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173. 영웅은 없다.
173.
그러자 로마의 세네토르. 루푸스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일전에 크라수스와 만남을 가졌던 의원으로 원로원에서 제법 입김이 강한 의원이었다. 원로원 내, 여러 파벌로 갈라진 수장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일단 진정하시오.”
수군거리는 의원들을 잠잠하게 만든 루푸스는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 무슨 법도에 어긋난 행동이란 말이오!”
브루투스는 루푸스에게 반문했다.
“무엇을 말이오?”
“로마 외부, 특히 전쟁과 관련된 사항은 이곳 콘코드 신전에서 거론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라 아폴로나 벨로나의 신전에서 거론해야 할 사안이 아니오?”
원로원 회의는 유피테르(Jupiter, 하늘과 천둥의 신, 신들의 왕, 유피테르의 신성한 동물이 바로 독수리), 피데스(Fides, 신뢰와 신의의 여신), 콘코르디아(Concordia, 사회나 결혼에서의 합의를 관장하는 여신), 아폴로(Apollo, 태양, 시, 예언, 의술, 궁술의 신), 벨로나(Bellona, 전쟁의 여신)와 같은 신전에서 이뤄졌다.
한 해의 첫 회의는 유피테르의 신전에서 행해졌고 원로원 회의는 앞서 거론한 신전들과 쿠리아 호스틸리아(Curia Hostilia)와 같이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에서만 이뤄질 수 있었다.
쿠리아 호스틸리아는 본디 로물루스 시대 전쟁 중인 부족들이 무기를 내려놓은 신전(아마도 불카누스를 기리는 작은 사당)으로 현재는 의원들이 시민을 만나기 위한 만남의 장소이자 원로들의 회당으로 여겨졌다. 당연히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건물이었다.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원로원 회의가 신의 호의를 얻고 있는지에 대해 제사장이 징조를 확인한 연후에 회의가 이뤄졌다. 다만 로마가 신권통치나 신정일치의 국가가 아니었기에 이 모든 건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기본절차에 가까웠다.
여하튼 한 해의 첫 회의를 제외하고 대개 회의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주관하는 신의 신전에서 회의를 진행하는 편이었는데 루푸스가 말했듯 전쟁과 관련된 내용은 아폴로나 벨로나의 신전에서 거론되어야 할 내용이었다.
로마의 콘술 프라이오르, 브루투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네토르, 루푸스 당신의 말이 맞소이다. 하나 들으셨다시피 뒤로 미룰 수 없는 긴급한 사안이 아니오? 콘코르디아 여신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오.”
“이해라? 메텔루스 피우스와 콘술과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그리 말하는 것이오? 그도 아니면 그를 히스파니아 토벌군 수장으로 임명한 콘술의 책임을 무마하기 위함이오? 하루 늦어진다고 로마가 무너지지 않소. 그러니 이 일은 내일, 벨로나의 신전에서 거론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데시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레피두스가 평민 출신임에도 술라를 지지했다고 비판하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당시에는 프로프라에토르, 즉 전임법무관의 신분이었는데 레피두스로 인해 평판이 매우 낮아졌다. 그랬던 것이 레피두스가 반란을 일으키고 그 반작용으로 레피두스에게 강력하게 비판당했던 브루투스가 다수의 지지를 얻어 콘술 프라이오르에 당선됐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보니 술라파인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와 친분 관계가 돈독할 수밖에 없었다. 루푸스의 말따라 메텔루스 피우스를 토벌군 장군으로 추천하고 임명한 이도 바로 브루투스였다.
“무슨 말이 그렇소? 세네토르 루푸스. 말을 삼가는 것이 좋겠소.”
그러면서 브루투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루푸스를 바라봤다. 루푸스가 왜 이렇게 날선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또한 내일 거론하겠다함은 이 일로 인한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담합을 이끌어낼 시간을 벌기 위함이라는 것 역시 말이다.
사실 루푸스 이자도 자신처럼 술라파라 할 수 있었다. 술라파가 아니었다면 의원은커녕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을 테니 당연했다.
하나 이 자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득세하는 것을 꺼리는 인물이었다. 반술라파인 레피두스에게 에트루리아 정벌을 맡긴 것도 모두 메텔루스 피우스가 득세할 것을 꺼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레피두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루푸스와 원로원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걸 따지자면 애초에 레피두스가 작년, 콘술 프라이오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폼페이우스가 레피두스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폼페이우스는 레피두스 반란을 저지했고. 그러니 지난 과오를 캐묻는 건 현명한 태도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일로 많은 이득을 본 자신이 캐물을 내용은 더더욱 아니었다. 따라서 브루투스는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메텔루스 피우스가 대패했다면 그를 임명한 내게도 책임이 있소. 그것을 무마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아닌 말로 무마할 생각이었다면 오히려 이 사실을 오늘의 회의가 끝난 후에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니겠소?”
의원들이 수군거리자 브루투스가 이어서 말했다.
“또한 그가 패배하기는 했으나 반란군의 수괴였던 세르토리우스를 처단하는 공을 세웠소. 더욱이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메텔루스 피우스가 5만 군대를 잃고 패배한 것은 사실이나 본인은 토벌군이 토벌에 실패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소이다!”
그러자 루푸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브루투스에게 반문했다.
“콘술께서는 방금 2만에 달하는 로마의 레기온이 적의 손에 사로잡혔다고 말했소. 토벌군이 승리했다면 포로로 사로잡힌 2만 레기온은 대체 뭐요?”
브루투스는 싸늘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승리했다고도 말하지 않았지.”
“신성한 이곳에서 지금 말장난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브루투스는 기도 차지 않았다. 토론한답시고 지껄인 말 모두가 말장난 아니었던가? 하나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의원 모두를 적으로 삼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브루투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긴말할 것이 없이 직접 보시구려.”
브루투스는 원로원 서기에게 그것을 넘겨 루푸스에게 전달하게 했다. 루푸스는 그것을 읽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브루투스를 바라봤다. 이에 다른 의원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하오?”
브루투스는 아예 서기에게 서신의 내용을 크게 읽도록 시켰다. 모든 내용을 전해들은 의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봤다. 하지만 그 가운데 눈을 빛내는 의원들도 더러 있었다.
“테세우스. 테세우스 이 자는 대체 뭐요?”
루푸스가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브루투스는 불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오늘 처음 들어본 이름을 어찌 알겠소? 게다가 그가 누구였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일을 어찌 처리할지가 중요한 것이겠지. 사회적 합의와 연관이 된 일이니 콘코르디아 여신께 속한 일이라 할 수 있소. 더욱이 모두 들어서 알겠지만 평화와 관련된 일이지. 콘코드 신전에서 이보다 적합한 안건은 또 없을 것이오. 그러니 의장의 권한으로 지난 안건은 뒤로 물리고 지금 이 안건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겠소. 반대하는 의원이 있다면 지금 말해주시오.”
말을 마친 브루투스가 주변을 둘러봤으나 어떤 의원도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다. 이 일이 시급한 일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자는 이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브루투스는 잠깐이라도 의장의 권한을 가져온 것 같아 속이 다 후련했다.
“간단하게 정리하겠소. 저들의 요구는 간단하오. 반란군으로 규정한 이들을 복권하고 세르토리우스의 아들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줄 것. 그 대가는 들었다시피 2만 레기온의 무사귀환과 더불어 히스파니아에 대한 로마의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오. 뭐 더 토의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이 안건에 대한 가부를 결정해야겠소이다.”
그러자 루푸스와 다른 파벌의 수장 칼두스라는 의원이 입을 열었다.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시에는 어찌되는 것이오?”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지만 이 서신을 로마에 보낸 자는 모두 알다시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요. 우리 모두 알지 않소? 폼페이우스의 호전성을 말이오. 수월히 이길 것 같았으면 이런 서신을 로마에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오. 무엇보다 서신의 말미에도 적혀있지 않소? 히스파니아 토벌군 13만 중 2만은 포로로, 4만은 자신의 휘하에, 나머지 7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서신을 보낸 폼페이우스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소? 저 폼페우스가 전쟁을 꺼린다면 당금 로마에서 저들과 싸울 자가 누가 있을지 의문이로군.”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히스파니아에 대한 로마의 영향력을 모두 잃거나 로마의 귀한 시민들을 전장에서 잃겠구려.”
그러자 또 다른 파벌의 수장 스카에볼라가 입을 열었다.
“레기온처럼 훈련받은 병사 2만이 히스파니아를 지키고 있고 1만 게툴리족에 켈타이 연맹 여러 곳이 테세우스를 지원한다고 했소이까?”
브루투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폼페이우스, 그가 과장하거나 축소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오.”
스카에볼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리우스도 죽고 술라도 죽었소. 지난 과거는 이쯤에서 청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로마의 품에 안기려는 로마의 아들을 내칠 이유가 어디에 있겠소? 나는 찬성이오.”
스카에볼라가 찬성한다는 건 그를 따르는 의원들 전부가 찬성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의원의 6분의 1이 찬성을 표한다는 뜻이었다.
스카에볼라에 이어 아퀴우스라는 의원이 입을 열었다.
“동의하오. 로마의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로마에 명에 따르는 병사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나도 찬성이오.”
아직 투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로써 의결정족수 200명이 채워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사실 황당한 건데 재적의원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인원의 과반수가 의결정족수가 된다. 근 600명에 달하는 수가 참석했으니 의결정족수는 최소 300명 이상은 되어야 했다.
술라는 독재시절 때 300명이던 정원을 600명으로 늘렸음에도 기반 제도는 여전히 300명 시절에 협약된 것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안건이 상정되고 투표에 들어가면 어지간해서는 통과라는 소리다. 현 원로원이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 구두나 거수로 표결이 이뤄질 수 있었다. 문제가 중요하다면 회의장 한 곳에서 투표가 이뤄지는데 이때 몸싸움과 같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보통 원로원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표까지 이르지 못하도록 긴 시간 토론을 벌여 폐회될 때까지 지연시켰다. 안건 내용과 상관없는 내용, 심지어 인신공격도 허용되었기에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단, 거부권이 행사되면 표결 자체를 무마시킬 수 있다. 원로원 회의는 물론 민회에 대해 거부할 권한을 가진 직위는 독재관, 집정관, 호민관이다.
독재관이야 특별한 시기에 임명되는 특수 직위이니 제쳐놓고 알다시피 로마의 집정관은 두 명이다. 승인권자가 두 명이면 상당히 피곤한 일이 발생하기에 한달씩 번갈아가며 실무를 책임지고 실무를 책임지지 않는 집정관에겐 상대 집정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회의를 주재하는 집정관이 거부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지만 주재하지 않는 집정관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 어지간해선 행사하지 않는다. 거부권이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이를 평민들이 투쟁하여 집정관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직위, 호민관을 얻어냈지만 현 시점에서 호민관의 직위는 유명무실해졌다. 술라가 플레비안 의회(평민의회)를 제멋대로 개혁하여 호민관의 입법권한을 무효. 사실상 원로원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트리뷴이 이 자리에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원로원의 여러 파벌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섯 파벌이 그 세가 강력하다. 그 여섯 파벌 중 두 파벌이 찬성을 표명했으니 다른 파벌이 방해공작을 펼치지 않는 한 이번 안건은 승인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리뷴이 있었어도 거부하지 않았겠지만 아예 이 자리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의원들이 찬성한 안건에 대해 콘술 포스테리오르, 마메르코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역시 이 안건에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설혹 거부권을 행사하고자 해도 투표 실시 후 법안이 통과되면 거부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이 거부권이라는 것은 법안 통과 전에나 유효한 것으로 통과한 후에는 의미가 없기에 거부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회의 장소에 참석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곳엔 집정관 브루투스 외에는 거부권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모든 의원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루푸스에게 말을 건네는 의원이 있었다. 루푸스는 미간을 좁히며 이 일이 가져올 파급력에 대해 계산했다.
“뭐······. 우리라고 거부할 이유는 없겠지. 아니 그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