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23화 (223/298)

# 223

223. 당선 후.

223.

직무수행하는 호민관을 신체적으로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없다. 이것이 신성불가침권이다. 이 권한은 평민들로부터 나왔고 평민들은 특별직인 호민관의 신성불가침을 지지하겠다고 맹세했다.

술라의 코르넬리우스 법이 BC 287년 제정된 호르텐시우스 법을 폐지시키고 플레비안회(평민회)의 권한을 말소, 호민관의 모든 권한을 빼앗았지만 신성불가침권까지 건드릴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평민들의 맹세와 지지로 보장되는 신성불가침권까지 건드린다는 소리는 곧 평민들의 최후의 보루를 짓밟는다는 소리고 이는 곧 극심한 반란으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어차피 입법권과 사법권에 이어 거부권까지 빼앗은 이상, 호민관의 신성불가침권 하나쯤이야 내버려 둬도 상관없었다. 호민관의 원로원 입성을 막은 것도 아닌 이상에야 괜한 짓을 하지도 않을 테고 술라가 호민관 임기 후에 다른 어떤 관직에도 나갈 수 없게 만들었기에 야심에 찬 자들은 애초에 호민관 선거에 나서지도 않았기에 문제 될 것이 거의 없었다.

“상당히 대담한 발언을 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경솔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시오?”

테세우스는 서기들에게 둘러싸여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가 서기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총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건물의 1층은 요새처럼 크고 높은 벽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벽의 상층부에는 작은 창문들이 여러 개 달려 내부로 빛을 들이고 있었고 하나의 대문이 달린 공간이었다.

2층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세 건축 양식 중 하나인 도리아 양식으로 이뤄져 있었다.

도리아 양식은 가장 초기의 간단한 양식으로 이를테면 도리아 양식의 기둥은 평평하거나 매끄러운 면으로 되어있으며 사원이나 다른 건물이 서 있는 연단으로 바로 떨어지는 형태를 지녔다.

세 건축 양식은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발전한다. 당연히 가장 저렴한 가격에 지을 수 있는 양식이 도리아 양식이었고 가장 화려하고 비싼 양식이 코린트 양식이라 보면 되었다.

마지막 최상층인 3층에는 지붕 아래 대들보를 받치며 일정한 간격 배치된 높다란 열주(列柱)가 코린트 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건물의 이름은 타불라리움(Tabularium)으로 술라의 명에 의해 시공되었고 BC 78년 집정관인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에 의해 그해에 완공되었다. 타불라리움은 카피톨리누스 구릉에 위치했는데 BC 83년 대화재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공공사업의 일환으로 건축된 건물이었다.

타불라리움 내부에는 베오비스 신전의 유물이 있었고 타불라리움 앞에는 콘코드와 베스파시안 신전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로스트라(Rostra, 로마의 대형 연단)가 있었다. 로마의 연사들은 이곳 로스트라 위에 서서 코미티움(Comitium, 의회 의사당) 북쪽을 바라보며 모인 시민들에게 연설하곤 했다.

카피톨리누스 구릉 밑에 자리했기에 당연히 그 꼭대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피테르 신전과 유노 신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 타불라리움은 로마의 공식 기록문서와 법령 보관소이자 많은 시 공무원의 사무실도 함께 수용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첫 회의가 파하자마자 이곳 타불라리움으로 이동해 타불라리움의 서기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저희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테세우스는 노회해 보이는 서기가 대답을 피하자 짐짓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섭섭하군요. 아니면 제가 섭섭하게 만든 부분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사과를 받아주십시오.”

“어허······. 저희가 대체 뭘 알고 또 무슨 힘이 된다고.”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로마의 세네투스(원로원)와 코미티아(민회)는 공무원을 혐오했다.

따라서 공무의 상당 부분이 민간업체나 개인을 통해 집행되었다. 보수나 근무조건이 훌륭하지 않았지만 어쨌건 이러한 공무를 집행하는 자는 공공노예를 제외하고 모두 로마의 시민이었다. 다만 사무직 공무원의 상당 부분은 그리스 출신의 노예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현재 테세우스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노예가 아니라 로마의 시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무원에 대한 로마 사회의 평가는 밑바닥인 것이 현실, 당연히 다른 정무관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설혹 호민관이라고 해도 의견을 함부로 말하기 저어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의 말에도 지혜가 있는 법입니다. 평민들을 위한 지혜를 구하고자 함이니 부디 나눠주시지요.”

테세우스의 ‘평민’이라는 단어에 노서기의 눈빛이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의 노서기 역시 평민이기 때문이다.

“트리뷴께서도 익히 아시겠지만 평민들의 권리를 되찾으려면 렉스 호르텐시아(호르텐시우스 법) 폐지를 무효화시키셔야 합니다.”

호르텐시우스 법이 대체 무엇이기에 노서기가 이리도 강조하는 것이란 말인가?

렉스 호르텐시아는 BC 287년 경 귀족과 평민과의 싸움을 조정하기 위하여 딕다토르(독재관)로 뽑힌 퀸투스 호르텐시우스가 제정한 법으로 평민회에서 의결된 사항을 원로원의 인준(認准) 없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되어 평민과 귀족이 법률상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법이다.

다시 말해 렉스 호르텐시아가 없었다면 트리뷴(호민관)이 대두될 일도 없었다.

테세우스가 고개를 주억이자 다른 노서기 역시 입을 열었다.

“플레비스키툼과 렉스의 차이가 사라진 것 또한 렉스 호르텐시아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다시 차이점이 생겼지요.”

플레비스키툼(plebiscitum)은 플레브스회에서 결의한 법으로 법적 구속력이 존재하는 렉스(lex)와는 엄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호르텐시아 법이 제정됨으로 차이점이 사라졌다. 노서기는 바로 이점을 언급한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서기들 역시 말하기를 기다렸으나 문제가 문제인지라 테세우스에게 말을 꺼낸 사람은 결국 두 사람이 전부였다. 하여 침묵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기다리던 테세우스는 두 서기를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테세우스의 눈빛에는 감탄한 기색이 역력하게 담겨있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두 분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방금 대답한 노서기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으흠. 지푸리기처럼 흩어없어질 사람의 이름이야 트리뷴께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은 여쭤보시니 답변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에우메니우스라고 합니다.”

“페트로니우스라 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입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법령과 공식문서의 기록을 담당하시는 분들이시니 많은 시간을 뺐지도 않겠습니다. 아울러 두분의 대담함에 경의를 표하겠습니다.”

테세우스는 에우메니우스와 페트로니우스를 제외한 서기들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남아있으셔도 상관없지만 두 분 외에는 저와 깊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으신 것으로 보이는군요.”

테세우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저들은 가벼운 인사와 함께 자리를 피해줬다. 더 깊은 이야기를 테세우스와 나눈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에 발을 디딘다는 소리였기에 알아서 빠진 것이다.

하나 테세우스는 저들을 얕잡아보지도 멸시하지도 않았다.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피하는 것도 지혜였으니까.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기엔 너무 경솔하게 말을 꺼낸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지금 거론된 내용은 법령을 다루는 서기들이라면 누구나 파악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딱히 어려운 내용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 사실을 서기들이 거론하기엔 너무 버거운 주제라 거론하지 않을 뿐이었다.

서기들이 자리를 비우자 테세우스는 페트로니우스, 에우메니우스 두 노서기에게 거두절미하고 말을 꺼냈다.

“자료가 필요합니다.”

노회한 서기들이라 테세우스가 거론한 자료가 무슨 자료인지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요구조건이 너무 광범위했다. 또한 그 정도로 광범위한 권한 역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서기는 서기일 뿐이다. 서기의 권한을 벗어난 행위를 한다면 법에 의해 처벌을 받기 마련이다. 서기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스스로 옳은 일이라 여긴들 그 일로 인해 위정자들의 눈밖에 난다면 더 이상 로마에 발붙이고 살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 해도 안락하고 평온한 내일의 삶을 바라지 않는 게 아니다. 왜 아니겠는가? 오히려 젊은날보다 더욱 절실하다. 젊은날엔 쉬이 견딜 비바람도 나이가 들면 뼛속까지 시린 법이다. 바로 그렇기에 테세우스는 이들을 보며 감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말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들은 짧은 대답 속에 삶을 송두리째 건 것이나 다름없었다. 테세우스는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만나길 바랬다. 그 대상자가 혈기 넘쳐나는 젊은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이가 지긋한 노서기일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페트로니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렉스 호르텐시아와 관련된 자료는 이미 철저히 봉인되어서 함부로 열람할 수조차 없습니다. 저희의 권한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죄송합니다.”

에우메니우스 역시 어두워진 안색으로 테세우스에게 유감을 표했다.

말 그대로 안타까운 답변이었지만 신기하게도 테세우스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요. 하지만 제가 요청하고자 하는 자료는 렉스 호르텐시아와 관련된 자료가 아닙니다. 설혹 자료를 열람하고 그 내용을 제가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한다면 두분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를 돕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지요.”

테세우스의 말에 페트로니우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반문했다.

“하면 대체 어떤 자료를?”

“정무관들이 민간업체와 계약한 거래내역을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아마 거래내역이 따로 금지되지는 않았을 테니 그 정도는 확인해 볼 수 있겠지요.”

“음?”

테세우스의 답변에 페트로니우스는 더욱 의문에 찬 음성으로 질문했다.

“거래내역이라 함은 당연히 당해의 정무관 기록은 아닐 테고 작년 정무관들의 거래내역을 거론하시는 걸 텐데······. 그게 트리뷴께 대체 무슨 의미가?”

당해의 첫 회의가 끝나자마자 공식 기록 문서와 법령 보관소인 타불라리움을 찾아와 다짜고짜 작년 정무관들의 거래내역 문서를 확인하고 싶다고? 당장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이건 숫제 대놓고 비리를 파보겠다는 행위인데 아무리 트리뷴이라고 해도 너무 위험한 행동이 아닌가?

“입법권과 사법권, 거부권까지 잃었지만 평민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트리뷴의 의의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요.”

페트로니우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당연히 트리뷴께서는 ‘평민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우······. 주제 넘은 발언이라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급하신대로 현 트리뷴은 상정된 안건에 대한 거부권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필요 이상 자극하신다면 이는 테세우스 님께도 평민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겁니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페트로니우스를 바라봤다.

“확실히 그렇겠지요.”

눈매를 좁히며 테세우스와 페트로니우스의 대화를 경청하던 에우메니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트리뷴께서는 대체 무엇을 보고 계신 겁니까? 단순히 작년 거래내역을 확인하고자 하신 것이라면 그저 확인해보겠다 하면 될 일이지 괜히 저희 늙은이들의 마음을 떠볼 이유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더 돌려 말하시지 마시고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말씀해주시지요.”

에우메니우스의 눈빛을 받은 페트로니우스 역시 노인답지 않은 형형한 눈빛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트리뷴 위에 오르기 전부터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있는 분이라는 소문을 듣고 한 번쯤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저를 찾아오실 줄은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 늙은이가 트리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남은 생을 걸어보려 합니다. 하니 저희에게 하명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테세우스는 두 노서기를 바라보다가 감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부탁드릴 내용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인지하고······. 아니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인지하고 있군요. 흠. 좋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두 서기를 바라보던 테세우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거래내역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하나 작년 정무관의 거래내역은 이목을 가리기 위한 위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제가 바라는 기록은 한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페트로니우스와 에우메니우스는 테세우스의 말에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테세우스가 누구를 언급하는 것인지 듣는 순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타불라리움 모형도입니다.

그나저나 테세우스 너는 다마스쿠스 강철로 만든 극은 뒀다가 국 끓여먹으려고? 흐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