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대한그룹-02 -->
만능 자동차가 생긴 이후 편해질 걸 꼽으라면, 단연 만물상점에 접속하는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학교 과실이나 모텔에 가서 접속한 다음 로그아웃을 했지만, 지금은 만능 자동차 안에서 편하게 접속을 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동하는 집을 나서기 무섭게 만물상점에 접속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행이 남궁혜는 그 시간에도 만물상점에 있었다. 그녀는 무기와 장비를 강화할 사람들의 예약을 받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알아본다고 동하보다 항상 먼저 와서 준비하고 있었다.
동하는 항상 남궁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필드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동하는 남궁혜에게 과외를 받고 어제 빌려주었던 카메라도 돌려받았다. 디지털 카메라였으면 바로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필름 카메라이다 보니 사진을 현상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어제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남궁세가의 건물도 찍었어요.”
“그래요?”
“조금 멀리서 찍어서 건물 전체가 나오긴 하는데, 남궁세가란 현판은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현판만 따로 찍었어요.”
“잘했습니다.”
무림 종족의 사람들은 테스터들만 제외하고 모두 샤이언 종족들의 노예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는 남궁혜 한 명만이 테스터로 뽑혔고, 그 넓은 남궁세가의 장원을 홀로 지키고 있었다.
“한데 공자님. 사진은 왜 찍어 오라고 하신 거예요?”
“어쩌면 제가 사는 행성에서 무림 종족의 행성으로 공간이동을 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아직 확실하진 않아서 좋아하긴 이릅니다. 일단 사진을 현상해서 실험해 봐야 하거든요.”
과연 괌이나 하와이처럼 사진만 보고도 바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우선은 남궁세가의 건물을 보고 공간이동을 할 계획이라서 동하는 남궁혜에게 남궁세가의 건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 두었다.
“그나저나 공자님. 어제 이 카메라하고 비슷한 걸 생활관에서 본 거 같아요.”
“그게 정말입니까?”
“공자님 기다리다 심심해서 생활관을 구경했거든요. 모양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사진을 찍는 건 확실해요.”
“아!”
요즘 동하는 포인트가 별로 없어서 생활관은 아예 가지도 않고 있었다.
그래도 호기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물상점에서 파는 카메라는 어떤 것일까?
하지만, 어제 물건이 나왔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팔리고 없을 가능성이 컸다.
하긴, 포인트가 얼마 없어서 설령 카메라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자님, 우리 가서 구경할래요?”
“후후! 나는 괜찮아요. 사실 포인트도 별로 없어요.”
“내가 있어요.”
“예?”
“빨리요.”
남궁혜가 무작정 잡아끄는 바람에 동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나섰다.
“만물상점에서 산 카메라로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어 볼게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공자님은 지금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공간이동이 안 될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는 거죠?”
“그런 셈이죠.”
“그러니까 이곳에서 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공간 이동할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남궁혜는 문득 천기자의 예언이 떠올랐다.
-단전과 심장에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사람이 나타나리니 그의 마음을 얻으면 천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요, 그와 적이 되면 영원히 파멸하리라.-
사실 지금까지는 행성이 서로 다른 상태에서 동하가 어떻게 무림 종족을 구해줄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건 우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남궁혜도 행성과 행성 사이의 거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다는 것은 어슴푸레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동하가 무림 종족의 행성에 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때만큼은 남궁혜도 천기자의 예언에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한데, 동하의 입에서 공간이동이란 말이 나왔을 때 어찌나 놀랐던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건 분명 천기자의 예언하고 관련이 있어.’
그런 의미에서 포인트를 다 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녀는 저번 필드에서 동하 때문에 포인트 대박을 터뜨렸지만, 정작 공력에만 올인하는 바람에 남아 있는 포인트가 제법 있었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사려는 것이 오로지 천기자의 예언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하를 무림 종족의 행성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왠지 더 특별한 날들이 될 것 같았다. 세가의 사람들이 모두 노예로 끌려간 이후 남궁혜 혼자 쓸쓸하게 세가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자님, 보세요. 카메라가 아직 있어요.”
“어? 그러네요.”
동하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 없는데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여기저기 눈빛을 빛내며 카메라를 쳐다보는 테스터들의 모습을 보고 동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사고 싶어도 자신처럼 포인트를 다 써서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하는 일단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혹시라도 지켜보고 있을 때 누가 가져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카메라 뒤쪽에 LCD 창이 있고 측면에 SD카드를 꽂는 슬롯이 있었다. 디자인이 지구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무척이나 슬림하고 날렵해서 휴대하기에 제격이었다.
“디지털 방식의 카메라로군요.”
“그럼 더 잘 됐네요.”
동하는 천천히 설명서를 읽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까지 갖고 싶은 당신. 매직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순간 모든 추억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이, 이게 뭐지?”
동하는 황당한 생각마저 들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래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니 모든 추억이니 하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건 CF 속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문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격도 500포인트였다.
단순히 추억 놀이하기에는 상당히 비싼 금액이었다.
‘잠깐. 추억 놀이라고?’
동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 불현 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추억이라는 것은 모두 과거의 것이다. 그렇다는 건 과거의 일을 사진으로 찍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동하는 다시 한 번 설명서를 읽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했다.
‘매직 카메라는 분명 과거와 관련된 것이다. 예측 안경하고 대척점이 될 수도 있겠군.’
예측 안경은 미래를 보는 것이라면 매직 카메라는 과거를 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측 안경과 매직 카메라를 연동시키면 틀림없이 상상 이상의 효과가 나타날 게 틀림없었다.
알 수 없는 흥분이 동하의 온몸에 밀려왔다.
이건 무조건 사고 볼 일이었다.
“500포인트면 꽤 비싼데 그래도 괜찮습니까?”
“다행히 그 정도는 있어요.”
남궁혜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빙그레 웃어 보이며 포인트를 지불했다.
☆ ☆ ☆
항상 그렇듯 아이템은 설명서에 나와 있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구입한 아이템을 사용하다보면 뜻밖의 기능과 효과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이템끼리의 연동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템이 염력과 조화를 이루어 원래 가진 능력보다 몇 배의 힘을 증폭시키는 것 역시 빠질 수 없었다.
예측 안경, 만능 자동차, 매직 워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직 카메라까지.
동하는 네 개의 아이템을 서로 연동시켜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매직 카메라는 예측 안경과는 대척점에 있는 아이템이다.
과거와 미래.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원래는 남궁혜가 매직 카메라를 들고 남궁세가를 찍어 오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동하가 먼저 가져가서 연구를 하겠다고 했다.
“그건 상관없어요. 얼마든지 공자님 편하실 대로 하세요.”
남궁혜는 동하에게 이미 아이템 사이에 연동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였다.
그녀 역시 기대어린 눈빛으로 동하를 쳐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동하보다 오랜 시간동안 만물상점에서 지냈지만, 아이템 연동이란 말은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였다. 그녀 역시 아이템을 몇 번 샀었는데, 아이템 사이에 연동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건 판타지 종족이나 불사 종족 등 다른 행성의 테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이템 연동 자체를 몰랐다.
아이템 사이에 연동이 일어나는 건 동하가 처음이었다.
그렇다 보니 남궁혜는 동하가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오직 동하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동하도 그제야 연동이 9성급 S몬의 신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엔 아이템 연동도 동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동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네 개의 아이템이 연동되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응?”
문득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동하가 돌아보니 검은 망토를 두른 자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이런 것일까?
검은 망토의 자들이 나타나는 순간 테스터들이 좌우로 길을 비켜 주었다.
“뭐야?”
동하는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남궁혜가 겁을 집어 먹은 표정으로 동하의 소매를 잡아 끌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피해야 해요.”
“예?”
“샤이언 종족의 전사들이에요. 차원의 관리자들이죠.”
“차원의 관리자?”
“정말 무서운 자들이에요. 저들은…….”
하지만, 남궁혜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길을 지나가던 검은 망토의 자들 중 한 명이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춰 선 채 동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진 얼굴에 눈이 야수처럼 무섭게 생긴 자였다.
“너?”
그 자가 손가락으로 동하를 가리켰다.
“죽고 싶냐?”
순간 동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말을 듣고 참을 동하가 아니었다.
하나 남궁혜가 그럴 줄 알고 충분히 마음속으로 대비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녀는 각진 사내가 손가락으로 동하를 가리키는 순간 보법을 사용해 재빨리 동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덕분에 동하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자는 만물상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차원의 관리자님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남궁혜는 평소 여장부다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는 은밀하게 손을 내밀어 동하의 손을 꼭 잡았다.
살짝 떨리는 듯한 그녀의 손길에 동하는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손길에는 제발 참아 달라는 간곡한 애원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이런 저자세는 생사가 걸린 보스전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이라 동하도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그때였다.
“막내야, 어서 오지 않고 거기서 뭐하는 거냐?”
“이 두 연놈의 행동이 불손해서 잠시 교육을…….”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힘들게 잡은 반역의 흔적을 놓칠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대장님!”
각진 사내가 잠시 동하와 남궁혜를 쳐다보고는 차갑게 코웃음 치며 저 멀리 사라져갔다.
“흥, 이번엔 살려주마. 운이 좋은 연놈들이로군.”
남궁혜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우!”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저들에게 급한 일이 있지 않았다면 결코 좋게 끝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도대체 그자들이 누구인데 그렇게 겁을 먹는 겁니까?”
“차원의 관리자들의 손에 무림 종족의 행성이 멸망했다면 설명이 될까요?”
“예에?”
“정말 치가 떨리도록 무서운 자들이었어요. 무림 종족의 고수들이 별다른 손도 쓰지 못한 채 픽픽 나가 떨어졌으니까요.”
그건 다른 종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이 정복한 행성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자들 역시 차원의 관리자들이었다.
“지금 본 자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렇다면 더 많이 있는 겁니까?”
“저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백 명은 넘는다고 해요. 샤이언 종족 중에서도 최고의 재능을 지닌 자들만 엄선해서 선발한 천재들이란 소문이 있어요.”
“으음.”
“차원의 관리자들은 각기 한 가지 능력이 극에 달했어요. 마법과 무공, 그리고 염력과 불사지체……. 거인의 힘과 닌자의 인술 등 개개인의 능력이 가히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저들이 더 무서운 건 파티를 이루어 다닌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서로의 단점은 보완해주고 장점은 극대화시켜 준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상대하기 어려운 자들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저들을 보면 맞설 생각은 하지 마시고 무조건 피하셔야 해요. 차원의 관리자들 눈 밖에 나면 누구도 죽음을 면치 못해요.”
‘그렇군.’
만물상점에 필드와 괴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원의 관리자.
이전 생애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괴수들보다 더 무섭고 위협적인 존재들이 될 수도 있었다.
☆ ☆ ☆
지구로 돌아온 동하는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차원의 관리자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셜로 향했다.
어차피 겪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면 이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괴수에 이어 적이 하나 더 늘어난 것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적들은 각기 하나의 능력이 극에 달해 있지만, 동하는 그 모든 능력을 몸에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완전한 상태로 끌어 올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전히 동하는 가야할 길이 멀었다.
하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동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