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민>
<노력을 해 본 적이 없다. 노력은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가? 안 된 적이 없는데 어찌 노력을 하겠는가.>
-대검공의 대화 중 발췌
☆ ☆ ☆
로만 백작가에는 두 개의 정원이 존재하고 있다.
우선 수도 쪽을 바라보며 위치하고 있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용도의 작은 정원. 그리고 뒤쪽 콘-티안 산맥의 지류인 산을 바라보고 위치해 있는, 수련장을 겸하는 너른 면적의 정원.
잔디가 깔려 있는 이곳 너른 벌판은 경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기에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가신들이 관리하는 부분까지만 정원으로 여기고 다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원 한구석 나무에, 한 청년이 해먹을 걸어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는데도 청년은 들어갈 생각이 없는지, 아니면 시간감각을 잊은 건지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이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만 때우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몇 달 가까이 되어 간다.
청년이 처음부터 이렇게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이다. 무가의 자식답게 누구보다도 수련하는 것을 좋아했고 아버지와 형들과 검에 대해 이야기하고 휘두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청년이 검을 휘둘렀던 이유가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청년은 강해지기 위해 하루 종일 검을 휘두른다는 무장들에 비하면 목표의식이 약한 편이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는 강해지고 싶다는 의욕 자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이 힘을 누굴 찍어 누르고 박살 내고자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도 관심이 전무했다.
하지만 그가 무술을 열심히 수련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왜냐하면 청년 그 자신이 칼 휘두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이 좋았다.
어릴 때에는 몰랐다. 어릴 적에는 단순히 아버지가 가르쳐준 대로 수련을 하고, 아버지가 미처 소홀히 하고 가르쳐주지 못한 부분들은 어머니와 바깥에서 모셔 온 선생님들을 따라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은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재능이 전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재능도 없을뿐더러 너무나도 지루했다.
악기를 비롯한 모든 취미를 해보았지만 해도 해도 늘지 않았다. 늘지 않으니 금세 지루해져서 모셔왔던 선생님들은 한 달도 안 되어 돌아가고 말았다.
아마 그들은 로만가의 2공자가 형과는 다르게 재능이 전혀 없다고 지금쯤 다른 곳에서 험담을 열심히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사교나 대인관계도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다른 사람의 속을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맞추라는 것인가? 마치 이에 능숙한 선생들이나 어머니, 형이 초능력자 같았다. 이에는 아버지도 어느 정도 동의하였다.
예법 역시 지루했다. 왜 익히고 있어야 하는지 들어서 이해는 했지만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하셔서 예법 선생님은 돌아가지 않고 계속 로만가에 남아있을 수 있었기에 미쳐버릴 뻔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내가 이것을 배우는 걸 이리도 싫어하는지.
분명히 어머니인 백작부인이 설명해주는 이유에 따르면 배워야 하긴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붙잡고라도 있었는데 너무나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깨달았다. 자신이 이 모든 것들을 재미없어 했던 것은 그에게 너무나, 넘치도록 잘하는 것이 한 가지 있어서 그랬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일의 원흉이 거기에 있음을.
어릴 때 가장 먼저 배우기 시작한 것은 몸 쓰는 법과 BANDER의 수련,그리고 검술. 이 세 가지이다. 보통 사람들은 몸이 어느 정도 잡히고 다섯 살부터 시작한다는데, 아버지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나는 그보다 훨씬 일찍부터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련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수련이 힘든 이유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비루한 육체가 아직 실현할 능력이 되지 않아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메꾸느라 힘든 것이니 항상 정진정명 하라고 아버지는 그러셨다.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거짓말은 안 하는 사람으로 바깥에서는 이름 높다는데 가끔 보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머릿속은 쉴 새 없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그려내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으면 어느새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몸이 머리에 맞추어 움직일 수 있도록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면 또 다른 길이 보였다. 이러한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었다.
칼은 어디로 휘둘러야 할지 몸이 가르쳐 주었다.
왜 휘둘러야 하는지,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 아프니까. 그냥 휘둘러야 할 것 같은 곳으로 휘두르면 아버지는 곧잘 칭찬해 주시곤 하였다. 검술이 왜 필요한진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형의 말대로라면 아직 자신이 깨닫지 못한 심오한 깊이가 있다 하여 우선 외워는 두었다.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반데르는 숨만 쉬어도 모였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오히려 모이는 속도가 느린 것 같아 중간부터는 아버지 몰래 반데르-로아의 수련도 중단했다. 아버지 말로는 수백 년간 걸쳐진 비전의 수련법이라고 하는데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숨만 쉬어도 더 잘 모이는데 뭐하러 그렇게 순서에 따라가며 모은단 말인가?
아버지가 말하기로는 따라서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무슨 벽 같은 것에 마주친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가끔 멈칫? 거리는 순간이 있기는 하였다.
이제까지 한 다섯 번 정도……? 근데 벽은 아니고 한 종잇장 정도……. 다섯 번째에는 그래도 며칠 정도 버벅거렸던 것 같긴 한데 짜증 나서 밥도 안 먹고 좀 열심히 하니 금방 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이게 오 년 전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대로 되는 게 익숙했는데! 그래서 이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칼 휘두르고 몸 쓰는 법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열두 살 때 벽을 넘고 나서부터 배우기 시작한 다른 모든 것들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가 말한 벽 수준이 아니었다. 교양, 승마, 사교, 악기… 무슨 시작단계부터 하늘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러니 해야 된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것, 하면 바로 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부모님도 예법 말고는 어느 정도는 포기한 느낌이어서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세상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면 45분 동안 진행되는 지옥 같은 예법 강의만 제외하면 하루 종일 하고 싶은 걸 하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자신에게 1년 전 변화가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1년 전에 5년 전 있었던 일이 자신을 찾아왔다.
자신을 무언가가 가로막았다.
뭔가 보일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넘어갈 수가 없다.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반데르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육체도 발전을 멈추었다.
이번에도 며칠 하면 되겠지, 하여 미친 듯이 해보았지만… 이번에는 전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청년 자신의 인내심은 딱 이 정도까지였다는 것을…….
이제까지는 생각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아 휘둘렀지만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자 이것도 이제까지 배워왔던 악기, 미술과 똑같이 지루해졌다.
안 한다고 실력이 줄어들 것 같지도 않고, 한다고 실력이 늘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이건 확실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또한 확실했다.
그게 자신이 여기서 멍하니 하늘을 몇 달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였다.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다시 생각대로 할 수 있을지를 ‘머리로만’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이제까지 자신을 다음 경지로 이끌어주었던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그려졌다. 어떻게 움직이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몸과 머리가 속삭였다. 보이는 대로 휘두르고, 내키는 대로 움직이라고… 그러면 세상이 너에게 더 많은 것을 허락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잠깐 잠깐 보이다가 끊어지고… 잘 나가다가도 갑자기 갈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중간에 수련을 중단한 것도 이러한 것들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나서이다. 이제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고민하던 와중, 시안은 결국 머리로는 무시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무의식이 끊임없이 외치고 있던 정답을 떠올려야 했다.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