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54화 (254/298)

# 254

254. 징조.

254.

피난민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세네토르라는 사실로 인해 어느 정도의 지원은 이뤄졌지만 보여주기식의 지원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테세우스의 요청이 없었다면 그 어떤 지원조차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들의 행태를 바라보던 테세우스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호라티우스에게 명을 내렸다. 파노르모스(팔레르노) 주변으로 흩어진 1,300명의 병력을 이곳 파노르모스로 집결하도록 말이다.

이에 호라티우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파노르모스의 공직자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테세우스가 뭔가 행동을 옮길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파노르모스를 점령하기 위함입니까?”

따라서 호라티우스의 질문은 매우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다. 호라티우스의 질문에 폼페이의 프리무스 필루스(수석 백부장), 아우렐리우스 오필리우스와 트라이에라코스(함장) 라에리우스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로마가 아닌 곳에서 세네토르가 사병을 부리는 것까지는 비공식적으로 허용되지만 그 사병으로 관청 등을 무력점령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자신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무력 행사에 동참하라는 뜻이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을 거절한다면 비밀을 봉하기 위해 자신들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찬성한다면 훗날 로마 본국에 의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 등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곳도 점령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제 와 로마를 거스를 이유가 없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병력을 일으켰다. 트리뷴이 되어 그 권한을 회복하려고 힘쓸 것도 없이 말이다. 호라티우스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그럼 어째서 병력을 모으라 명하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일이백도 아니고 1,300명이나 되는 단련된 병사를 이곳 파노르모스로 집결시킨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의 눈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흘러가는 흐름이 심상치 않다.”

폼페이의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한지 벌써 일주일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왜 피난민들에 대한 지원을 파노르모스 관청에 요청했는지 아나?”

“음. 단순히 피난민에 대한 동정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건 둘째 문제였다. 파노르모스의 위기대처능력을 파악하고 저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예?”

호라티우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할 때 오필리우스가 질문을 던졌다.

“외람되오나 그것을 확인하신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테세우스는 그런 오필리우스를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호라티우스에게 말을 꺼냈다.

“호라티우스, 내가 시칠리아로 너를 보내며 내린 명령을 기억하나?”

뭔가 놓친 것이 있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호라티우스는 놀란 눈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설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저들 편에 서서 로마를 침공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 무엇보다 그럴 이유가 없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베수비우스가 폭발하다니······.”

테세우스는 호라티우스와 1,300명의 병사를 시칠리아로 보내며 기회를 엿보라고 했다. 명이 떨어지면 그 즉시 시칠리아를 전복하게끔 말이다.

이것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에 앞서 시칠리아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자면 이곳은 로마의 두 번째 곡물창고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며 라티푼디움(거대 농장)이 상당히 많은 지역이다.

당연히 라티푼디움을 일구는 자들은 대부분 노예다. 노예의 빈도가 다른 곳보다 월등히 높은 곳이며 그들에 대한 처우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다. 광산 다음으로 열악한 곳이 바로 농장이라 할 수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단련된 군대라고는 하나 1,300명만으로 시칠리아를 점령하는 일이 가당키나 하겠으며 점령한들 지킬 수나 있을까? 더욱이 저들을 이끄는 자는 테세우스가 아니라 호라티우스였다. 호라티우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로마 본국에서 파견되는 정예군단 하나만으로도 병력의 상당수가 불구가 되거나 사망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1,300명은 훈련교관이었다. 로마에 극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한 노예들을 훈련시킬 교관말이다.

호라티우스는 굳은 표정으로 테세우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들을 이끌 지도자가 없습니다!”

“지도자는 없지만 확고한 계기는 있었지. 베수비우스가 폭발한 것이 그 시초가 될 것이다.”

“잠깐. 잠깐만요.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베수비우스가 폭발한 것은 경악할만한 일이지만 이곳 시칠리아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입니다. 트라이림으로 이틀은 항해해야 닿을 거리인데 베수비우스 폭발과 노예가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대체 무슨 연관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오필리우스와 라에리우스는 찢어질 것처럼 눈을 부릅뜨며 반문했다.

“바.. 반란?”

“지금 노예 반란이라고 했습니까?”

“파노르모스의 상류층들은 폼페이의 피난민들을 노예 다루듯이 취급하더군.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무엇이든 하기 마련이다. 부요했던 자신의 삶이 노예의 삶처럼 변해버린다면? 노예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면? 불과 이틀거리에 지나지 않는 이곳 시칠리아의 누군가는 온갖 향략과 부요를 누린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노예의 삶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들의 것을 빼앗으려 들까?”

오필리우스와 라에리우스는 흠칫 놀라며 서로를 바라봤다. 비이성적인, 다시 말해 미친 소리같지만 사람이 광기에 휩싸이면 이보다 더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법이다.

“시칠리아에 혼란을 부추기고 그 혼란 가운데 재물을 챙겨 로마로 떠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시칠리아 역시 베수비우스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테세우스의 이어진 말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저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불씨를 튀기는 순간, 그 불씨는 거대한 화마가 되어 시칠아 전역을 휩쓸고 말거다.”

“이 사실을 서둘러 알.. 알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석 백부장, 오필리우스의 말에 테세우스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내가 왜? 설혹 알린다고 한들 저들이 신경이라도 쓸 것 같은가? 그런 계산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이곳 시칠리아에 있었다면 최소한 폼페이에 기반을 두고 있던 귀족들을 경멸하며 천대하지는 않았겠지. 하긴 그렇게 했다한들 이미 오랜기간 쌓여온 혼란의 불씨가 진정이나 되었겠느냐만은.”

라에리우스 역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칠리아에 사병을 1,300명이나 파견해 두었다니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 속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폼페이가 사라지며 폼페이에 쌓아둔 모든 기반을 잃은 이상, 현재 로마의 세네토르인 테세우스만큼 강한 연줄도 없을 테니 무엇을 명하든 따르는 것이 상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오필리우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하면 세네토르께서는 노예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병력을 모으시는 겁니까?”

“그걸 무슨 수로? 욕심과 원한의 소용돌이를 무슨 수로 막아? 무엇보다 이곳이 로마가 아니라지만 도시 내에서 병력을 함부로 움직이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아니면 내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저들도 하지 않는 치안유지라도 하란 소린가? 그렇게 저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목숨을 보전한들 내게 조금이라도 감사해할 것 같은가? 일이 진정되고나면 오히려 이일을 빌미삼아 나를 물고뜯고도 남을 자들이다.”

테세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분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니 제 말 뜻은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가 단순히 라에리우스의 말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극심한 혼란을 예측했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면 안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분노하는 것이리라.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자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저들의 대처능력과 대응방식을 확인하셨던 겁니까?”

호라티우스의 질문에 테세우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뒤 입을 열었다.

“이제 와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겠지. 호라티우스.”

“예. 하명하십시오.”

“근방에 주둔지는 마련해 놓았겠지?”

“물론입니다. 비록 맹지(盲地)긴 하지만 식수 조달에는 어려움이 없는 땅을 확보해 사유지화 시켰습니다. 공식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땅입니다.”

“주둔지 건설을 시작하고 식량을 더 비축해라. 그리고 혼란이 없길 바라나 흐름을 볼 때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니······. 어쨌든 저들의 공식적인 요청이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시칠리아 내의 혼란이 극에 달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뜻이리라. 호라티우스는 테세우스의 방식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테세우스의 냉정한 두눈을 바라본 호라티우스는 말없이 군례를 올렸다.

척!

‘로마의 식량창고라 할 수 있는 시칠리아에 대규모 혼란이 일어나면 대규모 식량난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혼란을 막기 위해 군대 파견을 요청한다고 들어먹을 의회가 아니고 폼페이에 재난이 발생한 이상 그럴 여력도 없겠지. 그렇다고 사사로이 군대를 움직인다? 아니될 말이지. 그랬다가는 대번에 반란군으로 몰려 버릴테니······. 게다가 이번 해는 흉년이 들 확률이 높다. 이집트에서 조달되는 보급선까지 문제가 생긴다면 그야말로 극심한 식량난이 로마를 강타하고 말 거다.’

화산 폭발 때 발생하는 아황산가스와 같은 화산가스는 대기 중에 떠돌며 태양빛을 차단해 핵겨울과 같은 화산겨울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여름을 겨울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엄청난 양의 화산가스가 분출되지는 않았겠지만 폼페이와 그 주변을 단번에 화산재로 덮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으니 예년보다 온도를 낮추게 만들었을 것이고 함께 퍼져나간 화산재는 농작물의 생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테세우스의 예상대로 흉년이 들 확률이 매우 높다는 소리였다. 비단 화산폭발이 아니더라도 이곳 시칠리아에서 노예반란이 일어나면 농작물을 재배할 사람이 없어지니 식량난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막고자 섣불리 병력을 움직인다면 일이 잘 풀려도 테세우스는 끝장이라고 봐야했다. 무엇보다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도 없었고 엄밀히 말해 반란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것이지 확정된 사실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악재가 겹치고 겹쳤으니 테세우스라고 해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반란은 일어날 거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확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상황을 보고 이러한 혼란에 휩싸이지 않게끔 철수시킬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럴려야 그럴 수도 없다.’

이기적인 태도라고 해도 별 수 없다. 어떻게든 등쳐먹으려는 족속이 인간이란 족속 아닌가? 내가 선한 일을 한다고 상대방도 선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순진한 거다. 여력이 있다면 또 모를까 애초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을 구하고자 상관있는 자들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을만큼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공식적인 요청과 허가를 얻은 후에 시칠리아의 혼란을 서둘러 종식시키고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 만에 하나 시칠리아의 전쟁이 길어져 식량 생산에 극심한 차질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대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후우.”

테세우스는 미간을 좁히며 펼쳐놓은 지도를 바라봤다. 나 몰라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목숨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

결국 시칠리아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도시의 치안이 흉흉해지고 부유한 자들이 도시 주먹패 등에게 살해되기 시작하더니 이 혼란이 커지고 커져 결국 대규모 노예반란까지 이어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이탈리아 본국의 내륙 지방 중 하나인 카푸아까지 흘러들어갔다.

카푸아의 검투사 훈련소에서 라니스타(검투사 훈련소 주인, 검투사 관리자)로 보이는 자가 복부에 글라디우스를 박은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불기둥이 박힌 것처럼 화끈한 감각에 바티아투스는 자신의 배에 손을 급히 가져갔다.

“크흐흐흑!”

찐득하고도 뜨거운 피가 막은 손을 비집고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이.. 이 노예 새끼들이! 감히!”

바티아투스는 들고 있던 검을 휘둘러 자신의 배에 검을 박아넣은 검투사의 목을 베어냈다. 검투사만큼은 아니어도 한 몸을 지킬 정도의 실력은 보유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크허헉!”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 은혜를 감히 이딴 식으로 갚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바티아투스!”

그때 온몸에 피칠갑을 한 사내가 나타나 광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 너! 이 새끼! 스파르타쿠스!! 네가 감히! 감히!!”

“분노는 나의 것이고 복수 역시 나의 것이다! 네놈을 시작으로 온 로마를 불태워버리고 말 것이다!”

광기 어린 검투사, 곧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을 가진 헐벗은 사내는 미친 황소처럼 바티아투스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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