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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무신의 기억-227화 (227/298)

# 227

227. 씁쓸한 감정.

227. 씁쓸한 감정.

한 달 동안 테세우스는 매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만 억울함과 분노,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태반이었고 대부분 평민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로마는 테세우스로 인해 들끓고 있었다. 자신들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귀족들의 귀에 들어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딱히 감출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저들이 알기 바랬던 일이기에 이는 마른 들판에 들불이 번져가듯 활활 타올랐다.

호르텐시우스 법과 관련된 사항을 확인하고 아울러 정무관들의 비리를 캐고 있으니 자신들의 약점을 무기 삼아 호르텐시우스 법을 부활시키려는 테세우스의 계략을 모르는 귀족이 없을 지경, 당연히 연일 연회가 벌어지며 테세우스를 어찌 할 것인지에 대해 토의가 이뤄졌다.

동이 트기도 전 새벽의 아침, 차가운 공기가 살갗을 예리하게 저미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얇은 튜니카만 걸친 채로 아무도 없는 공터 위에 조용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집 뒤에 마련된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적당한 공터이자 훈련장이었다.

눈을 감은 그의 앞에는 완전무장한 항우와 리처드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 테세우스는 양손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로 어떤 무기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시작은 항우부터였다.

항우는 자신의 강맹한 힘을 실은 초진창을 테세우스의 몸통을 향해 강하게 휘둘러왔다. 테세우스는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유연한 몸놀림으로 매섭게 사선으로 휘둘러져 오는 초진창을 피해냈다. 그러자 이어진 기다란 초천검은 테세우스의 몸을 단번에 양단할 것처럼 초진창의 공격에 절묘하게 맞물려 들어왔다.

부우우웅.

초천검에 실린 항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파공음만으로 그것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허공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로 인해 항우의 초천검은 초진창과 마찬가지로 허공을 벨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테세우스의 심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자신의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자 항우의 노호성이 공터를 당장에라도 부술 것처럼 요동치게 만들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테세우스의 심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정말로 어떤 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위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공중으로 떠오른 그를 향해 맹렬하게 날아오는 도끼 한 자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끼는 당장에라도 테세우스의 몸을 짓이길 것처럼 보였다.

이는 절대로 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놀랍게도 테세우스는 몸의 반동만을 이용해 핑그르르 몸을 돌려 도끼를 손날로 쳐서 날아오는 방향을 바꿔버렸다.

이에 리처드가 날린 도끼는 테세우스의 손날로 인해 방향을 바꿔 공교롭게도 항우를 향해 날아갔다.

채엥

그러나 항우가 누군가? 그런 눈 먼 도끼따위에 맞을 위인이 아니었다. 항우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끼를 초진창으로 후려쳤고 리처드의 도끼는 결국 다시 리처드에게 날아갔다.

리처드는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들면서 그 도끼를 자연스럽게 받아들고는 폭풍처럼 테세우스를 향해 양손에 나눠진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신이 날린 도끼라지만 제 의도와 다르게 코앞에서 변칙적으로 날아온 도끼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 모습만 봐도 리처드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훙후후훙 훙!

탁 타닥

폭풍처럼 휘둘러지는 리처드의 도끼에 의해 테세우스의 몸이 갈가리 찢어질 것만 같았거늘 테세우스는 그 가운데에서도 다시 몸을 뒤틀어 리처드의 공격을 피해내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발로 쳐내며 리처드의 공격 역시 무위로 돌렸다.

간신히 땅에 내려선 테세우스는 이번에는 제비를 넘듯 뛰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항우의 초진창이 땅을 훑으며 테세우스의 다리를 끊고자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항우의 공격을 피하고자 몸을 뒤로 띄운 상황에 어느새 방향을 바꾼 리처드가 하늘을 향해 열린 그의 가슴팍을 향해 도끼를 아래로 찍어내리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급히 오른팔로는 내리쳐지는 리처드의 손을 치고 왼어깨와 왼팔 등은 지면을 향해 뒤틀었다. 그 반동으로 인해 몸이 왼쪽을 향해 빠르게 뒤틀어졌다.

부우우웅!

양 방향으로 휘둘러지던 리처드의 도끼는 테세우스의 대처에 의해 왼쪽으로 쏠리게 되었고 양손의 도끼는 아슬아슬하게 테세우스의 뒤튼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테세우스는 안도는커녕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항우의 초천검이 자신을 꼬챙이로 꿰어버릴 것처럼 아래에서 위로 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중으로 뛰오르긴 했지만 중력으로 인해 하강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리처드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틀어 몸의 균형까지 흩어진 상황이었다.

무기라도 있다면 걷어냈겠지만 테세우스는 현재 맨손으로 그 둘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모한 대결이었다. 이대로 이번의 대결은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테세우스는 그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테세우스는 왼쪽으로 뒤튼 반동 그대로 다시 몸을 강하게 뒤틀며 몸을 왼쪽으로 이동시킴과 동시에 번뜩이는 눈으로 지면으로 향하던 리처드의 도끼가 멈추는 순간을 포착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도끼가 빗나갔으니 하염없이 땅으로만 떨어지게끔 내버려 둘 리처드가 아니니 힘을 가해 도끼를 멈추고 방향을 바꾸려 하는 순간이 있을 터, 테세우스는 그 순간을 포착해 회전하는 힘을 가미해 리처드의 손을 쳐서 도끼 하나를 빼앗았다.

일반적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일단 테세우스의 힘이 리처드의 힘보다 강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테세우스는 빼앗은 도끼를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휘둘러 항우의 초천검을 강하게 걷어냈다.

까아아앙!

테세우스의 강맹한 힘으로 인해 항우조차 초천검에 담긴 여력을 해소하지 못하고 잠시 휘청거렸다. 균형이 무너지기 쉬운 자세였던지라 적은 힘으로 쳐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데 테세우스의 힘이 실린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으니 항우라고 해도 별 수 없었다.

몸을 회전시키고 도끼를 빼앗고 초천검을 막아내는 모든 광경이 한 호흡 안에 이어졌다. 그야말로 번개같은 대처였다.

그러나 도끼를 뺏긴 리처드나 잠시 균형을 잃었던 항우 모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테세우스를 향한 공격을 이어갔다.

리처드는 도끼를 빼앗기자마자 허리춤의 검을 뽑아 테세우스를 양단할 기세로 갈라버렸고 항우는 균형이 무너지자 애써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무너진 방향 그대로 몸을 이끌며 초진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둘의 공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으니 이들의 공격 어디서도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테세우스는 그들의 공격에 감탄하며 도끼를 든 손으로는 리처드의 검을 막아냈고 항우의 초진창의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횡으로 휘둘러진 창의 힘은 창두에 강한 힘이 실리기 마련이니 중심점이 되는 항우를 향할수록 그 위력이 약해진다.

따라서 테세우스는 안쪽으로 이동하며 위력이 약해진 초진창을 남은 한 손으로 막아냈다.

터억!

그러나 그 모습에 항우는 가소롭다는 듯 테세우스가 창대를 잡는 그 순간을 노려 창대를 강하게 회전시켰다. 테세우스의 힘은 항우보다도 강맹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테세우스의 힘이 창대에 전달되기도 전에 창대의 회전에 의해 그의 손가락이 뒤틀릴 판이었다.

이에 테세우스는 흠칫 놀라며 손을 떼며 손바닥으로 창대를 쳐냄과 동시에 팔목으로 그것을 쳐 올렸다.

항우의 창대는 테세우스가 잡으려던 손바닥 안쪽으로 강하게 회전하고 있었기에 테세우스가 손바닥으로 쳐내는 순간 손바닥을 타고 올랐다. 물론 항우가 그것을 제어하고 있었기에 살짝 타고오른 것이 전부였지만 테세우스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팔목으로 밑을 쳐올림으로 횡으로 베어지던 궤적을 일정부분 위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테세우스는 그렇게 만든 틈으로 몸을 숙여 초진창의 궤적을 피해내고는 항우의 비어있는 하단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채앵!

그러나 항우는 창의 궤적이 뒤틀린 그 순간 이미 몸을 뒤로 뺐기에 테세우스가 공격을 하는 그때 이미 몸을 뒤로 빼고 초천검으로 테세우스의 도끼를 막아냈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공격의 흐름이 끊겼다는 것은 곧 위기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처드의 검과 도끼가 테세우스의 등을 난자할 것처럼 매섭게 날아들었다. 몸을 돌려서 막기엔 너무 늦었다. 피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았다. 항우를 공격하느라 리처드에게 등을 완전히 내어줬고 그를 반격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으니 리처드는 자신이 피할만한 동선을 모조리 파악하고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상처 하나 없이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혹 아무 피해없이 리처드의 공격을 피한다고 해도 눈앞의 항우가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몸을 돌리거나 피하는 즉시 목숨을 잃게 만들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테니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나 테세우스는 끝까지 침착했다.

심상이라고 하지만 맨손으로 이들과 대결을 펼친 것은 이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공격을 막느라 사용된 초천검을 바라봤다. 테세우스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항우의 팔을 자신의 왼 주먹으로 가격하고 오른팔에 쥐고 있던 도끼는 뒤에 짓쳐드는 리처드를 향해 집어던졌다.

힘이 실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날아온 도끼치고는 매우 매섭게 날아들었기에 리처드는 도끼를 처리하느라 잠시나마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테세우스는 그 틈을 타 항우가 쥐고 있던 초천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자신의 무기를 빼앗길 항우가 아니지만 팔뚝을 강하게 타격을 입은 상황이고 힘 자체는 테세우스가 더욱 강했다. 팔에 힘을 제대로 줄 수 없던 항우는 결국 분노한 표정으로 초천검을 놓으며 초진창을 짧게 잡고 테세우스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쐐에에엑!

테세우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짧게 내질러진 초진창을 후려침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며 리처드의 검과 도끼 역시 후려쳤다.

채애앵

채앵

허공으로 날아올라 체중까지 실어서 내리치던 리처드의 공격을 한 손에 든 검으로 막아내고 심지어 그를 뒤로 얼마간 날려버리기까지 했다. 정말 괴물같은 힘이었다.

그리곤 리처드를 바라본 상태 그대로 초천검을 자신의 옆구리 아래로 찔러넣음과 동시에 포탄을 쏘아내듯 몸을 앞으로 튕겼다.

푸우욱!

항우의 초진창은 테세우스의 뒷목에 닿기에 고작 한치가 부족했을 뿐이었다. 테세우스가 급히 앞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항우의 배에 검을 틀어박는 대가로 뒷목에 창두를 박아넣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치열한 접전이었다.

항우는 배에 검상을 입었음에도 의연한 태도로 울부짖으며 다시 초진창을 휘둘러왔다. 얼마간 뒤로 날아간 리처드 역시 분한 표정으로 다시금 그를 향해 짓쳐들었다.

“들으셨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광경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말을 꺼낸 음성에 숨을 깊게 내쉬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는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몸에는 땀과 열기가 가득했다.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인 그의 근육들이 그 격렬함을 이기지 못하고 차디찬 날씨에도 불구하고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심상수련을 이토록 실제처럼 하는 무인 역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이러한 심상수련을 하루 이틀 해온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엔 서서 명상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심상수련이 가능한 것은 그가 겪은 특이한 경험이 항우와 리처드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게 만든 점도 있지만 적을 죽이면 차오르는 기력처럼 테세우스만 가진 특별한 능력 중 하나라고 봐야했다.

“후우우우.”

숨을 깊게 내뱉은 테세우스가 호라티우스를 바라봤다.

“이런. 제가 명상을 방해했군요.”

“아니 어차피 이제 곧 끝내려던 참이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보고 드릴 일도 있어서 복귀하던 참이었습니다만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하셨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따로 신경 쓰실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저도 로마에 입성하면서 들은 소식입니다.”

테세우스가 그를 가만히 바라보자 호라티우스가 말했다.

“데메트리우스. 그 자 말입니다. 어제 검투장에서 죽었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테세우스는 심유한 눈으로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그랬군.”

후련한 감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씁쓸한 감정만 마음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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