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만물상점-161화 (161/167)

<-- 161화 : 불의 기운-01 -->

쉽게 말하면 코칭 시스템이었다.

단순히 이계 종족의 테스터들이 신인류의 훈련을 돕는 것이 아니었다.

신인류가 필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나중에 업적에 따라 정산이 주어지는데, 신인류들의 순위에 따라 이계 종족의 테스터들 역시 포인트를 지급받는다.

그러니까 자신이 가르친 신인류의 성적이 높으면 그만큼 포인트를 많이 지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했다. 테스터들은 신인류의 훈련을 도우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들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이계 종족의 테스터들 역시 강해지기 위해 매일 필드에서 온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이때에도 업적에 따라 정산이 주어졌고,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동하는 원래 무상으로 아이템을 나눠 주려 했지만, 그렇게 되면 테스터들 사이에 치열함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포인트 방식을 부활시켰다. 반응은 뜨거웠다. 테스터들은 2중으로 지급되는 포인트에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테스터들을 보고 신인류들 역시 자극을 받아 죽기살기로 훈련에 임했다.

지수만 해도 그랬다. 그녀는 처음에는 비기닝 프로그램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기 일쑤였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을 때는 제법 능숙해졌고, 다시 며칠이 지났을 때는 단숨에 비기닝을 돌파하고 노멀도 넘어섰다.

포인트로 아이템을 사서 능력을 업그레이드한 탓에 그녀의 능력이 강해진 덕분이었지만, 테스터들의 강력한 모습에 자극을 받고 매일 사선을 넘나들며 수련을 매진한 덕분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테스터들과 신인류들은 서로 윈윈을 거듭하며 강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동하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답다.’

지수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남궁혜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훈련을 책임져줄 사람이었다. 얼핏 봐도 인간과 특별히 다른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궁혜의 말투와 옷차림만 보면 무협 영화 속 여주인공이 화면을 뚫고 현실로 튀어 나온 것 같았다. 하나 남궁혜의 얼굴은 인간하고 똑같아서 전혀 외계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때, 남궁혜가 빙그레 웃으며 지수를 쳐다보았다.

“신기하죠?”

“예?”

“처음엔 우리도 그랬답니다.”

남궁혜는 지수의 눈길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지 빙그레 웃었다.

순간 지수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죄, 죄송해요.”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계 종족을 처음 대하면 신기하기 마련이죠. 아마 만물상점에서 며칠 지내다 보면 어느 정도 적응이 될 거예요.”

정말 선녀가 아닐까?

얼굴도 절세적이지만, 마음은 더 착하고 따듯했다.

악바리 지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혹시 동하와 남궁혜가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서 입술이 간지러웠다. 왠지 여자의 직감에 단순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훈련을 해서 빨리 강해지는 것이었다.

“근데 남궁 소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만물상점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보통 사람이 찾아오면 만나려고 하지 않나요?”

“글쎄요. 정 소저는 이미 만나기도 했고,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제, 제가요?”

“공자님이 말을 안하신 모양이네요. 만물상점의 주인은 공자님이시고, 지금은 제가 잠시 관리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예에? 대, 대장님이 주인이라고요?”

지수는 두 눈을 크게 치떴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동하를 단지 각성한 능력이 다른 신인류보다 조금 더 뛰어난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이제는 뭐가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동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건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신적인 존재라 해도 전혀 부족할 게 없었다.

“대, 대장님은 도대체 누구죠? 지구의 인간이 맞긴 하나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이라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아니 지금은 그냥 신인가?”

“예에?”

지수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녀 역시도 동하가 신처럼 느껴지고 있으니 말이다.

“만물상점의 주인이 공자님이 아니라면 지구의 신인류들이 만물상점에 오는 일은 영원히 없었을 거예요.”

“아!”

지수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사람을 초대하려면 그 집의 주인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제야 지수는 동하의 눈에 띈 것이 로또에 1등으로 당첨된 것보다 더 엄청난 대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올라가는 건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다온그룹이 전 세계적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철옹성을 쌓은 건 아니었다.

상대의 필살기만 봉쇄하면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다온그룹의 필살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강화 배터리 사업이었다. 예전에 다온그룹이 M뱅크로 핸드폰 사업이 잠시 최고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핸드폰 사업이 사양길로 들어선 상태였다. 만약 강화 배터리 사업만 아니었다면 다온그룹도 붕괴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이 그랬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지형도가 바뀌었다.

괴수의 시대가 모든 것을 바꿔 놓은 것이었다. 기존에 승승장구하던 거대 기업들이 물거품처럼 한순간에 붕괴되고 무너졌고, 방산과 의료 계열의 회사들만 살아남은 상태였다. 거기에 추가를 하자면 식품회사 정도였다.

이 회사들 말고는 살아남은 기업이 없었다.

한데, 다온그룹이 강화 배터리라는 아이템으로 혁신을 가져와 방산과 의료 계열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다온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도 덩달아 주가가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

시너지 효과였다.

다온그룹은 그렇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선 상태였다.

아무튼 좋다.

다온그룹이 강화 배터리로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대한민국과 미국에만 수출하고 있었다.

한데 만약 중국에서 똑같은 제품을 내놓는다면?

더구나 더 저렴한 가격에 전 세계에 수출이 가능하다면?

경쟁력 자체가 되지 못할 것이었다. 아마 다온그룹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고,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붕괴할 터였다.

‘흐흐, 그 사이에 나는 중국 쪽에 사장으로 초빙을 받고 가는 것이지.’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수정이 그를 이기고 본부장이 되었을 때부터 질투와 시기심에 휩싸여 김선일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곧바로 중국 측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건네고 계약서를 작성하면 끝이었다.

그 전에 수정과 동하를 만난 건 일종의 보너스 같은 개념이었다. 김선일은 다온그룹이 무너져갈 때 지금 상황을 떠올리며 더 통쾌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요, 우리 다음에 또 봅시다.”

김선일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갔다.

대화를 나눈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통성명을 하고 새해 덕담을 전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김선일은 시종일관 호의적으로 동하를 대했다. 수정은 그것이 기쁜지 귓가에 입이 걸릴 정도로 웃었지만, 동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7살 연상인 수정과 이제 고작 대학교 2학년 생인 동하.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조합이긴 했다. 그렇다면 동하와 수정의 관계를 물어봐야 정상인데 김선일은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 나에 대해 감지하고 있다는 뜻일테지.’

그런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동하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지만, 칼날을 감추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일 수도 있었다.

동하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김선일의 등을 쳐다보며 가늘게 눈매를 모았다.

“저 사람이죠?”

“뭐가요?”

“수정 씨와 본부장 자리를 두고 다퉜던 사람 말입니다.”

“맞아요. 고모의 아들인데, 저보다는 사업적인 마인드가 훨씬 뛰어난 편이죠.”

“성격도 좋아 보이네요.”

“글쎄요. 오빠는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는 가급적 오빠를 믿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나를 대하고 있어도 언제든 내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죠.”

“그렇군요.”

역시.

국내 최고의 기업 회장의 안목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한 회장은 단순히 수정과 김선일이 경쟁 관계여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터였다.

동하는 방금 김선일의 품속에 들어 있던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마냥 좋은 사람으로 오해했을 지도 몰랐다.

그 사진들은 강화 배터리 작업 현장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동하의 능력은 계속 진화를 거듭해서 이제는 단순히 눈앞에 글자만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매직 카메라 능력과 연동이 되어서 동하는 사진이나 그림도 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동하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회사 기밀을 빼돌려 팔아먹겠다는 수작이 틀림없었다.

한 번 배신하겠다고 마음 먹은 자가 두 번은 못할까.

‘어쩌면 그날 화재 사건 뒤에도 저 자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그날 경찰에서도 합선에 위한 화재로 조사를 마무리 했지만, 동하는 생각보다 불길이 빠르게 번진 것을 계속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화재를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선일의 배신 행위를 보고 난 지금은 그날 화재가 수정을 죽이기 위한 음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틀림없다.’

추측은 이내 확신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수정 씨,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 할 것 같네요.”

“갑자기 왜요. 아, 아직 시설을 다 둘러보지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라도 동하와 데이트를 즐기려던 수정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선약이 있던 걸 깜빡했지 뭡니까? 급할 건 없으니까 시설은 나중에 다시 봐요.”

“설마 지구를 구하러 가는 건가요?”

“예?”

동하는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동하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핫핫! 수정 씨도 개그를 할 줄 아네요. 하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잘 됐네요. 그게 아니라면 나도 같이 가요.”

“그, 그건...”

“오빠 때문이죠? 방금 오빠에 대해 물어본 것도 그렇고, 나에게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어요.”

수정은 그리 둔한 성격이 아니었다.

동하가 김선일을 만나고 눈빛이 약간 변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냥 모른척 하기에는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뭐, 어쩔 수 없나?’

동하는 가급적 수정 몰래 조용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수정과 김선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사촌 오빠가 자신을 죽이려 했고, 회사를 팔아 먹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다온그룹의 일이었다.

그녀가 모른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좋습니다. 아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 같은데 우리 따라가 보죠.”

☆ ☆ ☆

산업스파이는 어느 나라든 존재한다.

지금처럼 기술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도 없었다.

기술 유출로 인해 산업스파이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이 되거나 국제 분쟁이 일어나는 건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특히, 과거 일본의 경우는 다른 나라의 정보를 빼돌려 칩을 자신의 몸속에 넣고 자살을 해서 시신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시신이 되면 아무래도 조사가 허술해지는 맹점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고 고도의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소문이 많았다.

어쨌든 지금 김선일이 하려는 행위는 전형적인 산업스파이였다.

그는 한강 고수부지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은 한적했고, 사람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평소였다면 한낮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곳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지하실이나 밀폐된 곳에 숨어 있어서 한강 고수부지는 쓸쓸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접선을 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인 셈이었다.

“김 선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선일이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주차를 하고 기다리던 사내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모두 세 명이었다.

한 명은 중국 대사의 비서관이었고, 다른 한 명은 중국 기업의 관계자였다. 그쪽 기업 역시 신인류의 아이템을 만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중국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능력을 각성한 신인류였다.

“김 선생, 어떻게... 배터리를 강화하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냈습니까?”

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배터리를 강화하기 위해 사체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응용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지금은 그저 다온그룹 쪽에서 기밀을 빼내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후후. 그보다 먼저 약속을 지키는 게 순서 아닐까요?”

“역시 김 선생은 꼼꼼하시군요. 비밀이 무엇인지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일전에 김 선생께 약속한 것들은 확실히 보장해 드릴 것입니다.”

비서관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능력을 각성한 신인류가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안에는 돈 뭉치로 가득한 종이 박스가 여러 개가 있었다. 김선일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종이 박스를 모두 확인하고 자신의 차로 옮겼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찰칵!

그들의 접선 장면과 돈을 주고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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