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293. 이데아.
293.
얕은 바다라고 해도 물의 저항력이 다리를 감싸며 달려가는 속도를 늦출 만도 하건만 테세우스는 평지 위를 뛰듯이 아틀라스족을 향해 달려갔다.
‘특별한 힘이 없고 몸집만 커다란 놈들이라고 해도······.’
일반 병사들보다는 강한 힘을 지녔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얼추 1만에 달했다.
물론 테세우스의 병력은 5만으로 아틀라스족의 5배에 달했지만, 병력 차이가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테세우스가 잘 알았고 저들 1만은 과장하면 근 10만 병력에 달하는 전력이라 봐야 했다.
저들이 착용한 무구들 역시 오색으로 빛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으니 병사들이 느낄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게다가 전열을 바로잡고 전략과 전술로 저들을 상대하기엔 아군의 위치나 상황 역시 너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저들은 아군이 배에서 내려 진격할 때까지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마치 너희 따위가 무슨? 어디 죽으러 올 테면 와봐라. 이런 느낌이랄까? 전략적으로 바다를 무리해서 건너게 만들어 아군의 체력을 깎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저들은 화살이나 투창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전략적인 의도보다는 아군을 얕보고 있을 확률이 월등히 높다는 소리였다.
‘방심하고 있을 때 적의 숨통을 끊는다.’
놈들을 유린해 전장의 흐름을 아군의 것으로 삼는다.
테세우스는 사나운 기세로 저들을 향해 짓쳐 들다가 라티우를 물속에 잠긴 바위 위에 박고 장대높이뛰기를 하듯 아틀라스족을 향해 날아올랐다.
*
“호오! 이 노예놈이 제법인데?”
“흥! 그래 봐야 우리 아틀라스족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달려오는 모습과 체구를 보니 그래도 제법 뛰어난 전사 같긴 하나 오리칼쿰으로 제련된 무구를 착용한 우리를 놈들이 무슨 수로? 그러니 벌레처럼 죽어라!”
테세우스를 앞에 두고 있던 아틀라스족 병사 몇 명이 테세우스를 한껏 비웃으며 허공에서 날아오는 테세우스를 향해 커다란 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체중을 실어서 날린 검은 테세우스의 라티우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카앙!
“으읏!”
간단히 날려버릴 것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자신의 뒤로 훅 밀리는 것을 느끼자 아틀라스족 병사는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급히 힘을 주며 버티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라티우를 회수한 테세우스가 그의 목을 베어오고 있었다.
까앙!
“어딜!”
하지만 동료 병사가 급히 검으로 라티우를 막음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에 목이 잘릴 뻔한 병사는 크게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노옴!!”
그러나 살아남은 병사는 소리를 지르기보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테세우스의 라티우가 동료 병사의 검을 가볍게 흘려낸 뒤 자신의 가슴을 가르기 위해 짓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피할 수도 없는 간극으로 파고든 실로 신묘한 무기술이었다. 분노를 표하던 병사는 또다시 당황했지만, 가슴으로 날아오는 무기를 확인하고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걸친 갑주는 오리칼쿰으로 제련한 갑주다. 노예 놈들의 제련술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오르의 부산물로 생성되는 오리칼쿰에 비견되는 금속은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병사는 테세우스의 무기가 자신의 갑주에 튕겨 나가거나 부러질 때를 기다려 테세우스의 목을 베어버릴 생각으로 팔에 잔뜩 힘을 가했다.
카가각! 촤아아아악!
“크아아악!”
그러나 금속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화끈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하자 병사는 두 팔에 가한 힘을 스르륵 풀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말마를 내지르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병사가 놀랐다. 대체 어떻게 오리칼쿰을?
물론 새로운 무구를 만들기엔 대륙이 융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용광로에 불을 붙일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자신들이 착용한 오리칼쿰은 전부 오랜 세월 동안 바닷속에 잠겨 있던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중요 부위를 제외하고는 착용하지 못하고 있는 부위도 제법 많았다.
어쨌든 오랜 세월 바닷속에서 강도가 약해졌다고 해도 현존하는 어떤 금속보다도 강도가 단단할 텐데 그것을 어떻게?
테세우스는 가슴을 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함을 터트리고 있는 다른 병사들의 목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촤아아악! 촤아악!
거대한 체구만큼이나 두꺼운 목이 잘려나가고 테세우스를 비웃던 머리통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졌다.
퉁 투퉁!
촤아아아악! 푸슉!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잘린 목의 단면에서 핏물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테세우스는 라티우를 허공에 휘둘러 피를 털어낸 뒤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며 오른발을 가볍게 내디뎠다.
“이노오옴!”
“이 노예놈이 감히!”
잠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아틀라스족 병사들이 테세우스의 태연한 모습에 대노하며 일제히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들었다.
테세우스의 체구도 2m에 달했기에 저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몸집은 아니었지만, 아틀라스족은 2m를 넘나드는 키를 가졌기에 거대한 몸집의 테세우스가 조금 왜소해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일어날 지경이었다. 누가봐도 테세우스가 금세 참살당할 것처럼 보였다. 무신이라 불리던 그 테세우스라고 해도 말이다.
*
그건 마치 산사태가 일어나는 산중에 거한 느낌이었다. 거센 압박감이 테세우스를 조여왔다. 아니 단순히 기세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테세우스보다 큰 체구를 가진 아틀라스족이 흉흉한 살의를 발하며 미친 듯이 짓쳐 들고 있엇다.
위급한 순간이 분명하건만 테세우스는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담금질한 명검이 찬란한 빛을 세상에 퍼트리듯 테세우스는 자신의 가공할 무위를 온전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테세우스는 가볍게 숨을 들이켜 머금은 뒤 벼락같이 움직였다. 미세한 근섬유 한올한올 관절의 움직임 하나하나 그의 계산 아래 놓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적들 가운데 혹 자신보다 힘이 강한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건 의미 없었다. 놈들의 힘이 얼마나 세건 놈들 역시 피륙으로 이뤄진 인간일 뿐이고 그 인간은 어린아이가 내지른 검에도 죽임을 당하는 법이다.
게다가 숨소리 하나, 바늘이 지나갈 정도의 미세한 간격에서도 적을 참살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 사람은 단언컨대 테세우스 자신 외에는 없다.
이제 와 딱히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테세우스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치열한 전투가 시뮬레이션 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적을 도륙해야 효과적인지, 어떻게 해야 적을 베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등등 본인을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넣고 생존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궁리하고 궁리했다.
처음엔 항우와 리처드가 주로 그 대상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테세우스 본인이 그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치열하게 약점을 찾고 다시 방어하고 다시 약점을 찾고 방어하는 일은 테세우스에게는 숨 쉬는 일보다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좋은 갑주를 걸친 적이 나타났지만, 결국 그뿐이다. 언제나 최악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대비했던 테세우스의 전투에 비하면 가소로운 수준에 불과했다.
테세우스는 숨을 머금은 그 순간 폭발적으로 움직였다. 한 손에는 라티우를 한 손에는 장검을 들고 자신을 당장에라도 갈라버릴 것처럼 날아드는 쇳덩이들을 가르고 결국 적의 피륙을 베고 또 베었다.
촤아아아악!
촤아악!
“크아아악!”
“아아악!”
테세우스를 향해 짓쳐 들었던 아틀라스족은 마치 그 자리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피와 살점을 흩뿌리며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노.. 노예놈 따위가?”
“아.. 아니?”
그 광경에 아틀라스족은 경악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칼쿰에 ‘이데아’로 인해 과거 아틀라스족의 신체만큼 강화된 육체를 지닌 자신들을 저리도 무참하게 살육한다고? 이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두눈으로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는 무력이었다.
*
테세우스의 돌격을 미처 뒤따르지 못해 테세우스의 전투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테세우스군 역시 테세우스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활화산처럼 달아오른 피가 심장과 혈관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이윽고 활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듯 뜨거운 함성으로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
“무신! 테세우스!”
“가자! 놈들을 죽이자!”
“와아아아아!”
“무신!”
“무신!”
저 거인족, 아틀란티스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힘, 턱없이 부족한 체력, 턱없이 부족한 무구를 지녔다.
맞다. 두려움이 뼛속 깊이 박혀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으니 비록 도망치지는 않겠지만, 죽음으로 달려가는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에 질려 생을 부끄럽게만 마감하지 말자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승리할 수 있다. 저 무신 테세우스와 함께라면 거인족이라고 해도 무찌를 수 있다. 용기백배한 테세우스군은 거센 함성을 지르며 목숨을 도외시한 채 아틀라스족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이 노예 놈들이 감히 아틀라스에게 덤벼?”
“죽어라!”
“커헉!”
이윽고 아틀라스족과 테세우스군 쌍방에서 치열한 전투 소음이 울려 퍼졌다. 아틀라스족은 테세우스 병사를 마치 파리 때려잡듯 쳐죽였지만, 테세우스군 역시 저들의 오리칼쿰으로 보호되지 않은 부위에 무기를 찔러넣어 저들을 죽이고 있었다.
아틀라스족 1만과 테세우스군 5만은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대접전을 펼쳤다.
스파르타쿠스는 검을 휘두르는 아틀라스족의 공격을 피한 다음 아군 전사와 눈이 마주쳤다. 아군 전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틀라스족의 발뒤꿈치를 베었다.
“크아아악!”
스파르타쿠스를 공격하던 아틀라스족의 뒤꿈치를 베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몸을 너무 낮춘 나머지 그 병사는 다른 아틀라스족의 발에 밝혀 곤죽이 되고 말았다.
“스파르타쿠스!”
스파르타쿠스는 오이노마우스의 외침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이노마우스를 향해 뛰었고 이윽고 오이노마우스가 굽히 무릎과 등을 밟고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푸우욱!
“크아아아악! 내 눈!”
그렇게 공중으로 날아오른 스파르타쿠스의 검에 얻어맞은 아틀라스족 병사는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다른 병사들에게 의해 난도질당해 죽었다.
통상적인 전쟁을 위한 전술은 의미가 없었다. 놈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지닌 자들이었기에 진형을 유지해도 순식간에 뚫어버릴 것이다.
남은 건 난전뿐이다. 임의대로 다섯 명가량 짝을 지어 아틀라스족 한 명을 상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임의대로인 이유는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도 아틀라스족의 강맹함에 몰살당하거나 한두 명 살아남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대접전, 대난전이었다.
*
“으라아!”
푸우욱!
테세우스는 라티우를 강하게 내질러 아틀라스의 배를 완전히 관통시켰다. 아틀라스족 병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세우스를 바라보며 자신의 배를 관통한 무기, 라티우를 양손을 붙잡았다.
이에 테세우스는 무리해서 무기를 뽑지 않고 장검 하나를 더 빼 들었다.
훙후훙!
챙 채챙!
자신을 향해 매섭게 짓쳐 드는 아틀라스족의 무기를 양손에 나눠 쥔 검으로 쳐낸 테세우스는 그대로 공중에서 제비 돌기를 하며 아틀라스족 병사 두엇의 목젖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아아아악!”
“크허헉!”
오리칼쿰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보호하지 않은 부위를 베는 데 별도리가 있으랴? 목이 베인 아틀라스족 병사들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목을 잡고 컥컥거리다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저들이 죽어가거나 말거나 테세우스는 무릎을 꿇고 쓰러진 저들의 등판을 밟고 다시 날아올라 팽이처럼 돌면서 오리칼쿰으로 보호되지 않은 아틀라스족 병사들의 살갗을 양손의 검으로 사정없이 저며버렸다.
“크아악!”
“아아악!”
몸집이 거대한 놈들이라 이 정도 상처로 죽지는 않겠지만, 테세우스의 병사들이 이들을 상대하기엔 무척 수월해질 터, 테세우스는 죽일 수 있는 놈은 죽이고 상처 입힐 수 있는 놈은 상처를 입혔다. 그 모든 행동은 물 흐르듯이 이어졌기에 얼핏 보면 붉은 피 안개를 배경으로 칼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쿵! 쿵! 쿵! 쿵!
그때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다른 아틀라스족보다 월등히 거대한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신장이 얼추 3.5m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거구였다.
테세우스가 그 방향을 힐끗 바라보며 양손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 배에 라티우를 박고 무릎을 꿇은 채 죽어있는 아틀라스족 병사의 등을 발로 밀어내며 라티우를 뽑았다.
촤아아악!
털썩!
기이하게도 아틀라스족의 핏물은 유난히 더 역겨웠다. 막 죽은 것이 분명한 시체이건만 마치 삼사일은 부패한 시체처럼 지독한 악취가 피어올라 코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잠시 미간을 찌푸린 테세우스는 옆에서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아틀라스의 입을 라티우로 관통한 뒤 뽑아냈다.
“커.. 헉!”
촤아아악!
그런 다음 다시 라티우를 휘둘러 주변 반경의 아틀라스족의 허리를 모조리 양단해버렸다.
“으라아!”
촤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지독한 썩은 내를 풍기는 아틀라스의 절단된 사체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괴력이었다.
“테. 세. 우. 스!!”
그 모습에 지척에 다다른 3.5m에 이르는 거인이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큰소리로 테세우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고요한 눈빛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 거인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