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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 만물상점-52화 (52/167)

<-- 52화 : 아이템 연동-01 -->

부아아앙!

노란색 페라리 한 대가 평창동의 고급 주택가 안에 들어섰다.

평창동은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 중 한곳이면서 윗동네로 올라갈수록 집값이 더 비싸기로 유명하다.

“수정 씨,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 앞에서 우회전해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요.”

동하는 수정이 알려준 대로 차를 몰고 위로 올라갔다.

“파란색 대문 보이죠? 바로 저기예요.”

수정이 가리킨 곳은 중세시대 성을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저택이었다.

동하는 천천히 그쪽으로 차를 멈춰 세웠다.

“오늘 여러모로 고마웠어요.”

“나도 즐거웠습니다. 한데, 시간이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어느새 시간은 10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원래 동하는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사업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

결국 저녁까지 먹고 밖으로 나오자 8시가 넘고 말았다.

해도 지고 날도 어두운 상황에서 재벌 손녀를 위험하게 택시를 태워 보낼 수가 없어서 동하가 직접 수정을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요즘 업무를 새로 배우고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오고 있거든요.”

“아, 참. 예전에 주주총회 한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됐습니까?”

“피이, 빨리도 물어보네요.”

수정이 피식 웃었다.

“다행히 주주들이 나를 본부장으로 추대했어요. 결과가 그렇게 나올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후후! 다행이네요.”

“그것도 동하 씨 덕분이에요.”

“이제야 수정 씨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알겠네요. 본부장으로 취임한 후 확실한 실적을 보여주기 위해 또 다른 아이템이 필요했던 거군요?”

끄덕끄덕!

수정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한 날이었다.

오늘 하루 일정이 무척이나 타이트했던 것이다.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내려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왠지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 같아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렇게 차 안에서 동하와 대화를 하면서 함께하고 싶었다.

“하아, 오늘은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네? 그렇지 않아요, 동하 씨?”

수정이 느닷없이 씩씩한 표정으로 팔을 들어 스트레칭을 했다.

그 모습에 동하가 빵 터지고 말았다. 눈 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온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풋!”

“왜, 왜 웃어요?”

“수정 씨, 지금 판다 같아요.”

“뭐, 뭐라고요?”

수정이 화들짝 놀라 거울을 꺼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잉, 이게 뭐야?”

왠지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거 원래 남자들이 여자 친구 집에 못 들어가게 하려고 사용하는 전형적인 멘트에요.”

동하는 ‘남자들’이란 단어에 특히 힘을 주어 말했다.

“맙소사.”

그제야 수정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수정을 보고 동하가 히죽 웃었다.

“저녁을 많이 먹긴 했는데. 어떻게 집에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먹어 줄까요?”

“계, 계속 그렇게 놀릴 거예요?”

“으음……. 이런 저택에 라면은 조금 그런가? 그럼, 커피 한 잔 마셔줄까요?”

동하가 말하는 것들은 여자들이 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성 멘트들이었다.

“난 몰라.”

수정이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감싸고 차에서 내렸다.

“어라, 벌써 가는 거예요? 이도저도 어려우면 차에서라도 함께 있어 줄려고 했는데.”

회귀를 해서일까?

수정이 동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도 그녀의 행동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쳇, 두고 봐요. 다음에는 만나면 반드시 복수하고 말테니까.”

“아이고, 큰일 났네. 한데 난 왜 하나도 안 무섭게 느껴지지? 아무튼, 바싹 정신을 차리고 있을 테니까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수정의 반응이 너무 재밌다 보니 계속 놀리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하는 이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 보니 상황이 묘했다.

수정이 얼떨결에 애프터를 신청을 했고, 동하 역시 자연스럽게 애프터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서로의 일을 위해 만났기 때문에 그 의미와 느낌이 전혀 달랐다.

뒤늦게 수정과 동하도 상황을 깨닫고 잠시 침묵에 잠겼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동하였다.

“저, 수정 씨…….”

하지만, 수정은 혹시라도 동하가 거절할지 몰라 재빨리 쐐기를 박았다.

“우리 다음에는 편하게 만나기로 분명히 약속한 거예요.”

그리고는 재빨리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하 씨, 나 먼저 들어갈게요. 밤이 늦었으니까 운전 조심해요.”

피식!

동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걸 ‘썸’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직 수정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만나면 기분이 좋고 유쾌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재벌 손녀답지 않게 수정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털털해서 더 귀여운 것 같았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멸망을 대비해 가는 과정이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동하였지만, 가끔 이런 여유롭게 여자를 만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부촌은 다르긴 다르네.”

평창동은 이전 생애에서 제법 괜찮게 살았던 동하의 가족들도 감히 살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 곳이었다.

동하는 문득 이런 부촌에도 흐름의 변화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두 개의 인벤토리 중 남성용 크로스백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측 안경을 꺼내 썼다.

동하는 예측율을 높이기 위해서 염력을 일으켰다. 염력의 수치가 비록 28%이긴 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세 배 이상 높아진 상태였다. 이 정도 수치면 예측 안경이 가지고 있는 적중률 이상의 결과가 나오고도 남을 것이었다.

“어디 보자…….”

동하는 주변의 주택가들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바퀴를 둘러 수정의 집에 이르렀을 때였다.

“어억?”

동하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그는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안경을 벗었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 다시 안경을 썼다.

“이, 이건...”

동하는 눈앞의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 ☆ ☆

“늦었구나!”

“예, 아빠. 다녀왔어요.”

수정은 식구들이 깰까 싶어 조심조심 들어오다 거실에서 멈춰 섰다.

한석민 사장이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요?”

“아까만 해도 너 오는 거 기다리다 잠이 든 것 같구나!”

“그럼, 저도 올라갈게요.”

“잠깐. 여기에 앉아 보거라.”

“예.”

수정이 소파에 앉았다.

“낮에 차도 놔두고 회사를 나간 것 같은데,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게냐?”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서 인천에 갔다 왔어요.”

“그렇다면 황 기사를 데려가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그냥 편하게 택시 타고 갔다 왔어요.”

한석민 사장이 이상한 생각에 수정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인천 쪽에 계열사나 하청업체가 없었다.

“너 혹시…… 남자가 생긴 것이냐?”

“아, 아빠도 참. 그런 거 아니에요.”

수정은 방금 전 동하와 헤어지기 직전의 일이 떠올라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어떻게 된 게 나이는 그녀가 더 많은데 동하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다음에 다시 만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렜다.

“허허, 그것 참.”

한석민 사장이 실소를 터뜨렸다.

“혹시 오 군이냐?”

“그 인간은 너무 거만하고 무례해서 싫어요. 분명히 싫다는 의사도 전달했고요.”

“으음. 너답지 않은 행동이구나! 업무시간에 일도 팽개쳐 두고 연애나 하라고 본부장의 직책을 준 게 아니다.”

한석민 사장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오형택은 대안그룹의 둘째로 앞으로 수정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였다.

한석민 사장과 한 회장 모두 수정의 배필로 오형택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빠가 잘못 짚으셨어요.”

“뭐가 말이냐?”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맞아요. 그리고 오늘 그 사람을 만나고 온 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오늘은 오로지 비즈니스 때문이었어요.”

“비즈니스?”

“사실 그 일 때문에 아빠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금 말이냐?”

“예.”

원래는 내일 회사에 출근하면 한석민 사장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동하에게 줄 50억 원을 결재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빠도 멤버십 카드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계시죠?”

“그야 여부가 있겠느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받고 악화된 여론을 순식간에 잠재워준 것이 멤버십 카드였다.

곤두박질치던 주가가 순식간에 회복된 것 역시 멤버십 카드의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은 멤버십 카드의 아이디어는 제가 생각한 게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냐?”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에요.”

수정은 동하를 만나게 된 계기와, 어떻게 멤버십 카드 기획이 탄생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 대가로 동하에게 다온그룹의 계열사와 하청업체의 다 쓴 잉크를 내어 주었고, 동하는 그것들로 3억을 벌었다는 말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 그러니까 멤버십 카드의 기획이 고작 대학교 2학년 학생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수정이 곧바로 M뱅크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꽤 복잡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수정의 설명은 간단명료했다.

이미 동하에게 들은 그대로 한석민 사장에게 전해주는 것이기에 난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리 없었다.

수정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한석민 사장의 두 눈은 점점 커져갔다.

“M뱅크라는 것이 핸드폰으로 잔액을 확인하고, 계좌이체를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맞아요, 아빠! 더 나아가서 주식을 매매할 수도 있고요.”

“으음.”

한석민 사장이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분명 지금 대한민국에는 없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생각할수록 엄청난 기획이었다.

아니, 가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다.

어느새 살짝 굳어져 있던 한석민 사장의 안색이 풀어져 있었다.

“험험! 비즈니스 때문에 인천까지 갔다 오는 것이었다면 진작 애비에게 이야기를 할 것이지. 그랬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해줬을 게 아니냐?”

한석민 사장은 딸을 오해한 것 같아서 미안한 지 연신 헛기침을 했다.

“아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해 볼 생각이에요.”

“그래, 그게 좋겠다. M뱅크라……. 확실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겠어. 아버지께도 말씀을 드릴 테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온그룹 차원에서 돕도록 하마.”

“고마워요, 아빠!”

“한데, 그 동하라는 사람이 정말 국문학과 다니는 것 맞느냐?”

“아빠도 정말 신기하죠?”

“통신업계에서도 무선인터넷을 연구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거늘……. 그걸 염두에 두고 M뱅크를 기획한 건 정말 대단한 것 같구나!”

이쯤 되면 한석민 사장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도저히 일개 국문학과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 쓴 잉크로 3억을 벌었다는 것부터가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하물며 시장의 흐름을 읽고 분석하는 능력이 타에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약속을 어기고 50억 원을 주지 않으면 다른 기획을 들고 다른 통신사를 찾아가겠다고?”

“동하 씨 성격에 결코 거짓말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애초에 동하 씨가 저에게 M뱅크 아이디어를 준 것은 다온텔레콤의 주가를 띄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였으니까요.”

“허허!”

당돌하다 못해 패기가 철철 넘쳐 흘렀다.

다온텔레콤 같은 대기업의 주가를 띄워서 돈을 벌 생각을 했을 정도면 결코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인재라면 적당한 자리를 주고 스카우트를 하지 않고?”

“저라고 왜 안 그랬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동하 씨에게 제안을 했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라고요.”

“그렇구나!”

한석민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동하의 포부가 마음에 들었다.

만약 동하가 덥석 수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 같았다. 그런 놈은 술수가 뻔하다.

수정은 재벌 손녀였다.

당연히 그녀를 잡고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지만, 동하가 수정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적어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젠 한석민 사장도 동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멤버십 카드에 이어 M뱅크의 아이디어를 냈다는 게 도통 믿어지지 않았다.

“한데, 수정아! 그 아이가 지금 대학교 2학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예, 아빠!”

“그렇다면 이제 겨우 21살이란 소리가 아니냐?”

“그런데 왜요?”

“허허, 지금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아빠! 여기서 나이가 왜 나와요?”

수정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가뜩이나 동하가 연상녀가 싫다고 한 말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몰랐다.

동하를 만날 때면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보이려고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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