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96화 (296/298)

# 296

296. 아틀라스.

296.

지금껏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테세우스가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는 적을 주살하는 경우는 없었고 그렇게 명령을 내린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아틀라스족과의 전투에서만큼은 달랐다.

테세우스는 도망치는 아틀라스족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결국 병사들과 함께 1만에 달하던 아틀라스족 전부를 도륙했다.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할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틀라스족의 시체에서 피어오른 악취는 그 자체가 독이라고 믿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적당한 무구를 챙긴 뒤 바로 진격한다. 아울러 아군 병사들의 시신은 한데 모아 화장하되 아틀라스족은 그대로 내버려 둬라.”

모든 전투를 마친 테세우스는 바다로 향하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독한 악취를 바닷물로나마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전투 후 시신처리 역시 적아를 가리지 않고 행하는 편이었는데 테세우스는 저들의 무구만 챙기라 명할 뿐, 그대로 썩도록 내버려 뒀다.

촤아아악!

대충 바닷물로 피를 씻어낸 테세우스 역시 쓸만한 무구를 저들의 시신에서 챙겼다. 그리고 아틀라스 병사의 시신에 처박혀 있는 라티우 역시 뽑아서 챙겼다.

그리곤 이곳 해안가에서도 확연하게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을 바라봤다. 그건 실로 거대한 건축물이었는데 그 끝이 구름에 둘러싸였기에 육안으로는 제대로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그 구조물은 하늘로 솟을수록 좁아지는 구조인 원뿔 모양으로 생겼고 나선형의 회오리치는 계단 같은 것이 외부에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부서진 부분이 많아 얼핏 보면 기묘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석산에 계단을 만든 것처럼 보였다.

전투 중에는 그 구조물을 확인할 여유가 없어 넘어갔지만, 전투 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전사들은 전무후무한 규모의 건축물에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잠깐만! 저거? 저거 산이 아니었잖아?”

“뭐? 특이하긴 했지만, 산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 응?”

“저.... 정말 산이 아닌데?”

“이 괴물 같은 놈들이 대체 뭘 만들어 놓은 거야?”

전사들이 저마다 놀라 웅성거리자 테세우스 역시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아틀라스.”

테세우스는 그 구조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아틀라스라 불리는 건축물로 아틀란티스 대륙에만 존재하는 이데아를 오르를 통해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초거대 구조물이었다. 그 높이가 무려 5000m에 달하고 지름 또한 10km에 달했다.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라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도 높이가 147m였고 태서후가 살던 시대에 가장 높은 빌딩도 아직 1000m에 미치지 못했다. 건설계획으로는 4000m(X-SEED 4000), 10600m(울티마타워)에 달하는 건축물까지 구상된 적이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언제 시공을 하고 완공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계획일 뿐이었다.

다만 단순히 프로젝트에 불과할지라도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산이 약 8,848m인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였다.

그런데 그 높이가 무려 5000m에 달하고 지름만 10km는 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구조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확인한 전사들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역시 기묘한 건축물을 확인한 사비누스, 나디르, 스파르타쿠스, 오이노마우스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급히 테세우스에게 다가왔고 그 가운데 사비누스가 입을 열었다.

“테세우스 님. 대체 저건?”

“저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모든 것을 말살하고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니 문제 될 것이 있나?”

“아닙니다.”

“준비해라. 시간이 많지 않다.”

아틀라스족은 물론 초거대 구조물 ‘아틀라스’ 역시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

아틀라스족이 한 일을 다른 사람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저들이 이러한 유물을 얻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은 악한 것이니 그것들을 파괴라도 할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이라는 핑계를 내세우겠지만, 그럴 리가? 공공의 이익은 이러한 유물이 없어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뤄지는가? 거대한 힘을 독점한 인간이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는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 땅의 권력자들은 왜 패악질을 멈추지 않는 것인가?

심지어 아틀라스는 ‘이데아’라는 불가사의한 힘을 활용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이러한 것을 손에 넣은 자들이 과연 모두를 위해 이것들을 사용할까? 사람들이 어떻게 항거할 수도 없는 막강한 능력인데? 내 멋대로 해도 보복당하거나 해를 입지 않는다는데? 과연 그럴까?

그럴 생각이 없는 테세우스,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충분히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믿을까?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야. 정말 절대로 그러지 않던가? 닥치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아틀라스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또 다른 아틀라스족이 나타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도의 차이만 더하고 덜할 뿐, 힘을 가진 자의 행태가 아틀라스족의 행태와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러니 아틀라스가 무엇인지 설명할 이유가 없고 저들이 알 필요도 없다. 그것이 모두를 위해 현명한 행동이며 실질적으로도 의미가 없다. 반드시 파괴해버릴 생각이니까.

다행히 아직 아틀라스족의 계획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저들의 조직이 완전히 자리 잡는다면 그때는 테세우스로서도 별수가 없다. 죽임을 당하는 수밖에.

주어진 시간이 결단코 많지 않다.

‘그전에 아틀라스의 주요 장치를 파괴하여 모든 것을 붕괴시킨다.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

“놈을 막아라! 죽여!”

“크아아악!”

“막아! 반드시 막으란 말이다!”

테세우스는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틀라스족을 베어 넘겼다. 결국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죽었다. 이곳 아틀라스를 침투하는 가운데.

하지만 후회는 조금도 없다. 저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죽음을 도외시한 전사들의 용맹이 있었기에 늦지 않게 아틀라스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저들의 죽음은 테세우스의 목적의식을 더욱더 날카롭게 벼렸다.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리라. 모든 것을 말살시켜버림으로.

테세우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온 아틀라스족의 팔을 그대로 뜯어버렸다.

우두두둑! 촤아아악

병사는 뼈가 부러지고 근육과 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악!”

그리곤 앞에서 달려오는 병사들에게 집어 던졌다. 부러진 뼈의 날카로운 부분이 병사들의 안면에 틀어박혔고 병사들은 그 즉시 절명했다.

기력은 물론 힘 역시 활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솟구쳤다. 강력한 힘을 주체하지 못해 오히려 육체가 삐걱거릴 정도였다. 아니 이미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들과 전투를 치르기로 결심한 그때 모든 것을 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을 걸었다. 저들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아직 기회가 있다.

아틀라스 지하 깊숙한 곳의 주요 기관 몇 개만 파괴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폭발한다. 정확히 그 일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는 알지 못하나 어찌 되었든 아틀라스는 물론 아틀란티스 대륙 역시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하늘에 닿을 정도로 솟구친 엄청난 구조물이나 그 근원은 첨예하게 솟아오른 꼭대기에 있지 않고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드러나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에 감탄하겠지만, 내막을 아는 자는 보이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힘에 집중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첨예하게 솟은 꼭대기에 무언가 있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 지하 깊숙한 곳이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테세우스를 상대하는 아틀라스족도 그 사실이 무척 기이했다. 지하 깊숙한 곳이 아틀라스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는 건 아틀라스족 내에서도 극소수만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테세우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계속해서 도륙하면서 미친 듯이 달리고 달렸다. 자신이 환상에서 본 마지막 장소. 그곳을 파괴하기 위해.

퍼어억!

또 다시 적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부서버린 테세우스는 날아오는 창을 잡고 빙글 돌면서 다시 던졌다.

푸우욱!

“크르르륵!”

입에 창이 박힌 병사는 그르륵 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숨을 거뒀다.

그때 선명하게 빛나는 오색 갑주를 걸친 일단의 병력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테세우스 앞을 가로막았다.

척 처척!

“멈춰라! 네놈은 대체 누구길래 이곳을 알고?”

테세우스는 저들을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달리는 두 다리에 힘을 더해 방패진을 형성한 저들에게 뛰어들었을 뿐이다.

“이노옴! 이 벌레 같은 놈을 당장 죽여라!”

5m에 이르는 거대한 체구를 가진 아틀라스의 왕. 아틀라가 우렁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아틀라를 수호하던 호위병들이 효율적으로 방패진을 형성해 테세우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채애앵!

테세우스는 들고 있던 아틀라족의 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실금이 잔뜩 갔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놈들이 착용하고 있는 무구는 예삿 무구가 아니었다. 오리칼쿰 본연의 품질을 가진 무구로 보였다.

테세우스가 위로 향해 방패진을 처리하지 못하고 방패 위에 내려앉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무기들이 테세우스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슈슈슝!

슈슝!

그러나 테세우스는 오히려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움직여 그것을 쳐내거나 피해낸 다음 그 중 하나의 무기를 잡아챘다.

“으아아아악!”

무기를 잡고 있던 아틀라족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순간이었다. 테세우스는 발로 놈의 배를 가격해 저멀리 차버리고 방패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놈을 죽여!”

“죽여라!”

서늘한 검들이 테세우스의 몸을 찌르고 들어왔다.

서걱!

서걱!

매우 예리한 검이었고 미처 피할 간격조차 없는 틈이었기에 테세우스의 곳곳에 붉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 테세우스는 치명적인 급소는 모조리 피해냈고 그의 양손은 적의 팔다리나 목젖을 뜯어내 적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윽고 적의 무기까지 빼앗은 테세우스는 양손에 검을 쥐고 무참하게 아틀라스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아아악!”

방패진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에 불과했다.

“이노옴! 감히! 나 아틀라 앞에서!”

아틀란티스의 왕 아틀라는 대노하며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쓸어왔다.

촤아아악!

서걱 서걱!

아틀라의 대검은 아군 병사들의 몸을 두쪽을 내며 빠르게 테세우스에게 쇄도했다. 힘칫 놀란 테세우스는 적의 머리통을 잡아뽑은 다음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테세우스가 움직인 궤적을 따라 핏물이 몽글몽글 솟구쳐 올랐다.

“흥! 네놈! 곱게 죽을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게다!”

서늘한 눈빛을 발하던 아틀라가 대검을 강하게 휘둘러 솟구쳐 오른 테세우스를 향해 벼락같이 내질렀다.

후우우웅!

테세우스는 맹렬하게 날아오는 아틀라의 대검을 잡아뽑은 아틀라족 머리통으로 막았다.

채애앵!

이에 공중에 떠 있던 테세우스가 뒤로 밀려나긴 했지만, 대검에 몸이 두동강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통뿐이라면 대검에 산산히 박살났겠지만 그 머리통 위에는 오색으로 빛나는 투구가 씌워져 있었다. 물론 투구 전체에 전달된 충격파 등으로 인해 아틀라스 병사의 머리통이 곤죽이 되긴 했지만, 투구의 단단함은 대검의 예리함을 막아내기엔 충분했고 미처 해소되지 않은 남은 여력은 테세우스의 몸이 공중에서 밀려나며 해소되었다.

“이노옴!”

테세우스는 저릿저릿한 팔의 감각마저 점점더 무뎌져가는 것을 느꼈다. 육체를 너무 혹사시켰다. 무한하게 샘솟는 기력과 힘과는 다르게 육체의 내구력은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테세우스는 땅에 떨어지기 전 곤죽이 된 머리통을 아틀라에게 집어 던졌고 착지하자마자 땅에 떨어진 아틀라스 호위병의 방패를 잡고 그대로 아틀라를 향해 달렸다.

아틀라 역시 테세우스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대검을 휘둘렀다.

부우웅!

까그그극!

검을 내지를 때마다 무시무시한 파공음이 뒤따랐지만, 테세우스는 아틀라족의 방패로 아틀라의 공격을 연신 흘려내며 간격을 계속해서 좁혔다.

“이 노예 놈이!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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