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177.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177.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꾸우욱
낙타의 혹을 두 개 붙인 모양의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는 파르티아산 복궁이었고 그것을 당기고 있는 사람은 바로 테세우스였다. 테세우스는 점처럼 변한 목표물을 향해 주저 없이 화살을 날렸다.
피이이잉
허공을 날카롭게 찢는 파공음과 함께 쏜살같이 날아간 화살은 갈리아족 족장의 뒷목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갈리아족 족장은 로마로 이동 중인 폼페이우스와 테세우스 합동군을 습격했다가 도망쳤는데 제일 먼저 말머리를 틀어 도망쳤기에 거리가 상당했다. 이 거리라면 정지해있는 표적이라고 해도 맞추기 불가능한 표적에 가까웠다.
더욱이 이름 모를 갈리아족 족장은 능선 아래로 내달려 점처럼 보이던 상체마저도 능선 아래로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화살은 굽은 능선마저 유유히 타고 넘더니 결국 또 한 사람의 생명을 끊어버렸다.
이미 능선 아래로 모습을 감춘 뒤였기에 갈리아 족장이 화살에 맞았는지 등을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폼페이우스는 한 방향으로 도망치던 갈리아족들이 갑자기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테세우스가 또다시 적 지휘관의 목숨을 거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장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이렇듯 무심하게 있다가 한 번씩 화살이라도 날리면 그 화살은 어김없이 전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지휘관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그간 무심하게 있던 모습은 적장이 누구고 어떤 자가 명령의 중심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테세우스의 포로가 되었던 병사들에게 보고 듣기로는 주무기가 통짜 쇠로 만들어진 창이라고 하던데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폼페이우스로서는 심지어 테세우스의 주무기가 창이 아니라 활이 아닌가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폼페이우스 휘하의 군단병들이 재빨리 진군하여 능선 아래에 거꾸러져 있는 족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갈리아족 족장은 뒷목에 화살이 박힌 채 그대로 땅에 떨어져 이미 목이 기괴하게 부러진 형태로 죽어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군단병들은 혀를 내두르며 족장의 머리를 벤 뒤 필룸에 꽂아 하늘 위로 치켜들었다. 갈리아족의 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테세우스가 저들 족장의 목숨을 한 발의 화살로 빼앗은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습격을 가하는 갈리아족도 갈리아족이지만 테세우스의 신묘한 궁술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적장의 머리가 필룸에 꽂혀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히스파니아로 진군할 때 분명 주변을 토벌했고 이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진군할 때도 그리했을 것인데 그럼에도 습격하는 일을 그치지 않으니 이놈들은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광전사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는 그런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군.”
심지어 로마군은 6만 2천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갈리아족 역시 수만의 군대로 로마군을 습격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6만 2천이라고 하나 그 모두가 전투병력도 아니고 전투대형을 유지한 채로 로마로 진군하는 것이 아니라 일렬 형태로 길게 늘어져서 이동하고 있었기에 습격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지형이 습격하기 용이한 지형이라면 저들에게도 승산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로마군의 숫자는 무려 6만 2천이다. 더욱이 저들이 이미 두 차례나 이곳을 지나는 로마군에게 된통 당한 상황이다. 확실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갈리아족들의 호전성이 대단하다더니 이번에 확실히 알겠군. 진군할 때보다 회군할 때가 더 위험한 법이라 후퇴로가 될 수도 있는 길목의 위험은 미리미리 제거하는 편인데 두 번의 토벌 뒤에도 이토록 극심한 저항이라니······. 물론 극심한 저항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지만 말이야.”
습격빈도로만 보면 극심한 저항이 맞다. 하나 테세우스는 전투의 맥을 번번이 끊었다. 정확하게는 적장을 시의적절하게 살해함으로 습격하는 자들의 예기를 무디게 만들었다. 병력도 많은 상황에서 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은 로마군에게 이 정도 위험은 위험도 아니었다.
폼페이우스는 한 달이 조금 넘는 동안 테세우스와 함께하면서 그와 전투를 치르지 않고 전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자신에게나 군단병에게나 행운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승패를 떠나 테세우스와 전투를 치렀다면 끔찍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세르토리우스와는 또 다른 유형의 무서움이 그에게 있었다. 군이 위기에 처하면 처할수록 그 무서움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이 점은 세르토리우스와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뭔가 더 발전된 형태라고 해야 할까? 이에 폼페이우스는 호승심을 느끼면서도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자가 어쨌든 현재는 운명 공동체로 묶인 상황이니 말이다.
“탐욕은 어리석은 결정도 마치 현명한 결정인 것처럼 포장하게 만들지. 개개인의 무용과 전공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사회라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로마군을 상대로 약탈이나 습격에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갈리아족 사회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전공도 없는 법. 물론 병력 수와 상황을 생각한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갈리아족의 호전성과 과감함을 고려하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가? 그나저나 이쯤에서 헤어져야겠군.”
이대로 남하하면 로마가 나오고 계속 동편으로 이동하면 달마티아 지역이 나온다. 갈림길에 선 것이다.
테세우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폼페이우스가 서늘한 눈빛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나를 기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나?”
원로원은 폼페이우스 자신만 경계한다. 그러나 저들은 알지 못하리라.
4만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가는 테세우스라는 사내가 마음을 조금만 달리 먹으면 저 로마가 군홧발에 짓밟히는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로마로 향한다고 하지만 로마를 점령하기 위한 계책일지 누가 알겠는가? 심지어 세네투스는 자신의 달마티아 진군 소식에 로마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으리라.
테세우스는 폼페이우스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약속한다. 게다가 로마인들이 나 하나의 변심으로 인해 흔들릴 정도로 기개 없는 사내들이었나?”
폼페이우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역시 테세우스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로마로 진군하자고 한다면 4만 2천 중 4만 7백 명가량이 그에게 반발심을 가질 것이다. 히스파니아에서 테세우스를 따라온 1천 3백명 정도를 제외하고 저들 모두는 자랑스런 로마의 시민이었으니까.
“하긴 이런 식으로 로마를 점령할 생각이었다면 네 말대로 시민권을 요청할 필요도 없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확답을 듣고 싶었다. 네가 약속을 지키는 사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테세우스는 말없이 폼페이우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먼저 말했듯이.”
“하하. 하하하하!”
폼페이우스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차가운 표정으로 수하들에게 명했다.
“달마티아로 진군한다!”
테세우스는 그런 폼페이우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폼페이우스가 자신에게 제 병력 4만에 대한 권한을 넘겨줬던가? 그렇기에 이런 말을 자신에게 꺼냈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휘권은 분할되어 있었고 자신이 이끄는 병사는 2천이 전부일 뿐이다. 달마티아로 향하는 정예군 1만을 제외하고 남은 4만은 트리부누스 밀리툼이자 그의 충복인 그라티아누스가 이끌고 로마로 향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총지휘권은 그라티아누스에게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것은 이중삼중으로 경계하기 위함이라. 혹시 모를 돌발행동을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두기 위한 폼페이우스의 의도임을 테세우스가 왜 모르겠는가? 이를 어기게 된다면 일단 테세우스의 명예를 영구히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을 테고 이는 앞으로의 싸움에도 꽤 유용한 무기가 될 테니 일종의 보험에 가까웠다.
하나 테세우스는 애초에 폼페이우스가 염려하는 바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설혹 그런 마음이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 폼페이우스를 등져서야 이로울 것이 없었다.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적진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하나 언제는 안 그랬던가?’
적과 싸우고자 한다면 일단 무기를 확보해야 한다.
‘로마에서 그 무기는 신분이 될 것이다.’
신분은 근간이 될 것이고 앞으로 이룰 것들의 보호막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껏 이룬 모든 것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쟁취해야 한다. 폼페이우스에게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을 드러낸 것은 그래서였다. 제법 위험하지만 제어할 수 있는 유용한 조력자. 딱 그 정도가 좋았다.
‘한데······. 전장에서의 생존본능은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되는군.’
폼페이우스는 테세우스 자신의 예상보다도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폼페이우스는 그것을 은연 중에 에둘러 말한 것이다. ‘나는 너를 얕잡아 보지 않는다 라고.’
테세우스는 폼페이우스의 뒷모습에서 눈을 거두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쉬울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역시 쉽지 않군.’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통일된 지역이라면 거의 반드시 도로를 연결했다. 간단히 땅을 파고 자갈을 채워 넣고, 그 위에 넓은 판자 형태의 돌을 깔았고 길 양옆으로는 배수로까지 설치했다. 이 시대 대부분의 길은 정돈되지 않은 숲길이나 진흙길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로마의 도로는 혁신적일 정도로 편리한, 다시 말해 이 시대의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다.
물론 지금은 공화정 시대라 제국 시대만큼 다양한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로마는 이미 물류와 문화의 중심지가 된지 오래였다. 그 영향력은 지중해권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카르타고를 무너뜨리고 지중해의 패자가 된 로마는 지중해라는 거대한 해상로를 통해 수많은 지역의 수많은 물산을 로마로 집중시켰고 이에 로마는 그것을 바탕으로 팽창할 모든 준비를 갖춘 상황이었다.
육로에 비해 해상무역이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지는 더 거론할 필요도 없으리라. 심지어 그 육로조차도 로마와 비견할 곳이 없었고 로마제국 멸망이후로는 그 어떤 나라도 세계 각지로 통할 수 있는 길을 건설하지 못했다.
그렇다. 로마는 이미 팽창할 모든 준비를 갖췄다. 이런 로마가 당장 팽창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 정돈되지 않은 국내 상황때문이었다. 반란이 토벌되고 정치문제와 같은 국내의 상황이 안정되면 역사가 말해주듯 로마는 수많은 인종과 문화, 국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완성해내고 말 것이다.
테세우스는 로마의 도로를 이동하면서 왜 로마가 로마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가도로 접어든 군대의 진군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고 무엇보다 진군함에 있어 거칠 것이 없었다.
그 어떤 나라도 이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다. 병사들은 매서울 정도로 단련되었고 지휘관들은 병법을 수시로 익히며 물자는 그 전부를 합친 것보다 대단하다.
로마 근처에 다다르자 그라티아누스가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곳 에트루리아 지역의 펠라트리 도시에 주둔하며 폼페이우스께서 달마티아 정벌을 마칠 때까지 경계를 강화할 계획이오. 그러니 테세우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바대로 로마로 향하시오. 단 그걸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오. 모든 임페리움은 법적으로 로마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소멸된다는 것을 말이오. 테세우스 당신은 임페리움이 애당초 없는 사람이었으니 모든 군사를 흩고 로마로 입성해야 할 것이오. 아니면 이곳 펠라트리에 같이 주둔시키거나.”
테세우스는 그라티아누스에게 질문했다. 참고로 임페리움은 간단히 로마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통솔권이나 지휘권을 이르는 단어였다. 임페라토르는 바로 임페리움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장군을 의미하는 명사로 쓰이다가 아우구스투스 이후로 최고사령관, 즉 황제를 뜻하는 의미로 변화되었다.
“폼페이우스의 명령인가?”
그러자 그라티아누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테세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 이름으로 등에 업고 로마에 입성하려고 했던 것이기도 하고.
그 모습에 그라티아누스가 다시 말했다.
“아무튼 메텔루스 휘하의 2만 레기온은 이곳에서 로마로 귀환시킬 것이니 어쨌든 함께 로마로 입성하면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