가 갈색갈기를 가진 말과 함께 방패와 검을 들고 나왔다. 저들이 예상했던 대결은 테세우스가 성 앞에서 알카이오스가 나아오길 기다렸다가 대결하는 모습이었겠지만 테세우스는 그렇지 않았다.
성문이 거의 열리자마자 테세우스는 전력질주로 성문을 향해 말을 달렸다. 성문이 열린 기회를 놓칠 테세우스가 아니었다.
어차피 공성전은 정공법밖에는 답이 없다. 기만책이라고 해봐야 성을 나설 생각이 없는 이상에야 먹혀들 리도 없었기에 테세우스는 최대한 빨리 성문을 부수고 진격하는 형태로 전략을 수립했다. 기병을 공성전에 활용하는 방법은 성문을 뚫고 성 안을 휘젖게 하는 것보다 딱히 나은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말을 타고 성벽을 뛰어넘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상황에 성문이 열렸으니 테세우스는 성문을 재빨리 닫을 수 없는 순간을 노려 전력질주했다.
두두두두
알카이오스는 그 모습에 대노하며 그를 비웃었다.
“어리석을 정도로 무모한 놈! 아군이 그 정도도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으냐?”
홀로 성문을 향해 돌격할 미친놈은 없겠지만 성문은 공성전에 가장 취약한 부분 중에 하나다. 당연히 성문이 열릴 때는 초긴장 상태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완전 무장을 한 병사들이 성문을 지킨다.
게다가 기병이 대다수인 저들이 노릴 곳이 성문이라는 건 이들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성문쪽에 병력을 보강하는 작업은 이미 이뤄진 일이었다. 그런 곳을 홀로 침투하려고 하니 알카이오스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총사령관이라는 자가 이토록 막무가내라니 그저 황당할 수밖에.
“네놈이 아군을 대체 얼마나 얕봤길래!”
알카이오스는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들었다.
두두두두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상체을 측면으로 눕히며 알카이오스를 찔렀다. 신묘할 정도의 기마술이었다. 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 그런 상황에서 창까지 내질렀으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게툴리족 전사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후우웅
챙 콰지직
“크허헉!”
알카이오스는 기묘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검을 창대로 쳐내고 날카롭게 찔러오는 테세우스의 창에 깜짝 놀라 방패로 그것을 막았다.
알카이오스는 방패에 부딪치는 순간, 강하게 전해져오는 반탄력에 기함을 뱉으며 몸을 뒤로 날렸다. 이에 알카이오스는 뒤로 붕떠서 뒤쪽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크으윽!”
낙마하며 바닥에 구르느라 흙먼지를 일으킨 알카이오스가 고통에 섞인 신음과 함께 비릿한 피를 뱉었다. 텁텁한 흙맛도 함께 느껴졌다. 알카이오스가 몸을 뒤로 날리지 않았다면 방패를 부순 테세우스의 창은 그의 가슴이나 목젖을 관통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찌르기였다.
무슨 힘이 이토록? 경황 중에도 테세우스의 무위를 가늠하던 알카이오스는 아차 싶어 성문쪽을 바라봤다. 성문은 급히 위로 끌어올려지고 있었지만 테세우스의 흑마는 바람처럼 날아올라 성문 위에 안착했다.
테세우스는 성문 위에 안착한 테세우스는 당장 성 안으로 달려갈 것처럼 보였지만 성문 위에서 멈춰선 채로 보아디케아를 성문을 내려찍었다.
쿵 쿵 콰지직 콰직
“미친! 막아!! 놈을 죽여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렌티아 병사들은 무슨 미친 짓인가 하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금 뒤늦게 떨어진 지휘관의 명령에 서둘러 테세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그 와중에도 성문은 올려지고 있었기에 테세우스의 흑마가 그 위에 머무르려고 해도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테세우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두터운 성문을 보아디케아로 찍고 후려치는 일을 반복했다.
성문이 조금 올라온 상황에서야 병사들은 왜 지휘관이 급히 테세우스를 죽이라고 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놀랍게 테세우스가 성문을 후려칠 때마다 성문이 이리저리 금이 가고 파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을 죽여! 죽이란 말이다!”
테세우스를 향해 화살이 퍼부어졌지만 반쯤 닫힌 성문에만 박혀 들었을 뿐, 테세우스와 흑마의 몸에 닿는 화살은 단 한 발도 없었다. 다만 그로 인해 성문을 후려치던 테세우스의 공격을 잠시나마 막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테세우스 앞까지 다가온 병사들이 테세우스를 향해 저마다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좁은 공간인만큼 많은 병사라고 해도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는 숫자엔 한계가 있었다. 테세우스는 눈을 번뜩이며 보아디케아를 휘둘러 자신을 방해하는 병사들의 목을 단번에 달려버렸다.
촤아아악
붉은 핏물이 솟구치며 허망하거나 당황한 표정을 지은 병사들의 머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테세우스는 그 원심력을 이용해 다시금 성문을 후려쳤다.
콰지직
두터운 성문이 패이다 못해 드디어 그 틈으로 외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황당한 일이지만 공성병기로도 수십 번을 후려쳐야 박살나는 성문을 마치 창으로 도끼질하듯이 깎아내고 있는 테세우스였다.
이에게 기겁한 발렌티아 병사들이 테세우스를 막으려고 들었지만 테세우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도 않은 채 병사들을 죽이고 성문을 부수는 일을 반복했다.
두두두두두
성문 밖에서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던 알카이오스는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저편을 바라봤다.
1만에 달하는 기병이 일사분란하게 쇄기형태를 취하더니 테세우스가 부수고 있는 성문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라티우스와 프레디에는 테세우스가 성문으로 달리자마자 당황하지 않고 병사들을 준비시켰다. 테세우스가 무모한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건 그간의 활약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전투를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때문에 그가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저들은 군을 테세우스가 진입한 곳으로 진격했다. 테세우스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고 이들 역시 테세우스에게 명령 받은 것도 없지만 그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때 알카이오스는 성문을 부순 테세우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문이 거의 닫힌 상황에서 테세우스의 모습이 보인다는 건 그가 성문을 파괴했다는 소리와도 동일했다.
“미.. 미친!”
그제야 알카이오스는 만리우스가 왜 그토록 테세우스를 두려워했는지 알아차렸다. 이 자는 홀로 군단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전사였다. 무슨 헤르쿨레스의 가호라도 받고 있단 말인가? 무슨 이런 괴물같은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콰지직 콰직
성문이 테세우스의 손에 무참하게 박살나는 모습에 다급해진 알카이오스는 바닥에 너부러진 검을 붙잡고 그를 향해 달려갔다. 놈을 죽여야 한다. 성문이 박살나든 또 무슨 일이 발생하든 테세우스를 처단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 군의 중심점이 테세우스라는 걸 모를 알카이오스가 아니었다.
콰직
테세우스, 이 괴물 같은 작자는 병사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홀로 성문을 박살내고야 말았다. 성문이 박살나는 순간에 알카이오스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테세우스에게 몸을 날렸다.
놈이 성문을 파괴하느라 두 팔을 쭉 편 상태였다. 놈이 아무리 괴물같은 힘을 지녔다고 해도 이 같은 공격은 피하지 못하리라. 자신이 한 번은 당했지만 자신보다 강한 맹수를 사냥하는 방법은 알카이오스는 잘 알고 있었다. 힘이 강하다고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나 알카이오스가 보여주리라.
“죽어라! 테세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