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만의 검공-21화 (22/81)

<21. 드라고나>

‘우와…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먼… 우흐흐흐.’

시안은 드라고나의 거주 및 수련을 위해 3근위기사단 관사의 옆에 마련된 관사로 이사한 상태였다.

며칠 전 시안을 찾아온 탈린 자작은 시안에게 드라고나에 들어올 것을 제시하였다.

시안은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그 제안을 수락하였다.

자신이 드라고나를 수락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형이 이 드라고나에 들어간다는 것을 들었고,

둘째, 일이 훨씬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케르벨 백작님께 여쭈어 보니 드라고나는 평상시에 놀고 유사시, 혹은 전쟁 시에 활동하는 단체라고 한다.

이 평화로운 시기에 전쟁이 있을 리가 없으니 평소에 놀고먹을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판단한 시안은 이 제안을 수락하였고 자신의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여기 이사한 지 근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월급도 따박따박, 가란-티아 시절의 열 배 가까이 들어왔으니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드라고나의 구성인원은 현재 셋이었다. 자신과 자신의 형, 칼라굴.

단장인 칼라굴은 계약을 맺어 자신의 무력을 빌려주는 대가로 자신이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기로 한 상태였다.

그 후 기존의 의식에서 흡수한 기억에 지식이 너무 부족하다고 투덜거리며 적응을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왕립 도서관에 출입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쿤타리안의 이미지가 너무 안 좋고,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그랑-반더라는 경지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로만 백작이 우려했지만 칼라굴은 엑사르를 사역하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외모를 무던한 중년의 남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고위귀족들에게는 칼라굴을 티안 왕국의 숨겨져 있던 그랑-반더라고 소개하였고, 쿤타리안의 존재는 나라샤 국왕의 공작에 의해 묻혀버렸다.

잠시 떠들썩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그랑-반더의 존재에 대한 소식이 티안 전역을 강타했기에 금방 가라앉고 말았다.

부단장인 형은 열심히 뒤쪽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대회에서 얻은 상처는 자신이 보호했기에 후유증 없이 완치되었고 오히려 그때의 일이 동기가 되어 더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제3근위기사단 단장의 빈자리는 귀환자인 칼-티안 경이 맡았다. 귀환자로 가기 전에도 근위기사단에 있었고, 인망이 높아 여러 사람의 신임을 얻고 있기에 무리 없이 3기사단의 단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장보좌관을 맡은 시안은…

나무 사이에 걸린 해먹을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며 햇살을 보고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시안의 불만을 최대한 줄이라는 나라샤 국왕의 특명을 받고 온 탈린 자작의 제안에 빠져 단장보좌관 제안을 덥석 물고 말았다.

‘자네가 단원으로 있으면 다른 단원들과 섞여서 훈련도 하고 온갖 잡무란 잡무는 다 봐야 할 걸세. 이건 자네 형도 막아줄 수 없다네. 자네만 일을 안 시키면 다른 단원들이 자네 형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겠나? 편애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니까 단장보좌관을 맡게나. 자네에게 결단코 일을 시키거나 하지 않을 걸세. 다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일세…….’

너무나 솔깃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아름다운 제안에 시안은 그 제안을 덥석 물어버렸다.

결과적으로 드라고나는 현재 단원은 한 명도 없고 한 명의 단장과 한 명의 부단장, 한 명의 단장보좌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탈린 자작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탈린 자작이 따로 행정보좌관을 붙여주어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던 것이다.

애초에 필요도 없는 단장보좌라는 직책을 만든 것도 귀찮게 하면 도망갈 시안을 묶어두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시안에게 일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직급상 단장보좌관이지만 칼라굴이 시안에게 일을 시킬 리 없고, 부단장은 단장보좌관에게 명령권이 없었다.

너무나 평화로운 생활 속에 만족하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시안은 집으로 오랜만에 식사를 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저녁에 오랜만에 집으로 식사나 하러 가야겠군. 어머니도 뵐 겸.’

어머니를 안 본 지도 좀 되었으니 집에 가서 어머니도 뵐 겸 다녀오기로 한 시안은 어머니 선물로 무엇을 사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돈 쓸 데도 없어서 잔고는 많았다.

☆ ☆ ☆

오랜만의 가족식사 도중 로만 백작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갑작스런 한마디를 던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샤란 왕국이 콘 왕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고 하는구나. 전면전이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 말에 시안은 이거였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부터 왕궁의 내부가 분주해지더니 많은 귀족들이 오가는 것이 느껴졌었다. 이 일 때문에 분주해졌었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리안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가… 우샤란 왕국이 강대하기는 하지만 옆에 타란 왕국을 두고 전쟁을 벌이다니… 양쪽으로 힘을 나눌 여력이 없을 텐데요.”

우샤란 왕국은 일곱 왕국 중 가장 그 세력이 강한 타란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비록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고 있는 관계이긴 하지만 등 뒤에 놓아두고 전쟁을 벌일 만큼 친한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콘 왕국과 우샤란 왕국의 전력은 비등하다. 즉, 콘 왕국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타란 왕국까지 견제할 여력은 없을 터인데 전쟁, 그것도 선전포고라니?

“우샤란 왕국은 타란 왕국 쪽에 배치해 둔 병력은 하나도 빼지 않았다. 그 상태로 콘 왕국과 국지전을 진행 중이고… 현재 콘 왕국은 밀리고 있는 상태이다.”

콘 왕국은 티안 왕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관계였다. 딱히 친해서 그렇다기보다는 타란과 우샤란이라는 그들의 적이 동맹을 맺었기에 그들도 동맹을 맺어 대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티안도 콘 왕국을 지원해야 한다. 콘 왕국의 세력이 약화되거나, 혹은 우샤란에 밀리게 된다면 티안으로서는 별로 좋을 것이 없다.

“많은 병력을 투입할 여유가 되지 않으니… 소수정예로 가겠군요.”

“그렇단다. 애초에 국왕폐하께서 드라고나를 만든 이유가 이것으로 보이는구나. 드라고나 외에도 물론 다른 유동 병력들도 투입되겠지만 드라고나가 가장 큰 전력이겠지.”

많은 병력을 움직여 지원할 수는 없다.

우샤란 왕국이 전쟁에 돌입했다는 것은, 우샤란 왕국을 견제하던 타란 왕국에게도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란 왕국 역시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실제로 나라샤 국왕과 귀족, 무장과 행정가들은 쉴 새 없이 국가 내 병력들을 재배치하고 있었다.

타란을 살피고 병력을 증강하는 동시에 카란 왕국과의 국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거기다가 콘 왕국에 보낼 지원군도 편성해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도저히 보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다르다. 새로운 그랑-반더, 칼라굴이 생겼으니까.

콘 왕국도 그랑-반더를 지원한다고 하면 이외의 추가병력이 모자라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그랑-반더는 그러한 존재다. 전쟁의 대세를 결정짓는 전략병기.

티안 왕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칼라굴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존재를 믿고 국경을 확장할 수도, 맡겨둘 수도 없다.

애초에 드라고나의 주력인 칼라굴과 시안은 안정적으로 컨트롤이 가능한 존재들이 아니다.

나라샤 국왕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드라고나로 콘 왕국에 빚을 지워두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로만 백작과 리안도 이러한 나라샤 국왕의 의도를 어렴풋이 눈치챘다.

‘…쩝.’

시안은 그런 건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신의 평화가 이제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시안은 이 평화를 깨트리기 싫었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의지를 팍팍 풍기는 형을 보며 자신에게 선택사항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뭐… 자신이 따라가면 위험한 일은 없으리라. 칼라굴도 있으니까.

자신에게는 힘든 일도 아니었고 이제까지 놀고먹었으니 밥값을 할 때가 되기는 되었다.

사람 죽이는 데에 힘을 쓰기는 싫었기에 최대한 형을 지키며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한 시안은 내일부터 더 적극적으로 남은 평화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 ☆

“그러니까 자네들이 이번에 추가로 드라고나로 편성된 인물들이군.”

“안녕하십니까!”

드라고나로 새로운 추가인물들이 배정되었다. 이제까지는 임무가 없어 추가인원을 모집하지 않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셀린 경도 오셨군요.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네, 리안 경.”

셀린은 제3근위기사단에서 리안과 같이 단장과 부단장 역할을 수행했던 것을 고려하여 배치되었다.

리안 경을 도와 새로운 인재들을 통솔하기 위함도 있지만 스스로 부족한 경험을 메우기 위해 자원한 점도 고려되어 드라고나의 제2부단장 자리에 배치되었다.

드라고나에 새로 충원된 인물들 중 마스터는 셀린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마스터들은 국경 및 근위기사단, 무장단체에 배치되어 티안에 미칠 여파에 대비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대신 드라고나는 이번에 하론에서 준수한 성적을 올린 인재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모두 살짝 긴장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동시에 앞에 서있는 칼라굴과 리안, 셀린을 존경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음… 그런데 시안은 어디 있나요?”

모두가 인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시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셀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리안 경에게 물었다.

연무장 어디에도 시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리안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음… 그 아이는…….”

☆ ☆ ☆

이번 하론의 준우승자인 파놀란은 주변의 인재들을 경쟁적으로 둘러보았다.

모두가 이번 하론에서 준수한 성적을 받은 인재들이다.

이들 모두를 모을 정도라니… 이 드라고나라는 집단은 새로 생겼지만 굉장히 중요한 집단임이 틀림없다.

드라고나를 이끄는 인물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단장은 그랑-반더에 부단장은 그 유명한 로만가의 리안 경과 키라인 검가의 셀린 경이다.

파놀란은 벌써부터 티안이라는 나라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들의 이번 임무는 드라고나로서 콘 왕국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임무만 보아도 그 막중함을 알 수 있었기에 파놀란은 이번 임무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로 다짐하였다.

연무장에서 각자 소개를 끝마치고 서로를 경쟁적으로 살핀 파놀란은 자신에게 배치된 숙소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저녁까지 시간이 남아 관사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이곳에서 콘 왕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2주간 시간을 보낼 것이기에 미리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관사는 굉장히 조성이 잘 되어 있었다. 식당도 있었고 작은 서재와 휴게실도 투박하지만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관사의 뒤로 돌아가니 보조 연무장과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연무장의 판석을 밟아보고 정원을 돌아보던 파놀란은 무언가 이상한 것이 정원에 있음을 찾아내었다.

‘…해먹?’

높이 솟은 나무 두 그루 사이에 해먹 하나가 위치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해먹은 맹렬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생한 파놀란은 안력을 돋워 해먹을 살폈다.

해먹 안에는 웬 새하얀 남자 하나가 열심히 몸을 좌우로 흔들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지? 이곳 행정관인가?’

뽀얀 피부에 호리호리한 체구를 가진 그자를 보고 파놀란은 우선 정체를 파악하기로 했다.

자신이 알기로 행정관은 퇴근시간까지 일을 해야지 여기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면 안 되니까.

“누구십니까?”

파놀란의 물음에 좌우로 흔들거리던 해먹의 움직임이 점차 잦아들고 이윽고 그 위에 누워있던 남자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파놀란 쪽을 쳐다보았다.

“음… 이번에 새로 오신 분들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드라고나에 들어오게 된 파놀란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도 드라고나 소속입니다. 단장보좌관 시안이라고 합니다.”

“……?”

단장보좌관이라고 하니 외모와 여기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파놀란은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음… 아까 연무장에서 모두 인사를 나누었는데 시안 경의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아… 물어보니 굳이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해서 안 갔습니다. 하하. 어차피 다 뵐 분들인데요, 뭐.”

정확히 말하면 리안은 ‘웬만하면 참석하여 새로 들어오는 인재들과 인사를 나누라’고 하였지만 시안은 그 말을 꼭 오지는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였기에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파놀란은 대체 눈앞의 이 녀석이 뭐 하는 녀석인지 궁금해졌다.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들은 이제 전쟁으로 파견될 것이다.

괜히 얼빠진 놈이 단장보좌를 하게 되면 단장의 판단이 흐려져 몽땅 죽을 수도 있는데 ‘너는 네 인생 사세요.’ 이러면서 놓아둘 수는 없는 것이다.

여차하면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파놀란은 이 시안이라는 녀석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허허허… 나라샤, 이 아저씨 설마…….’

시안은 저 멀리 사라지는 파놀란이라는 자를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파놀란이라는 친구를 보며 시안은 이번 원정이 꽤나 힘들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좀 강한 자들을 넣어주어야 다들 제 목숨 지키며 다녀올 수 있을 텐데 무슨 죄다 병아리들만 우르르 몰아넣어 놓았다.

자신과 칼라굴, 형이 없다면 하루 만에 몽땅 전멸해도 이상할 게 없는 조합이었다.

‘애초에 이 아저씨 이런 거 노리고 보낸 거 아냐?’

아무리 시안이 눈치가 없다지만 전쟁터에 보낸다는 데 이런 언밸런스한 조합을 짜서 집어넣은 나라샤 국왕의 의도가 수상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형 지키다 힘 좀 남으면…….’

의도를 알아봤자 별로 바뀌는 게 없음을 깨달은 시안은 또다시 하늘을 보며 해먹을 흔들기 시작했지만 다가오는 발걸음에 또다시 해먹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야, 시안! 너 왜 여기 있어! 다들 인사하고 안면 트는데. 너 단장보좌관이라며!”

셀린 경이었다.

시안은 묘한 눈으로 셀린을 바라보다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 셀린 경도 이번에 따라갑니까?”

“따라가다니! 내가 여기 제2부단장이라고. 인솔하는 거야, 인솔!”

“뭐… 그거나, 그거나. 어쨌건 형 말고 한 명 더 추가해야겠군요… 흐…….”

“음? 너 그거 무슨 뜻이야?”

뜻은 모르겠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멘트에 셀린이 되물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출발이 2주 남았다는데 왜 벌써 다들 불러 모은 겁니까?”

“이것도 엄청 늦은 거라고. 전쟁에 나가는데 모여서 맞추고 조정해야 할 것 아니야.”

“…진짜 싸우라고 모은 거 맞습니까, 저 사람들?”

“오?”

생각보다 제법이라는 표정을 짓는 셀린을 보고 시안은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예측이 맞은 모양이다.

“전쟁 도와주러 가는데 저런 사람들 모아서 데리고 가면 콘 왕국에서 뭐라고 안 합니까?”

“칼라굴 그 아저씨가 가잖아. 그랑-반더가 가는데 뭐라고 하겠어. 솔직히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쟤들이 경험을 쌓겠니.”

“하아…….”

나라샤 국왕은 이번 기회에 하론 급의 인재들을 잘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칼라굴과 시안이 같이 간다면 많이 위험하지도 않을 것이고, 남의 전쟁이니 정 위험하다 싶어 빠져 버리면 전멸은 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햇병아리들을 드라고나에 넣은 것이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

애초에 이번 드라고나의 편성은 칼라굴과 시안이 주 전력이라는 전제하에 햇병아리인 하론 급의 교육을 위해 편성된 구조였다.

콘 왕국에서도 인원 편성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할 테지만, 그랑-반더를 넣어놓았으니 큰소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타국의 전쟁에 국가의 기둥인 그랑-반더를 보내주는 것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여간… 그 아저… 폐하 머리가 참… 잘 굴러… 혜안이 대단하시네요.”

“불경죄를 짓건 존경을 하든 하나만 하라고. 어쨌건 잘 부탁한다, 시안. 하하하!”

“흐으아으으아…….”

생각보다 이번 원정이 훨씬 피곤해질 것임이 직감적으로 와 닿고 있는 시안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시안은 더 격렬하게 휴식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해먹에 다시 누웠고 셀린은 못 말리겠다는 듯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드라고나가 콘 왕국으로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주였다.

이 시간 동안 개인 훈련을 한다고 하여 크게 강해질 리 없다.

2주간 드라고나에 모인 인재들이 수련하게 되는 것은 합동훈련이었다.

각자의 가문에서 각자만의 수련을 하던 서로 다른 인재들은 적으로서의 상대방은 잘 알았지만 동료로서의 상대방은 잘 알지 못하였다.

이제 곧 국지전에 투입되게 될 것이기에 서로 합을 맞추는 법을 알아야 한다.

기초 전술이나 진두지휘, 합격은 모두 각 가문에서 수련하고 온 인재들이지만 2주는 제대로 된 팀워크를 발휘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상대에 대한 신뢰나 동료애가 하나도 없는데 그게 2주 만에 가능할 리 없다.

전문적인 무장단체들은 적어도 몇 년을 같이 생활하는 것이 기본이다.

애초에 이번 드라고나 편성이 ‘육성’의 개념이 아닌 ‘전투부대’의 개념이었다면 2주가 아닌 2년 동안 묶어놓아도 모자랐을 것이다.

우선 교육과 실전경험을 쌓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이번 일이 끝나고 가능성 있는 아이를 걸러내어 정예부대로서 따로 드라고나를 만들게 될 것이다.

애송이라고 언제까지 화초 속에서만 키울 순 없다. 조금 거칠더라도 이번이 기회이다.

이에 대한 지휘 및 평가는 리안과 셀린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칼라굴은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한다. 교육은 교육이고… 지원 그 자체의 목적도 달성해야 하니까.

그랑-반더면 지원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충분하다.

칼라굴이나 시안이 없었다면 저런 햇병아리들만 모아서 국외로 보내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상태로 개죽음당할 게 뻔하고 더해서 나라망신이 될 것이니.

그리고 이것을 아주 잘! 알게 된 시안은 연무장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저 친구는 좀 신경 써서 살려야겠네. 음… 저 친구는 좀 괜찮네. 어… 쟤는 좀 여기 그냥 있으면 안 되나…….”

단장보좌관인 시안은 훈련에 따로 참가하지는 않았기에 멀리서 사람들이 합동훈련을 하는 것을 모조리 지켜볼 수 있었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면 그 평가는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전경험은 부족하지만 개개인이 하론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인재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힘의 운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안은 최근에 만난 사람들로 인해 눈이 너무나 높아져 버렸다.

최근에 엮인(두들겨 준) 대부분의 존재들이 그랑-반더 아니면 마스터였기에 시안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익스퍼트들이 벌이는 참담한 향연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칼질 좀 잘하는 걸로 잘난 척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마 자신이 저들보다 잘하는 것은 칼질 단 하나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주 후 그 칼질이 최고로 대우받고 칼질 못하면 모가지가 달아나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 문제였다.

“으으으으… 그래. 그래도 이번만 다녀오면 괜찮을 거야…….”

시안이 스스로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동안 칼라굴은 눈앞의 인간 애송이들을 보고 살아남을 확률을 계산 중이었다.

“25퍼센트… 23퍼센트… 35퍼센트… 12퍼센트…….”

리안이라는 인간을 100퍼센트로 보았을 때의 확률이었다. 셀린은 78퍼센트이고.

자신의 종족들은 정신과 영혼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체가 하나였고 하나가 전체였다.

동료애, 신뢰, 팀워크란 개념 자체가 그들의 종족에는 없었다.

저런 것은 기본적으로 분열이란 개념이 존재할 때나 있는 개념이고, 모두가 함께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그들의 종족에게는 불필요했다.

한데 인간들은 그런 것이 형성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게다가 저기 있는 인간들은 경쟁심이 너무 강했다.

리안과 셀린이라는 아이가 팀워크를 강조하며 리드하고 있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칼라굴은 별로 신경 쓰진 않았다. 자신이 죽는 건 아니니까.

아마 인간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던 나라샤 국왕이란 자도 자신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칼라굴은 읽던 책에 집중하였다.

생존을 위한 주변 환경의 파악은 기본이고, 인간들의 책이란 것은 정보 획득에 큰 도움이 된다.

이 몸의 주인인 쿤타리안이라는 녀석은 도무지 아는 것이 없었기에 현 시대에 대해 기억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었다.

빠르게 익히고 적응해야 한다. 안 그러면 도태될 것이니까.

☆ ☆ ☆

숙소에 들어온 라시온은 경쟁자로만 생각하던 녀석들과 합동훈련을 하게 되자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파놀란 녀석과 동료애, 신뢰, 우정을 형성해야 한다니!

부단장인 리안 경과 셀린 경은 끊임없이 팀워크를 강조하지만 이제까지 경쟁해온 상대들과 합을 맞추려니 거북하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저 녀석들이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일이 아닌가.

차라리 이 시간에 개인수련을 하여 컨디션을 맞추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런데 그놈은 뭐지?’

라시온은 수련 도중에 연무장 위쪽의 발코니에 서서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던 녀석을 떠올렸다.

‘시안… 이라고 했나…….’

칼라굴 단장님의 보좌관이라는 그 허여멀건 녀석은 도무지 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빈둥거리다가 자신들이 수련하는 것을 잠깐 지켜보고 또 빈둥거리고… 단장 보좌로서 해야 할 일은 다른 행정관들에게 모조리 떠맡기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하는 것도 없는 주제에 그 아름다운 셀린 경과 노닥거리는 것을 보면 열불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그런 자가 리안 경의 동생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로만가의 2공자인데 소문이 안 난 것이 이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로만가의 공자이니 무언가 한 수 있기는 할 것이고, 그렇기에 단장의 보좌관이겠지만 저런 마음자세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자신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들어온 드라고나의 일원들도 시안이라는 녀석을 철저하게 따돌리고 무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묘하게 그런 상황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착각이리라.

‘애송이… 전쟁터에서 제 몸 간수 제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녀석이 위기에 빠지면 고생 좀 하도록 지켜볼 생각이었다. 죽게 내버려 두지야 않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라시온은 정보부에서 나누어 준 콘 왕국의 국지전 양상과 자신들이 배치되게 될 장소에 대한 자료를 읽기 시작하였다.

정보는 힘이다. 하루빨리 머릿속에 집어넣어 놓아야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존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 ☆ ☆

2주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리안과 셀린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훈련을 하고 가고 싶어 했지만 전황이 점점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몇 군데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국지전은 점점 영역을 넓혀 나갔고, 이제 물러날 수 없는 주요 군사적 요충지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후… 칼라굴 경과 시안을 믿는 수밖에 없겠다…….’

국왕폐하께 위험할 것 같다고 의견을 올려보았지만 이런 데서도 위험하면 몇 명 죽는 게 낫다는 것을 둘러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번 의견을 무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리안은 허공에서 천천히 열리는 라-샤르-로아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잡고 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드라고나의 일원들이 차례차례 허공의 구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후후. 출발했다고 하는가?”

“네, 폐하. 오늘 라-샤르-로아를 타고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하루 거리의 라-샤르-로아로 이동한 뒤 도보로 이동할 듯합니다.”

“좋아, 좋아. 잘 풀리고 있구먼. 탈린 자작, 우리도 이제 슬슬 바빠지겠어.”

“이미 준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군. 서두르게.”

나라샤 국왕과 탈린 자작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3권에서 계속>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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