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
248. 수호자?
248.
트리뷴에 대한 귀족들의 견제는 상상 이상이다. 평민 출신의 로마인들이 나날이 두각을 보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평민들의 권익을 수호하는 트리뷴의 권한이 부활하면 그만큼 기득권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트리뷴 부활 건에 대해서만큼은 지금껏 어떤 대립관계를 형성했든지 간에 똘똘 뭉쳐서 반대할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철옹성처럼 보였고 당연히 테세우스는 그런 철옹성을 맨손으로 무너뜨리려는 어리석은 자로 비춰졌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저들이 쌓은 성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무너뜨리고자 섣불리 달려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멀찌감치 서서 저들이 원하는 보상을 제시하며 저들 스스로 성의 주춧돌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게 만들었다.
이것 하나쯤 없다고, 내가 이거 하나 뺀다고 이토록 튼튼한 철옹성이 무너지겠어? 그렇게 이익을 탐하는 저들의 마음을 찌르고 들어가 두텁고 단단한 철옹성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무너뜨렸다.
폼페이우스의 지지와 켄소르 브루투스의 눈치를 보는 의원들의 지지 역시 등에 업은 후에도 테세우스는 트리뷴 부활 건을 거론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공식 회의석상에서 거론할 권한 자체가 없으니 거론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표현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리라.
어쨌거나 테세우스가 그렇게 지지세력을 구축한 후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트리뷴 부활이 아니라 술라의 집권 시절 제정된 정무관의 나이 제한을 무효화시키는 일이었다.
물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법이긴 했으나 법으로 제정된 이상, 젊은 야심가들의 발목을 언제든 잡아챌 수 있는 법이었다. 술라가 이러한 법을 제정한 목적 역시 그것이었고 말이다.
따라서 나이 제한 무효화는 저들이 바라고 바라는 일이나 감히 함부로 청할 수 없는 법안 개정안이었다. 이에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는 물론 로마의 모든 젊은 야심가들이 테세우스의 연설에 지지를 표했으니 이같은 흐름을 세네투스라고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정당한 절차로 입법된 법안도 아니니 연륜이 많은 이들도 함부로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테세우스의 연설은 흐름을 타고 세네투스를 거세게 압박했다.
일단 시대의 흐름이 그러했고 권세를 잡은 자들과 잡을 자들 모두 바라는 사항이었기에 결국 나이 제한 무효화는 일사천리로 통과될 수밖에 없었다.
법안이 통과된 후에도 테세우스는 트리뷴의 부활은 입에 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도 술라의 법안이 부당한 법안이라 연설하기 시작했다. 나이 제한 무효화가 통과된 시점에서 그의 발언이 로마에 미치는 영향력은 예전보다도 강력해졌다.
예전에도 연설 따위라고 무시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테세우스가 광장에서 연설을 하기만 하면 이슈가 되어버리는 수준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상당수의 시민들이 열띤 반응을 보였다.
하나 저번과 달리 이번엔 세네투스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에 테세우스가 부당하다고 언급한 법안은 레게스 코르넬리우스의 두 번째 법안인 원로원 의원 300명을 증원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좌시할 세네토르가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하나 테세우스의 지적은 이번에도 매우 논리정연했다.
“역시 정당한 절차로 입법한 법안은 아니나 세네토르 300명을 증원하는 것 자체는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새로 제정한 법안조차 따르지 않은 채로 신규 의원을 선출하는 것은 새로 제정한 법안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아닙니까?”
“법안을 따르지 않았다니 그 무슨 소리인가? 세네투스가 400명을 증원했는가? 500명을 증원했는가? 법안 그대로 300명을 증원했을 뿐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인가?”
“그것 참 이상하군요. 레게스 코르넬리우스 2항에 따르면 세네토르 300명을 선출하되 신규 세네토르는 켄소르의 심사를 걸쳐 통상적인 방법으로 행해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한데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내용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300명의 신규 세네토르를 선출할 때 켄소르가 있었는지요?”
“뭐?”
테세우스에게 반박하던 사내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BC 86년 켄소르였던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와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이 두 사람 이후로 10년이 지난 현재, BC 76년이 되어서야 켄소르가 선출되었다. 테세우스로 인해 역사가 뒤틀리지 않았다면 BC 70년은 되어야 켄소르가 선출된다.
테세우스는 말문이 막힌 사내를 바라보며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제가 알기로는 신규 세네토르를 선출할 당시 켄소르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관련된 법안을 읊어 드리자면 신규 세네토르를 선출할 때 켄소르의 심사를 걸쳐 통상적인 방법으로! 라고 명시되어 있군요. 한데 이것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신규 세네토르는 선출되었는데 켄소르는 없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 아닙니까?”
크게 당황한 나머지 사래까지 걸려서 켁켁거리는 그를 내버려 두고 테세우스가 다시 시민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비합법적인 절차로 신규 법안을 만든 것을 둘째치고 신규 법안을 처음 시행하면서 그 법안대로 시행하지도 않았다면 대체 이 법안을 정상적인 법안으로 봐야 합니까? 법안을 철회하던가? 그게 아니면 지금이라도 새로이 선출된 300명의 세네토르들을 켄소르가 심사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옳다!”
“옳소이다!”
“법안을 철회하던가! 새로 제정된 법안대로 이행하라!”
이에 로마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거센 목소리로 테세우스의 주장에 강한 지지를 표했다.
*
“첫째 나이 제한을 무효화시키고, 둘째 세네투스의 권한을 약화시킨다라······.”
푹신한 긴 의자 위에 왼쪽으로 누운 채로 크라수스는 감탄을 표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그 앞에는 여러 가지 다채롭고 풍성한 과일들이 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하아······. 이건 알면서도 동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정무관의 나이 제한 건은 자신 역시 찬성하는 일이니 막을 수 없었고 둘째, 세네투스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일 역시 자신이 바라마지 않는 일이니 대놓고 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역시나 결코 반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테세우스가 여기서 멈춘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다. 세네투스의 적의는 테세우스가 모두 가져갈 테고 자신은 세네투스의 권한이 사라진 이점을 편안하게 누리게 될 테니까.
단순하게 생각해서 테세우스가 300명의 세네토르를 쳐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일이 간단해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네투스는 테세우스를 어떻게든 죽이려 들 테니까.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그럴 위인이 아니다. 이건 300명의 세네토르를 쳐내기 위함이 아니라······. 이 모든 건 주목표를 이루기 위한 발판에 불과해.”
켄소르의 심사는 곧 켄소르 마음에 달린 문제 아니겠는가? 고로 켄소르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의원들과의 거래를 통해 과반의 투표수를 확보하려는 계책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트리뷴의 권한 부활. 바로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발판 말이다.”
사과를 짚으려고 오른팔을 내밀던 크라수스는 자신의 팔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확인했다. 무서운 사내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릴 정도로 치밀하고 사나운 사내다.
“모든 것을 알고도 막을 수 없군. 그게 더 황당할 노릇이야.”
거센 여론을 등에 업은 것도 업은 것이지만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테세우스를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모두는 자신을 비롯한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및 로마의 야심가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명분을 잃어버린 세네투스의 편을 들어 테세우스와 맞선다면 이 일을 통해 무언가를 얻기는커녕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훗날 세네투스가 보상해 줄 수 있느냐?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손익계산이 분명한 크라수스로서는 테세우스의 계책을 알고도 막을 수 없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는 것도 두려운 점이지만 그보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은 일을 이뤄가는 그의 방식이었다.
“동조하는 자들에게는 확실한 이득을 보장하고 동조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철퇴를 내려치니 온 로마가 그의 손 아래 쥐락펴락하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 일에 적아를 가리지 않으니······.”
적이라도 동조하면 이득을 보장하고 아군이라도 동조하지 않으면 철퇴를 내려친다. 그러니 누가 그를 배신하려고 들겠고 누가 그와 척을 지고 싶겠는가?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의 치밀한 계획아래 굴복하고 나면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당장 그를 대적하려는 자신조차 그의 방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럴 때가 아니다.”
크라수스는 입으로 가져가던 사과를 바닥에 짚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내키지 않는 걸음이다. 그와 협력하는 상황까지 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다.
하나 인생이란 원하는 상황만 오지 않고 원하는 선택만 하며 살 수 없다. 원하지 않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시점이다.
“폼페이우스······. 그자는 그의 명성과 전공을 제외하면 딱히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 테세우스 이자는······.”
트리뷴 권한이 부활하는 것 자체는 두려울 것이 없다. 트리뷴 권한 부활로 입법권, 사법권, 거부권을 가진다고 해도 이미 한해의 절반이나 지나간 시점에 당장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하니까.
하나 트리뷴 권한이 부활한다는 것은 술라가 막아놓았던 트리뷴의 정무관 진출이 다시금 열린다는 소리가 된다.
그간 대적했던 폼페이우스와 껄끄러운 만남을 가지더라도 테세우스 이 자가 정무관에 나아갈 수 없게끔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모든 권한이 제어된 상황에도 세네투스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자가 테세우스다. 이 자에게 정국을 제어할만한 또 다른 힘이 주어 진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심지어 폼페이우스와 협력하더라도 이미 상황은 테세우스가 주도한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트리뷴 부활 건을 없던 일처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나 그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연기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폼페이우스 그자가 눈먼 자가 아니라면 그 역시 테세우스가 껄끄러울 것이다. 그런 감정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큼 만만한 자라는 방증이 될 테니까.
“이제 와 폼페이우스 병사들의 토지배분을 허용하려 든다면 세네투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테세우스의 의도를 무산시키는 일이라면 저들도 받아들일 터······. 일단은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어야 한다. 카이사르, 그자는 이번 일 역시 중립을 지키려 들 것이다.”
테세우스가 움직이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그는 치밀하고 두려울만치 과감한 자이지만 권력자들의 관계는 자신이 월등히 앞선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게끔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이 모든 것이 오판일지도 모르지만 테세우스라는 분명한 위협이 자유롭게 활개치게끔 내버려 두는 것보다야 백배 나은 선택이다.
“폼페이우스의 집으로 가겠다. 준비시켜라!”
폼페이우스라고? 갑작스런 크라수스의 발언에 그의 노멘클라토르 아퀼라는 잠시 멈칫거렸지만 이내 곧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면 사람을 먼저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퀼라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이려던 크라수스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네가 가서 말을 전해라. 나 크라수스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에 관해 말이다.”
“트리뷴 테세우스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크라수스는 굳은 표정으로 급히 달려나가는 아퀼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