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89화 (289/298)

# 289

289. 불가사의.

289.

자크완은 아군의 궁기병을 도륙하는 테세우스와 전사들의 모습에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파르티아의 전사들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도륙해라!”

“알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마갑을 걸친 말과 역시 중갑을 걸친 기병, 카타프락토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테세우스와 기병들을 향해 질주했다.

충격기병인 카타프락토이의 돌격력은 일반적인 예상을 훌쩍 넘어섰다. 적이 충격에 대비하고 있더라도 무참히 박살 내는 자들이 바로 카타프락토이였기에 이들은 적의 전열에 대놓고 돌격해 진형을 무너뜨리곤 했다.

당연히 전열이 아니라 후방이나 측면에서 이들의 돌격을 맞닥뜨리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방향 전환을 기민하게 할 수 없기에 다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빠져나올 때 위기에 처할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말했다시피 워낙 강맹한 돌격력 때문에 추진력을 잃어버릴 정도의 위기에 처할 일도 많지 않았다.

카타프락토이를 이끄는 자크완은 수레나스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장수로 수레나스의 모든 장수들, 아니 파르티아 전체를 통틀어도 한 손에 꼽는 무용을 자랑하는 장수였다. 아울러 그가 이끄는 카타프락토이 역시 파르티아 아르사케스 왕가의 근위 카타프락토이에 비해 조금의 손색도 없는 충격기병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따라서 자크완은 물론 카타프락토이 역시 기마술이 저급한 로마군의 기병 따위는 단번에 쓸어버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크완은 창을 곧추세우며 아군의 궁기병을 도륙하고 있는 로마 기병을 향해 더욱 빠르게 말을 달렸다. 당연히 그 뒤로는 카타프락토이가 대형 기병창을 앞세우고 매섭게 달리고 있었다.

근위 카타프락토이와 전면전을 치러도 승리할 자신이 있는 자크완은 저들의 행태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오만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놈들은 아군의 궁기병을 도륙하느라 측면을 드러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급히 방향을 틀더라도 충분한 추진력을 얻을 수 없기에 기병 특유의 돌격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전력으로나 전황으로나 패배할 수 없는 전투다. 로마 기병치고는 제법 뛰어난 실력을 보유한 듯하지만 그뿐이다. 저들을 제물 삼아 나 자크완이 이끄는 카타프락토이가 파르티아에서 최강이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하리라.

“차!”

두두두두.

자크완과 그의 카타프락토이 1,500기는 당장에라도 지축을 부숴버릴 것처럼 흉포하게 질주했다.

*

부우우웅!

촤아악!

날카로운 칼날이 허공을 찢어버리자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붉은 핏물이 급히 그 자리를 메웠다.

그렇게 방천화극의 모습을 빼닮은 ‘라티우’를 강하게 휘둘러 궁기병의 머리 여러 개를 대거 날려버린 테세우스는 힐끗 눈을 돌려 매서운 기세로 짓쳐 드는 파르티아의 돌격기병을 바라봤다.

‘중장기병인가? 흡사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군.’

테세우스는 이채 서린 눈빛으로 저들을 바라봤지만, 그것이 자크완과 카타프락토이를 바라본 테세우스 감상의 전부였다.

테세우스는 라티우를 현란하게 휘둘러 파르티아 궁기병을 무참히 도륙하며 말머리를 틀었다. 파르티아 돌격기병이 훌쩍 다가온 상황이었기에 테세우스나 그를 따르는 전사들 역시 이제 와 추진력을 얻기엔 많이 늦은 감이 있었다.

*

누가 봐도 테세우스가 이끄는 기병들이 불리해 보이는 상황, 저 멀리 테세우스를 지켜보던 크라수스와 지휘관들은 우려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너무 불리한 상황입니다.”

“테세우스와 그가 이끄는 기병의 실력이 탁월하기는 하지만 저런 상황이라면 큰 피해를 면치 못할 겁니다.”

“말머리를 틀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진격하던 방향 그대로를 돌파했어야······.”

“적의 궁기병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소? 물러서면서 화살로 견제할 테니 테세우스군이 말머리를 틀지 않고 달렸다고 해도 카타프락토이와 맞닥뜨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오. 그리되면 측면은 물론 후미까지 카타프락토이에게 완전히 내어주는 결과를 낳으니 궁기병이 테세우스군의 진격을 늦추는 순간에는 그야말로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오!”

“적 기병 지휘관은 매우 노련하고 용맹한 자였으니 지금 상황을 노렸다고 봐야겠지.”

“으흠.”

현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한 지휘관들의 안색은 크게 어두워져 있었다. 테세우스가 당한다면 이젠 정말 항복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니 기세를 얻은 파르티아군은 항복조차 허용하지 않고 아군을 모조리 전멸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지휘관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지만, 크라수스는 어떤 말도 뱉지 않고 심유한 눈빛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봤다. 크라수스라고 해서 다른 지휘관들과 다른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테세우스. 저자는 항상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따라서 크라수스는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고 긴장한 마음으로 테세우스가 맞닥뜨릴 위기를 주시했다. 테세우스가 위기를 극복한다면 자신도 살 것이고 그가 패배한다면 자신은 죽게 될 것이다. 그의 손에 자신의 생사가 달려있었다. 그 결과가 어찌 되든 당연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자크완은 테세우스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어리석은 놈! 오늘 너는 나 자크완의 제물이 될 것이다! 죽어라!”

테세우스와 전사들 역시 저들을 정면으로 두고 달리고 있긴 했지만, 최대 속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속도였다. 말의 방향을 무리하지 않고 뒤틀 수 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반면 자크완과 그를 따르는 1,500기의 카타프락토이 모두 최대 속력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이 전투는 누가 봐도 자크완이 이끄는 파르티아 기병이 유리한 전투였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짓쳐 드는 파르티아 기병들과 다르게 테세우스군은 그 어떤 함성도 지르지 않았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한 침묵 가운데 말과 전사들의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수많은 말발굽 소리가 지켜보는 자들의 심장까지 터트릴 것처럼 온 지면을 뒤흔들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격돌을 코앞에 둔 순간, 자크완은 황당한 심정이 되었다. 뭐 이런 미친놈이? 아니 자신들을 얼마나 얕잡아봤으면 이딴 전술 따위를! 그 황당함은 곧 지독한 분노가 되어 온 가슴을 불태웠다.

“이노옴!”

놀랍게도 최선두에 선 테세우스를 중심에 남겨두고 그를 따르던 전사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좌우 측면으로 방향을 틀어 질주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테세우스 기병대는 테세우스라는 점을 가운데 두고 쐐기 모양의 진형의 파르티아 기병을 감싸는 형세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거의 순식간에 이뤄졌기에 자크완 등은 어떻게 대응할 수도 없었다. 이미 전속력으로 달려왔기에 무리해서 방향을 튼다면 말의 관절이 모조리 뒤틀리거나 말과 함께 전복되어 진형이 모조리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테니 말이다.

반면 테세우스군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움직였다. 말의 속도와 움직임, 전장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두 기병대의 격돌이 이뤄졌다.

자크완은 자신의 모든 분노를 담아서 아군의 기병대를 향해 사실상 홀로 돌격하는 미친놈을 바라봤다. 놈의 무용이 제법이라는 것은 궁기병을 상대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카타프락토이 기병들의 돌격을 홀로 막을 수는 없다. 그 누구도 말이다.

“네 핏물 속에서 네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후회하거라!”

자크완의 묵직한 창은 말의 돌격속도와 함께 무시무시한 거력을 담고 테세우스에게 짓쳐 들었다.

*

역동하는 말의 근육, 살기가 담긴 적병의 고함, 사위를 잔뜩 뒤덮은 흙먼지와 비릿한 혈향, 치열한 전장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로 하고 살이 에일 것처럼 매서운 살의를 담은 창이 빠르게 쇄도했다.

후우우웅!

다마스쿠스 강철로 이뤄진 무구라고 해도 감히 저 일격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전사들의 무구를 만들어주며 새롭게 자신의 무구도 정비하고 개선했지만, 모든 힘이 정확하게 창의 끝에 뭉쳐있었기에 다마스쿠스 강철이라고 해도 꿰뚫릴지 모른다.

창을 내지른 적장은 그만큼 뛰어난 무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미 피로 물든 투구를 뒤집어쓴 테세우스는 무심한 눈빛으로 라티우를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화끈한 감각이 자신의 두 팔과 가슴에 새겨졌다.

“이.. 이게?”

자크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짓말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자신의 양팔과 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광경은 갑자기 모든 시간이 갑자기 정지한 것처럼 자크완의 눈에 천천히 아로새겨졌다.

후두둑!

팔과 가슴에서 솟구쳐 오른 핏물이 얼굴에 흩뿌려지는 순간 자크완은 섬뜩한 소음과 함께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더 생각할 기회도 없이 빙글빙글 도는 시야마저도 까맣게 흐려졌다.

부우웅!

촤아아아악!

자신에게 창을 내지른 자크완의 팔과 가슴을 깊게 벤 테세우스가 이어서 그의 목도 쳐버린 것이다. 자크완의 머리는 달리는 말 뒤편으로 휘휘 돌며 뒤로 날아갔고 머리를 잃은 자크완은 몸은 그제야 기우뚱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 장군!”

“이.. 이익!”

뒤따르던 카타프락토이가 분노한 함성을 내질렀지만, 저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전에 피를 탐하는 라티우가 번뜩이며 카타프락토이의 육체를 사정없이 헤집어놓았다.

촤아아아악!

아아아악!

자크완을 필두로 쐐기 형태로 진격하던 파르티아의 충격기병대는 그 자크완을 필두로 테세우스에게 모조리 썰려 나갔다.

마치 분쇄기에 집어넣은 가련한 분쇄육처럼 저들은 그야말로 처참할 정도로 도륙당했다. 심지어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양옆으로 갈라졌던 테세우스의 전사들이 테세우스로 인해 와해 된 충격기병들을 무참하게 도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두 기병대가 마주한 전장에는 파르티아 기병들의 끔찍한 비명만이 외로이 울려 퍼졌다. 테세우스와 전사들은 그저 살인 기계처럼 어떤 함성도 없이 저들을 도륙하고 도륙했다.

파르티아가 자랑하는 1,500기에 달하던 카타프락토이가 모조리 도륙당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

“미. 미친!”

수레나스는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기겁하며 소리쳤다. 무슨 저주스러운 마법이라도 부렸단 말인가? 어떤 전장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1,500기의 카타프락토이가 그야말로 한순간에 전멸해버렸다.

직접 두 눈으로 그 모든 광경을 보고도 수레나스는 자신이 본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지원군으로 모습을 드러낸 로마 기병들은 자신이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하나같이 뛰어난 전사들이었다.

그보다도 홀로 자크완 등을 맞닥뜨렸던 사내, 그 사내의 무용은 식은 땀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아마도 그 사내가 로마인들이 연호했던 테세우스가 분명하리라.

“저자의 무용은 가히 무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 아닌가?”

신중하고 냉철하기로 유명한 수레나스조차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다른 파르티아군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이 비단 파르티아군뿐이랴? 치열하게 전투를 반복하던 전장에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한풍이 몰아닥치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전투와 소음이 그쳤다.

*

“허······.”

경악한 크라수스는 갑자기 목 주변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목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지금껏 저런 자를 상대로······.

“용케도 목숨이 붙어있었군. 하지만 어째서?”

테세우스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확인한 크라수스는 그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저런 무용을 가지고 지금껏 왜? 저자의 심기와 지략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테세우스의 무용은 그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로마인들은 기본적으로 헤르쿨레스를 숭상하고 좋아한다. 그러한 기조는 군인일수록 더 짙다. 이에 테세우스의 지략은 자신도 경계할 만치 뛰어나다. 그런 자가 자신을 영웅화시키는 일 하나 하지 못할까?

그런데 어째서?

수많은 의문이 크라수스 마음속에서 피어올랐지만, 그 모든 의문을 잠시 뒤로 했다. 이건 기회다. 패전이 아니라 승전 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서. 서둘러 돌격진형으로!”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크라수스의 명령은 이번에도 제대로 이행될 수 없었다. 파르티아의 카타프락토이를 궤멸한 테세우스가 홀로 파르티아 진형으로 말을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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