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65화 (165/298)

# 165

165. 멘시스 유니우스.

165.

토레툼의 성벽이 무너졌지만 사비누스군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을 뿐이지 동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벽이 부서짐에 따라 돌가루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며 병사들의 전방 시야를 가렸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이미 철수했기에 대부분은 병사들은 무너진 성벽 뒤편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따라서 성벽 너머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들의 고함과 지축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끼자 사비누스군은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세르토리우스와 함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비누스가 그런 병사들의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병사들을 독려할 때가 아니었다.

“전진하여 길목을 차단한다! 성벽의 잔해가 저들의 진격로를 막고 있으니 아군은 그것을 활용한다!”

“알겠습니다!”

사비누스군은 사비누스의 명령에 재깍 반응하여 유기적으로 길목을 차단했다.

“필룸 준비!”

여전히 전방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적이 어디쯤 왔는지 가늠할 경험이 충분한 사비누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명령을 내렸다.

“투척!”

사비누스군은 거침없는 사비누스의 명령에 곧바로 반응했다.

“으럇차!”

“으랴!”

힘찬 기합과 함께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필룸은 성벽을 넘으려고 달려오는 메텔루스 병사들의 육체를 가차없이 유린했다.

“크허허헉!”

“크허헉!”

성 안에서 밖을 볼 수 없다면 성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 갑자기 먼지구름을 뚫고 나타난 필룸의 향연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메텔루스군은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메텔루스군의 센튜리온이 휘하 병사들에게도 동일하게 필룸을 던지라 명령했다.

“이익! 놈들이 저곳에 자리하고 있다. 필룸을 던져!”

동료 병사들이 덧없이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병사들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분노한 표정으로 필룸을 집어던졌다.

훙후웅! 훙!

이윽고 메텔루스군 쪽에서도 필룸이 매섭게 날아올랐다. 그렇게 원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지까지 도착했지만 저들의 필룸이 맞이한 것은 병사들의 육체가 아니라 붉은 색상에 문양이 새겨진 방패나 건조한 땅이 전부였다.

사비누스군은 사비누스의 명령 아래 이미 스쿠툼의 방진을 펼쳐 필룸이 날아올 것이 대비했기 때문이다.

퉁 투퉁 퉁

필룸이 방패에 박히거나 튕겨 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사비누스는 적당하다 싶을 때 방진을 해제하고 스쿠툼에 꽂힌 필룸을 제거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럴만한 여유가 있을 때 제거하지 않으면 백병전이 이뤄질 때 스쿠툼을 사용하지 못하는 병사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쿠툼으로 방진을 펼칠 때 이미 같이 명령을 내려놓았기에 병사들은 방진을 해제함과 동시에 자신의 방패를 정비했다.

그런 가운데 사비누스는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로 올라간 120여 명의 병사들을 바라봤다. 저들은 2인 1조가 되어 커다란 쇠뇌를 들고 있었는데 바로 스콜피온이었다. 아군이 필룸을 던지고 하는 사이에 적을 요격할 수 있는 지점까지 빠르게 올라간 것이다.

사비누스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1분에 4발을 쏘고 갑옷과 방패를 통째로 뚫어버리는 60대의 강력한 스콜피온이 저들의 진격로를 향해 쏟아 부어질 테니 메텔루스군이 이곳을 뚫으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들보다 먼저 사격해야 할 이들이 있었다. 사비누스는 군단 양 측면에 자리한 궁수대를 바라보고 저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빼곡히 수놓을 정도로 많은 화살이 메텔루스군을 향해 쇄도했다.

쐐에에에엑! 쐐에에엑!

귀청을 찢는 살벌한 파공음에 메텔루스의 지휘관들은 급히 스쿠툼을 들어 화살을 막게 했다. 하지만 성벽으로 진입하고자 달려오던 상황이라 완벽한 방진을 구축하기 어려웠던 저들로서는 또 다시 다수의 사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만 성벽이 무너진 상황이 아니라면 훨씬 더 험난한 전투를 치러야만 했을 터, 따라서 이들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토레툼을 향해 나아갔다.

먼지구름이 안개도 아니고 종일 그곳에 있지는 않기에 양군은 금세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비누스군의 위치를 보다 명확하게 확인한 메텔루스군은 더욱 거세게 짓쳐 들었고 이윽고 당장 백병전이 이뤄질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

사비누스는 그때까지도 스콜피온 사격조에게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이미 어떤 언질을 받은 모양인지 저들은 적병에게 걸리지 않게끔 몸을 감추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사비누스는 아군과 적군의 전선이 맞닿는 순간, 스콜피온 부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사격하기 시작했다.

퉁! 투투퉁! 퉁!

묵직한 소음과 함께 육중한 화살이 메텔루스군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성벽에 진입하려는 메텔루스군에 비하면 무너진 성벽의 범위가 좁았기에 볼트는 메텔루스 병사들 서너 명, 그 이상도 꿰뚫고 지나갔다. 그런 스콜피온이 60대가 전방 배치되어 운용 중에 있었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악!”

“스.. 스콜피온!!”

“이 새끼들이!!”

간신히 스콜피온과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성벽의 잔해들을 힘겹게 넘어와도 그 끝에는 사비누스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맞닥뜨리고 있던 메텔루스군의 전열은 이미 전멸한 지 오래였다.

“무리하지 말고 위치를 사수하며 이어질 공세에 대비하라!”

“알겠습니다.”

메텔루스군은 성벽을 무너뜨렸음에도 사비누스의 전략 아래 도리어 도살당하고 있었다. 현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몇 날 며칠이고 사비누스군이 메텔루스군을 도륙하는 상황만 연출될 것으로 보였다.

*

당연한 일이지만 아틸리우스는 전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급(至急)으로 들었다.

“어찌해야 합니까? 그냥 이대로 계속 병력을 밀어 넣으면 손실이 너무 커집니다. 저들은 도리어 무너진 잔해를 울타리 삼아 아군을 요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방 배치된 스콜피온이 무섭습니다. 아군은 좁은 길목을 통과하느라 간격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적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강력한 화살을 날려대니 뭐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스콜피온을 운용하려는 자들을 잡으려고 해도 일단은 병사들이 전방까지 밀고 들어가야 가능한 일인데 그것조차 원천봉쇄하는 진형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갑옷이 피로 얼룩진 또 다른 센투리온이 보고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아군의 시체들 역시 큰 장애물입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시체를 밟고 진격하라 명을 내리긴 했지만 그 수가 많아짐에 따라 시체를 치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병사들의 사기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벽이 무너졌을 때만 해도 삽시간에 토레툼을 점령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맹수의 아가리로 아군을 밀어넣은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아틸리우스는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확실한 모습을 각인시켜주지 못한다면 그는 언제든 자신의 제안을 철회할 수 있는 인물이다.

아틸리우스는 미간을 좁히다가 한 가지 방책이 떠올랐다. 이를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보고해야 하나 싶었지만 보고를 한다면 왜 바로 시행하지 않았냐고 다그칠 인물이었다. 따라서 아틸리우스는 주저함 없이 입을 열었다.

“멍청하긴! 오나거가 있지 않나?”

“예? 아군이 진격하는 중인데······. 그럼 공격을 멈추고 전방에 있던 아군은 잠시 후퇴하라 명을 내리겠······.”

“아군이 투석을 시작한다고 적에게 알리기라도 할 참인가? 놈들은 성벽이 무너질 것까지 예측하고 대비했다. 아군이 군을 뒤로 물리면?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은가? 놈들이 대비하기 전에 후려쳐야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아틸리우스 님. 오나거는 발리스타보다도 정확도가 월등하게 떨어지는 무기입니다. 차라리 발리스타를 전방배치한다면!”

“무너졌다고는 하나 성벽 뒤에 숨어있는 저들을 무슨 수로 요격할 텐가? 어? 말이 되는 제안을 해라!”

그러자 다른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차라리 오나거로 다른 성벽을 공략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금은 한 곳이라 저들이 막을 수 있지만 두 곳만 되어도 아군의 병력 우위를 전황의 유리함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 성벽은 언제 무너뜨릴 것이고 그 시간 동안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누가 아나? 빠르고 간단하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두고 돌아갈 생각은 없다. 아닌 말로 지금껏 전투를 뒤로 미룬 것도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전방으로 몰려갔던 병력이 모두 죽어도 일반적인 공성전을 치르며 일어나는 피해보다는 적다. 그러니 명한 대로 시행해!”

아틸리우스의 서늘한 눈빛에 지휘관들은 더 말을 않고 그의 막사를 떠났다. 더 이상 다른 제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의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 앞길을 막는 자는 누구든 죽일 것이다. 누구든!”

홀로 남은 아틸리우스는 야망에 불타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먹을 쥐며 말했다.

*

후우웅! 콰직!

“크아아아악!”

“으아악!”

“투.. 투석이! 왜?”

아틸리우스의 명에 오나거는 무너진 성벽 주위를 향해 무차별 투석을 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투석에 가장 먼저 얻어맞은 병사들이 메텔루스군이었다.

육중한 돌에 의해 짓이겨진 휘하 병사를 본 메텔루스군의 센튜리온은 망연한 눈빛으로 후방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후방에선 오나거가 계속해서 육중한 바위를 날렸다.

콰아아앙! 콰앙!

아틸리우스의 명령은 잔혹했지만 효과적이었다. 사비누스는 이런 명령을 세르토리우스에게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내린 적도 없었기에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공격이라 속수무책으로 투석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방배치된 스콜피온도 급히 버려두고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틸리우스의 오나거는 그야말로 적아를 가리지 않고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성벽이 있었다면 막아줬겠지만 그 성벽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였다. 탁 트인 곳에 병력을 모아두면 극심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사비누스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급히 명령을 내렸다.

“건재한 성벽 주위로 서둘러 병력을 이동시켜! 서둘러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서진 성벽을 저들이 물 밀듯이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사비누스의 명령이 정답이었다. 저들을 막고자 병력을 내버려둔다면 그 전에 오나거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지리멸렬하게 될 테니 말이다.

사비누스군은 경황 중에서 재빠르게 흩트러짐 없이 이동했다. 사비누스의 빠른 판단과 휘하 병사들의 신속한 움직임에 투석에 의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극심한 타격을 입은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전략거점 지역을 적에게 완전히 내어줬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성벽 가까이로 몸을 피한 사비누스는 침중한 표정으로 성안으로 떨어지는 투석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몸이 떨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려움이 자신이 몸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땅 자체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비누스의 표정은 자연히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메텔루스군이 진격하는 여파로 인한 진동이리라. 이대로 저들이 성벽을 넘어서면 그땐 처절한 전투밖에 남지 않는다. 전략과 전술이 무효한 치열한 전투만 말이다. 사비누스는 저도 모르게 겁집에 꽂혀있는 글라디우스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러다 사비누스는 문득 기이한 소음이 성벽을 타고 오르는 것을 들었다. 성벽에 기대다시피 몸을 밀착하고 있었기에 들을 수 있던 소음이었다. 사비누스는 그 소음을 듣는 순간, 온몸에 활력이 솟아남과 동시에 정신이 새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지체없이 벽에 귀를 가져다댔다.

“됐다! 하하하! 됐어!”

그가 그렇게 외치는 순간, 찢어지는 소음 하나가 하늘을 찢어놓았다. 전장소음에 묻혀 금세 사라졌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사비누스는 자신이 헛것을 들은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삐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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