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250. 예측불허.
250.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분이군요. 세네투스의 입을 봉해버릴 정도로 뛰어난 웅변가께서 왜 트리뷴 부활에 대해 연설하지 않는 것인 먼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테세우스를 찾아온 키케로는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그것을 대답하기에 앞서 확인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 혹 그를 알고 있습니까?”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그는 내 친우입니다만?”
“역시 그렇군.”
키케로가 굳은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노려보자 테세우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지요. 제가 그를 해코지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딱히 그를 이용하고자 함도 아니니 말입니다.”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는 로마에 별다른 명성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심지어 현재 그는 로마에 거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아닌 당신이 그런 그의 이름을 거론할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요. 그가 제가 알지 못하는 비리에 연관되기라도 한 겁니까? 설마 그걸 빌미삼아 트리뷴 부활에 대한 나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함입니까?”
키케로의 날선 반응에 테세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다만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는 알고 있습니까? 물론 모르지 않겠지요.”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술라의 손을 피해 도망친 로마의 콘술이었던 사람을 이르는 것입니까? 그는 갑자기 왜?”
“당신의 친우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마사리(현 마르세유). 얼마전 마사리를 여행중이라고 서신을 받았습니다만?”
키케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대답했다.
“콘술이었던 아시아티쿠스가 마사리에 거주하고 있는 건?”
“음?”
“아시아티쿠스의 딸과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가 결혼을 준비중에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키케로는 잠시 당황한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깐. 뭐라고? 뭐라고 했습니까? 세스티우스 그 친구가 결혼을 준비 중에 있다고?”
“정확한 건 나 역시 아는 바가 없지만 키케로 당신 친구가 여인이나 꾈려고 결혼을 함부로 거론할 사람 같지는 않은데······. 내 생각이 틀린 겁니까?”
“······.”
키케로는 전혀 듣지 못한 소식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의아한 눈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아니 그 눈에는 의구심보다는 적개심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설마 내 주변조사를 하면서 내 약점을 잡으려고 한 것입니까? 그런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가 자신의 친우라는 걸 파악하는 건 둘째치고 아직 자신에게도 언급하지 않은 그의 결혼 계획을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막말로 테세우스 이자가 한량처럼 한가한 인물도 아니고 말이다.
테세우스는 다시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닌 말로 키케로 당신의 뒷조사를 한들 그 내용을 현재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 아직 나도 알지 못하는 그의 결혼계획을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입니까?”
“친우문제라 그런지 상당히 감정적으로 나오는군요. 말했다시피 키케로 당신의 친우를 어떻게 할 생각도 없고 친구 일로 당신을 겁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감정을 가라앉히고 내 말부터 들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듣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고 말입니다.”
키케로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내가 조사한 건 키케로 당신이 아니라 살아남은 마리우스파의 근황이었습니다.”
“음?”
“그러던 중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가 마사리에 거주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를 조사하는 와중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라는 사람과 그의 딸이 결혼을 계획 중이라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되었지요. 공교롭게도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는 키케로 당신의 친구더군요.”
키케로는 마리우스파라는 단어가 테세우스의 입에서 언급된 후로 그의 나머지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키케로는 멍한 눈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왜······. 왜 나를 보고자 한 겁니까? 로.. 로마를 다시 전화에 휩싸이게 만들 생각이었습니까? 정말 그런 겁니까? 설마 전쟁을 논의하고자 이 자리에 나를 부른 겁니까?”
테세우스는 파르르 떨리는 키케로의 두눈을 마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콘술 부르불리우스보다는 당신과 대화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 판단했을 뿐입니다.”
술라의 법안에, 아니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어디 한둘이던가? 그것이 술라에게 도살당한 마리우스파라면? 그 원한이 얼마나 깊겠는가?
키케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생존한 마리우스파를 찾아서······. 뭘 어찌할 생각입니까? 잊어버린 모양인데 내전 당시 인간도살자라고까지 불린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로마 지척에 있습니다.”
마리우스파를 매우 잔인하게 고문하고 도살하고 철저하게 궤멸시킨 사람이 바로 폼페이우스였다. 당연히 마리우스파는 술라뿐만아니라 폼페이우스에게도 원한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건 크라수스나 원로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의원들에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마리우스파가 다시금 로마에 돌아오면 반드시 충돌이 일어난다. 유혈 충돌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폼페이우스의 군대가 로마로 진격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키케로의 말은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왜 내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기라도 했습니까? 로마법에 살아남은 마리우스파를 트리뷴이 찾으면 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기라도 한 겁니까?”
“내 말이 그게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키케로가 염려하는 것은 한 가지, 바로 공화정의 붕괴였다. 군대가 다시 포메리움(신성경계선)을 넘는 일이 발생한다면 공화정의 근간은 그 잔뿌리까지 타버릴 것이다. 그리되면 공화정의 질서와 가치는 군권을 가진, 다시 말해 술라와 같은 독재자의 손에 모조리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실망이군요. 당신이라면 내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게 전장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이곳 로마에 전장이 펼쳐진들 내게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테세우스 당신!”
“잘 생각해야 할 겁니다. 당신이 동료라 생각했던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당신의 친우와 그 아내, 그 친우의 장인어른을 살해하는 모습을 넋놓고 지켜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대체······. 대체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말했지만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악감정을 지녀서 이런 상황을 당신에게 던진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공교롭게도 당신의 친우가 내가 찾으려는 사람과 사돈관계를 맺었다고 말입니다.”
“내가 거론하는 말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키케로는 거칠게 화를 낸 뒤 테세우스에게 다시 소리쳤다.
“이제 와 없던 권력욕이라도 생겨난 겁니까? 이대로 물러서도 솔직히 당신은 손해보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로마에 애정도 없는 사람이니 트리뷴의 임기를 지낸 후 로마를 떠나면 될 일 아닙니까?”
“순진한 겁니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겁니까?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니면 제가 지금껏 착각했나보군요. 크라수스와 세네투스의 모든 악의와 적의가 거짓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로마를 떠나려던 나를 붙잡고 이 자리에 앉힌 장본인이 바로 당신과 부르불리우스 아닙니까? 이것도 제가 착각하고 있는 내용입니까?”
“······.”
키케로가 아무 말도 뱉지 못하자 테세우스가 다시 말했다.
“묶은 사람이 풀어야겠지요. 그게 순리아닙니까? 그게 싫다면 그것도 당신의 선택이겠지요.”
“로마를 불태워야만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할 겁니다. 이 로마에는 아이와 여자들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녕 그들이 죽는 모습을 봐야만 속이 풀리겠습니까?”
“그 책임을 왜 내게 물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키케로, 그렇게 되고 안 되고는 이제 당신 손에 달린 겁니다.”
테세우스는 다시 말을 이었다.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 그가 아시아티쿠스의 딸과 결혼을 하든 말든 그가 당신의 친우이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당신에겐 중요할지 몰라도 내게는 아니지요. 크라수스와 세네투스가 트리뷴 부활을 막기 위해 켄소르 브루투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았다는 건 아마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콘술 부르불리우스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까?”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콘술 부르불리우스가 트리뷴 부활을 위해 힘쓰도록 설득하십시시오. 마리우스파? 그를 설득할 도구 정도가 되겠지요. 사실 나 역시 별로 원치 않습니다. 안 그래도 혼란한 이 로마가 누구의 피든지 다시금 피로 물든다면 어쩌면 수백 년이 흘러도 그 핏물을 씻어내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그 피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을 수도 있는 노릇이고.”
“로마의 트리뷴이라는 자가 감히 로마의 멸망의 입에 담는 것이오?”
“로마? 그보다는 공화정의 멸망이 더 맞는 표현이겠지······. 키케로!”
테세우스는 그 말과 함께 키케로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공갈 협박 같은 걸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라면 당신보다는 내가 아는 것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런 당신도 알고 있는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내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라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뜻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로마를 갈가리 찢어서라도 관철시키고 말겁니다. 히스파니아에서는 반란군이었지만 이곳 로마에서는 혁명군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한쪽을 택해야 할 겁니다.”
마리우스파를 수소문하는 것은 저들의 힘과 영향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상징성과 더불어 테세우스 그에게 강력한 명분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자신이 지켜본 테세우스 이자는 그의 뜻을 로마에 관철시키지는 못할지언정 로마를 갈가리 찢어놓고도 남을 사내다.
따라서 키케로는 잔뜩 긴장한 눈을 마른침을 삼키며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그런 키케로에게 테세우스가 다시 말했다.
“그도 아니면 그전에 나를 암살이라도 하면 되겠지요. 자신있다면 말입니다.”
암살? 그를 어찌 암살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이 시국에서 신성불가침권을 가진 트리뷴을 건드린다면, 특히 테세우스가 암살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반란이 일어난다. 테세우스 이자는 정말 대단한 자다. 크라수스와 세네투스의 행보를 지켜보며 이번만큼은 테세우스 이자라도 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강수를 두다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안다. 이 일이 가져올 수많은 혼란을 말이다. 그에 비하면 트리뷴 부활 건은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키케로는 마른침을 몇 번이나 다시 삼키다가 입을 열었다.
“역시나 정무관 진출을 위해서 입니까?”
“그게 당신에게 중요합니까?”
“협박하지 않을 거라 언급했던 것 같은데?”
“협박이 아니라 일어날 사실을 나열했을 뿐, 무엇보다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미리 알린다는 것 자체가 내가 얼마나 큰 위협을 무릅쓰고 있는 건지 아셨으면 좋겠군요. 나의 진정성은 이것으로 어느 정도는 증명될 것 같은데 키케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트리뷴 부활 건에 대해선 왜 연설하지 않았던가 했더니······. 애초에 연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때를 기다려 무르익은 과실을 취하면 될 일이었으니······.
“하아······. 좋습니다.”
“키케로 당신의 평판에도 나쁜 일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권력자들에게 제법 식견이 높은 사람으로 남을 거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이건!”
테세우스는 미소를 지으며 키케로에게 말했다.
“로마를 위협하는 폼페이우스의 군대부터 해산시키도록 하지요. 아 그리고 푸블리우스 세스티우스, 그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거든 축하한다고 말해주십시오. 넉넉한 축하금은 보내드릴 터이니······.”
권한을 회복하면 그리한다는 뜻이리라. 키케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없이 테세우스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그의 사무실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