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57화 (157/298)

# 157

157. 헤르쿨레스.

157.

단번에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일을 그르치게 만들 때가 많다. 일반적인 일이라면 일을 그르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힘이 세고 사나운 맹수를 사냥할 때 조급함으로 다가선다면 도리어 처참하게 목숨을 잃을 뿐이다.

따라서 알카이오스는 테세우스의 급소가 아닌 창을 휘두르느라 쭉 펴진 그의 오른팔을 공략했다. 테세우스의 창은 성문을 파괴하느라 사선 밑으로 축 쳐진 상황이었다. 성문을 부수는 그 순간을 노려서 검을 휘둘렀기에 놈이라고 해도 지금의 공격은 피하지 못하리라.

그건 알카이오스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절묘한 순간에 펼쳐진 완벽한 공격이라 할 수 있었기에 테세우스도 섬뜩함을 느꼈다. 당장 손을 빼지 않는다면 알카이오스의 예리한 검이 손목을 가르고 지나갈 것이다.

하여 테세우스는 급히 오른손을 거두었다. 일반적이라면 창을 쥐고 있던 한 손이 떨어져 나간 상황이니 창의 궤적이 불안하게 요동쳤겠지만 테세우스의 강력한 힘은 왼손으로도 보아디케아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제어했다.

이윽고 알카이오스의 검은 오른손의 살갗을 스치고 테세우스가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창대를 강하게 후려쳤다.

카아앙

그 순간, 테세우스와 알카이오스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살기등등했지만 한 사람은 무심한 눈빛으로, 한 사람은 혼탁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알카이오스는 창을 강하게 후려쳤음에도 창을 놓치지 않은 테세우스의 괴력에 다시 한번 기함을 토했다. 테세우스 본인이 휘두른 원심력에 자신이 휘두른 공격이 더해졌으니 창을 놓쳐야 정상인데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게다가 창 전체가 쇠로 이루어졌다니 힘도 힘이지만 그것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으려면 체력은 또 얼마나 좋단 말인가?

하지만 성문을 파괴한 괴물 같은 놈이라는 걸 목격한 알카이오스는 이 일을 예상범위 안에 놓고 있었다. 따라서 알카이오스는 자신의 놀란 마음과 다르게 물 흐르듯이 테세우스를 공격했다.

제아무리 테세우스라고 해도 체중을 실어 내리친 공격을 받았으니 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정부분 손아귀에 힘을 가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 여파로 인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근육이나 인체의 구조 자체가 그러하니 무슨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그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알카이오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혹여라도 창을 놓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기에 그 찰나의 순간, 검을 강하게 쥐어 반탄력을 무마시킨 후 창대에 검면을 댄 상태로 눕히고 그대로 타고 오르며 테세우스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체중까지 실어 창을 내리쳤던 알카이오스는 다시 땅을 박차고 도약하며 매섭게 테세우스를 향해 쇄도했다.

까드드득

쇠와 쇠가 긁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알카이오스는 이 괴물의 손에서 무기를 먼저 뺏을 생각이었다. 그런 테세우스의 뒤편으로는 발렌티아의 병사들의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왼손과 가슴이 위험한 지경이라고는 하나 처음에 피했던 오른손이 놀고 있었기에 파고드는 알카이오스를 잡아 세울 수 있었다. 하나 그렇게 하면 뒤쪽에서 퍼부어진 병사들의 공격에 자신 또는 흑마가 중상 내지 치명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알카이오스의 공격은 테세우스조차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절묘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알카이오스는 되었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사납게 노려봤다.

테세우스가 창을 놓으면 그대로 방향을 바꿔 그의 신체 중 일부라도 베어낼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은 이 헤르쿨레스 같은 놈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죽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할 것이다.

뒤쪽에서 달려드는 발렌티아 경계병들의 무기가 마음껏 테세우스의 육체를 유린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되면 혹 테세우스의 손에 죽더라도 승리는 알카이오스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알카이오스는 자신의 생명까지 불사를 각오로 테세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찰나지만 테세우스는 그런 알카이오스의 투지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알카이오스의 의도대로 놀아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테세우스는 창대의 뒤쪽을 잡고 있던 왼손에 강한 회전력을 가해 허공으로 던졌다. 그와 동시에 테세우스는 뒤로 몸을 완전히 눕혔다.

붕붕붕붕

카아앙

보아디케아는 자신을 거슬러오는 알카이오스의 검을 후려침과 뒤로 누운 테세우스의 머리카락을 여러가닥 훑고 지나갔다. 테세우스가 뒤로 눕지 않았다면 회전하는 보아디케아는 가장 먼저 테세우스의 상체를 무참하게 갈라버렸을 것이다.

허공으로 도약하며 검을 내지르던 알카이오스는 검에 가해진 강한 충격에 의해 뒤로 날아가버렸다. 하나 보아디케아의 움직임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테세우스의 머리칼을 스치고 뒤편으로 날아간 보아디케아는 뒤에서 달려오며 테세우스를 베려던 발렌티아 병사들의 목과 가슴, 팔을 유린하며 피보라를 일으켰다.

촤아아악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뒤로 누워있던 테세우스는 회전하는 보아디케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손도 갈려 나갈 수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더욱이 누운 채로 손을 쭉 뻗은 상황이니 많은 힘을 가할 수도 없는 상황, 창대를 정확히 잡더라도 강한 회전력에 의해 관절이 어긋나거나 부러질 수도 있었다. 통짜 쇠로 이루어진 보아디케아의 무게는 일반 창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너무나 간단하게 보아디케아를 멈춰 세웠다.

타아악

테세우스는 그 즉시 몸을 튕기며 왼손으로 흑마의 등을 짚고 물구나무서듯이 선 후에 오른손의 창을 내질러 뒤편의 달려오던 병사들의 안면을 아작 내버렸다.

슝슈슝

“컥!”

“크아아악!”

자신의 왼팔을 베려던 검을 피해 다시 허공으로 몸을 튕긴 테세우스는 측면으로 풍차 모양으로 회전하며 그 반경에 있던 병사를 모조리 베어냈다.

부우우웅

“크아아악!”

“아아아악!”

무시무시한 공격과 다르게 솜털처럼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테세우스는 전방으로 내달리며 보아디케아를 횡으로 두어 번 휘둘렀다.

방패로 막는 이들도 있었으나 방패가 부서지거나 방패째로 같이 측면으로 날아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 이런 미친!”

“헤.. 헤르쿨레스!”

“이..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그 광경을 바라본 병사들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외쳤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폭풍처럼 흑마 주변의 병사들을 청소하듯이 쓸어버린 뒤, 다시 흑마 위에 가뿐하게 올랐다. 아니 오르려고 할 때 그를 처절하게 부르는 한 사내의 음성이 있었다.

“테세우스!”

테세우스의 무시무시한 위용에 모두가 겁을 집어먹었지만 그를 향해 투지를 불태우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보아디케아에 의해 다시금 뒤로 날아갔던 알카이오스였다.

테세우스는 흑마에 오르려던 것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알카이오스를 마주했다. 적이지만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수의 무리지만 그의 투지는 인정 받을만 했다.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탁 탁 탁

테세우스는 강하게 땅을 박차며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알카이오스를 향해 달렸다. 알카이오스 역시 매서운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격돌의 순간,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를 강하게 휘둘렀다.

촤아아악.

테세우스의 창에 의해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반으로 갈라진 알카이오스는 쓰러지기 전에 테세우스에게 띄엄띄엄 말을 건넸다.

“여.. 영광.”

그것을 마지막으로 알카이오스는 바닥에 쓰러졌고 바닥에 쓰러진 충격으로 알카이오스의 상체는 흥건한 피를 흩뿌리고 완전히 갈라졌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쓰러진 알카이오스의 목을 쳤다. 투지는 인정받을만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원수에게 갈 것은 죽음뿐이다.

테세우스는 잘린 그의 머리를 창두로 찍어 올리며 천둥처럼 큰소리로 외쳤다.

“나의 적이 된 자, 모두 이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니!”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나 지휘관은 물론 그것을 바라본 발렌티아의 모든 병사들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설상가상이라고 테세우스의 뒤편으로는 1만에 이르는 기병이 무수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쇄도하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테세우스를 막고 성문을 어떻게든 봉쇄해야 하는데 누구도 그의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다.

*

발렌티아의 지휘부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무덤과 같은 고요가 이들 가운데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만리우스였다. 그건 페르페르나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만리우스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조소하며 자신을 바라보던 자들에게 말했다.

“누군가 내게 겁먹은 개새끼라고 하더군. 지금 보니 겁먹은 개새끼는 따로 있었군. 알카이오스, 저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루먹은 개새끼나 다름없었어. 내가 미쳤고 어리석었다. 너희같은 족속들의 말에 넘어가······.”

더 말해 무엇하랴? 자괴감만 더할 뿐이었다.

“뭐라?”

페르페르나가 분노한 표정으로 반문했으나 만리우스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일갈했다.

“비루먹은 개새끼처럼 도망치던가 아니면 나와 같이 싸우던가 알아서 해라. 보아하니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만리우스는 그 말을 한 뒤, 어두운 안색으로 성문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싸워라! 나와 함께 싸우자! 테세우스의 말을 잊었던가? 그는 발렌티아를 가루로 만들어버린다고 했다. 싸우는 것만이 살길이다.”

만리우스 휘하의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그를 따라 움직였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싸우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우피디우스가 두려움에 찬 표정으로 그라키누스에게 말했다. 병법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승리할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저 괴물 같은 테세우스가 당장에라도 창을 들고 이곳까지 짓쳐 들 것 같은 지독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도.. 도망쳐야 하오. 서.. 서둘러 도망쳐야 하오!”

그라키누스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로? 그리고 어떻게 도망친단 말이오? 저들은 기병이오. 그것도 날 때부터 말과 친숙한 유목민 말이오. 게다가······.”

그라키누스는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었는데 그 대상은 성문으로 짓쳐 드는 테세우스군이 아니라 발렌티아의 병사들이었다. 테세우스는 저들에게 살길을 보장해줬다. 테세우스에게 자신들을 바쳐서 목숨을 보전하려는 병사들이 왜 없을까? 아직 그런 움직임을 보이진 않지만 저들의 분위기만 읽어도 파악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아우피디우스는 페르페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 숨겨놓은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면 내놓아보란 말이오!”

페르페르나는 인상을 구기며 아우피디우스에게 말했다.

“아직 전투는 시작도 하지 않았소. 알카이오스 한 명이랑 병사들 몇 명이 죽은 일을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이오?”

“이보시오. 페르페르나! 성문이! 성문이 파괴되었단 말이오!”

스르릉

촤아아악

“커어어억! 너.. 네가”

털썩

페르페르나는 검에 묻은 아우피디우스의 피를 바닥에 털어낸 뒤 인상을 찌푸리며 쓰러진 아우피디우스의 시체에 침을 뱉었다.

“나는 지금껏 발렌티아가 어디 붙어있는 줄도 몰랐다. 이보시오? 페르페르나? 발렌티아의 촌놈 주제에 감히 주제도 모르고. 퉤!”

그라키누스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에 긴장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페르페르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라키누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이곳에 남아있으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하겠어.”

“그게 무슨 말이오? 설마하니?”

그라키누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던 페르페르나는 눈짓으로 수하들에게 신호를 줬다. 그러자 약속된 행동이 있었는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라키누스는 그 행동이 탈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페르페르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라키누스에게 말했다.

“아우피디우스 저자는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라키누스 당신은 그렇지 않았지.”

같이 탈출하자는 뜻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라키누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페르페르나에게 대답했다.

“좋게 봐줘서 고맙소. 하나 나는 이곳에서 죽겠소.”

마음에 뒤틀린다고 동료를 제 마음대로 베어버리는 작자와 함께하느니 이곳에서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낫다는 마음에서였다. 만리우스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다.

“와아아아아!”

“크아아악!”

“으아아악!”

성문을 바라보니 테세우스의 기병이 짓쳐 들어 빠르게 성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흥! 그게 당신 선택이라면야.”

페르페르나는 그 말을 남기고 서둘러 수하들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라키누스는 고개를 흔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테세우스 이자는 아버지의 독살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치밀하게 아군이 행할 수 있는 대부분을 재빠르게 봉쇄했다. 원수를 모두 죽이겠다 공언한 그가, 무엇보다 이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페르페르나가 탈출하게끔 내버려 둘까?

그라키누스는 페르페르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페르페르나, 당신의 선택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을 것 같군.”

불현듯 세르토리우스가 히스파니아의 왕이 되었더라도 차라리 그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후회였고 그라키누스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시체로 변한 아우피디우스를 힐끗 바라본 그라키누스의 표정엔 씁쓸함만이 맴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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