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입찰경쟁-01 -->
“오오! 이게 정말 우리가 찾던 물건인가?”
곤륜노자는 음양조화선을 받아들고 감격에 젖었다.
능력의 전이는 대성공이었다.
동하가 몸속으로 흡수했던 음양조화선의 능력을 왼손에 밀어 넣고 있다가 남궁세가에 도착하기 무섭게 짝퉁 음양조화선으로 옮겼다. 능력의 전이를 할 때는 몸속에 흡수한 능력을 어느 한쪽에 몰아넣는 게 관건이었다. 그렇게 해두면 나중에 다시 몸 밖으로 빼내기가 쉬웠던 것이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설명서에 뭐라고 언급이 되어 있었나?”
“태초의 비밀이 담겨 있고 그 비밀을 풀면 능히 천기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으음.”
그 정도면 음양신과의 전설과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해서 어르신께서 음양조화선에 담겨 있는 비밀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곤륜노자는 무림 종족의 온갖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곤륜노자가 알지 못하면 천하에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음양조화선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곤륜노자 밖에 없었다.
그때 남궁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한데, 공자님은 차원의 관리자들에게 쫓기셨다고 하셨죠? 그 상황에서 음양조화선을 어떻게 가지고 나온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혜 씨가 이번 일의 일등공신이네요.”
“제, 제가요? 저는 만물상점에 가지도 않았는데요?”
“그렇습니다, 주군. 남궁 소저는 계속 저희와 함께 있었는걸요?”
“후후. 확실합니까?”
“정말입니다. 저희가 주군을 속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후후. 이래도 말입니까?”
동하가 빙그레 웃으며 궁장을 입은 여인으로 모습이 변했다.
남궁혜는 대경실색했다.
“이, 이건 나 잖아요.”
“아마 그럴 걸요?”
“어, 어떻게 이럴 수가…….”
남궁혜는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에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 건 당연지사.
“주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자네가 환술에도 조예가 깊었었나?”
“이건 환술이 아니라 복사 능력입니다.”
“복사?”
“상대를 스캔하면 목소리까지 똑같이 낼 수 있지요.”
그리고는 이번에는 곤륜노자로 변신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곤륜노자의 행동이나 사소한 버릇, 그리고 인자한 목소리까지 모두 담겨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저, 정말 터무니없는 능력이로군.”
환술은 실전된 지 오래 되기도 했지만, 가벼운 신체 접촉만 있어도 대법이 깨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환술은 상대의 이목을 현혹하는 게 전부였다.
그에 반해 복사의 능력은 말 그대로 모든 걸 똑같이 복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 ☆ ☆
격세지감이 따로 없었다.
미셜 화장품은 십여 일 전만 해도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에 불과할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형편없었다. 그동안 미셜 화장품 때문에 대한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떨어져 서용훈 사장과 강혜련 여사는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던가?
미셜 화장품은 지난 일 년 동안 내놓은 여러 개의 브랜드들이 죄다 망해서 회생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장 회사가 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랬던 미셜 화장품이 최근에 발표한 ‘퀸’이란 제품이 대박을 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 냈다.
화장품 가격은 작은 병 하나에 몇 십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쌌지만, 시장에서는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셜 화장품의 주가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가히 고공행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대한그룹의 계륵과도 같았던 미셜이 이제는 대한그룹의 주가를 견인하는 실세로 변신한 것이다.
단순히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이 아니었다.
주름 개선효과는 물론이고 피부가 하얘지는 미백 효과에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피부가 탱탱해지고, 여드름 상처자국을 없애주는 것까지.
언론에서는 연일 극찬을 쏟아냈고, 미셜 화장품의 신제품은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핫한 아이템으로 재탄생했다.
강혜련 여사는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박의 조짐은 출시 첫날부터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퀸’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피부과를 가는 것보다 ‘퀸’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미셜 화장품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아진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퀸은 한 달에 팔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출시한 지 3일 만에 품절이 되어서 매장에 온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암암리에 몇 배 비싸게 되파는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그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일각에서는 퀸을 구하고 싶은 사람은 강혜련 여사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왔다.
“강 사장님. 우리 딸아이가 요즘 피부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 그런데 퀸을 구하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미안해요. 이번 달에는 이미 품절이 되어서 저도 구할 수 없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부탁드려요. 회사 사장도 구할 수 없는 제품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죄송하지만, 다음 달까지 기다려 주세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전화가 하루에도 열 통이 넘게 걸려왔다.
그럴 때마다 강혜련 여사가 사정을 설명해 주었지만, 사람들은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강혜련 여사도 마음 같아서는 제품의 양을 늘리고 싶었다.
그녀도 퀸이 출시 삼일 만에 품절이 되고 암암리에 몇 배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건 그녀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을 몇 십 배는 더 뛰어넘는 결과였다.
하지만, 그러려면 동하의 동의가 필수였다.
동하가 화장품 원료를 주지 않으면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 ☆ ☆
“아함.”
동하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가 넘어 있었다.
동하는 능력을 얻고 난 이후 이렇게까지 늦잠을 잔 적이 없었다.
남궁세가에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 새벽 3시였다.
동하는 피곤이 몰려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무려 6시간이나 잠을 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의 수면조차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동하는 극강의 공력과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런 그가 6시간이나 잤다는 것은 그만큼 긴장이 쌓이고 쌓여 극도로 피곤했다는 것을 뜻한다.
하긴, 지난 며칠 동안은 칼날 위에 선 것처럼 바싹 긴장하고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동하는 다시금 침대에 누워 뒹굴 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다.
차원의 관리자들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있었지만, 다행히 만물상점을 무사히 빠져나왔고, 음양조화선도 가지고 나올 수 있었기에 오늘 하루는 늘어지게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마침 오늘은 토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이 바로 필드가 새로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스마트폰을 꺼내 어플을 확인했다.
어느새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서 8시간으로 표기가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오전 7시에 접속을 했었는데, 재정비를 하면서 아무래도 저녁 시간으로 옮겨진 것 같았다.
동하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필드에 가려면 며칠 동안 먹을 음식과 물을 준비해야 했다.
침낭이나 코펠은 예전에 사 둔 것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이번부터 필드의 난이도가 대폭으로 높아진다고 했으니 여분을 준비해 둔다고 나쁠 건 없었다.
“어디 보자…….”
동하는 핸드폰을 열고 M뱅크에 들어가서 미셜 화장품 주식을 확인했다.
최근에 미셜에서 새 제품을 출시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만물상점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주가가 어떻게 되었는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동하는 지금까지 신문기사를 찾아본 적도 없었고, 뉴스를 볼 시간도 없었던지라 퀸이 초대박을 터뜨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호오? 벌써 50퍼센트나 올랐네?”
그렇다면 지난 며칠 사이에 동하는 백억 원이 넘게 벌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미셜에서 받은 50억 원 상당의 주식까지 합치면 거의 150억 원 상당의 돈을 번 셈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미셜의 주가가 워낙 바닥에 있었던지라 몇 배는 더 치고 올라갈 여지가 충분했다.
동하는 M뱅크를 끄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부터 서서히 필드에 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응?”
동하가 거실로 나오자 마침 예쁘게 차려입은 미현이 자기 방에서 나오다 동하와 마주쳤다.
“네가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집에 왜 있어?”
이맘때만 해도 토요일이라고 학교에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오는 게 보통이었다. 어떤 학교는 특활 활동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현의 경우가 그랬다.
“오늘 특활 활동 시간이야.”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면 좋겠지만, 거긴 입장료가 조금 비싸잖아. 경복궁을 보고 그림도 그리고 감상문을 써도 상관없어서 그쪽으로 가려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미현이 예쁘게 차려입고 나온 것도 아마 친구들과 같이 서울에 가려고 그런 것일 터였다.
“너 미술부야?”
“응.”
그러고 보니 미현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는 제법 소질이 있었다.
미현은 몇 달 전만 해도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과감히 꿈을 버리고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지금은 동하가 든든한 가장이 되고 난 이후 미현은 다시금 미술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혼자 서울에 갈 리는 없을 테고. 어디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했어.”
“좋아. 오빠도 지금 나가는 길이니까 전철역까지 태워줄게.”
“엥? 오빠, 차가 있었어?”
“모르고 있었나? 차를 산 지 꽤 됐는데.”
“피이, 오빠가 언제 말을 해줬어야 우리가 알지.”
“그런가?”
동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에는 그 달동네에 차를 세워두기 뭐해서 계속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었고, 아파트로 이사 온 뒤에는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 만나기도 어려워서 차를 구경시켜줄 시간도 없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동하는 람보르기니 앞으로 다가갔다.
요즘에는 만능 자동차를 인벤토리에 넣지 않고 주차장에 세워 두었다.
“뭐해? 어서 타지 않고.”
“이, 이게 오빠 차라고?”
람보르기니라는 브랜드를 몰라도 미현이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스포츠카의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 ☆ ☆
-세계로 뻗어가는 다온텔레콤.
국제전기통신연합은 다온텔레콤의 M뱅크를 국제표준 기술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유수의 통신사에서 다온텔레콤과 제휴를 맺기 위해 치열한 로비가 펼쳐질 전망이다.
-다온그룹. 과연 대한민국 최초로 글로벌 기업 100위 안에 들 것인가?
지금까지는 대한그룹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온그룹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높아지고 M뱅크 신화를 쏘아올린 지금 파워 랭킹 순위가 급상승할 것은 자명한 일.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지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신문 기사는 온통 다온텔레콤 내용뿐이었다.
서 회장은 신문을 읽다 말고 한쪽으로 내던졌다.
자존심이 여간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이다. 하물며 재계 라이벌인 다온그룹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게 정말로 그 아이 작품이란 말이냐?”
“예, 아버님.”
“허허!”
서 회장은 황당해서 말이 다 안 나올 지경이었다.
M뱅크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데, 이걸 동하가 기획했다고 한다. 동하의 능력은 이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관상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에 서용훈 사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서용훈 사장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곳곳에서 대한전자의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었다.
휴대폰 단말기 시장점유율이 9월 달 들어서 대폭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경쟁사인 다온전자의 점유율은 급상승해서 점유율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대한전자의 주가는 유례없이 떨어지고 주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었다. 당연히 주주들 사이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집단 움직임을 보일 태세였다. 의안 내용은 추후에 다시 정하더라도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대한전자를 압박하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서 회장이 대주주들에게 연락을 해서 일단 성난 마음을 돌려놓기는 했지만, 대한전자는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었다.
“최 군이 어떻게 대한전자를 놔두고 다온텔레콤에 M뱅크 기획을 줄 수 있단 말이냐?”
서 회장은 서운한 마음이 생기다 못해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서용훈 사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최 군이 처음 인연을 맺은 건 다온텔레콤이고 그 다음이 저희 대한전자입니다.”
“그래서 서 사장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겠다는 말이냐?”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최 군이 저희를 배신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으음.”
서 회장의 안색이 조금은 풀렸다.
따지고 보면 동하가 대한그룹을 외면하고 다온텔레콤만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
대한그룹의 계열사 중 가장 골칫거리였던 미셜 화장품에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전해준 것이 있었다.
“최 군은 화장품 분야는 저희와 함께하고 통신과 전자 부분은 다온텔레콤과 함께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서 회장이 버럭 역정을 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
화장품 사업도 잘 되고 통신 전자 분야도 잘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터였다.
하물며 대한전자는 대한그룹의 중심이라 할 수 있었다. 다온텔레콤의 성장은 다온전자의 약진으로 이어지고 그건 곧 대한전자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 군의 마음을 돌릴 생각을 해야지.”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예전에 최 군에게 천억 원을 제시했는데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천억 원을 거절했다고?”
“그때는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돈이면 최 군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고 천억 원을 배팅했던 것인데,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이번엔 좋은 수가 생긴 모양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