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오빠가 진짜 이럴 리 없어-02 -->
유경이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붉히다 이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난데없이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발목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신기하게도 발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까졌던 발꿈치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나았고, 심지어 퉁퉁 부어 있던 발도 어느새 정상으로 변해 있었다.
“도, 동하 씨!”
이쯤 되면 까무러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제 유경은 동하에게 비밀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을 초월한 힘 그리고 범상치 않은 관상 능력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동하는 지구에 나타난 괴물보다 더 괴물처럼 보였다. 한데, 이제는 상처마저 눈 깜짝할 사이에 치료하는 능력마저 가지고 있었다.
“뭐야, 유경아?”
“언니, 혹시 오빠가 나쁜 짓이라도 했어요?”
여자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유경은 아직도 놀라움과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그, 그게 아니라…… 동하 씨가 발을 치료해 주었어.”
“뭐, 뭐라고?”
동병상련이라고 혜주는 유경과 똑같은 상처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이건 결코 하루아침에 치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어디 봐.”
혜주는 유경의 발꿈치를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기적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데다 퉁퉁 부어 있던 발도 지극히 정상이었다.
“세, 세상에…… 허준이 돌아와도 이러지는 못하겠다.”
“허준이 뭐야. 화타도 안 될 것 같다.”
모두의 시선이 동하에게 향했다.
특히, 미현의 표정은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아는 오빠는 절대 이럴 리 없었다.
동하는 게으르고 이기적인데다 무엇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그녀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내걸 정도로 남자다운데다 세상에 못하는 것이 없는 기적의 사나이였다. 이제는 하다못해 다친 곳도 뚝딱 치료한다는 게 어디 말이 될 법한 일인가?
‘절대 이럴 리 없어.’
그때, 동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다시 움직여 볼까요?”
“동하 씨, 나는요?”
“예?”
“유경이만 치료해주고 나는 왜 치료해 주지 않는 건데요?”
“아차!”
동하는 못내 깜빡한 것이 미안했다.
치료는 그리 어렵거나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어서 혜주의 하이힐을 벗기고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끝이었다.
☆ ☆ ☆
멀지 않은 곳에 백화점이 있었다.
유경과 혜주의 구두가 불편해서 편한 신발로 갈아 신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왕이면 미니스커트도 활동하기 좋은 청바지로 갈아입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백화점도 괴수들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창문이 깨져 있고, 출입문도 죄다 부서진 상태였다.
형광등이 깨지고 터져서 백화점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당연히 직원들이 백화점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는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었지만,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나서 운행이 되지 않았다.
분위기가 더욱 음산했다. 마치 귀신에 집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에 여인들은 동하의 몸에 바싹 안겨들었다. 마트에서처럼 팔을 잡고 매달린 것은 아니기에 동하가 움직이는 데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육감적인 감촉에 동하는 속으로 고소했다.
‘천국이 따로 없군.’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바싹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하는 법.
동하는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스포츠 매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유경과 혜주가 신발과 옷을 갈아입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올 때까지 괴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우.”
여인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다리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한데 황당한 건 이 다급한 와중에도 유경과 혜주는 아무 옷이나 고르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릴 법한 옷과 신발을 골랐다는 것이었다.
‘하여튼, 여자들이란.’
동하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찬 건 당연지사.
이럴 때 보면 위급한 순간에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패션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빠, 우리 식품매장에 잠깐 들렸다가 가면 안 될까?”
바로 한층만 내려가면 지하 1층이었다.
다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
긴장을 한 채 도망 다닐 때는 몰랐는데, 긴장이 어느 정도 풀어진 지금은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동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남녀가 먼저 와 있었다.
이곳도 괴수들이 휩쓸고 지나갔는지 빵이며 피자 등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이 모두 차지하고 난 뒤였다.
그러고 보니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남자들 역시 우락부락한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 역력했다.
동하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식품매장에 빵이나 피자 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자나 음료수를 파는 곳도 있으니까.
동하는 여인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갔지만,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이내 동하와 여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봐, 누구 마음대로 들어가?”
동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백화점이 언제부터 누구 허락을 받아야 돌아다닐 수 있었나?”
“어라? 이제 보니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네.”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동하를 보고 실실 웃었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나이는 대략 이십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
머리는 빨갛고 노랗게 염색을 했고, 라이더 재킷과 목에 체인을 걸고 있어서 한눈에 봐도 불량스러워 보였다.
“흐흐, 여자들 앞이라고 객기를 부린다 이건가?”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유경과 혜주를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자는 그녀들 보다는 미현과 그녀의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여자들을 놓고 꺼져.”
동하는 이곳의 분위기가 이상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탓이었다.
그에 더해 놈들은 음식을 가지고 사람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었다.
세상은 개판으로 변해 있었다.
괴수들이 나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인성이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동하도 이전 생애에서는 뉴스로만 접했었지 자세히 경험한 적은 없었다. 그때는 사고로 인해 골방에 틀어박혀서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다.
동하는 공간이동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부딪치며 현실을 느껴보고 싶었다.
솔직히 1성급 몬스터는 두렵지 않다.
하지만, 벙커가 완성되지 않은 건 동하의 핸디캡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벙커가 완성이 되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가족들을 벙커에 두고 나면 동하는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벙커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어떤 게 가족을 무사히 지키는 것이 최선인지 알아보는 중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실험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동하는 실험을 한 보람이 있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괴수들도 괴수들이지만, 인간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래서는 괴수들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괴수들의 손에서는 얼마든지 지켜줄 수 있지만, 인간들은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예측하기 어려웠다. 특히 자신이 언제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의 마음이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벙커가 완성되기 전까지 가족을 지킬 만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내가 그렇게 못 하겠으면?”
“흐흐, 꽤나 멍청한 놈이군.”
“겨우 여자 때문에 이곳에서 죽겠다는 것이냐?”
사내들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변했다.
놈들의 눈빛에 살기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정말 동하를 죽일 작정이었다.
하나 바로 그때였다.
띵동!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 속에서 괴수가 걸어 나왔다.
크르릉!
바퀴벌레를 닮은 괴수였다.
그와 동시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두 마리의 괴수가 내려오고 있었다.
놈들은 처음 보는 것으로 개미를 닮은 괴수였다.
하지만, 동하는 필드에서 메가 앤트를 만난 적이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놈들은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특성답게 2마리가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메가 앤트의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져 있었다.
저건 필드 2관에 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괴수들보다 좀 더 강할 것 같았다.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동하에겐 약하긴 매 한가지일 뿐이었다.
“아악! 오빠.”
미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동하는 가벼운 도약 한 번으로 메가 앤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놈들은 필드 2관에 있을 때보다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다. 협공을 할 줄 아는데다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어서 이제는 꽤 강한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채 자세를 잡기도 전에 동하의 주먹에 온몸이 으스러진 채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메가 앤트가 강해졌다고 하나 동하는 그 보다 몇 십 배는 더 강해진 상태. 놈들은 몽둥이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마, 맙소사.”
지하 1층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경찰과 군대도 어떻게 하지 못하던 괴물을 맨주먹으로 상대할 줄이야.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특히, 우락부락하게 생긴 자들의 표정이 가관도 아니었다.
그들은 지독한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몇 번이나 볼을 꼬집었다.
한편, 바퀴벌레를 닮은 괴수가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동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놈은 본능적으로 동하가 이 중에서 가장 위협적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피식.
동하는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는 놈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펑!
동하의 주먹이 놈의 얼굴에 제대로 꽂혔다.
“케에엑!”
바퀴 괴수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혀 꼴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얼굴이 으스러지고 폭발해서 형체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으으.”
이쯤 되면 우락부락한 사내들은 오금이 저려올 판이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시체마냥 푸르딩딩하게 변했다.
세상에 괴수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들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동하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딸꾹!
어찌나 두려웠던지 약속이나 한 듯 놈들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나보고 꽤나 멍청한 놈이라고 했던 게 너였나?”
“사, 살려 주십시오.”
“너는 겨우 여자 때문에 이곳에서 죽겠다고 했었지?”
“저, 절대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이거 미안하군. 나는 이제부터 본심으로 네놈들을 대할 거거든.”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살려준다면 고마움을 알기는커녕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짓밟을 게 뻔했다.
퍽퍽!
동하는 본격적으로 놈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살려 달려는 절규가 터져 나왔지만, 동하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미현은 왠지 어깨가 으쓱거렸다.
아무리 봐도 예전 오빠의 모습은 아니었다.
한없이 이기적이던 오빠가 저렇게 정의로울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잘난 오빠 둔 덕분에 기분이 뿌듯해지면 그것으로 족했다.
☆ ☆ ☆
삐익!
문을 열고 빌딩 안에 들어섰다. 주변 건물과 상가는 폭탄을 맞은 듯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괴수들이 벌써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나마 동하가 들어선 건물은 멀쩡한 편이었다.
괴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전 생애에서 경험을 떠올리면 놈들은 지나갔던 곳도 다시 되돌아오는 특성이 있었다.
때문에 한 번 지나갔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다가는 큰일 나기 십상이었다. 잠시 쉬는 것도 최대한 밀폐된 공간에서 쉬어야 한다. 벙커가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되는 상황에서는 지하창고도 나쁘지 않았다.
동하는 건물을 한창 돌아다니다 결국 창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창문이 없어서 공기는 탁하고 나쁠지는 모르지만, 제법 밀폐된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1성급 몬스터의 능력이 그리 높지 않아서 충분히 놈들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잠을 자고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떠날 생각입니다.”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마 더 걸어간다고 해도 이곳보다 안전한 곳을 찾기는 어려울 거예요.”
누구의 명이라고 거부할까.
동하는 단순히 생명의 은인이 아니었다.
이제 인원은 더 늘어서 이십 명이 넘었다.
동하는 백화점에서 우락부락한 놈들을 죽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게 다리와 팔을 부러뜨리고 괴수들이 찾아올 때까지 그곳에 내버려 두었다. 그때까지 놈들은 극한의 공포에 떨다 온갖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아무튼, 그때 만났던 여인들과 아이들. 그리고 사내들이 동하를 따라 나섰던 것이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경찰과 군대가 괴수들의 손에 철저히 무너지고 짓밟히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가?
총이나 로켓포가 통하지 않았다. 장갑차나 탱크도 괴수들의 발톱과 칼날에 두부 잘리듯 잘려져 나갔다. 경찰은 몰라도 군대라면 틀림없이 괴수들을 처치할 수 있을 줄 믿고 있었기에 더 공포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동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괴수들을 한주먹에 죽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동하는 굳이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이끄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오는 사람도 붙잡는 성격도 아니었다.
동하가 미현의 친구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희들 아직 집에 연락 안했지?”
“예, 오빠.”
“인천은 괴수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그래도 부모님들이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전화해드려.”
그리고는 동하가 자신의 핸드폰을 그녀들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오빠.”
미현의 친구들이 한 명씩 차례로 집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통화 품질이 그리 좋지 않아서 지하에서는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안테나가 생기는 곳을 찾아서 어떻게든 모두 통화를 마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부모님들과 통화를 해서 그런지 아까보다 좀 더 마음의 안정을 찾은 모습이었다.
“다들 배고프지?”
아까 난데없이 찾아온 괴수들 때문에 끝내 밥도 먹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야 했었다.
“잠깐 있어봐. 먹을 게 있나 찾아 봐야지.”
“오빠, 빨리 와야 해.”
미현의 말에 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극도로 불안해 보였다.
아마 미현이 이곳에 없었다면 혹시 동하가 자신들을 버리고 혼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동하의 인벤토리에는 필드에 가면 먹으려고 했던 음식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렇게 치면 지금 이 상황은 필드에 왔다고 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미현이나 유경 등 열 명의 혹이 붙어서 그렇긴 했지만, 그나마 1성급 몬스터라 부담이 덜 했다.
동하는 라면과 생수. 그리고 버너와 코펠을 꺼냈다. 인벤토리에 라면과 생수가 많아서 별 문제는 없었지만, 버너와 코펠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빵과 음료수. 그리고 과자였다. 동하가 그것들을 모두 챙겨서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대박!”
“오빠, 이걸 다 어디서 구했어?”
미현은 물론이고 여인들이 다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인근에 마트가 없었다는 건 누구보다 그녀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까 백화점에 있을 때 먹을 것을 한 개라도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던 중이었다.
“후후.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아까 백화점에서 챙겨 놓은 게 있었어.”
“진짜?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여기 올 때도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잖아.”
“네가 보지 못한 건 당연해. 이것 역시 미국에 있을 때 스승님께 배운 건데…….”
“오빠. 자꾸 되도 않는 미국 드립 할 거야? 얼씨구. 스승님? 그렇게 전지전능한 미국도 지금 괴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미현은 도망치다 사람들이 중얼거리며 떠드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은근히 이런 상황을 벼르고 있던 미현이었다.
“흐흐, 오빠. 이제 사실대로 대답하시지?”
“쯧쯧,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스승님이 미국을 싫어하셔.”
“뭐, 뭐라고?”
“스승님이 미국에 사시지만, 반미주의자거든.”
“으으, 오빠. 이런 상황에서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
미현이 바싹 약이 오른 표정으로 동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동하는 콧노래를 부르며 코펠에 생수를 붓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