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
215. 호민관의 무기.
215. 호민관의 무기.
까아앙! 까아앙! 까아앙!
경쾌하고 일정하면서도 힘 있는 망치 소리가 대장간에 울려 퍼졌다. 그 일을 반복하는 자의 대흉근과 이두, 삼두를 비롯한 온몸에 들어찬 세밀한 근육이 그 타격에 맞춰 춤을 추듯 약동했다. 바로 테세우스였다.
테세우스는 사비누스와 대화 후 열량이 높고 영양이 뛰어난 음식을 다량 섭취하는 등 그날 하루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부터 테세우스는 그야말로 침식을 잊고 혼신을 다해 무구제작에 힘을 쏟았다.
공방일체의 무구를 만들기 위해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로부터 배운 모든 기술과 그간 단련된 경험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그는 이미 완전한 전사이자 완전한 대장장이였다. 두 분야 모두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고 미래의 지식과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이 한데 집약되어 테세우스의 손을 통해 펼쳐졌다.
테세우스는 제일 먼저 갑주부터 제작했다. 흔히 풀 플레이트로 알려진 판금 갑옷을 말이다. 당연히 이 시대는 물론 한참 뒤에나 만들어지는 갑주였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대로 로마 시대에도 ‘로리카 세그멘타타’라는 판금 갑옷이 존재했다.
하나 일단 공화정 말기인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갑옷이었고 로마의 갑주가 흔히 그렇듯 상체만 보호하는 형태의 갑주였기에 완벽한 형태의 판금 갑옷 역시 아니었다.
완전한 형태를 갖춘 판금 갑옷은 중세 말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는데 이때 완성된 판금 갑옷은 갑옷의 완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물건이었다.
중세 판금 갑옷은 검의 베기에는 무적이었고 단창이나 장창과 같은 관통 공격과 둔기류 타격 공격 역시 효율적으로 방어했다. 둔기에 취약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아닌 말로 판금 갑옷을 우그러뜨릴 정도로 강한 공격을 얻어맞는다면 무엇을 입어도 그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혼자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한다는 등의 낭설이 있지만 사슬 갑옷의 무게와 별반 큰 차이도 없었고 오히려 풀 플레이트는 전신으로 무게를 분산시키게끔 설계되었기에 어떤 면에서는 구조적으로 양어깨에 모든 하중(荷重])이 실릴 수밖에 없는 사슬 갑옷보다도 움직임이 자유로운 부분이 있었다.
풀 플레이트를 걸치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수영도 한 기록이 있으니 무거운 것은 사실이나 넘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하고 홀로 말에 오르지도 못할 정도로 미련한 무게를 지닌 비실전적인 갑주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울러 갑옷에 적용된 피탄경사도는 상대방의 타격을 효율적으로 흘릴 수 있게 만들었다. 흔히 중세 판금 갑옷의 외관이 둥글거나 매끈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전신갑주를 걸친 기사는 중세의 탱크나 다름없었다. 마갑을 걸친 말과 갑주를 기사가 인마일체가 되어 차징(charging)해 온다면 일반 병사는 그 자체로 재앙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놀라울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웠느냐? 아이러니하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널리 알려진 명성에 비해서 그 활약상은 미미했다.
실례로 등자와 강력한 복합궁을 지닌 칭기스칸의 몽골족에게 처참하게 발렸으며 화약 무기의 발전으로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단 화약무기나 판금마저 무참히 뚫어버리는 복합궁이 없다고 해도 이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인간의 신체구조 상 판금 갑옷은 이음새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이음새를 할버드와 같은 무기로 걸어 넘긴다면?
물구나무를 서든 수영을 하든 무거운 갑주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니 쉽게 균형을 잃고 넘어졌을 테고 일어나는 일 역시 갑옷을 입지 않았을 때보다야 버거울 터, 병사들은 쓰러진 기사의 급소를 장창 등으로 찔러넣으면 간단했다. 물론 숙련된 기사라면 그럴 꼴을 당하지 않겠지만 단점이 전혀 없는 무적의 갑옷은 결코 아니라는 소리다.
하나 판금 갑옷을 걸칠 자가 테세우스라면? 게다가 그 판금 갑옷이 중세의 야금술로 빚어진 검과 갑주마저 부수고 뚫어버렸던 다마스쿠스 강철로 이뤄진 것이라면?
다마스쿠스 강철이라면 현존하는 어떤 강철보다 가볍고 튼튼할 테고 테세우스의 힘과 기술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세상은 테세우스가 이러한 갑주를 착용하지 않기를 간청해야만 할 것이다.
그간 흉흉한 전장에서 전투를 치르며 방어구의 중요성에 대해 재차 절감한 테세우스는 심혈을 기울여 갑주를 제작했다. 자신의 전투경험을 한 벌의 갑주에 모조리 녹여낼 것처럼 말이다.
테세우스는 제작과 동시에 갑옷을 이용한 방어술까지 연마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튕겨낼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제작해야 하는지 등 그 모든 것을 계산하면서 갑옷을 완성했다.
팔 보호구 외부와 다리 보호구 외부에 여러 자루의 나이프를 보관할 수 있게끔 제작했고 유려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진 적당한 크기의 카이트실드도 만들어 등 뒤에 탈부착할 수 있게끔 제작했다.
다마스쿠스 특유의 기묘한 물결문양이 갑옷 전체에 꿈틀거리고 있었기에 갑주와 방패 모두 별다른 문양을 새기지 않았음에도 그 자체로 고풍스럽고 신비로웠다. 문양이야 후에 필요하다면 별도로 붙이면 될 일이었다.
투구는 전면부의 개폐가 가능한 형태로 만들었지만 윗부분에는 화려한 붉은 수실을 달아 그 끝을 마무리했다.
그런 후 그가 제작한 것은 여러 자루의 비도였다. 갑주의 곳곳에 부착되어 필요할 때 언제든 날릴 수 있는 형태의 비도 말이다. 대략 18자루의 비도를 만들어낸 테세우스는 갑주의 곳곳에 부착시켰다.
그런 뒤 두 자루의 장검과 한 자루의 중검을 만들었다. 세 자루의 검 모두 직도로 두 자루의 장검은 등 뒤에 장착된 방패 안쪽에 X자로 교차하여 패용하여 다닐 것들이고 한 자루의 중검은 왼쪽 허리춤에 패용할 용도로 제작했다.
다만 이리 되면 망토 착용이 조금 번거로워질 수 있는데 망토는 여행용이지 전장에선 패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할 수 있으니 방한을 위해서라면 갑옷 안에 받쳐입는 옷을 두텁게 입거나 동물의 털 따위를 갑옷 주위에 탈부착하면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착용하고자 한다면 두 자루의 장검만 말에 매달아 두고 착용하면 될 일이었다.
아울러 쿠크리 형태의 단검을 제작하여 허리 뒤편에 일자로 부착시키되 손잡이가 왼쪽을 향하게 만들어 유사시 허리에 매단 중검과 더불어 양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게끔 배치시켰다. 중검은 오른손에 단검은 왼손에 쥐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BC 76년, 새해를 하루 앞에 둔 지금, 테세우스는 마지막으로 방천화극이라 불리는 형태의 극을 완성했다. 길게 이어진 창두는 그 자체로도 적을 벨 정도로 날카롭고 뾰족했으며 옆에 부착된 월아 역시 적을 단번에 양단할 정도로 서늘한 예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른 반대쪽은 도끼날처럼 창두의 방향과 수직의 형태로 삐죽 솟아 있었는데 적을 찍거나 뭉개기에 매우 적합한 용도로 보였다. 그렇다고 뭉툭하지는 않았고 역시 매우 날카로운 날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극과 월아의 이음새 부분에는 적의 무기 등을 걸거나 잡아당길 수 있는 홈이 적절하게 패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창미 부분에도 적을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뾰족한 날이 붙어있었다. 테세우스는 방천화극과 할버드를 결합한 형태의 무기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무기가 테세우스의 손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창이자 극이자 도끼이기도 한 전방위적인 무기의 탄생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무기의 사용법이 별도로 존재할 리가 없으나 테세우스는 이미 이 무기의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작은 홈까지 그의 세밀하고 철저한 계산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기에 그것이 사용될 때는 반드시 누군가의 목숨이 허공에 스러지고 말 것이다.
테세우스는 보아디케아를 만들 때처럼 모든 부분을 통짜 쇠, 곧 다마스쿠스 강철로 만들었고 그 무게가 상당했다. 테세우스가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인 것은 확실했다.
“후우우······”
이윽고 망치질을 멈춘 테세우스는 한숨과 함께 망치를 대장간 저편으로 집어 던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장장 9주야에 걸친 대작업이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체력과 힘을 가진 테세우스였지만 밤낮을 잊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작업한 여파는 그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테세우스는 초췌한 몰골로 자신의 작품을 힐끔 바라보다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대장간은 일은 상상 그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이 모든 일을 해냈다.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실로 경이로운 집중력과 정력이었다. 그가 아니라면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작업이었다.
그간의 집중과 긴장이 풀리자 테세우스는 한꺼번에 노도처럼 밀려오는 탈력감과 피로를 느꼈다. 정신이 아찔하니 혼미해질 정도로 지쳤지만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무구를 만들어낸 순간이라 뿌듯함과 든든함을 동시에 느꼈다.
대장간 안의 뜨거움과 끊임없이 움직이며 달아오른 육체의 열기와 별개로 바닥은 시린 겨울의 냉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다만 그 차가움이 테세우스의 혼미해진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쓸 일이 없어야겠지······. 그러길 바랄 뿐이다.’
자신의 무위를 든든히 뒷받침해줄 강력한 무구를 탄생시켰으나 이걸 당장 쓰기 위해 만든 건 아니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상황의 여유가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아닌 말로 테세우스가 호민관 위에 오른다면 1년 동안 그는 로마 밖을 나설 수도 없다. 호민관은 언제 어떤 사람의 탄원이든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플레브스회(평민회)의 허가 없이 로마의 일곱 언덕을 감싸고 있는 세르비우스 성벽을 벗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포메리움(신성경계선)을 벗어날 수 없었고 벗어나는 순간 호민관의 신체를 해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 역시 소멸 된다.
간혹 대대장과 호민관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나 호민관은 임페리움(공인된 지휘권)이 없다.
물론 처음 호민관(tribunus plebis, tribune)을 위촉할 때 평민 대대장(tribunus militum), 즉 트리부누스 아누구스티클라비우스(좁은띠 대대장, 수년간 군 경험을 쌓은 기사계급이나 백부장이 진급)에 봉직한 사람들 중에서 뽑긴 했으나 호민관은 트리부누스(지휘관, 대표자)라는 뜻에 플레비스를 붙여 트리부누스 플레비스(평민 대표자)로 표기된다. 고로 군권과는 연관이 없는 관직이다.
물론 테세우스가 호민관 임기를 마치고 원로원 입성 후 정무관에 나아가 법무관까지 나아간다면 군권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겠지만 그럴지라도 재무관부터 시작하는 것이 수순이며 그마저도 호민관에 오른 자는 다른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는 술라의 법으로 인해 막혀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호민관으로 선출된다면 최소 1년 동안은 로마에서 떠날 일도, 전투에 나가 싸울 일도 없는 셈이다. 그러니 세상을 놀라게 만들 무구를 만들어놓고도 사실상 쓸 일이 없었다. 또한 그러기를 바랬다.
전장의 치열함과 잔혹함을 정말로 아는 자라면, 그러니까 그 비정함이 자신의 삶과 그 모든 것이라도 찢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는 자라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전투를 대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누구보다 평화를 갈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테세우스가 강력한 무구를 만들었음에도 쓸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전장을 아는 자의 당연한 태도였다.
어떻게 보면 저들은 호민관에 오르게 함으로 무예와 병략으로 명성이 높은 테세우스의 특기를 제한하려는 의도 역시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저들도 테세우스가 주사위나 던지다가 메텔루스 피우스 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게 아니란 것쯤은 이제 파악했을 테니 말이다.
저들이 그런 것조차 여지껏 파악하지 못하는 자들이라면 테세우스가 긴장하거나 신경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누운 채로 생각을 정리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지막이 뇌까렸다.
“어쨌든 쉼이 필요하군.”
다만 그가 말한 쉼은 일반적인 형태의 휴식을 말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실제 신성 로마 제국 마티아스 황제의 할버드라고 합니다.
테세우스의 방천화극?은 이렇게 여리여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형태에서 창날과 월아 도끼부분의 날이 훨씬 더 두텁고 튼튼하며 예리하다고 상상하시면 될 듯합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크고 아름답고 무식하다 라는 느낌 말입니다. ㅋ
테세우스가 만든 갑주는 독자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