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8)

[일/번/패러디] 라크스 클라인 세뇌 계획 -18-

오늘도 루나마리아에겐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걸어왔던 삶과 비교해 몇 달――듀랜달 의장의 임무를 맡아 미아와 함께 라크스의 조교를 해온 날들-이 평범하냐고 묻는다면 뭐라 답변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제와 그저께와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낼 것은 틀림없다.

 "이것이 현재 라크스 클라인과 마류 라미아스에 관한 뇌파와 신체 변화를 정리한 데이터입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루나마리아는 감사를 표하며 이번 세뇌 계획에 참여하는 있는 연구원에서 보고서 뭉치를 받았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루나마리아에게 보고서를 전달한 연구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일터인 연구소로 떠났다.

 그 연구소가 있는 구역은 몇몇 연구소, 실험실이 모인 특수구역 같은 곳이어서, 이번 세뇌 계획 이외에도 극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루나마리아커녕 미아조차도 허가를 받지 않고는 출입이 할 수 없는 곳이다.

 등을 돌리고 떠나는 연구원을 배웅하고 루나마리아도 발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늘 목표는 이 데이터를 나름대로 정리해 내일이라도 듀랜달과 미아에게 보고해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구원과 대화를 나눈 곳에서 조금은 떨어진 구역의 복도를 걷고 있을 때, 문득 문서를 잡고 있던 힘이 느슨해져 팔 사이로 보고서 한 장이 스르륵 떨어진다.

 "앗!"

 루나마리아는 곧바로 그것을 주우려고 했지만, 그 보고서는 재수 없게도 사거리의 벽에 설치된 자판기의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 난처하게..."

 루나마리아는 푹 어깨가 처졌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 몸을 구부려 웅크리고 자판기의 밑 부분을 들여다보았다.

 "아, 하필 저런 곳에..."

 보고서는 당연히 자판기의 밑에 있었지만 그 위치가 정말 재수 없게 벽, 즉 안쪽의 안쪽까지 기어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결코 쉽사리 팔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할 수 없지..."

 장소가 장소인만큼 주변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에 바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루나마리아는 다소 옷과 팔이 더러워질 걸 각오하고 본격적으로 보고서의 회수작업에 착수했다.

 "이, 이제... 좀 ..., 잡혀라! 하아, 드디어..., 응...?"

 10분에 가까운 사투 끝에 간신히 보고서를 자판기 밑에서 회수한 루나마리아였지만 기쁨도 잠시, 문득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 귀를 기울여봤다.

 "...... 라크... 여기... 미아..."

 두 사람의 말소리가 발걸음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을 부르는 게 아니라 대화 속에 자신의 이름이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자신이 화제에 올라있을까. 그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과 이런 곳에서 웅크린 채 필사적으로 보고서를 회수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뒤섞인 루나마리아는 순식간에 그늘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도 자판기의 그늘과 그 옆에 놓여 있던 관엽 식물이 붉은 잎으로 무성했기 때문에 평소에는 눈에 잘 띄던 자신의 붉은 제복을 잘 가려주고 있었다.

 "... 실험을... 결과가 나오려면..."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면서 말소리도 선명해진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이곳에 루나마리아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의장님도 냉혹하게, 아무리... 계획을 위해서... 그 두 사람을 배신하는 게..."

 "이봐, 그런 말하지 마... 그 두 명도 의장님의 계획의 일환으로..., 이해할 것이다..."

 남자들은 루나마리아가 몸을 숨기고 있는 쪽의 통로를 지나쳐 그대로 사거리를 직진해 사라졌다.

  두 명 중 한 명은 조금 전 루나마리아에게 보고서를 전달했던 연구원이었고, 다른 한 명도 직접 말을 주고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세뇌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원이었다.

 "배신? 두 사람? 도대체 무슨 말을...?"

 군데군데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들리기는 했다.

 요약하자면 듀랜달 의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두 사람’을 배신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루나마리아에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누구라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와 미아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앞서 그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자신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듀랜달이 왜 자신들을 배신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배신하는지 수많은 상념이 차례차례 루나마리아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고 전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렇게 있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루나마리아는 일단 고민을 중지하고 연구원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빠른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온 루나마리아는 술을 들이키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금 진정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는 불안은 진정되긴 커녕 더욱 심해지고 있다.

 당초 오늘 계획은 앞서 받은 보고서를 정리할 생각이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미아와 상담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외부로 나가있어 내일에서나 돌아온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미아조차 자신의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프로젝트의 기밀을 위해 의장과 연구소의 수석 등 일부 관리직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선 아무도 외부로 연락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즉, 현재 루나 마리아는 고립무원의 상태인 것이다.

 물론, 아까 전의 이야기를 잘못 들거나 자신이 곡해 들을 수도... 단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그러기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는 이 불안감은 기우라는 말 한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그것을 루나마리아는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다.

 연구원을 협박해 전말의 진실을 내뱉게 하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만일에 자신의 의심이 모두 착각이라면 자신의 입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루나마리아가 택한 선택은 실험실에 잠입해 스스로 조사하는 것이었다.

 미아가 돌아오는 내일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연구원들의 말투로 보아 이미 계획은 시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 실행일이 내일이나 오늘이라는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루나마리아는 실험실의 근무 시간이 끝나고 기지 내의 밤까지 방에서 대기해 평소의 붉은 제복이 아닌 가능 한 눈에 띄지 않는 같은 평상복과 전에 지급된 백의로 갈아입고 헤어 스타일 을 바꾸는 등 간단한 변장을 했다. 그렇게 하니 루나마리아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 중 한명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왕래가 적은 경로를 선택해 실험실이 있는 연구동의 입구 근처까지 걸어갔다.

 연구동 입구의 문은 각 연구원이 이름표 대신 소지하고 있는 ID 카드와 손의 지문과 정맥, 망막을 센서로 인식해 열리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보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문 앞에 경비실은 있었지만 특히 이 시간대는 시설의 순찰을 겸임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경비가 없는 적이 많았다.

 루나마리아는 통로의 그늘에 숨어 경비실을 살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비실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누군가가 입구의 문에서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적절한 시기에 최적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루나 마리아도 알고 있는 여성 연구원 중 한명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원 중 가장 젊은 나이였고 루나마리아와 그다지 면식도 없는 편이었다.

 아마 오늘 일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을 빠져나와 곧바로 이쪽으로 걸어온다.

 (바로 지금!)

자신과 그녀 이외에 주위에 아무도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루나마리아는 사거리의 그늘에 숨어서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여성이 다가오자 루나마리아는 그늘에서 튀어 나왔다.

 (미안합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뒤에서 다가가 재빨리 목을 감싸 상대의 경동맥을 조른다.

 여성 연구원은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것 같았지만, 루나마리아의 능숙한 솜씨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몇 초 후에 털썩 그 자리에 쓰러진다.

 "설마 군대에서 배운 기술을 전쟁터도 아닌 곳에서 사용하게 될 줄이야..."

 루나마리아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 실신한 여성 연구원의 어깨를 손으로 들쳐 문 앞까지 옮긴다.

 문 앞에 도착하자 여성 연구원의 왼쪽 가슴에 붙은 명찰 겸용의 ID 카드를 분리해 센서에 댄다. 다음 옆에 있는 생체 정보 판독 센서에 여성의 손을 갖다 대자 삐삣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이 해제되었다.

 그렇게 연구동에 침입한 루나마리아는 기절한 여성 연구원을 입구 근처의 화장실의 칸에 수갑과 눈가리개, 재갈 등으로 구속한 다음 숨기고 빠른 걸음으로 연구소로 향했다.

***

 연구동에는 이번 세뇌 프로젝트 연구소 이외에도 10개 이상의 연구소가 모여 있는 넓은 건물 이었지만 몇 차례 미아나 의장과 함께 들어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곳까지의 경로는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연구원이나 순찰하는 경비를 부닥치지 않고 목표했던 실험실의 입구까지 무사히 도달한 후, 아까 획득한 ID 카드를 입구의 센서에 갖다 대어 문을 열고 실험실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실험실 안엔 주조명이 모두 꺼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아무도 없었다.

 "여기까지 순조롭게 침입하기는 했는데 조금 오싹하네요.."

 루나마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민첩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연구원들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평소 사용하는 단말기이다.

 방구석에 있는 고정되어 있는 단말기의 전원을 키고 ID 카드를 사용해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눈에 익숙한 이름의 파일을 찾는다.

 넘겨보다가, ‘라크스 세뇌 프로젝트’의 개요라는 제목의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세뇌 프로젝트의 내용과 목적을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었고, 루나마리아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여기엔 원하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적당히 읽고 파일을 닫으려고 할 때, 마지막 부분의 문장에 문득 눈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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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라크스 클라인 세뇌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다음 단계 ‘CMC (컨실 마인드 컨트롤) 프로젝트’로 단계적으로 이행한다.

CMC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잠복형 암시를 이용한 세뇌 기술이다.

우리가 연구해온 세뇌 기술 협회가 개발한 정신 조작 기술의 일부를 도입해 발전시킨 것으로, 미리서 대상에게 암시를 걸어두었다가 특정 단어, 소리, 냄새 등으로 암시를 발현시켜 언제라도 의도했던 행동 또는 특정 상태로 정신이나 몸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기술의 주목할 점은 트리거 현상과 발현 암시를 동시에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총소리를 들으면 노래하거나 ‘자라’라고 하면 근처의 사람에게 달라붙게 하는 등 동시에 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암시는 마치 노트에 글을 다시 쓰고 지우는 것처럼 암시도 지우고 다시 설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정말 평범한 행동을 했던 사람을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조종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국가 고위층에 있는 인물들에게 이 조치를 취하면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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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은 거기서 끝났다.

 "뭐지 이건... 이런 계획 따윈 전혀 들어 보지 않았는데..."

 루나마리아는 처음으로 알게 된 계획의 숨겨진 내용에 충격을 받았지만, 본래의 목적은 이게 아니었기에 파일을 닫고 기분을 전환한 뒤,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다른 파일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이름의 파일을 열어 대충 훑고 닫는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자,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파일을 찾았다.

 "암호..."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루나마리아는 ‘라크스 클라인’의 이름을 입력하자 놀랍게도 파일을 열 수 있었다.

 "기밀문서에 이렇게 간단한 암호를 설정하다니 놀라워. 뭐, 덕분에 이번엔 살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파일의 내용을 읽어갔다. 날짜와 함께 그날 있었던 일을 서술하는 글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 연구팀의 수석이 쓴 일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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