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
245. 분투.
245.
포카치아와 코르넷토, 스크램블된 계란과 적당하게 구운 돼지고기가 조리된 여러 야채와 함께 그릇에 담겨 나왔다.
당과 단백질이 구워질 때 일어나는 현상인 마이야르 반응으로 인해 아주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넣은 야스미라는 다시 뿔처럼 생긴 코르넷토를 손으로 찢어서 입에 넣었다.
“맛이 상당하네요. 이제는 요리도 직접 하시는 건가요?”
“미리 손질된 재료를 가지고 대충 먹기 좋게 내왔을 뿐, 요리랄 것도 없습니다.”
야스미라는 이채 섞인 눈으로 다시 말했다.
“그래서 그건 요리를 한다는 소리인가요?”
일반적으로 요리를 담당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천한 이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요리가 천한 것은 아니나 천시되는 풍조가 없잖아 있었다. 따라서 천한 이들이 하는 일들을 함으로 그들과 동일시 되기 싫은 귀족계급들이 요리를 직접하는 일 역시 아무래도 드문 일에 속했다.
“이걸 요리라 부를 수 있다면. 가끔은.”
“당신과 함께 하면 어디에 있든지 굶어죽지는 않겠네요. 그리고 이걸 요리라 부를 수 없다면 제가 지금껏 만난 요리사들은 요리사가 아니었던 모양이예요.”
납작하고 딱딱한 포카치아와 포도주를 머금고 입으로 씹던 테세우스는 잔을 내려놓고 야스미라를 바라봤다.
사내란 자신을 띄워주고 인정해주는 말에 들뜨고 우쭐하기 마련이다. 그 말을 하는 당사자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대단한 미녀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구름을 밟고 다니는 것 같은 설렘을 느낄 것이다.
하나 테세우스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요동도 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마주한 야스미라는 예전보다도 더 목석같은 테세우스의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에 대한 호감이야 예전에도 있었던 것이니 새로울 것이 없고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뭐랄까 안타까움이었다.
“사막 위에 부는 삭풍(朔風)처럼 춥고 메마른 눈빛이네요. 테세우스 당신은 제 말을 믿지 않는군요. 당신은 풍요로운 로마의 대지 위에 서있지만 여전히 피 튀기는 전장을 전전하고 있네요.”
“팅기스에서 로마까지 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오. 특히 당신과 같이 신분이 높은 이가 움직일 때는.”
“신분이 높다라······. 단순히 신분이 높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혹 그건 제 오라버니가 저를 위협하는 사실을 비꼬는 것인가요?”
“······. 야스미라 공주. 팅기스를 비우고 로마에 온 사실 자체가 마스타네소스에게 위협이 될 거라는 걸 몰랐다고는 하지 마시오.”
야스미라의 돌발행동은 마스타네소스에게 제안한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자신을 안심시키고 종국엔 마우레타니아를 삼키기 위한 계략이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군주의 의심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야스미라의 로마행은 군주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민한 야스미라 공주가 그것조차 예상하지 못하고 로마행을 택했을 리 없었다.
야스미라는 서늘한 테세우스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옆에 놓인 물 그릇에 손을 가볍게 씻어낸 뒤 천으로 닦아냈다.
“몰랐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맞아요. 알았어요. 하지만 제가 그걸 고려할 이유가 있나요? 저를 죽이거나 저를 팔아넘길 사람의 사정까지 헤아려야 하냐고 묻는 것이예요.”
“전쟁이, 학살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묻고 싶네요. 수만 명이 저로 인해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것을 기억할 사람은 얼마나 되겠고 감사할 사람은 또 얼마나 될지 의문이며 무엇보다 그 일로 제가 죽는다면 그게 대체 제게 무슨 의미가 있죠?”
“마스타네소스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거요.”
“당신의 호의와 지지에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건 당신의 권세가 살아있는 한 그 영향력이 마우레타니아에 미치는 한에서나 그렇겠지요. 이건 당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예요. 테세우스 당신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로마까지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정당한 거래와 계약에 따른 것일 뿐이오.”
야스미라는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테세우스를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 그렇겠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당신같지는 않아요. 특히 마우레타니아의 왕 마스타네소스 말이예요.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마스터네소스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당신의 절반만 되었더라면 아니 절반의 절반만 되었더라도 아스칼리스가 군대를 장악하는 일따위는 벌어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음······.”
테세우스는 침음과 함께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함을 용서하시오.”
“아니요.. 당신은 누구보다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지요. 그러니 저는 당신에게 사과를 들을 만한 주제가 되지 못해요. 제가 감사와 더불어 용서를 구해야겠지요. 당신 말대로 나의 행동이 일으킬 파급력을 모르지 않았으니까요.”
테세우스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잔에 담긴 포도주를 조금 머금고 음미했다. 숙성된 포도의 진한 향기가 입안 곳곳을 맴돌다가 식도를 타고 사라졌다. 입안을 가득 메운 달콤하고 향긋한 향기도 이렇듯 잠시 잠깐일 뿐이다. 그 향기를 영원히 누리고자 포도주를 계속해서 취한다면 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습니다. 꽃이 피면 지고 태어나면 스러짐을 입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잔인한 말을 하시는군요. 시시각각 죽음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인가요?”
테세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야스미라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상황일뿐더러 설혹 나의 도움으로 권좌를 얻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소. 오히려 수많은 피로 모두의 삶을 얼룩지게 만들 뿐이오.”
“어째서 그런가요? 제가 여인이라서요?”
테세우스는 조용히 분노하는 야스미라를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여인이라는 점은 약점이지만 동시에 강점이기도 했소. 당신이 남자였다면 나와 이렇듯 연합전선을 펼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오. 마스타네소스는 물론 당장 아스칼리스부터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잠시 말을 멈춘 테세우스는 다시 말했다.
“권력의 본질은 죽음에 있소.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널 죽여버리겠다는 저열한 협박을 밑바탕에 두고있단 말이오. 그것을 아는 영리하고 막강한 권력자는 언제고 병권을 손에 쥐고 있소. 권력을 이루기 위한 가장 막강하고 편리한 수단이니까. 그러니 묻겠소. 야스미라 당신에게 군대가 주어진다면 그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내고 그들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에게 있소? 적어도 피묻은 권좌를 차지하고 싶다면 그러한 능력은 기본으로 지니고 있어야 할 부분이오. 아니 병권을 떠나 칼을 들고 달려드는 한 명의 병사라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소?”
“저를 지금 비꼬시는 건가요?”
“비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언급하는 것이오. 군주제가 아닌 이곳 로마에서조차 고위 정무관에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과 적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이요. 마찬가지로 병사들의 충성심과 인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휘관들은 본인의 무용과 지략을 검증받아야만 하오. 일인체제가 아닌 로마에서조차 이러한데 왕정국가에서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소? 정국이 안정되고 세월이 흐르면 세부적인 제도로 인해 그 부분이 다른 힘으로 치환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본질을 흐릴 수는 없는 노릇이며 반란을 일으키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소.”
테세우스는 다시 말을 멈췄다가 단정적으로 말을 맺었다.
“당신은 마스타네소스의 뒤를 이을 수 없소. 비단 당신이 여인이 아니라 해도 지금의 정국에선 불가능한 일이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니 전쟁을 일으킨다면 내부의 적부터 두려워해야 할 것이오. 야심을 가진 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오.”
야스미라는 차분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대뜸 말을 뱉었다.
“예. 그래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당신을 찾아왔어요.”
테세우스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야스미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히스파니아의 켈타이족, 마우레타니아의 마우리족과 마사에실리족, 초원의 드센 게툴리족까지 포용하는 능력. 이들을 규합한다면 누미디아의 마실리족은 물론 풍요로운 이집트까지 순식간에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거예요. 테세우스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피어난 꽃은 저무는 것이 이치라고!”
“그것이 싫다면 로마의 이름으로 하면 될 일 아닌가요? 그렇다면 로마 본국까지 아우르는 황제가 될 수 있겠지요.”
“야스미라!”
“알고 있나요? 아니 모르지 않겠지요. 세네투스는 물론이거니와 크라수스도 당신을 제거하려 들고 있어요. 로마의 위대한 장군 폼페이우스가 달마티아에서도 승전을 거두고 왔다지요? 당신이 승전을 거두게끔 도와준 그 장군 말이예요. 소문에 의하면 트리움푸스라는 성대한 로마의 행사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당신이 그 일에 반대하든 아니든 사실상 로마의 모든 권력자가 당신을 적대하는 상황에 처하겠지요. 적이 당신을 죽이고자 칼을 갈고 있는데 그대로 둘 건가요? 당신의 목을 베어가고 눈을 도려내고 당신의 팔과 다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잘라내는 그 순간에도 꽃이 지는 것은 섭리이니 이딴 소리나 하고 있을 건가요? 당신이 로마에서 세네투스와 폼페이우스 등과 노닥거리는 사이에 크라수스는 당신의 팔다리를 잘라 버릴 거예요.”
테세우스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스타네소스가 크라수스와 손을 잡았군.”
“말하지 않았나요? 마스타네소스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엇? 테세우스 당신! 설마? 설마 이미 알고 있었나요?”
야스미라는 격정적으로 외치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테세우스는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나도 몰랐소. 야스미라, 당신이 로마로 올 수밖에 없던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당신의 말을 듣고 확신했을 뿐.”
“지금 알게 된 일이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무덤덤할 수가 있죠? 역시 저는 당신에게 버려지는 사람에 불과했나요?”
“버려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소. 단지 마스타네소스가 제안을 거부할 경우도 상정해 두었을 뿐이오. 물론 그 경우에도 당신이 로마로 오게 되는 상황은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말이오.”
“그럼 이제 당신의 대답 역시 달라지나요?”
“아니 달라지는 건 없소.”
“이해할 수 없군요. 법과 정의를 수호한다고 했나요? 대체 로마에 법과 정의가 있긴 한가요? 비단 귀족들이 아니더라도 오늘도 로마를 로마로 존재하게 만드는 수많은 손길들은 타지에 잡혀온 노예로 인한 것이예요. 로마 시민이랍시고 노예 한 명 거느리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그리고 그 노예는 모두 타국에서 무차별적으로 포획해온 사람들이예요. 그게 아니라면 해적이나 도적들이 포획한 사람들이지요. 그런 로마에 무슨 정의와 법이 있나요? 그게 당신이 말하는 정의와 법인가요? 결국 권력을 탐하는 다른 방법일 뿐, 당신도 저들과 다를 바가 없어요. 그런데 권좌는 차지하지 않겠다? 자기기만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위선? 대체 무슨 이유로 거절하는 거죠?”
테세우스는 야스미라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야스미라 당신의 말이 맞소. 나는 위선자요. 위선자이지. 하하하하.”
분노하면 분노했지 웃음을 터트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야스미라는 동그랗게 눈을 뜬 채로 그의 웃음이 멎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피를 봐야한다면 볼 것이오. 그것이 더 적은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이라 여겨진다면 저들이 시작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시작할 것이오. 하나 제국을 세우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요. 제국의 황제가 되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
테세우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마스타네소스가 크라수스와 손을 잡았다고 해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터, 만약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자라면 피를 원하는 자들에게 넘겨주는 수밖에. 하나 힘겹게 왕의 자리에 오른 그가 또다른 모험을 감수할 것이라 여기긴 어렵군. 이왕 로마에 온 이상, 두루 살펴보시오. 이 일은 파도가 지나간 후에 다시 언급하도록 합시다.”
“로마에서 영향력을 얻으라는 소리인가요?”
“그렇게 한다면 마스타네소스를 대신할 수 있거나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요. 굳이 나를 황제와 같은 자리에 올리지 않더라도 말이오. 아마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온 것으로 보이는데 아니오? 그리고 야스미라,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오.”
야스미라는 복잡한 마음과 생각이 섞인 눈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식사는 감사했어요. 그리고······. 아니예요. 당신에겐 의미없는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