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악사라이>
“호오… 이 녀석 엄청 편한데…….”
스틸은 망둥이 1호의 등에서 감탄했다.
이 녀석의 승차감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작은 산만 한 녀석이라 등 위가 심하게 움직일 줄 알았다.
조금만 흔들려도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지진처럼 느껴질 테니까.
하지만 이 녀석은 물 위를 정말 부드럽게 헤엄쳐갔다.
게다가 덩치가 커서 그런지 파도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 마치 육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덕분에 흔들릴 것을 감안하고 쇠사슬로 등에 꽁꽁 묶었지만 등 위의 강철상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음… 이 녀석 육지에서도 데리고 다닐까요? 저번에 보니까 다리도 있던 것 같은데.”
움찔.
시안이 중얼거리자 서있던 표면이 움찔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산만 한 녀석을? 흐흐. 동생, 세계정복이라도 하려고? 그러면 나야 대찬성이지.”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이런 녀석이 육지로 걸어 들어간다면 키아란에서는 분명 수도에서 아르타곤을 끌고 와 갈길 것이다.
뭐, 거기까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망둥이 1호는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등 뒤의 스틸 양이 신나서 달려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키라안은 멸망이다.
그런 안타까운 사태를 막기 위해 시안은 라가오포라가 거의 끝나가는 지점에서 이 녀석을 풀어주기로 했다.
쿠오오오오!
“녀석, 잘 가라. 수고했다.”
비록 자신을 엿 먹이려고 한 녀석이지만 녀석의 승차감과 횟감에 정이 들어 그런지 악감정 없이 보내주었다.
“스틸 양, 여기서부터 걸어가지요.”
“아… 잠시만, 동생.”
“네?”
“저 녀석 고기 좀 더 썰어가자. 엄청 맛있잖아.”
스틸은 등 위에서의 식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망둥이 1호 등심살을 조금 더 썰어가자고 제안했다.
“허… 스틸 양.”
“음? 왜?”
“정말 천재이십니다. 후후. 망둥이 1호, 잠깐 거기 정지.”
시안은 떠나가던 녀석을 멈춰 세웠다.
구오오오오오!
녀석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지만 시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서 목적지인 케르발까지는 거리가 좀 있다.
바다 위를 걸어가는 동안 먹으면 맛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시안은 크로나-폰을 뽑아 들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 ☆ ☆
“어떻게 된 거야?”
“마르가란이랑은 연락을 하고 있나?”
“젠장.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예상대로 키아란 부근의 라가오포라 끝 지점인 도시, 케르발도 난리가 나있었다.
마르가란에서 절대로 배를 띄우지 말라고 급한 연락이 온 후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배가 항구에 묶인 상태로 케르발은 혼돈에 빠져 있었다.
물론 마르가란과 연락이 되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전달받으면 더 큰 혼돈에 빠질 것이기에 이는 시작에 불과하지만.
마르가란이 라가오포라가 열리며 부흥한 것과 달리 케르발은 원래부터 번화한 도시였다.
물론 라가오포라가 열리고 난 후, 그 번화함은 더욱 극에 달했다.
혹자들은 케르발을 키아란의 두 번째 수도라고 칭할 정도였다.
마르가란을 통해 브로샨에서 넘어온 수많은 물자들.
그리고 브로샨으로 넘어가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해변도시의 특성상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인해 살기 좋은 환경.
아름다운 경광과 풍부한 산출량.
정말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기에 이 케르발은 수도를 제외하면 비할 데가 없는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
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 케르발.
이 도시는 여러 가지가 유명했지만 그중 특별한 것이 있었다.
암시장.
어느 도시를 가도 암시장은 존재했지만 케르발에 존재하는 암시장은 그 규모가 남달랐다.
수많은 물자가 오가는 가운데 여러 이권과 사람들이 맞물려 만들어낸, 케르발의 거대한 어둠.
그 규모가 너무 컸고 큰 이득이 되었기에 케르발의 귀족들은 이 암시장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공공연히 눈감아주고 있었다.
없애버리기에는 암시장의 이권과 개입된 사람들의 힘이 상당했고, 또 자신들이 상납 받는 금액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케르발의 암시장은 어두운 곳에 있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케르발의 명물이었다.
“오호! 그러면 우선은 방을 잡고 그곳부터 가보아야겠군요.”
“한번 가보면 재미있을 거야, 동생.”
시안과 스틸은 망둥이 등심살을 들고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니츠마탄의 남은 공간에 잔뜩 채워 넣었기에 상하지도 않을 것이고 당분간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망둥이 1호는 등의 상당 부분을 썰린 후 구슬픈 울음을 토해내며 바다로 떠나갔다.
“이곳도 마르가란처럼 폭삭 망하는 걸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걸. 이곳은 원래 번화한 도시였고… 무역항으로서의 이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마르가란만큼 그 의존도가 크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뭐… 예전보다는 좀 집값이 떨어지기는 해도 여기는 계속 번화하겠군요?”
“그렇지. 아마 망하지는 않을 거야. 타격이야 있겠지만.”
“흠… 그런데 스틸 양, 혹시 암시장은 어떻게 가는지 아십니까?”
암시장이 유명하다고 해도 숨겨져 있기는 했다.
그렇기에 가이드북에 암시장의 위치까지 나와 있지는 않았고, 시안은 어디로 찾아가야 할지 몰랐기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니? 나도 모르는데? 키라안은 나도 처음이야, 동생.”
“…그런 것치고는 여유가 넘치시는군요.”
“후후. 엄청 쉽게 찾을 수 있거든.”
“……?”
시안이 궁금해하자 스틸은 위에 걸치고 있던 옷을 한 겹 벗었다.
걸치고 있던 옷을 벗자 그 안에는 얇은 반팔만이 있었고 그 옷 한 장은 터질 듯한 스틸의 몸매를 모두 감추어 줄 수 없었다.
“자… 이렇게 한 다음에…….”
스틸 양은 주위의 시선이 모조리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낀 다음 사람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또각.
“으아아아악! 내 손목! 이런 미친년이!”
“자, 봤지? 이제 이 녀석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동생.”
“…….”
함정에 낚인 남자 하나를 끌고 온 스틸을 시안은 감탄 반 어이없음 반이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흠… 아까 남자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이곳 지하이군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암시장을 찾아낸 시안은 골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남자는 스틸 양이 몇 번 쓰다듬어 주자 출생의 비밀까지 말해줄 것처럼 털어놓았다.
암시장의 입구는 그 규모가 거대한 만큼 여러 개가 있었고, 이곳은 자신들의 숙소와 가장 가까운 입구였다.
남자가 말해준 식당을 찾자 시안과 스틸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자리가 반, 맛이 반이라는 걸 떠올리면 이 식당은 이미 반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이런 구석진 곳에 있는 식당을 찾아오진 않을 테니 말이다.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주인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손님?”
“…크로나 고기랑 라이오나 스테이크 주세요.”
“…흐음. 이쪽으로.”
주인은 예상했다는 듯 시안과 스틸을 이끌고 식당의 지하로 향했다.
“…엄청 유치하네요. 도대체 이런 암호는 왜 대라고 하는 걸까요?”
시안이 부끄러운 듯 소곤거렸다.
“후후. 그게 또 암시장만의 재미 아니겠어?”
스틸과 대화를 하며 아래로 내려가자 어느덧 작은 철문이 보였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된다. 재밌게 놀다 오라고.”
주인은 그 말을 마치고 위로 올라갔다.
끼익.
철문을 열자 시안과 스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하지만 예상과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조그마한 지하실이 있어야 마땅하지만 나온 입구로는 정말 엄청나게 넓은 골목이 펼쳐져 있었다.
지하실을 통해 나왔지만 이곳은 지하가 아니었다. 건물 사이사이로 골목이 뚫려있었다.
케르발의 명물, 암시장이었다.
원래 건물의 뒤편이나 조그마한 지하실에서 암거래를 하며 생성된 암시장은 서로가 그 지하실과 공간을 넓혀가며 점점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더 커지고 숨길 수 없게 되자 아예 건물을 새로 짓고 땅을 파며 교묘하게 가려버렸다.
그렇게 덩치가 커진 암시장은 그 규모가 엄청나지만 바깥의 도로에서는 보기가 힘든 구조였다.
지하에, 건물 뒤에, 으슥한 곳이 골고루 연결되어 완성된 거리였으니까.
물론 이 정도 규모를 가린다고 완벽하게 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케르발에서 암시장 큰손들의 뒷돈을 안 받는 귀족과 행정가는 없었기에 암시장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이곳은 양지에서는 거래하기 껄끄러운 마약부터 불법 물품, 무기, 탈릭 스톤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노예였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노예제도가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키아란은 아직도 암암리에 노예 제도가 남아있는 유일한 나라였다.
딱히 박애정신에 의거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노예는 의욕이 없어 생산성이 떨어지기에 백성으로 두고 세금을 걷는 편이 능률면에서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아란은 아직 노예가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존재하고는 있지만 암묵적이었고, 또 그 수요와 공급의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기에 대놓고 길거리에서 팔 정도는 아니었고 이곳, 암시장에서 종종 노예가 거래되고는 하였다.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치며 거래하는, 시장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소란스러웠지만 묘하게 조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또 사고 있었지만 자신의 정체나 거래 중인 물건이 들통 나는 것이 찝찝한 사람들이 모두 조용하게 돌아다니며 알아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안과 스틸은 거리를 걸어가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처음 보는 온갖 신기한 것들이 있었다.
구하기 힘든 진귀한 생물들부터 정체를 모를 장비. 그리고 불법적인 영약까지.
때문에 용병들은 이곳을 자주 찾고는 했다. 재수가 좋으면 싼 가격에 효과가 좋은 녀석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이나 하자가 있기에 이곳 암시장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지만 어차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부작용 걱정하며 사는 용병은 없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저 앞에 노예를 사고파는 시장이 보였다.
노예 시장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에 암시장에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는다.
“노예시장이군요.”
시안과 스틸은 노예시장을 보았지만 별 관심은 없었다.
“흠… 그런데 다들 멀끔하게 하고 앉아 있군요.”
“너무 더럽게 해놓으면 팔리지가 않지. 가게만 가도 진열대의 상품은 깨끗하게 해놓잖아.”
“하긴… 생각보다 다들 평범하군요.”
“동생 무슨 절세미인이나 귀족집 딸, 수인족이나 패배한 무장이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속마음을 들킨 시안은 고개를 돌렸다.
‘구전동화에서는 그런 데서 동료도 구하고 하던데…….’
살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인물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기에 스틸의 일침은 타격이 컸다.
이런 노예시장까지 오는 자들은 둘 중 하나이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먹고살 수 없어 스스로를 파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상대에게 빚을 졌는데 더 이상 갚을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팔려오거나.
공통점은 둘 다 무능력하다는 점이다.
무슨 소설을 보면 대단한 미인이나 수인족이 이런 곳에서 팔리고는 하는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딱 보아도 상품가치가 있는 그런 자들은 여기까지 오지도 않는다.
바로 판매자가 고위귀족들에게 찾아가지.
그렇기에 노예시장은 가장 길목에 위치하지만 가장 음울한 분위기를 가진 시장이었다.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들이 철창에 갇혀 앉아있었으니까.
그래도 깨끗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기에 씻고 멀끔하게 입혀놓아 무슨 거지 소굴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흠… 다음 곳으로 가지요.”
상상과 현실의 괴리를 몸으로 체득한 시안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음 물건을 보러 가려고 했다.
순간 시안은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
이 향기, 혹은 기운을 어디서 맡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시안은 잽싸게 그 향기를 쫓아 이동했다.
스틸은 갑자기 이 아이가 왜 이러나 싶어서 뒤를 따라갔다.
‘이게 어디서 받은 느낌이지…….’
곰곰이 생각을 떠올리던 시안은 이 느낌을 기억해냈다.
예전에, 그 아란칼이라는 녀석들이 자신을 다른 곳으로 처넣었을 때 잠시 동안 다녀온 다른 공간에서 분명 이런 냄새가 났다.
시안은 노예시장을 놓아두고 그 느낌을 따라 이동했다.
멀지 않은 거리를 이동한 끝에 위치한 것은 작은, 네모난 상자였다.
‘흠… 신기하게 생겼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신기하게 생겼고 끌리는 느낌이 있었기에 시안은 이 물건을 사기로 했다.
어차피 구경 겸 쇼핑하려고 온 것, 끌리는 것을 안 사면 무엇을 사겠는가.
“이거 얼마입니까?”
“그거?”
암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던 흉악하게 생긴 사내는 질문을 한 쪽을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웬 허여멀건 녀석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옆에 서있는 엄청난 미인.
폭발할 것 같은 염기가 여기까지 흘러오고 있었다.
엄청나게 언밸런스한 조합. 그렇기에 사내는 경계했다.
저런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조합이 돌아다닌다는 건… 책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특이하다.
특이한 녀석과는 엮이지 않는 것이 오래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사내는 어서 이 녀석들이 떠나주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해결하기 위해 청년이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며칠 전에 자신에게 흘러들어온 특이한 상자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는, 얇은 책만 한 크기의 상자.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고 용도도 몰랐다.
혹시 열리지 않을까 싶어 이곳저곳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기에 버릴까 하다가 특이한 걸 좋아하는 호구가 살지도 모르기에 저기에 올려놓았던 기억이 났다.
“음… 그거… 5탈란트만 주시오.”
엮이고 싶지 않은 건 엮이고 싶지 않은 거고, 이득은 이득이었기에 사내는 급박한 순간에서도 한 번은 후려쳤다.
“흐음… 5탈란트라…….”
시안은 고개를 긁적이다가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목걸이를 한번 매만졌다.
그러더니 손바닥에서 붉은빛이 번득였고 시안의 손에는 금화 다섯 개가 올라와 있었다.
‘헉!’
그걸 보고 있던 사내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저런 아공간 아티팩트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있수. 잘 가시오.”
사내는 속으로는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돈을 받은 후 물건을 건넸다.
“동생, 그거는 왜 산 거야?”
산 물건을 다시 니츠마탄의 안에 집어넣는 시안을 보며 스틸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갑자기 어디론가 홀린 듯 걸어가더니 다짜고짜 물건을 사는 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흠… 그냥 어디선가 맡은 향기가 나서 샀습니다.”
“…전 애인의 향기? 모태솔로잖아.”
“…꼭 그렇게 말씀하셔야 합니까. 그리고 그런 거 아닙니다.”
투닥거리며 떠나는 일행을 보며 사내는 좌판을 접고 어딘가로 슬그머니 향했다.
저런 걸 들고 다니는 실력이라면 자신의 수준으로 덤비면 갈려나갈 것이다.
저런 괴상한 조합으로 아직까지 저런 걸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한 수가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굳이 자신이 저걸 얻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마 이 정보를 좋아할 만한 사람은 이 암시장에 많을 것이다.
그리고 정보는 언제나 돈이 된다.
자신은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한다.
☆ ☆ ☆
대법도회 본회 소속 3급 법도사 리프는 옆에서 리마이누와 함께 걷고 있었다.
“리마이누, 아까부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그게…….”
“흠… 너 설마 아까 노예시장 보고 그러는 거야?”
“…….”
“…아이고.”
리프는 리마이누를 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친구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정의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아까 그 노예들이 안타까워 그러는 것이리라.
가만히 놓아두면 돈을 주고서라도 노예를 풀어줄 것이 분명하기에 리프는 엄포를 놓았다.
“너…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우리는 여기에 목적을 가지고 왔잖아.”
“…분명 데카두인 님이 경비는 무제한으로 쓰라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허허허허… 하하하하…….’
리프는 예상대로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던 리마이누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저 안에 미인이나 쓸 만한 인재가 있었으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노예로 팔려 올 정도로 무능력한 사내를 백 가까이 사겠다니.
분명 저 녀석은 그런 짓을 해도 문책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녀석은 법도회 상층부가 굉장히 아끼는 녀석이니까.
그리고 그럴 만한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녀석이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낸 업적은 분명 상당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아니다. 이 녀석 관리를 잘못했다고 심하게 꾸지람을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그렇기에 리프는 이 녀석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 리마이누. 이 친구들을 구해준다고 치자고. 그다음에는 어쩔 거지?”
“그야 집으로…….”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집을 잃었다는 뜻이야. 갈 곳이 없다는 뜻이지.”
“그럼…….”
“우리가 데려가자고? 데려가서 어쩔 건데?”
“…….”
“풀어주면 아마 도시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다시 잡힐걸. 즉, 너는 저 친구들을 평생 보호해주고 먹여줘야 하는 거지.”
“…….”
“저기 있으면서 주인 만나면 그나마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된다고. 끝까지 책임질 자신 있으면 사고, 아니면 사지 마.”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사지는 않겠지.’
그가 지켜본 바로는 이 녀석은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지 몰라도 항상 도덕이나 정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정도 말했으면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알겠어…….”
‘후…….’
더는 우기지 않자 리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너 여기 반드시 찾아야 할 것이 있다며.”
“맞아… 그렇지.”
리마이누는 자신의 목적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물건이 이곳에 돌아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잃어버렸기에 포기하고 있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찾고 있었다.
그렇기에 법도회의 힘을 빌려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물건이 암시장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이번에 구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이 엄청 힘들어지니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안의 자료가 반드시 필요했다.
자신이 아니면 알아보기도 힘들기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후아… 잘 생각했어. 그나저나… 암시장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넓은데…….”
이곳에서 발견된 것 같다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찾아왔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생각보다 암시장이 엄청나게 넓었다.
리마이누 자신이 아니면 알아볼 수도 없기에 사람을 퍼트려 찾을 수도 없었다.
리프와 리마이누는 이틀째 이곳을 돌았지만 아직 십분지 일도 돌지 못했기에 리프는 암담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하… 그래… 며칠 고생할 생각하고…….”
“…리프, 찾았다.”
“뭐?”
리마이누가 갑자기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야! 어디 가, 너!”
리프는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는 리마이누 녀석을 허겁지겁 따라갔다.
☆ ☆ ☆
“흐음… 그러면 무슨 용도인지도 모르고 산 거네?”
오해가 풀린 스틸은 시안이 산 물건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살피고 있었다.
“네. 어차피 별로 비싸지도 않고… 뭔가 촉이 좋은 게 사고 싶더군요. 하하!”
스틸은 눈앞의 시안 동생 촉이 상당히 안 좋은 것 같았지만 자신도 이게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딱히 별말하지 않기로 했다.
“흐음… 엑사르로 작동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반데르도 아니고…….”
단순한 상자는 아닌 듯싶었다. 상자를 비싼 유리까지 써가며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게다가 상자에 유리를 쓴 목적이라면 상자 안을 보려는 생각일 텐데 시꺼먼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얇은 것이 무언가를 넣기에도 부적합해 보였다.
“고대 제국 시절 유물 아닐까요?”
“흠… 그런 거였으면 엑사르에 반응해야 할 텐데… 그런 흐름이 없는 것 같은데…….”
영 그 용도를 알 길이 없어 보이자 스틸은 흥미를 잃었다.
시안은 어차피 필요해서 산 게 아니고 호기심에 자극되어 산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누군가에게라도 물어보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상자를 다시 니츠마탄에 집어넣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음? 이 향은…….’
시안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거기에는 한 사내가 서있었고, 뒤로는 여러 사람들이 헐레벌떡거리며 이 남자를 쫓아오고 있었다.
“흐음… 누구십니까.”
시안은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부르길래 무슨 용건인가 하여 질문했다.
처음 보기는 했지만 이 남자는 자신이 산 물건과 비슷한 향을 풍기고 있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저는 리마이누라고 하는데… 어, 그러니까… 거기 그 손에 들고 계신 그거…….”
남자는 마음이 급한지 사정이 있는 건지 당황하며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네. 여기 이 손에 들고 있는 이거.”
“그거 제 겁니다.”
“……!”
“……?”
앞뒤가 없는 리마이누의 말에 뒤에 서있던 리프는 당황했다.
저건 완전 시비 거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가 말을 건 것이 스틸이 아니라 시안인 것이 그들에게는 천운이었다.
스틸 양이었다면 리마이누는 이미 척추가 45도쯤 접히고 있었을 테지만(앞이 아니라 뒤로) 시안은 자칭 교양 있는, 대화가 우선인 남자였기 때문이다.
시안은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들어보기로 했다.
그래도 딱 보니 배운 사람들 같아 보이는데 막무가내는 아닐 것이다.
“음… 정확히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제가 횡설수설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역시 무언가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시안은 귀를 기울였다.
“그… 들고 계신 상자가… 제가 잃어버린 건데… 다시 저에게 파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런 문제였군요.”
시안이 밝은 표정으로 답하자 눈앞의 남자, 리마이누의 표정도 밝아졌다.
“네… 사례라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네? 사례를 안 받으셔도…….”
시안은 남자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자 오해를 정정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아니라… 안 팔겠다는 뜻입니다.”
“…네?”
“아니 뭐… 돈이 급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가지고 있고 싶은 물건이라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요.”
시안의 대답에 리마이누는 당황했다.
저 물건은 자신, 더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을 위해서는 꼭 필요했다.
아무리 자신이 천재라고 불렸다고 하여도 모든 자료를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저 안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들이 꼭 필요하다.
한데 눈앞의 남자는 팔지 않겠다고 한다.
‘설마… 저 상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건가?’
리마이누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여 물어보았다.
“혹시… 그 상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하하! 알면 지금쯤 쓰고 있겠지요.”
“…그런데 왜 안 파시는 거지요?”
“음… 소장하고 싶으니까요.”
그 말에 리마이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었다. 자기 물건 자기가 팔기 싫다는데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 어… 그 물건은 정말 꼭 필요…….”
“리마이누, 뒤로 나와 봐.”
리프는 그런 리마이누를 보다가 답답했는지 자신이 대신 나왔다.
척 보니 자신들을 가지고 어떻게 후려쳐서 한탕 하려는 수작임이 보이는데 답답한 녀석이 오히려 녀석들의 수작에 넘어가 주려고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엄청 아쉽다는 것을 어필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기꾼 녀석들이 약점을 잡고 더 당당하게 나올 것 아닌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 집단의 권위이다.
자신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지 보여주리라 생각하며 리프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엑자일 대법도회 소속 3급 법도사 리프라고 합니다.”
“음… 안녕하세요. 시안이라고 합니다.”
리프는 법도회의 이름을 대었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시안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사기꾼이라면 대법도회의 이름을 듣고 물러나야 한다.
이곳, 키라안에 본회를 두고 있지만 전 대륙에 영향을 미치는 대법도회이니까.
한데 녀석들의 표정은 너무 담담했다.
혹시 믿는 구석이 있는가 싶어 리프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실례지만…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소속이라… 없는데요.”
드라고나도 나온 상태인 현재 무직 17세의 시안은 사실대로 말했다.
옆에서 스틸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저 어린놈은 세력을 등에 업고 후광으로 찍어 누르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로만가라고 하면 알아서 찌그러질 녀석인데 우리 순진한 동생은 저렇게 솔직하게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틸은 이 일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후후… 동생 인내심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자고.’
스틸의 예상대로 녀석이 아무것도 없는, 단지 겁대가리만 없는 녀석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리프의 행동은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지금 귀하가 가져간 물건은 원래 저희 물건입니다. 저희가 잠깐 잃어버린 것이 암시장에 나온 것이지요.”
“…….”
“원래대로라면 절도죄이지만 그쪽 사정도 고려하여 구매하신 금액을 저희가 대신 내고 그 물건을 인수하도록 하겠습니다.”
‘푸흐흐흐흐!’
지금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조금이라도 더 넣어보려는 수작을 부리는 리프를 보며 스틸이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를 모르고 리프는 자신의 말을 끝내고 리마이누를 힐끔 쳐다보았다.
일 처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 말이다.
시안은 리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안 넘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야… 당연히 무력을 집행할 수밖에 없지요.”
그제야 시안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휴… 다행입니다. 계속 말로 하자고 하는 사람을 패는 것도 껄끄러워서… 고맙습니다.”
“…뭐라고… 커헉!”
빠악!
리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안이 오물거리고 있던 망둥이 1호 등심살이 리프에게 날아갔다.
등심살이라고는 하지만 시안의 손에 들린 이상 더 이상 식용이 아니었다.
빠악! 빠악! 따악!
등심살이 사방으로 조각을 튀기며 리프를 뚜드려 쳤고, 리프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두드려 맞기 시작했다.
그 흉험한 기세에 리프의 뒤에 서 있던 리마이누와 주변 사람들은 당황하여 끼어들지도 못하고 리프가 두들겨 맞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털썩.
“후우… 가실까요, 스틸 양?”
“푸흐흐… 동생, 그래도 많이 봐줬네.”
“뭐… 죽일 일이야 아니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이건 못 먹겠군요. 에잉.”
두들겨 맞아 떡이 된 리프를 두고 시안과 스틸은 걸어가 버렸고, 이들을 도저히 놓칠 수 없었던 리마이누는 다짜고짜 앞을 가로막았다.
“잠시… 잠시만요!”
“흠… 혹시 리마이누 경도 저를 무력으로 제재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저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간 리프 경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데 눈으로 똑똑히 본 리마이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아니라… 경은 아까 그 물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제가 그 물건의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건 소장용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물건입니다. 대신 그 안의 자료만이라도… 저에게 넘겨주십시오. 저에게는 너무 소중한 자료입니다.”
너무나 다급했고, 또 중요한 것은 그 안의 자료였기에 리마이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했다.
너무나 솔직담백한 태도에 이 사태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은 어이없어했다. 그런 제안을 한다면 상대가 약점을 쥐고 흔들 것이 아닌가.
모두가 포기하려고 할 때 시안은 모두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좋습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요.”
“헉!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시안을 보며 그제야 리마이누는 리프의 접근방법이 완전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쓰러져 있는 리프에게 인상을 썼다.
“그러면… 저희 숙소로 오시겠습니까? 지금 당장 몇 가지 수리만 하고 충전만 한다면 당장 이 기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흠. 동생, 어떻게 할 거야?”
“좋습니다, 가지요. 어려운 것도 아닌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이 기회에 확인할 수 있게 된 시안은 흔쾌히 허락했고, 스틸도 아까부터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했던 터라 순순히 따라가기로 했다.
리마이누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리도구인 듯하였다.
시안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 방 안에는 시안과 스틸, 그리고 리마이누만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기절한 리프는 옆방에 가 있었고, 스틸은 자신도 궁금하다고 부득불 우겼기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낸 리마이누는 상자의 뒤를 조심스럽게 분리하기 시작했다.
“오…….”
투박한 외관과는 달리 상자 안은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였다.
리마이누는 그 안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떼어냈다.
“그건 무엇인가요?”
“아… 이건 배터리라고 하는 건데… 이제는 쓸 수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방전이라고… 이건 제 손 안의 기계를 작동하게 해주는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다 소모된 것이지요.”
“아하… 탈릭 스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군요.”
“네. 그리고 이 자리에… 이렇게 탈릭 스톤을 끼우고…….”
단순히 탈릭 스톤을 끼워 넣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지 리마이누는 이곳저곳에 탈릭 스톤 가루를 뿌리고 비싼 희귀 금속들을 이용해 여러 가지를 갈아 끼우고 있었다.
이윽고 리마이누는 뜯어내었던 상자의 뒷면을 덮었다.
그리고 앞에 정체 모를 부분을 꾸욱 하고 누르자 유리에 빛이 확 하고 들어왔다.
“되었다……!”
리마이누는 진행하면서도 확신은 없었던지 기계에 변화가 생기자 매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호… 이제 저 기계를 쓸 수 있게 된 건가요?”
“네. 이 안에 있는 자료를 옮겨도 되겠습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그 후에 사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그러도록 하세요. 하하.”
시안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한 것을 얻게 되자 기분이 좋아져서 연신 웃고 있었다.
리마이누는 옆에서 작은 수정 같은 것을 꺼내더니 기계 위에 올려놓았다.
이윽고 수정이 연신 반짝이기 시작했다.
“호오… 신기한 물건이네요.”
“네. 저 안의 자료를 옮겨 담을 목적으로 직접 만들었지요.”
리마이누라는 자가 쑥스럽다는 듯 말했다.
상자에 붙어있는 유리의 가운데에 있는 붉은색 막대기가 초록색으로 차올랐고, 어느덧 그 막대기가 모조리 초록색으로 변하자 리마이누는 수정을 떼어내고 소중하게 가방에 보관했다.
그러고는 다른 수정을 꺼냈다.
“그 수정은 무엇이지요?”
“음… 이것도 제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제 저 기기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자료를 모두 꺼냈기에 텅 빈 상태이지요.”
“으잉?”
시안은 이 남자가 자신을 속인 것인가 하여 쳐다보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리마이누는 시안이 오해할까 봐 얼른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른 언어를 사용한 자료인지라 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대륙어로 만들어진 자료를 새로 넣어드리겠습니다.”
“자료라… 그런데 저 상자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요?”
시안은 얼추 바쁜 게 끝나자 드디어 묻고 싶은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자료를 넣었다 뺐다 한다는데 저게 도대체 무슨 기기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 가장 중요한 걸 말씀 안 드렸군요. 저건… 이곳의 언어로 하면 책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책이요?”
저 쪼그마한 게 책이라니. 들어가 봤자 몇 페이지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얇은 상자를 보며 시안이 되물었다.
“후후. 저게 크기는 작지만… 책으로 치면 수백만 권도 족히 들어갑니다. 이 수정에 담긴 자료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인은 평생 읽어도 읽을 수 없는 양이지요.”
“……?”
‘니츠마탄 같은 것인가…….’
시안은 저 작은 상자에 책이 수백만 권 들어간다니 믿을 수가 없었기에 아공간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후후… 자료가 다 전송되면 직접 사용하는 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리마이누는 그런 시안을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으며 말했다.
목적을 달성하기도 하였고, 시안이 생각보다 위험한 남자가 아니란 것을 깨달아서인지 한결 더 여유 있어 보였다.
이윽고 작동이 시작되자 리마이누는 시안과 스틸에게 친절하게 작동법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하였다. 이곳에서 물건을 찾으려면 열흘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일찍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마이누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이 녀석의 사용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 녀석은 뭐라고 부릅니까?”
시안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아… <악사라이> 라고 부르십시오.”
“악사라이?”
“고대의 언어이지요. <모든 것을 아는 신> 정도가 되겠습니다. 하하! 과장되긴 하였지만… 책을 읽다가 생각이 나서 붙여보았습니다.”
“악사라이라…….”
시안은 새로 생긴 이 녀석이 매우 마음에 들었기에 열심히 사용법을 익혔고 스틸도 여간 신기했는지 옆에서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잘 가요. 후후.”
시안은 새로 얻은 악사라이를 보며 굉장히 흡족해하였고, 리마이누 역시 못 찾을 줄 알았던 자료를 얻었기에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시안, 그렇게 좋아?”
“후후. 스틸 양도 보셨지 않습니까, 이 녀석은 완전 보물이라고요.”
시안은 니츠마탄에서 가이드북과 각종 매뉴얼들을 휙휙 집어 던지고 있었다.
그동안 엄청나게 소중하게 대하더니 대체품이 생기자 가차 없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안이 기분 좋은 이유는 악사라이를 얻은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시안은 아까 스틸이 잠깐 어디 다녀온 사이 리마이누가 자신에게 몰래 속삭여준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후후… 시안 씨도 혈기왕성할 나이일 테니… 여기를 이렇게… 이렇게 해서… 자… 이렇게 들어가 보십시오.’
‘음… 오오? 오오오? 오오오오!’
시안은 아까 악사라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생각하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후후후후…….”
“음? 그 웃음은 뭐지, 동생?”
“후후후후. 아닙니다. 후후후후…….”
스틸은 뭔지는 몰랐지만 무언가에 패배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불쾌함을 지우지 못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시안은 계속 기분 좋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 ☆ ☆
<오오! 리마이누 군! 자료를 입수하였는가!>
“예, 데카두인 님. 도와주신 덕에 여기서 이렇게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리마이누는 <코른>에서 법도회와의 연락을 진행하고 있었다.
영상 건너편으로 보이는 법도회 소속 1급 법도사, 데카두인은 정말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잘했네, 잘했어. 자료를 얻는 데 성공하였다니! 그 수정만 돌아오면 법진을 완성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걸세.>
“감사합니다.”
<정말… 리마이누 군은 하늘이 내려준 보물일세. 어서 돌아오게.>
‘하늘이 내려준 보물이라…….’
하늘이 자신을 여기에 내려준 것은 맞았기에 리마이누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데카두인에게 웃었다.
“네. 라-샤르-로아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만 돌아오면 법진은 금방 완성될 걸세. 조심해서 돌아오게나.>
환하게 자신을 반기는 데카두인을 보며 리마이누는 영상을 끊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