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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무신의 기억-283화 (283/298)

# 283

283. 무신(武神).

283.

계획을 수립하면서도 설마 했다. 설마하니 이런 지경까지 올 것이라곤 계획을 수립하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저 최악에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을 뿐이다.

“끝이군.”

테세우스를 죽이든 못 죽이든 저런 광경을 목격했으니 반란군은 이 전투 후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 버릴 것이다.

로마라고 어디 저런 자들이 흔할 것인가? 결코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반란군은 로마의 저력에 겁을 집어먹을 것이다. 로마의 뛰어난 군인들은 모두 테세우스의 병사들 같을 것이며 지휘관은 호라티우스 같을 것이며 로마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테세우스처럼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오해하고 말 것이다.

“무신이라 불러도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사내다. 그러니 무신을 죽인 사내로 끝을 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스파르타쿠스는 테세우스가 도망칠 것을 대비해 후퇴로를 차단하며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테세우스가 무작정 세리누스 성으로 향할 것을 예측하지도 못했고 그런 그를 아군이 막아내지 못할 것도 예측하지 못했다.

“성벽을 중심에 두고 삼면을 막아 죽이는 수밖에.”

스파르타쿠스는 크릭서스와 가니쿠스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뜻을 알렸다. 이번에야말로 놈의 목줄을 끊어버리겠다.

*

테세우스는 땅을 박차고 창공을 노니는 매처럼 날아올랐다.

풀 플레이트를 걸치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수영도 할 수 있다지만 테세우스의 몸놀림은 흡사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나 날렵했다. 날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강력한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콰직!

테세우스는 적병의 안면을 발로 밟고 뛰어오르며 공중에서 팽이처럼 몸을 돌렸다. 그의 손에는 극이 들려 있었기에 거대한 칼날이 중심축을 따라 빠르게 회전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촤아아아악!

칼날에 걸린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무참하게 잘려나갔다. 갑옷이든 투구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걸리는 족족 붉은 절단면과 함께 피를 쏟아냈다. 머리가 반으로 날아가 쓰러지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크아아악!”

“아악!”

다시금 붉은 핏물을 사방으로 튀어 오르게 만든 테세우스는 지체하지 않고 전방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뒤편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 두두두.

“죽어라! 테세우스!”

후퇴하며 전열을 재정비한 크릭서스가 기병들과 함께 다시 짓쳐 든 것이다. 보병에게 있어 기병이란 존재는 실로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말의 속도와 체중이 실린 기병의 돌격은 보병의 몸을 절단하기에 충분했기에 보병의 대열은 기병의 송곳 같은 돌격에 속수무책으로 박살 나곤 했다.

물론 기병을 더욱 막강한 병과로 변모시키는 등자는 이 시대에 없었지만 보병이 훈련된 대형이나 동료 없이 기병을 맞닥뜨린다면 어지간해서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물살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연어처럼 테세우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보병의 대열을 거침없이 가르다가 뒤편에서 느껴지는 기병의 돌격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저들을 바라봤다.

심지어 한 방향이 아니었다. 뒤를 둘러싼 보병대열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흩어지더니 좌우에서도 돌격진을 형성한 기병들이 짓쳐 들고 있었다.

바로 스파르타쿠스와 가니쿠스가 이끄는 기병들이었다.

“방패! 박아! 창을 세워!”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기병을 바라보는 테세우스 뒤편의 보병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결연한 표정으로 로마군에게 얻은 스쿠툼을 지면에 깊숙이 박아넣었다.

쿠우우웅!

차악!

그리곤 고슴도치처럼 창을 빽빽하게 내밀었다. 테세우스가 말의 돌격에 뒤로 밀려나기라도 하면 미리 세워 두었던 창으로 무참하게 찌르기 위해서였다.

아군의 기병이 짓쳐 들고 있는 그 뒤편에 방진과 함께 창을 세웠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전술이었다. 자칫하면 아니 분명히 아군끼리 상잔하는 상황이 발생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개의치 않았다. 이 괴물 같은 놈을 죽이려면 놈이 피할 공간이나 여유를 줘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었고 엄밀히 말하면 테세우스 뒤편을 막은 방패병이나 창병은 사실상 버리는 패였다.

“죽어라!”

“우아아아아아!”

놈이 한두 기의 기병을 참살할지라도 거의 최대 속력으로 짓쳐 들었으니 놈에게 도륙된 말의 시체나 기병의 시체마저도 무시할 수 없는 충격이 될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이대로 기병의 파도 속에 테세우스를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테세우스가 말을 타고 있다면 기동력이 있으니 이런 포위 상황을 만들어내기 어려웠겠지만 놈은 가니쿠스의 함정으로 인해 말을 잃은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보기엔 너무나 효율적인 명령이었다. 고작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3만 대군이 심혈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 실로 아이러니했지만 말이다.

“누구도! 설혹 네놈이라고 해도 이 공격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말을 달리는 와중 혼잣말로 중얼거린 스파르타쿠스가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놈을 이대로 짓뭉개버려라! 전사들의! 아군의 원한을 갚아라!”

“우아아아아!”

“죽어라!”

“우아아아아아!”

두두두두.

“후욱. 후욱.”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어오르는 흙먼지,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의 살의와 고막을 찢어버릴 것처럼 요동치는 전장 소음, 그리고 이미 뼛속 깊이 스며든 붉은 피의 잔재는 고동치는 심장에서부터 아주 미세한 혈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온기를 앗아갔다. 그 가운데 말갛게 드러나는 것은 끝없이 타오르는 투쟁심과 시리도록 시린 적을 향한 살의뿐이었다.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처럼 적의 기병이 대지를 가르며 코앞까지 짓쳐 들었다. 테세우스는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양손으로 극을 강하게 쥐며 목청이 찢어지라 고함을 질렀다.

“우아아아아!”

이윽고 반란군의 기병과 테세우스가 충돌했다. 기병이 테세우스를 휩쓸었다고 표현되어야겠지만 이 경우에는 충돌했다는 표현이 훨씬 정확한 표현이리라.

푸우우욱!

퍼어엉!

뭔가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말과 기병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미치도록 황당한 광경이었다. 전속력에 가까울 정도로 달려간 말이 달리던 방향도 아니고 뒤편으로 날아갔다고? 물론 말의 형상이 아니라 붉은 핏물에 뒤덮인 육편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뒤쪽에서 말을 달리던 기병들은 그 광경에 기함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린 말의 방향을 돌리기도 어렵고 대형으로 인해 방향을 돌릴 수도 없었던 기병들은 전의를 다지며 계속해서 짓쳐 들었다. 이대로 테세우스가 죽기를 마음 깊이 기원하면서 말이다.

“제발 죽어라!”

“죽어라! 이 괴물보다 더한 놈아!”

“으아아아아!”

전의와 투쟁심으로 무장하고 달려드는 자, 어쩔 수 없이 달려드는 자, 공포에 휩싸여 달려드는 자,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드는 기병들의 마음이야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그 결과는 모두 동일했다.

테세우스의 말도 안 되는 신위에 모조리 육편이 되어 버렸다.

테세우스는 제 자리에 서서 양손으로 미친 듯이 극을 휘두르며 짓쳐 드는 모든 것을 베어내고 베어냈다. 그 충격으로 인해 몸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테세우스는 거대한 바위처럼 우뚝 서서 적을 분쇄하고 분쇄했다.

기병이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드는 모습은 바위를 향해 던지는 달걀과 같은 모습이나 분쇄기에 산산이 갈려버리는 분쇄육과 같은 모습을 상기시켰다.

테세우스가 얼마간의 기병을 베어내더라도 말과 기병의 시체에 의해 묻힐 것이라 예상했던 스파르타쿠스는 막상 펼쳐진 광경에 아예 할 말을 잊어버렸다. 말과 기병의 시체는 테세우스의 몸을 뒤덮는 것이 아니라 기병의 진격로 앞에 떨어져 도리어 기병의 돌격력을 무디게 만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육편과 시체로 인해 말이 대형을 이탈하거나 넘어지는 광경도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대체. 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신위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광경에 스파르타쿠스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말을 뱉다가 말 고삐를 강하게 잡아챘다.

그 역시 테세우스를 향해 달려드는 중이었고 그건 가니쿠스나 크릭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이 모든 일이 몇 분? 아니 몇십 초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크릭서스는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하는 것을 느꼈지만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놈도 사람인 이상 지칠 것이고 그것을 노리면 놈을 죽일 수 있다. 죽이리라! 그 생각 외에는 애써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자 했다.

이윽고 테세우스 앞에 다다른 크릭서스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담아 테세우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마침 가니쿠스와 스파르타쿠스도 지척 거리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 모습에 힘을 얻은 크릭서스는 이대로 놈을 잡을 수 있겠다라는 마음을 품었다.

촤아아아악!

그 순간 크릭서스의 머리는 그 망상과 함께 순식간에 잘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크릭서스!! 이놈! 테세우스!”

분노한 가니쿠스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테세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테세우스의 극이 번개처럼 그의 장검을 향해 다가왔고 이윽고 가니쿠스의 장검을 아무렇지 않게 부러뜨림과 동시에 가니쿠스의 상체를 완전히 절단내 버렸다.

촤아아아악!

가니쿠스 역시 크릭서스나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합도 겨루지 못하고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스파르타쿠스는 분노한 표정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봤다. 헤르쿨레스도 이자와 같은 무용을 보여주지는 못하리라. 전신 아레스라고 해도 이자를 전장에서 죽일 수 없으리라. 무신. 그야말로 무신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였다. 놈을 죽이든 죽이지 못하든. 납득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대체 하늘은 왜 이런 자를 자신 앞에 적으로 내세운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매우 후련했다. 자신이 만난 테세우스는 그야말로 재앙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스파르타쿠스는 어떤 말도 뱉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실은 공격을 테세우스에게 날렸다. 그렇게 피와 살점으로 뒤덮인 테세우스의 눈빛과 마주쳤고 지금껏 무수히 많은 전사들의 무기를 박살 낸 무지막지한 놈의 무기가 자신의 검을 박살 내는 것도 확인했다.

‘끝이군.’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육체고 자신의 목숨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멍하니 테세우스의 극을 바라봤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절묘한 공격이었다. 아니 거의 모든 수를 차단한 완벽에 가까운 공격이라고 해야 할까?

후우우웅!

콰아앙!

“크흑!”

그 순간 스파르타쿠스 앞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테세우스의 극이 크게 흔들렸다. 그로 인해 잠시 여유가 생긴 스파르타쿠스는 급히 고개를 숙여 테세우스의 극을 피해냈다.

다그닥 다그닥!

히이이잉!

후두두둑!

잘린 머리칼이 허공에 흩날리는 것을 느꼈다. 완벽한 공격이었는데 죽지 않고 살았다? 조금 전 무슨 일이 발생했단 말인가?

말과 함께 테세우스를 스쳐 간 스파르타쿠스는 테세우스를 힐끗 바라보고 바로 세리누스 성을 바라봤다.

퉁! 투퉁! 투투퉁!

묵직한 무언가가 튕기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스콜피온과 발리스타다. 성에 장착된 공성병기의 사거리에 들어선 모양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저 괴물 같은 놈을 잡은 건가?”

자신을 공격하던 테세우스의 극의 크게 흔들렸다. 그건 다시 말해 놈이 공성병기의 공격에 얻어맞았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다시 기함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건 스파르타쿠스만이 아니었다.

*

테세우스는 적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를 베어가다가 왼쪽 어깨를 강하게 강타하는 충격에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실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투웅! 콰아아앙!

엄밀히는 뒤쪽에 장착해 두었던 방패에 얻어맞고 빗겨나는 것을 다시 뒤쪽 어깨 부분에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크흐흐흑!”

강력한 충격에 탈골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꼈지만 테세우스는 미간을 잠시 좁혔을 뿐, 금세 균형을 바로 잡았다.

다마스쿠스로 만든 방패가 갑주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공격으로 몸통이 꿰뚫릴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빗맞았기에 가능한 일로 보였다.

테세우스는 허공을 찢고 날아오는 무시무시한 파공음에 정신을 바짝 차리며 다시 극을 휘둘렀다.

퉁! 투퉁! 퉁! 투퉁!

무언가 잔뜩 튕겨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진 후 테세우스 주변에는 발리스타나 스콜피온에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화살 등이 바닥에 박히거나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었다.

정말 미치도록 황당할 노릇이지만 뭔가 날아오는 것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화살을, 그것도 공성병기에 발사된 화살을 모조리 걷어낸 것이었다.

이윽고 전장에 묘한 침묵과 함께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테세우스의 모습에 아예 기가 질려버린 것이다.

그 정적 가운데 저 멀리 말발굽 소리와 함께 거센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테세우스 님을 따르자!”

“와아아아아!”

그들은 바로 나디르가 이끄는 기병들이었다. 망연자실한 스파르타쿠스는 그 함성을 들으며 천천히 무기를 내렸다. 끝이다. 이젠 정말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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