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263. 공포.
263.
얼마 뒤 테세우스의 모습을 발견한 그의 말이 긴 울음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고 그에게 달려왔다.
히이이이잉!
다그닥 다그닥!
어디로든 도망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테세우스가 별도의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푸르륵 푸륵!
테세우스 앞에 다가온 말은 자신의 머리를 그의 얼굴에 부비며 반가워했다. 미물인 말도 아는 것이다. 테세우스가 죽음의 위기에서 여러 번 자신을 보호했다는 것을 말이다.
투구를 벗고 있던 테세우스는 말없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볼을 두어 번 가볍게 툭툭쳤다.
그렇게 말과 짧은 해후를 나누던 테세우스는 투구를 말 뒤에 거치하고 말 위에 올랐다.
“가자.”
말 위에 오른 테세우스는 말고삐를 가볍게 잡아채곤 천천히 말을 이동시켰다. 말의 이동 속도에 따라 나눠지는 평보, 속보, 구보, 습보 중 속보에 해당하는 빠르기였다.
다그닥 다그닥!
이윽고 테세우스의 말은 살육으로 휩싸인 음산한 침묵을 가르며 테세우스가 이끄는 대로 북쪽으로 향했다.
*
BC 75년의 두 집정관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법무관에 선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고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젊은이들을 선동하는데 뛰어난 언변을 가진 웅변가였지만 두 사람 모두 군대와는 별 연관점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물론 로마에서 정무관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군 복무를 행해야 하기에 군대 경험이 전무하지는 않지만 어떤 뛰어난 지휘관이나 장군이라 보기에는 공식적으로 검증된 공적도 없었고 저들의 행보 또한 정치가의 면모가 훨씬 더 강했다.
당금의 로마는 혼란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하고 시칠리아에서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으며 본토의 남부에 위치한 카푸아에서도 거센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일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이 혼란은 로마 전체로 퍼져나가고 말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귀족들이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나름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칠리아의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보이오. 카푸아 지역에서 스파르타쿠스라는 노예 검투사가 이끄는 반란군 역시 점점 더 규모를 키워가고 있으니 서둘러 이 일을 해결해야만 하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가 말을 꺼내자 당년 법무관에 오른 폼페이우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게 군권을 허락한다면 이 모든 혼란을 단번에 종식시켜보이겠소.”
그러자 세네토르 아티커스가 발언권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친 폼페이우스에 속한 대표적인 의원이었다.
“프라에토르 폼페이우스라면 모두 아시다시피 지난 반란을 모조리 종식시킨 공적이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이에 세네토르 루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마에서 프라에토르 폼페이우스께서 세운 공적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습니까? 물론 인정합니다만 고작 노예 반란일 뿐입니다. 게다가 적법한 임페리움을 행사할 콘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 문제는 두 분 콘술 중 한 분만 나서도 금세 해결될 문제입니다.”
폼페이우스가 다시금 반란을 해결하고 공훈을 세운다면 그의 영향력은 너무나 막강해진다. 따라서 폼페이우스가 군권을 획득하고 반란을 해결하게끔 내버려 둘 세네투스가 아니었다.
“허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 가볍게 볼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시칠리아 정규군은 메사나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 전부이니 결국 본토에서 레기온을 보내야만 합니다. 지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시칠리아 노예 반란을 잊어 버리기라도 한 것입니까? 수만에 달하는 노예 반란군이 시칠리아를 전복하고 본토까지 위협할 뻔 했습니다.”
아티커스의 말에 아퀴우스가 말을 받았다.
“과장이 심하십니다. 시칠리아에서 대규모 노예 반란이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본토가 위험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 그것이 아니지 않소? 시칠리아와 남부는 상당히 가까운 지역이오. 만에 하나 메사나가 함락당하고 남부 지역과 시칠리아 반란군이 합류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그때는 어찌하려고 그러시오? 초기에 확실하게 진압해야만 합니다.”
아티커스를 바라보던 칼두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초기에 반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세네토르 루푸스께서도 거론하셨듯이 고작 노예 반란이오. 레기온과 같은 정규군단을 움직일 것도 없이 임의대로 시민군을 모집하여 상대해도 충분할 것이오.”
크라수스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주시할 뿐,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폼페이우스는 군권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가 군권을 획득하려면 자신이 먼저 군권을 획득한 연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세네토르 아티커스를 따르는 의원들은 폼페이우스를 지지하지만 대부분의 세네토르는 폼페이우스를 경계하고 있다. 로마에서 그의 영향력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군을 움직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먼저는 두 콘술이 될 것이고 그 후에는 바로 자신이 될 것이다.
게다가 노예 반란이라니······. 이토록 쉽게 공적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을 것 같은가? 오합지졸에 제멋대로 놀 것이 분명한 노예군 따위가 대체 뭐가 두렵겠는가? 그런 공적을 세울 기회를 두 콘술이 양보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두 콘술이 전형적인 정치가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저들이라고 관계를 맺고 있는 군대 지휘관이 없겠는가?
공훈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오히려 사비로 시민군을 모집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정규군단에 대한 군권을 달라고? 크라수스는 폼페이우스의 발언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폼페이우스가 군대를 이끌면 이 모든 혼란은 순식간에 정리될 것이니 누구보다 확실하고 효율적인 인사임은 분명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래서 말을 꺼낸 것일 테고. 크라수스가 폼페이우스의 능력과 공적을 무시했다면 애초에 그를 애써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돌아갈 리가 없었다. 과연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발언이 대다수의 세네토르에게 더한 반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크라수스의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의문이었다. 그것을 알았다면 저 오만한 인사가 저런 말을 뱉지도 않았겠지.
의회를 주최하고 있던 집정관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세네토르 칼두스의 발언에 쓴웃음을 슬쩍 지은 후에 바로 입을 열었다. 정규군단을 움직일 생각은 말고 공훈을 세우고 싶다면 그만큼의 재산을 투자하라는 소리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남부 지역 곧 카푸아에서 시작된 노예 반란군을 처리하겠소이다. 다만 노예 반란 따위를 토벌하고자 굳이 정규군을 움직일 필요도 없으니 자비를 보태 자원병들을 모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시민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군대가 되겠지만 어찌 정규군단에 비할 수 있으랴? 게다가 자비까지 더해야 하는 상황이다. 군대를 구성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으니 세네토르들에게 빚을 져야만 할 테고 이는 공훈을 세우더라도 자신에게 족쇄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규군을 고집한다면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빚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명예를 상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부 지역의 반란은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께서 해결하신다고 하셨으니 더 거론할 필요가 없지만 시칠리아의 대규모 노예 반란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그곳에서는 시민군을 모집할 수도 없는 상황일 테니 어쩔 수 없이 군단을 파견해야만 할 겁니다.”
아티커스는 한 발 물러서며 입을 열었다. 자신도 폼페이우스가 본토의 노예 반란군을 토벌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칠리아 지역은 자신의 말대로 군단을 파견해야만 할 것이고 그 적임자로 육전과 해전을 두루 거친 폼페이우스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물론 이 역시 무산될 수 있지만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이번을 계기로 다음 번에 더 큰 것을 취하면 될 일이니까.
그때 전령이 의회장으로 들어와 무언가 서신을 건넸다. 서신은 서기 등을 거쳐 곧바로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에게 전달되었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그 자리에서 인장을 뜯고 서신의 내용을 읽었다.
“흐음.”
그가 침음을 흘리자 세네토르 루푸스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서기에게 건네 큰 소리를 읽도록 했다. 서기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끔 커다란 목소리로 서신의 내용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흐으음.”
“일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미트리다테스가 움직일 것이 분명한데······.”
“폰토스를 제때 제압하지 못한다면 동부지역에 대한 로마의 영향력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 것이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비티니아를 속주로 편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허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왕이 로마에 증여하기로 한 땅을 받지 않는다면 로마가 폰토스나 그 지역의 국가들을 두려워한다는 소리밖에 더 되오? 받지 않을 이유도 없고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오.”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는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오. 비티니아 지역을 로마의 속주로 선포한다면 거의 반드시 전쟁을 일으킬 것이오.”
세네토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아티커스는 폼페이우스와 급히 눈을 마주쳤다. 로마 남부나 시칠리아는 더 이상 신경 쓸 계제가 아니었다. 비티니아가 속주로 편입되고 그로 인한 폰토스 전을 대비하려면 정규군을 이끌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이 전투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다. 이러한 중책에 폼페이우스보다 어울리는 자가 존재하는가? 시칠리아에서 온 서신 한 장이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낸 것이 다름없었다.
크라수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미간을 좁힌 뒤 그 역시 자신과 친한 의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세네토르 테세우스가 시칠리아 토벌에 대한 공식적인 군권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폰토스 전에 대한 내용은 뒤로 미뤄야 했다. 따라서 크라수스의 눈짓을 받은 세네토르 아퀴우스가 급히 입을 열었다.
“시칠리아 내의 정규군도 무너진 마당에 얼마 되지도 않는 사병으로 반란을 어떻게 종식시킬 수 있다고 그에게 군권을 인가합니까? 거론할 가치도 없는 요청입니다.”
아티커스의 단호한 발언에 상황을 주시하던 칼두스가 입을 열었다.
“동부지역도 중요하지만 시칠리아의 반란은 반드시 척결되어야만 하는 일이오. 시칠리아가 로마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역인지를 모르실 분은 없으리라 여겨지니 이 일에 이견은 없겠지요.”
그런 뒤 칼두스는 좌중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시칠리아의 정규군은 메사나로 후퇴해서 시칠리아에 대한 장악력을 모두 잃은 상황이니 그곳의 반란을 토벌하려면 시민군이든 정규군이든 파견을 보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동부지역의 상황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면 더더욱이나 함부로 정규군을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말은 일단 시민군을 보내야 한다는 소리인데······.”
칼두스가 크라수스나 폼페이우스에 속한 인사들을 훑어보자 저들은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피했다. 너희 중 누가 시칠리아로 가겠느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민군을 파견한다고 해도 그것도 일단은 본토 내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에 움직이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네토르 테세우스에게 임시적으로 군권을 인가하는 일은 서신 한 장으로 충분한 일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는 히스파니아에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의 군대를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격퇴한 전적이 있는 사람이니 일단 그에게 맡겨두고 그 후에 시칠리아의 일을 거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부지역뿐만 아니라 북쪽의 갈리아는 물론이거니와 시칠리아에 반란이 일어난 이상 이집트 지역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 말에 루푸스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군권을 인가해준다고 해도 별도의 지원이 없다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지원도 없이 토벌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시칠리아의 상황이 그토록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서둘러 시칠리아의 반란을 토벌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굳이 본토의 반란을 토벌한 이후에나 움직일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그제야 루푸스는 세네토르 칼두스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중립파였던 하드리아누스가 테세우스로 인해 실각된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것이리라. 그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입안의 가시같은 사람이었고 그건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었다. 그가 세네토르에 올랐다고 자신들에게 딱히 화해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쁘지 않군요. 본인이 꺼낸 말이니 본인이 책임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메사나를 점령하고 있는 시칠리아 정규군에 대한 군권은 예외로 두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 아닐까 싶군요. 아울러 본토에서 군대가 파견되면 군권이 말소되는 것으로 해서 말입니다.”
크라수스였다. 시칠리아 정규군은 이미 메사나로 집결한 상황이다. 그들에 대한 지휘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공식적인 군권을 인정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오. 묘안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요.”
세네토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크라수스의 의견에 찬성을 표했다. 테세우스가 반란군에게 패배한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고 토벌에 성공할 것처럼 보인다면 그때 소수의 군대를 파견해 그가 이끄는 군단에 대한 군권과 그에 따른 공적을 빼앗으면 될 일이다.
콘술 루키우스 옥타비우스는 독사와 같은 자들이라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다시 회의를 진행시켰다.
“이 부분은 얼추 논의된 것같으니 이쯤에 넘어가고 그럼 동부지역과 북부지역에 대한 군단을 어찌 편성할지에 대해서 논의해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