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24화 (124/167)

<-- 124화 : 세 번째 원소-01 -->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일본에 대해 어떠한 타협이나 양보는 없다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속보가 계속 전해지고 있었다.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건 천청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유엔이 성명을 발표해 일본을 강하게 성토했고, 유럽연합이 일본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의 국민들은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졌고, 방송국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사실 특별 기자회견이 열릴 때만 해도 일본의 방송국들은 앞 다투어 출시 국가 순위가 앞으로 당겨질 수 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네무라는 간밤에 차종호에게 계획이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고 철썩 같이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동하를 자신들의 손에 넣고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생각에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일본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일본의 국민들은 방송국들이 내보내는 전망에 장밋빛 환상에 빠져들었다.

우익세력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축하기에 바빴고, 가네무라는 앞으로의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내각과 상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데, 이게 웬걸?

모든 상황이 그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한국의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 내내 단호했고, 테러를 자행한 일본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와 더불어 테러의 배경으로 가네무라를 정확하게 지적하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가네무라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제야 그는 믿고 있던 차종호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으.”

치가 떨릴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한국의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 자리에서 증거가 있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동하가 미리 준비해준 영상을 틀었다.

그건 또 다시 전 세계와 일본을 충격과 경악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영상 속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차종호 인천시장이 나와서 양심고백을 하듯 말하고 있었다.

[저는 일본의 가네무라와 오랫동안 막역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가네무라는 저에게 최동하를 회유해 달라는 청탁을 하더군요. 그건 최동하를 일본이 독점을 해서 괴수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독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익에 심각하게 저해되는 동시에 전 세계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저는 단호하게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가네무라는 직접 움직여 최동하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에 저는 더 이상 이 사실을 지켜볼 수 없어서 어렵지만 용기를 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전 세계에 고백합니다. 제발 가네무라의 폭주를 막아 주십시오.]

가네무라의 폭주라고 차종호는 말하고 있었다.

영상 속에는 구구절절 차종호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누가 보면 정말 나라를 위해 오랜 친구와의 우정도 단호히 끊어 버린 줄 알 것 같았다.

차종호는 그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동하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동하는 차종호가 뭐라 지껄이든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네무라와 일본의 우익세력들을 붕괴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어차피 차종호는 다른 방법으로 무너뜨릴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동안 일본의 최고 우호국을 자처하던 미국마저 등을 돌렸다.

고립무원…….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이 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저항에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일본은 매번 꼴찌로 무기를 공급 받아서 괴수들에게 받는 피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무능한 내각이 국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연일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치고 신뢰를 잃어갔다.

하물며 무기 공급을 받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자 일본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민심의 이반은 심각한 상태였다. 일본의 국민들에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그들은 괴수들의 손에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무기 공급이 전면 중단이 되면서 그나마 1성급 몬스터에 대항할 능력마저 상실한 것이다.

3성급 몬스터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일본은 괴수들의 천국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일본 전역에서 격렬한 항의와 시위가 벌어졌다.

성난 시민들이 공공기관을 불태우며 정부와 극한 대치를 이루었다.

한편으로는 돈이 많은 부자를 시작으로 가난한 서민들까지…….

일본을 등지고 대한민국과 중국 등 인접한 나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건 일본의 내각을 장악한 우익세력들의 몰락을 예고하는 일이기도 했다.

가네무라는 모든 사태를 통감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의 측근들이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사태가 해결될 리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 흔한 논평 한 줄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일본을 두렵게 만들었다.

상황이 더욱 다급해지자 총리를 비롯한 내각의 책임자들이 동반 사태를 했고, 일왕이 직접 대한민국에 찾아와 거듭 용서를 구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사과만 받아준다면 무슨 짓이든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피해 보상은 물론이고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어왔던 독도마저 내줄 용의가 있었다.

대통령도 이정도면 대충 못 이긴 척하고 받아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동하는 단호했다.

전 세계에 경고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쉽게 용서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더구나 일본은 반골기질이 있어서 힘으로 누르지 않고는 절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동하는 강하게 나갔다.

자신의 눈에 한 번 잘못 나면 어떻게 되는지 전 세계에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동하의 뜻이 그렇다면 대통령 역시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이제 과연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을 쉽게 볼 수 있을까.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무릎을 꿇었다.

군사력으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괴수의 시대는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눈치를 보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조그만 액션 하나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심지어 중국마저 대한민국 정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중국과는 예전부터 서해안에서 불법조업문제로 갈등을 빚어 왔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대한민국 정부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중국 정부에서 제대로 해결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불법조업은 단순한 문제였다.

중국 정부에서 철저히 단속만 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하나 중국 정부는 중국 어민들의 생존권이 달린 일에 소극적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대한민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중국정부에 따지지 못했다.

따지고 싶어도 감히 엄두가 안 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었다.

그렇게 중국정부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 불법조업은 심각한 수준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하물며 괴수들 때문에 도심이 파괴되고 인류의 먹을 식량이 크게 줄어든 지금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불법조업은 더욱 심해졌다.

이젠 자국의 식량 확보를 위해 중국 정부에서도 은근히 불법조업을 권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에서 항의하자 중국 정부는 즉각 조치를 취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이 연이어 무릎 꿇는 것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군사력과 경제력이 앞선다고 해도 대한민국과 척을 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너무 쉽게 대한민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엔 대국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소수의 의견이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결국 중국 정부는 불법조업에 나선 사람들의 조업 허가를 취소하고 막대한 벌금을 물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형사조치까지 취하자 그토록 심각했던 불법조업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 ☆ ☆

동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주변국을 정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까지 대한민국의 눈치를 보는 사태에 이르자 북미지역이나 유럽은 가급적 껄끄러운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 어떤 나라도 감히 허튼 수작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

동하의 눈에 한 번 잘못 찍히면 나라의 운명까지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을 통해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동하는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곧바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으로 귀결이 되었다.

결국 일본은 괴수들에 의해 잠식당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열도의 절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새 일본 총리와 일본의 왕이 거듭 찾아와 눈물로 사과를 표했다. 보다 못한 유엔 측에서도 중재에 나섰고, 대통령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이보게, 동하 군. 이쯤에서 그냥 사과를 수용하는 게 어떻겠나?”

“이 땅의 친일파들에게 앞으로 친일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자네의 마음은 충분이 이해하고도 남네. 그래도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마련이네.”

세계가 주시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 아량을 베풀라는 뜻이었다.

하긴 대다수 일본 국민이 무슨 죄인가?

그제야 동하도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였다.

유엔은 즉시 환영의 입장을 밝혔고, 세계 언론도 드디어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기사를 속보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일본에 가해졌던 무기 제재조치는 풀어졌지만, 그때는 이미 일본 열도가 절반 이상 날아간 뒤였다.

그렇게 대충 주변 상황을 정리한 동하는 오랜만에 남궁세가를 방문했다.

만물상점에서 성녀를 구해서 탈출한 이후 처음이었다.

오늘도 가장 먼저 동하를 맞아준 사람은 남궁혜였다.

“공자님.”

“한 달 만에 뵙는군요.”

동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왠지 자신이 용건이 있을 때만 찾아오는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공자님, 지구의 상황은 어떤가요?”

“3성급 몬스터 이후로는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지만, 샤이언 종족의 연구진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요. 수장이 바뀌었다는 말도 있어서 안심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동하는 적잖이 놀랐다.

그렇다면 지구에 찾아온 잠시의 평화가 어쩌면 연구진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분들은 모두 어디 갔습니까?”

오늘따라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수다쟁이인 타오와 야이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곤륜노자께서는 공력을 회복하시고 폐관수련에 들어가셨어요. 다른 분들도 수련을 하시겠다고 각자 자리를 잡고 며칠 동안 칩거에 들어간 상태구요.”

하긴 남궁세가에는 건물도 많고 조용히 수련할 장소도 차고 넘쳤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요. 곤륜노자께서는 음양조화선의 비밀을 모두 푸신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아마 며칠 내로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오실 거예요. 공자님께서 번거롭겠지만, 다시 한 번 오셔야겠어요.”

“그거야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남궁혜가 확신어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니 동하도 왠지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하도 음양조화선을 사용해서 아이템을 합성하는 일에 성공하긴 했지만, 아직 그 이상의 비밀은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참, 그건 그렇고 생명의 씨앗과 관련해서 알아보는 건 어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닌자 종족들에게 단서를 얻고 삼일 뒤에 만물상점에서 만나기로 했답니다.”

“부디 단서를 찾았으면 좋겠군요.”

두 번째 물건을 찾은 이후로 깜깜무소식이었다.

만에 하나 이것들이 샤이언 종족의 손에 들어갔다면 우주 말살 프로젝트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게 틀림없었다.

남궁혜도 그것 때문에 다소 위험하더라도 만물상점에서 접촉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동하는 삼일 뒤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며 현실로 되돌아갔다.

☆ ☆ ☆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아직 11월 말인데 전국에 때 이른 폭설이 내렸다.

동하가 회귀를 하고 처음 맞는 눈이었다.

그렇게 괴수들의 2차 침공이 일어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인류와 괴수들의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지구는 평화로운 시기를 맛볼 수 있었다.

모든 게 순탄했다.

동하 앞에 주변 열강들도 무릎을 꿇었고, 무기 공급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더 이상 괴수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대로 영원히 평화가 유지될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나?

동하는 오히려 이런 소강상태가 더 신경이 쓰였다.

폭풍전야라 하지 않았던가?

폭풍이 오기 전날 밤이 더 고요한 법이었다.

이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1차와 2차 침공 사이의 주기가 엄청나게 짧았던 것을 떠올리면 2차에서 3차 침공 주기는 더 짧았었다.

한데,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3차 침공에 대해 아무런 조짐도 없다는 게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동하였다.

더구나 샤이언 종족의 연구진이 교체되었다는 남궁혜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몰랐다.

동하는 벙커 공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인테리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완성도 면에서는 조금 떨어질지는 몰라도 안전성 위주로 초점을 맞추고 공사 시간을 단축하려고 노력했다.

마크와 제인의 감시를 피해 공사를 하는 것은 그리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마크와 제인은 그날 특별 기자회견 이후로 더욱 날을 세워 동하를 감시하고 있었다.

집요할 정도였다. 눈이 와도 그들은 한눈을 팔지 않았고, 혹한의 추위에도 좀처럼 포기할 줄 몰랐다.

이쯤 되면 찰거머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

동하는 그들의 집요한 감시를 비웃어 주기라도 하듯 더욱 공사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리고 11월을 지나 12월이 되어 찬바람이 강해질 무렵 동하는 드디어 벙커를 완성할 수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