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219. 붉은 눈밭.
219.
테세우스는 명령과 함께 본인이 제일 먼저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길을 가다가 누가 뺨을 쳐도 극도로 분노하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테세우스는 범인이라면 백번 죽고도 남을 상황에 처했었다. 크게 내색하지는 않아도 분노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용암처럼 부글거렸다.
더욱이 이는 테세우스가 중요시하는 ‘보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기도 했다.
테세우스는 육중한 보아디케아의 창대의 끝을 오른손으로 잡고 그대로 횡으로 베었다.
부우우웅!
“크아아악!”
“크허헉!”
육중한 무게에 힘이 실리기 어려운 지점을 잡았음에도 그의 창은 공격범위 안에 있던 모든 적을 단번에 양단해버렸다.
그리곤 앞으로 도약하며 창을 다시 반대방향을 향해 횡으로 휘둘렀다.
“으아아악!”
“크허헉!”
추수 때에 추수하는 농부의 낫처럼 테세우스의 보아디케아는 적들의 수급을 아무렇지 않게 수거했다.
무예가 제법 뛰어난 이들이니 테세우스의 창을 막으려는 자들도 많았지만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테세우스의 힘을 그나마 온전히 전달해주는 보아디케아는 방패와 갑주도 물을 베듯 갈랐다.
보아디케아를 막아선 이들은 자신의 의도나 의지에 관계없이 검이 부서지거나 검을 잡은 손아귀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테세우스에게 목숨을 내어줘야만 했다.
그뿐이랴? 테세우스의 명을 받은 병사들 역시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들의 목숨을 차근히 빼앗었다. 보아디케아를 얻기 전에도 테세우스 홀로 이들 모두를 살육할 수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보아디케아에 기병들까지 함께 했다.
전투의 결과야 더 볼 것도 없었다.
저들의 뜨거운 피로 눈밭은 붉게 자신을 물들이다가 이내 곧 지면에 녹아 사라졌다.
테세우스는 강한 힘으로 자신을 지금껏 암습한 우두머리를 후려쳤다.
까아아앙!
“크흑!”
놀랍게도 보아디케아를 정면으로 얻어맞았음에도 검이 부러지지 않았다. 매우 잘 만들어진 검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힘을 고스란히 전달받은 우두머리는 그 여파로 저만치 날아가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던 우두머리는 이내 곧 몸을 바로 세우더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테세우스에게 달려왔다.
테세우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보아디케아를 빙글 돌려 창대로 그의 오른쪽 허리를 가격했다.
까아앙!
놈이 다시 막자 테세우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왼쪽 허리를 가격했다.
까앙!
놀랍게도 놈은 다시 막아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테세우스의 의도였다. 강한 힘을 두 차례나 막아냈으니 검이 아무리 튼튼해도 그 충격이 손과 팔에 고스란히 축적되었을 터, 우두머리의 팔은 쉴 새 없이 잘게 떨렸다. 그뿐이랴? 한쪽의 충격이 해소되기도 전에 반대쪽에서 강한 충격에 육체에 다시 전달되었으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충격에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공격을 세 차례나 막아냈다는 점에서 눈앞의 사내도 범상치 않은 사내인 것은 분명하지만 테세우스 앞에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전투 중이라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테세우스의 날카로운 눈과 수많은 경험은 단번에 그것을 파악했다. 온몸이 일시적으로 경직된 것을 말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노리고 공격한 테세우스가 적의 상태를 모른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리라.
테세우스는 횡으로 후려쳤던 창이 반탄력에 튕겨 오르자 그것을 위로 들어올린 후 아래로 냅다 후려쳤다.
하나 반탄력에 튕겨 올랐다기보다는 테세우스가 힘조절을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표현이리라. 냅다 후려 쳤다면 그것을 마주한 사내는 조금 전처럼 저만치 날아가 땅바닥을 굴러야만 했을 테니 말이다.
“크허허허헉!”
날카로운 창두로 벤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잊었는가? 다마스쿠스 강철로 만든 무기는 아니더라도 보아디케아 역시 상등품의 강철을 사용해 통짜 쇠로 만든 무기였다.
창두가 아니라 창대로 후려 쳤지만 창대 그 자체로도 무시무시한 둔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거기에 테세우스의 힘이 실린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아닌 게 아니라 창대에 오른 어깨를 후려맞은 우두머리는 맞은 부위의 뼈가 산산이 박살났고 그 부위 근육 역시 강력한 타격으로 인해 곤죽이 되어 버렸다.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에 가까웠다.
“크허헉!”
우두머리는 어깨와 팔이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충격에 검을 떨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강한 충격에 내장마저 크게 상한 모양이었고 무엇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는 것은 테세우스의 체중도 일정부분 실렸다는 이야기였기에 당연히 그 일격을 맞고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그가 일격에 격살 당하지 않은 것은 테세우스가 질문할 것이 있어 사정을 봐줬기 때문이었다.
“말하라.”
테세우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통스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졌지만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테세우스의 무력을 보며 전장에 섰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실력에 과연 만족할까? 더욱이 테세우스에게 매료되어 고향까지 버리고 그를 따라온 자들이 아닌가? 저들의 기준이 워낙 높기에 이는 끝없는 단련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테세우스를 습격한 자들의 실력 역시 뛰어났지만 테세우스를 따르는 자들의 실력은 그들보다도 뛰어났다. 물론 매우 노련한 정도까지는 아니나 어쨌든 이들은 말을 타고도 활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이니 그 결과야 말했듯이 더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우두머리는 사나운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노려볼 뿐 어떤 말도 뱉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늘어뜨리고 있던 보아디케아를 휘둘러 그의 오른팔을 완전히 절단해버렸다.
촤아아악!
“크흐흐흑!”
사내가 섬뜩한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때 테세우스가 다시 말했다.
“말해라!”
무엇을 말하라는 지는 뻔한 내용이었으니 사족을 덧붙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테세우스는 길게 말할 필요를 못 느꼈다.
“죽여!”
우두머리의 눈빛을 마주한 테세우스는 자신을 죽이려던 적이지만 심지가 매우 단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의 추궁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고문을 통해 그의 고통을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그런 악취미는 테세우스에게 없었다.
죽일 자는 죽이고 살릴 자는 살릴 뿐이다. 거기에 어떤 사족을 덧붙이지 않는다. 설혹 그게 원수라고 해도 그의 고통을 즐기는 괴악한 취미를 가질 생각은 없었다. 죽일 놈이라면 그저 죽이면 될 뿐이다.
테세우스는 그의 눈을 마주하며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나만 약속하지. 네 주인도 너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반드시.”
우두머리 사내는 뭐라 말하려고 꿈틀거렸지만 테세우스는 허공에 맴도는 메아리처럼 공허한 외침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부우우웅!
촤아아악!
테세우스는 그 즉시 놈의 목을 베어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버렸다.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던 이곳이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해버렸다. 여기저기 피와 살점이 흩뿌려져 있고 악의와 살의를 가진 자들이 칼부림을 하고 있으니 완벽한 지옥도가 아니면 또 무엇이랴?
테세우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보아디케아에 흐르는 핏물을 털어냈다.
부우우웅
후두둑!
붉은 핏방울이 질척해진 땅 위에 흩뿌려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테세우스는 눈매를 좁히며 머리를 잃고 주저앉아 있는 우두머리의 시체를 바라봤다.
‘왜 나를 습격한 거지?’
테세우스는 철두철미한 자다. ‘보신’과 연관된 문제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저들은 예전에도 자신을 죽이려고 한 자들이다. 그런 이들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집트에서도 저들의 존재에 대해 파악하고자 했던 사람이 테세우스인데 말이다.
하나 아무리 들고파도 저들과 자신의 특별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원한 관계로 얽히기 쉬운 문제 중 하나가 이득 문제다. 타인으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보거나 봤다고 생각한다면 쉬이 원한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하여 테세우스는 상업 분야부터 시작해서 정치 분야에 이르기까지 모두 면밀히 조사했다. 자신에게 적의를 가진 자와 아닌 자를 어찌 완벽하게 분류하겠느냐만은 이런 이들을 부릴만한 역량을 가진 자는 결코 많지 않다. 어중이떠중이였다면 애초에 위협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 특정 인물을 규정할 수도 없었고 특별한 접점도 찾지 못했다. 마치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 적이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도적떼와 연관된 자는 호민관 위에 오를 것을 반대하는 무리였지만 이들은 저들과도 상관없는 자들이었다. 그럼 정체불명의 적과 연관된 이들이 호민관에 오를 것을 원하는 무리다? 더욱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닌가?
이는 다시 말해 정체불명의 무리와 연관점이 있을 가능성이 꽤 높았던 로마의 권세가들도 아니라는 소리다. 로마의 권세가가 아니라면 셀레우코스? 나디르가 말했다시피 그곳은 이미 멸망에 가까운 길로 향하고 있는 왕국이다. 그런 곳에 무슨 힘이 있어서? 아니 대관절 그런 왕국에서 테세우스 자신만 특정해서 암살할 연유가 어디 있을까?
그러니 접점이 전혀 없는 것이다. 어쩌다 우연히 도적떼를 만나듯 저들을 만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물론 무스타파와 만난 것은 우연히 만난 것이 맞다. 하나 그 이후에는 분명 저들은 나를 찾아왔다. 문제는 이들이 나를 왜, 무슨 연유로 찾아왔냐는 점인데······.’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한 병사가 테세우스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모두 사살했습니다.”
테세우스는 생각에서 벗어나 주변을 한 차례 바라본 뒤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전장 정리 후 저들에게서 특이점이 될만한 물건이 나온다면 가져오도록!”
“알겠습니다.”
더 생각해봐야 생각만으로 끝날 문제라면, 그러니까 어떤 증거나 정황도 없이 상상과 추측만 남을 문제라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 문제를 잊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대로된 증거를 얻을 때까지 잠시 미뤄둔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을 죽이려던 이들이니만큼 그렇게라도 미뤄두는 것이 위험할 수 있지만 더 생각한다고 더 나은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따라서 지금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시점이었다.
테세우스는 생각을 정리한 뒤 눈앞의 센튜리온에게 말했다.
“다른 센튜리(백인대)들과 연락은 어찌되고 있나?”
“매달 한번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했지만 굳이 나를 따를 연유는 없다. 정착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언제든 그렇게 하라. 이는 나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고 너희를 배신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나의 명령이기도 하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지금보다 나이가 들면 정착을 생각할지도 모르겠지요. 현재는 모두가 테세우스 님을 따르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 생각이 아니라 제가 파악한 바가 그러합니다.”
“으음.”
히스파니아에서 테세우스와 함께 이동한 병력은 본디 2만 2천. 그 중 2만은 메텔루스 피우스 휘하의 포로들이었으니 제외하고 2천 명이 테세우스와 함께 로마로 이동했다. 여기서 다시 로마시민권이 있어 테세우스와 함께 로마로 입성한 700명의 병사를 제외하면 히스파니아 등지에서 테세우스를 따라 이동한 병사들은 1,300명이라는 소리였다.
로마에 입성한 병사들과 달리 1,300명의 병사들은 나이가 젊고 패기 넘치는 병사들이었다. 700명의 로마군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백전노장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하나 육체의 전성기가 지났고 오랜 시간 전장에서 보내며 마모될대로 된 자들이다. 이들은 전장에서 남은 삶을 불태울 게 아니라 평온한 삶 가운데 휴식을 취해야 할 이들이다. 전사로서 적합한 이들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반면 1,300명의 병사들은 나이가 젊고 전투기술에 능숙하며 700명의 로마군과 함께 이동하며 그들의 경험도 상당부분 전수받았다. 매우 노련한 병사집단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이들은 테세우스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한시도 쉬지 않고 단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은 13개의 백인대로 나눠져 로마의 적당한 곳에 자리잡았고 양질의 보급은 테세우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으니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로마가 들어선 곳에 어찌 무력집단이 자리잡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로마가 건재한 곳에 도적집단은 어찌 활개를 치고 있을까?
말했지만 사람들이 집중된 도시와 전략적 요충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다. 그러니 100명씩 나눠진 집단이 주변에 자리잡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머지 센튜리온들은?”
테세우스가 질문하자 백부장이 바로 대답했다.
“저희 주둔지에서 테세우스 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테세우스가 재차 명령을 내렸다.
“전장정리가 끝나는대로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도적으로 보이는 자가 테세우스 님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도적?”
테세우스는 활을 제법 잘 다루던 사내가 떠올랐다. 그 난리통에 용케도 죽지않고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들어볼 필요가 있겠지.’
“데려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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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는 것 같지만 켄튜리가 더 맞는 표기입니다. 켄튜리 켄튜리아. 켄튜리온.
하나 센튜리 센튜리온으로 누차 표기해왔던 부분이라 켄튜리아회를 표기할 때 빼고는 센튜리, 센튜리온으로 표기하겠습니다.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본래는 같은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