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36화 (236/298)

# 236

236. 바로 법이다.

236.

“솔직히 테세우스 당신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은 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폼페이우스와 손잡는 것을 고려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요.”

테세우스는 잠잠히 크라수스의 말을 들었다.

“하나 폼페이우스라······. 결국 나 스스로 자충수를 둔 셈이지요. 콘수아리아 축제 때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시민의 인기를 한 몸에 업은 당신과 척을 짐으로 공연히 재산만 날린 셈이 되어버렸으니까. 어쨌든 그런 내가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는다? 가능하겠습니까? 그게 가능한들 향후 로마에서 나의 입지가 어찌 되겠습니까?”

지금껏 폼페이우스와 각을 세우고 있던 상황이 조금 어렵게 되었다고 폼페이우스에게 손을 내민다? 크라수스는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었다.

“으음.”

“재물을 잃어버리는 것? 다시 채우면 됩니다. 어떻게든! 하나 명예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회복할 길이 없어.”

크라수스는 형형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더라도 많은 재산을 그에게 보상으로 내밀어야 할 테지. 에트루리아, 히스파니아, 달마티아 정벌을 완수한 폼페이우스는 나의 재산을 바탕으로 독수리가 허공을 향해 날개치듯 올라갈 테고. 결국 나는 명예도 잃고 재산도 전부 잃게 될 테지. 그간 사사건건 자신을 적대한 나를 폼페이우스가 기꺼워할 리는 없으니까.”

크라수스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누구보다 재물이 시급한 상황이란 말이지. 목숨바쳐 충성스럽게 싸운 부하들에게 전리품이라도 챙겨줘야 하는데 넉넉한 전리품이 없으니 세네투스에 히스파니아 토지를 요구할 텐데 금광과 은광을 비롯한 다량의 광물 자원이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땅을 한낱 병사들에게 인가할 세네투스가 아니란 말이야. 제 아무리 폼페이우스라도 격렬한 세네투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일을 강행하지는 못할 터.”

“그럼 폼페이우스는 그와 결탁함으로 명예는 물론 세네투스에 대한 영향력도 잃어버린 재산이 많은 한 사람을 닦달하겠지. 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말입니다. 여기서 테세우스 당신을 언급하지 않음은 내가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은 미래에서 당신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 하는 소리요. 하나 그 미래에는 나의 미래도 존재하지 않겠지요.”

침묵을 지키고 있는 테세우스를 유심히 바라보던 크라수스는 길게 숨을 뱉은 후 다시 말했다.

“후우. 테세우스. 당신을 향한 분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공멸에 이를 정도로 당신에게 분노하고 있는 건 또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폼페이우스의 독주보다는 그의 발목을 잡아챌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내게 이득인 셈이고. 얼추 설명이 되었을거라 보입니다만?”

“당신의 사유야 그렇다고 해도 나는 당신의 재산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 재산은 어차피 국고로 환수조치되어.”

“국고로 환수? 하하하하. 정녕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까? 아니면 모른 척 하려는 겁니까? 내 말을 헛으로 들었군. 내 제안을 거부하면 나는 내 모든 재산을 사용해서 당신은 물론 폼페이우스의 앞길을 막을 겁니다. 현재로서는 당신이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이 자리에 서 있지만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 테면 당신과 함께하는 저 카이사르라는 자도 그 대안 중 하나가 되겠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까? 국고로 환수조치되기 전에 나의 재산은 탐욕스러운 세네투스의 이빨아래 갈가리 찢겨져 나갈 테고 그 대가로 당신 역시 파멸을 면치 못하게 될 겁니다.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국고로 환수된다면 어차피 저들의 손에 쥐어지게 될 텐데 내 분노를 풀기 위해 그렇게 하지 못할 것도 없지.”

하나 크라수스는 그 말을 꺼내면서도 악에 받친 모습이 아니라 상당히 여유로워보였다. 테세우스가 미간을 좁히며 크라수스를 주시하자 그는 미소까지 지으며 다시 말했다.

“세네투스가 얼마나 탐욕스럽기만 한 자들인지는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도 드물 겁니다. 저들의 생존본능이 얼마나 강한지도 말입니다. 나를 무너뜨린다면? 세네투스는 당신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너뜨리려 들 겁니다. 나 크라수스도 가차없이 쳐낸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물론 테세우스 당신이라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위기를 다시 반전시킬 수 있겠지만 글쎄. 그것도 폼페이우스가 귀환하기 전에나 가능한 일일 테지.”

“음.”

“로마에 법과 제도를 세운다? 그것을 위해 나 크라수스의 목을 쳐버린다? 뭐든 좋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행함에는 사심이 없기에 파고들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로마라면 말이 달라지지요. 작금의 로마의 권력자들 중 누구도 당신을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좀 더 명확해지면 질수록 당신을 향한 적대감은 나날이 깊어질 테지요. 나를 치면 당신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될 겁니다. 또한 그 과실은 엉뚱한 자가 와서 취하게 될 테지요. 그래도 좋습니까? 그 과실을 취할 자 역시 제 배만 불리게 될 텐데 말입니다. 당신의 모든 행함이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당신이 몰락하거나 죽은 후에 말입니다.”

크라수스는 말을 멈추고 다시 숨을 크게 내쉰 뒤 말을 이었다.

“당신을 보면 그라쿠스 형제가 생각이 납니다. 토지개혁이라······. 대단한 혁명가들이었지요. 나를 치고자 하는 이면에는 토지개혁도 염두에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주겠단 말입니다. 부당이득으로 취한 토지를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말입니다.”

일견하기엔 찬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라쿠스 형제가 행한 일과 더불어 그들의 결말도 암시하고 있는 말이었으니 고도로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주 치밀하게 자신의 행보를 파악하고 있었다. 역시 약점을 잡았을 때 고꾸러뜨려야 할 자였다.

‘크라수스. 크라수스. 괜히 삼두정치의 일인이 아니었나? 계륵. 실로 계륵과 같은 제안이다. 말한대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를 압박할 테고 받아들인다면······.’

테세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크라수스에게 말했다.

“덫이로군.”

“말했다시피 저 역시 당신에게 좋은 감정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또한 내 입장에선 재산의 절반을 버리더라도 명예와 함께 도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대가를 아주 값싸게 치르는 셈이지요. 무엇보다.”

말을 끊은 크라수스를 테세우스가 쳐다보자 그가 다시 말했다.

“궁금하더군요. 막대한 재산을 얻은 당신이 어떻게 변할지, 또한 폼페이우스가 어떤 식으로 그대를 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미 짐작하고 있는 부분일 테니 제 의도를 숨길 필요는 없겠지요. 트리뷴께서는 아주 바빠지실 겁니다. 여러모로 말입니다. 재산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생각할 거리도 많아진다는 이야기지요.”

크라수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트리뷴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공표할 생각이오?”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재산과 명예를 바꾸는 일인데 세인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 시민의 공공이익을 위해 재산의 절반을 트리뷴에 맡기겠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요. 어찌하시겠습니까? 트리뷴께서 나를 압박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트리뷴과 나, 그리고 로마 시민들 역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그 점 하나는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테세우스는 크라수스의 제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크라수스가 건네 준 모든 재산을 공정하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고 해도 의심을 피할 길이 없다. 또한 세인들에게 뇌물을 받고 크라수스의 죄를 덮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사라지는 셈이니까.’

하나 그것과 별개로 크라수스의 금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많다. 크라수스의 힘의 원천은 금력이기에 그 금력의 절반을 빼앗는다는 건 그만큼 그의 힘을 감소시킬 수 의미도 지닌다. 아울러 크라수스의 말따라 적어도 당분간 세네투스와 극단적인 파국을 맞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간과 물질 양면 모두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소리다. 테세우스 입장에서도 상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공공이익을 위해서 기부하려는 것이라면 굳이 저를 거론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제가 굳이 트리뷴을 거론하려는 이유를 언급해야겠습니까?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트리뷴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부하는 재산의 규모야 축소되겠지만 그리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겁니다.”

무엇이 현명한 판단인지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크라수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양측 모두 이득이었다. 그의 재산은 실로 막대한 양이었고 그의 영향력 역시 막강했기에 그와 타협을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소리였다.

‘하나 그 막대한 재산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던가? 그로 인한 영향력은? 재산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를 내놓는다고 해도 그가 저지른 악행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내놓은 재산은 희생자들로부터 빼앗은 것들이니 수거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과 별개로 그가 흘린 피와 눈물에 대한 대가 역시 치러야만 그것을 정의라 부를 수 있을 터.’

당금 로마에서 크라수스만 범죄하였는가? 아니다. 그러니 굳이 그를 적대하여 모든 이들의 적의를 한 몸에 살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그렇게 한다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실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러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모두가 현명하다고 하여 그것이 현명한 것이 아니고 모두가 어리석다고 하여 그것이 어리석은 것은 아닙니다.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설혹 본인이 손해보더라도 기준을 확립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자는 마땅히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싫다면 그 자리를 탐하지 않았으면 될 일. 그러니 남들 다 하는데 왜 내게만 이러느냐 이딴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크라수스는 완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노려봤다.

“정녕!”

“내가 트리뷴이 아니었다면 크라수스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부패한 세상, 아무렴 어떻습니까? 하나 이미 트리뷴인 이상 내 일을 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트리뷴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안을 내게 하지도 않았겠지요.”

“뭐라?”

크라수스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대체 어디서 이런 작자가! 테세우스,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 하나 죽음보다 두려운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다. 그뿐이다.”

크라수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테세우스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후우. 흥미롭군. 당신이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실로 궁금해. 내 재산의 절반을 트리뷴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당신에게 맡길 것이다.”

테세우스가 기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크라수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제안이 거부되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둔한 자가 아닙니다. 말한대로 트리뷴은 트리뷴의 일을 하시지요. 나 크라수스는 크라수스의 일을 할 것이니······.”

크라수스는 몸을 돌려 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춰 세우고 테세우스에게 검지를 들며 말했다.

“아! 가레노스. 그 자를 추격 중이라고 들었는데 잘 취조해보시오.”

가레노스라면 크라수스의 비리와 연관된 증인 중 한 명으로 나디르와 호라티우스가 추적 중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지금 왜 거론한단 말인가? 테세우스가 다시 의문섞인 눈으로 크라수스를 쳐다보자 그는 집무실을 나서며 나지막하게 말을 맺었다.

“트리뷴을 위한 내 선물이니 말이오.”

‘선물?’

테세우스는 크라수스의 말에 석연찮음을 느꼈지만 그보다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게 없구나······.’

테세우스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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