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74화 (274/298)

# 274

274. 대반격.

274.

저택의 아트리움(중정) 중앙에 있는 수조 주변으로 다채로운 색상의 꽃잎이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었고 풍성한 과일들이 즐비했다. 최고급산 포도주로 여겨지는 이곳 파노르모스산 포도주 역시 저마다의 화려한 잔 위에 담겨 쉼없이 사람들의 입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여인들과 사내들이 한데 섞여 난잡한 소음을 연신 만들어내고 있었고 큰 웃음소리와 기묘한 음악 역시 한데 어울려 소리만으로도 이곳에 일어나는 일들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헉 헉.”

헐벗은 사내가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튜니카인지 뭔지도 알 수 없는 천조각으로 하체를 대충 둘렀다. 그의 딱딱하던 하물이 덜렁대는 것을 봐선 방금 여인과 성교를 치른 것으로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곳곳에서 살과 살이 맞닿는 소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화려한 저택에서 성대한 연회와 더불어 난잡한 행위를 만끽하는 것은 그의 작은 바램 중 하나였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는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난잡한 연회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전장의 기억따위는 그 향취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그와 같은 생각에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다가 벽면에 남은 희미한 핏자국을 발견했다.

살짝 인상이 굳은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는 손짓으로 하인을 불렀다. 하인이 급히 다가오자 코시니우스는 손바닥으로 하인의 얼굴을 강하게 후려쳤다.

짜아아악!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하인의 뺨에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부어올랐음은 물론이고 하인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새끼가. 흥이 가시게시리! 내가 분명 깔끔하게 청소하라고 했을 텐데?”

하인은 얻어맞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의 발치에 엎드려 바들바들 떨며 입을 열었다.

“요.. 용서하여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소란에 저택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가 잠시 멈췄다. 동풍(凍風)이 불어와 모든 것을 얼려버린 것처럼 말이다.

“계속! 계속들하게! 흥이 완전히 식어버리지 않나?”

코시니우스가 주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행위에 몰두했다. 하인은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코시니우스에게 말했다.

“바로.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코시니우스는 냉정한 표정으로 하인에게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없다.”

그렇게 말한 코시니우스는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군인에게 눈짓했다. 그 모습에 군인이 서늘한 눈빛으로 하인의 팔을 잡아챘다.

“요.. 용서를!”

하인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코시니우스를 바라봤지만 가엽게도 그는 감히 큰소리도 내지 못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큰 소리를 낸다면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주 처참한 고문까지 동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뭣들하나?”

그러자 군인은 하인의 입을 틀어막은 뒤 그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미약한 단말마가 울려 퍼졌지만 누구도 처절한 비명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본인들이 하던 행동에 몰두했다.

그러나 향긋한 연회장의 공기를 비릿한 악취가 뒤덮는 순간, 저들은 눈을 들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날카로운 눈빛에 말총머리를 한 사내가 피칠갑을 한 채 서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모조리 죽여!”

가니쿠스의 서늘한 음성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뒤편에서는 가니쿠스 못지 않게 피로 물든 사내들이 악귀처럼 뛰쳐나와 연회장의 모두를 가차없이 도륙했다.

“크아아아악!”

“아아악!”

갑작스런 비명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려던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는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경악한 표정으로 급히 소리쳤다.

“경비병! 경비병 어디갔나? 경비병!!”

아비규환의 소음을 뒤로 한 채 가니쿠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코시니우스에게 다가갔다.

“네가 루키니우스 코시니우스인가?”

“이... 이.. 노예 놈이!”

코시니우스가 뒷걸음을 치며 가니쿠스에게 소리쳤으나 가니쿠스는 흔한 코웃음 한 번 치지 않고 코시니우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렸다.

촤아아아악!

코시니우스의 육체는 다량의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단 그의 머리는 가니쿠스의 손에 잡혀 허공에 떠 있었다. 가니쿠스는 잘린 그의 머리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입을 열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내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산채로 네놈의 사지를 찢어서 죽였을 테니.”

그리곤 바닥에 세게 집어던졌다. 코시니우스의 머리통은 바닥을 퉁퉁 찍으며 핏자국을 남기다가 이윽고 아트리움의 가운데 수조에 풍덩 빠졌다. 그러자 다채롭고 향긋한 꽃잎이 떠다니던 수조가 코시니우스의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전쟁 중의 장수가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난잡한 연회나 벌이다가 살해당하다니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기묘한 것은 본래 역사에서도 그는 별장에서 목욕이나 하다가 스파르타쿠스의 기습에 살해당했다는 점이었다. 난잡한 연회나 목욕이나 둘다 수치스럽긴 매한가지니 더는 거론할 가치가 없었다.

*

테세우스는 약삭빠르게 생긴 사내와 함께 로마로 들어섰다.

“테세우스 님. 드디어 로마입니다.”

테세우스는 눈앞에 펼쳐진 로마를 바라봤다. 일주일도 안 걸리는 로마행을 세 배가 넘는 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베투로니아의 병사 알비누스야 자신의 말을 그대로 믿어줬지만 베투로니아의 관리들마저 그리 허술하게 행할 리가 있겠는가?

따라서 테세우스는 본의 아니게 그곳에서 일주일 가량 머무르며 신분확인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그냥 무시하고 움직이기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기에 테세우스도 별 수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이 미뤄지던 그때 베투로니아에 일이 있어 로마에서 온 사내가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켜줬다. 그가 바로 자신과 동행한 사내였다.

“안토니우스. 당신이 아니었다면 더 오랜 시간 베투로니아에 붙잡혀 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별 말씀을 하시는군요. 제 아들 놈이 원체 테세우스 님을 좋아해서 저도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도 방금 언급한 그의 아들의 이름도 모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로마까지 오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의 아버지의 이름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는데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로마로 귀한했을 때 그에게 살해당한 모양이었다. 따라서 마리우스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안토니우스는 말을 잠시 멈춘 뒤 입을 열었다.

“뭐······.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평민이긴 합니다만 테세우스 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테세우스 님에게 악감정이 있어선 아니고. 하하.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안토니우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테세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의 아버지 세르토리우스는 대표적인 마리우스파였으니 호의를 가진 것이 이상한 일이리라.

“이해합니다.”

“테세우스 님께서 카이사르 님과 함께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아주 먼 방계이긴 합니다만 제 아내가 율리아 가문 사람입니다. 율리아 안토니아라고 하지요.”

테세우스는 눈앞의 사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이번 도움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제가 무슨 도움을 드렸다고. 베투로니아의 게으른 관리 놈들이 늦장을 부려서 그렇지 머잖아 해결될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테세우스 님을 몰라보다니 그야말로 황당한 노릇이지요. 다만 테세우스 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제 아들 놈을 한번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테세우스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안토니우스를 바라봤다.

“아들을 말입니까?”

안토니우스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제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들 소원 하나쯤은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말입니다.”

약삭빠른 자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면모가 있었던가? 테세우스는 안토니우스를 바라보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저뿐만 아니라 카이사르도 만나게 될 겁니다.”

테세우스의 중의적인 표현을 헤아린 안토니우스는 입이 귀까지 걸린 웃음을 지으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원체 이름이 비슷한 사람이 많아 테세우스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갔지만 BC 43년 결성한 2차 삼두정치의 세 사람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중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버지가 바로 테세우스가 만난 사내였다.

안토니우스의 아버지는 BC 71년 지중해 해적 토벌 중 크레타에서 사망하는데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무능하고 부패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안토니우스는 10대 때 로마에서 건달생활을 전전했는데 테세우스의 만남이 일련의 사건을 어찌 변화시킬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버지 곧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헤어진 테세우스는 카이사르를 만나고자 했다. 곧장 세네투스로 향할 것이 아니라 카이사르와 상의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나디르를 만날 필요가 있었다. 나디르는 로마에서 여러 일을 맡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일들을 몇 가지 나열하지만 일단 로마 정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야스미라 왕녀의 안전을 책임지고 카이사르와의 연락 등을 전담하고 있었다.

로마의 권력이야 관심없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본인이 관심이 있다고 무조건 얻을 수 있는 것도, 관심이 없다고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항우와 리처드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에 대비 차원에서 나디르를 남겨 두었다.

카이사르가 부각되면 그때는 그의 그늘 아래 거하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부와 명예와 권력도 좋지만 항우와 리처드의 경험을 가진 테세우스는 그 모든 것보다 평탄한 삶을 원했다. 그것이 테세우스가 원하는 전부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테세우스는 로마의 울타리 안에서 평온한 삶을 영위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평탄한 삶이 쉽다면 사람들이 어찌 힘겨운 삶을 전전하겠는가? 마찬가지로 테세우스는 그토록 바라고 바라지만 그건 마치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정말 계획대로 연기처럼 사라지고자 했다면 시칠리아의 반란에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이 시민이든 귀족이든 원로원이든 그게 누구든 간에 거론되지 않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은 시칠리아 반란에 관여했다. 비단 시칠리아 일뿐이겠는가? 원로원 귀족들과도 필요 이상 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크라수스와는? 폼페이우스와는? 히스파니아에서는? 마우레타니아에서는? 카르타고의 토페트 사건은? 그저 조용히 살고자 했다면 무시하고 넘어가면 될 일 아니었던가?

테세우스는 로마의 거리를 걸으며 착잡한 심정에 휩싸였다. 항우와 리처드의 삶. 동경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테세우스 본인조차 간과하고 있었던 한 가지 사실. 그들과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동일한 삶을 살지는 않지만 그는 이미 제왕이었다. 그것도 흉포한 패왕 말이다.

평탄한 삶만을 추구하고자 그 모든 일을 유야무야 넘어갔다면 그는 더 이상 테세우스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테세우스였기에 그런 일이 발생했고 테세우스였기에 이런 상황에 처했으며 테세우스였기에 그런 선택을 했다.

단순히 그뿐이라면 죽음으로 삶이 마무리되었겠지만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을 무참히 갈라버렸던 항우와 리처드처럼 테세우스는 자신의 적을 모조리 해치웠다.

단지 그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카이사르와 손을 잡았지만 카이사르가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도 자신을 적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테세우스 본인이 잘 알았다. 제왕이었던 그가 권력의 속성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 아닌가?

“그래도 일단은······.”

잠시 한숨을 내쉬던 테세우스는 걸음을 멈추고 문을 두들겼다.

쿵쿵!

“누구? 엇! 테세우스 님!”

나디르가 문을 열고 나오다가 테세우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오신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오시지 않아서 폭풍우에 휘말려 사고를 당하신 건 아닌지 심히 걱정했습니다.”

“후. 그게 다행히.”

“아. 내가 때를 잘 맞춰 찾아왔군.”

그때 집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다. 테세우스가 집안을 바라보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눈빛이 형형하고 단단한 체구를 가진 사내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사내였다.

테세우스의 눈빛을 마주한 나디르가 입을 열었다.

“테세우스 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하던 차에 찾아오신 분입니다.”

“내 소개는 내가 직접 하지. 나는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라고 하네. 자네가 테세우스인가?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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