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만의 검공-48화 (49/81)

<48. 보험>

셀라인의 라-샤르-로아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베로니카와 시안의 궁금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라가오페 씨, 라-샤르-로아를 타고 가면 갈 수 있는 것이 맞습니까?”

시안의 물음에 라가오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시안 씨, 뭔가 기대하고 있는 건가요?”

“…….”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 아래에서 기기묘묘한 마법진이 형성되면서 우리를 지하로 끌고 간다거나 저 하늘 높이 있는 기지로 보내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니까 기대를 안 하시는 게 실망도 없을 겁니다.”

“…….”

“갑시다.”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련님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베로니카는 라가오페가 발걸음을 빠르게 하자 급하게 그 뒤를 따라갔다.

“여러분, 다들 신분패는 있으시죠?”

라가오페는 사람들 사이에 줄 서 있는 베로니카와 시안을 보며 말했다.

“있습니다만… 이게 왜 필요한가요?”

베로니카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라가오페는 놀랍다는 듯 대답했다.

“세상에. 라-샤르-로아 한 번도 이용 안 해보셨습니까? 이것도 나름 저희 걸작 중 하나인데 말이죠. 신분패가 있어야 검문소를 통과할 것 아닙니까?”

“…….”

그런 의미로 물어본 것이 아니었는데 졸지에 촌구석 시골 여자 취급을 당한 베로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라-샤르-로아 세 명, 로아-티안으로 가겠습니다.”

‘…로아-티안? 그런 데에 있단 말이야?’

이윽고 라-샤르-로아가 기동을 시작하자 옆에서 의문을 품고 있는 베로니카를 무시하고 라가오페는 품에서 작은 아티팩트를 꺼냈다.

“그게 무엇이지요?”

조그마한 아티팩트의 이곳저곳을 누르며 조작하고 있는 라가오페를 보고 시안이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

“지켜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앞사람들이 차례차례 반대쪽 허공으로 몸을 던졌고 이윽고 시안의 차례가 되었다.

“시안 씨, 베로니카 양, 옆으로 붙으십시오. 이 아티팩트는 반경 2미터밖에 작동을 안 하거든요.”

“……?”

시안과 베로니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라가오페의 곁에 붙자 라가오페가 손에 든 아티팩트를 활성화시켰다.

순간, 베로니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저 멀리, 티안의 수도, 로아-티안의 모습을 비추고 있던 둥근 구 건너편의 광경이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처음 보는 해변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그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라가오페는 둘을 이끌고 라-샤르-로아의 공간 균열을 통과했고, 그들은 라-샤르-로아의 원래 목적지인 로아-티안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의 해변가가 대륙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로아-티안일 리는 없었으니까.

베로니카가 멍하니 바다 쪽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라가오페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 이건 다 좋은데 작동 시간이 얼마 안 되는 게 문제예요.”

“…여기가 어디지요?”

아티팩트를 손에서 쥐었다 폈다 하는 라가오페를 향해 베로니카가 물었다.

전 대륙에 설치된 라-샤르-로아는 몇 개 되지 않고, 또 그렇기에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모두 알고 있는 베로니카였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장소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애초에 유동인구가 엄청난 도시 근처에만 설치되는 라-샤르-로아 중 이렇게 넓은 해변에 설치된 경우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라가오페가 그런 시안과 베로니카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뭐, 모르는 라-샤르-로아이실 겁니다. 왔다 갔다 하려니 귀찮아서 하나 만들었지요. 들고 나를 것도 많은데 몽땅 배로 나를 수도 없고. 어찌 되었건 환영합니다, <아르만>에 온 것을. 가입하지 않고 들어온 분들은 몇 분 안 되는데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라가오페가 걸어가는, 이제껏 해변에 정신이 팔려 베로니카가 미처 보지 못한 해변의 반대편 방향으로 보기만 해도 기가 죽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건축물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이 아르만이라는 곳은 뭘 하는 곳인가요?”

뭔가 거창하게 소개를 마친 라가오페가 설명은 해 주지 않고 쭉 걸어가기만 했기 때문에 베로니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라가오페에게 물어보았다.

“흠… 처음 봤을 때의 리마이누 군과 베로니카 양에게는 공통점이 있군요.”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소리만 하는 라가오페를 보고 베로니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세상에서 와서 그런지 저희를 두려워하지 않네요.”

“……?”

자신의 동생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다른 차원에서 온 것을 아는 것이 이상한 건 아니지만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라가오페를 베로니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해코지한 것도 없는데 왜 자신이 이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인가?

애초에 초인이 인간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을 잘 알지 못 하는 베로니카는 이들이 기분이 살짝 틀어지기만 해도 개미 눌러 죽이듯 그녀를 눌러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이걸 알고 있다면 이렇게 선생님에게 물어보듯 질문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무리 시안이 있다고 하여도.

그렇기에 눈앞의 라가오페를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라가오페는 그런 점을 꼬집은 것이다.

“형수님한테 협박하지 마시지요. 그러다 턱 한 번 더 돌아갑니다.”

“그건 협박 아닙니까.”

궁시렁거리던 라가오페는 이윽고 베로니카의 질문이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이곳이 무얼 하는 곳이냐고 물었지요?”

“네. 동생이 일하는 곳이라고 하니 궁금하네요.”

“뭐… 리미니아 양에게 익숙한 언어로 한다면 하청업체? 외주업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하청업체요?”

이곳의 규모는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았다. 거대한 규모에 비해 사람 수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노동력을 사방에서 기괴한 인간형 골렘들이 움직이며 대체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자신이 살고 있던 차원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현대처럼 꾸며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중세시대를 살다 이곳에 오니 완전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건 본 적도 없는데…….’

라가오페라는 자가 법도회와는 조금 다르다고 한 말의 뜻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남편을 따라 법도회 지부를 가본 적이 있었지만 중세의 상아탑 느낌이었을 뿐 이 정도의 오버테크놀러지를 구현한 곳은 전혀 아니었다. 키라안의 본산, <라-인타로>까지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은 절대 아닐 거라고 베로니카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아마 그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라서요. 그리고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동생을 만나러 오신 것이니까요.”

“……?”

어떤 조직의 하청업체인지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라가오페는 계속하여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건축물들을 쭈욱 지나 크기는 작지만 가장 높은 건축물 앞에 도착한 라가오페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 보았으면 대법도회의 본산인 라-인타로의 타키온이 머무는 탑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탑. 차이점이 있다면 이 탑은 더욱 높이가 높고 홀로 서 있는 타키온의 탑과는 달리 여러 건물들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눈에 보아도 이 탑이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게 생긴 구조였기에 베로니카는 동생이 이곳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탑 안으로 들어가니 바깥과는 다소 다른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자동화된 노동력이 대체하던 바깥쪽과는 달리 안쪽은 수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요정의 후예를 자처하는 실링족부터 시작하여 보기 힘들다는 드콘족, 그리고 수많은 법도사들이 서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자신의 맡은 바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부분 수정 부탁드립니다.”

“계수 측정에 오차가 있는 것 같은데 재측정 한 번 부탁드립니다.”

“거기 애송이들! H-7이 아니라 H-9라고 몇 번을 말해!”

법도사나 기술자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그리고 이 현장에 참석했다면 이곳에 쓰이고 있는 기술과 지식, 자원에 기함을 토했을 것이지만 애초에 이런 쪽은 아예 무지한 베로니카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시안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군요.”

“뭐… 저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인력도 많이 필요하지요. 잘 가르쳐 놓았으니 인간치고는 나름 쓸모가 있지요.”

“…….”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하. 리마이누 군은 저들과는 완전 다릅니다. 저희에게도 소중하다고요.”

그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베로니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동생은 우선 소모품 취급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동생을 이곳에서 빼내기 더욱 힘들 것 같았기에 베로니카의 표정이 살짝 우울해졌다.

“그나저나 저에게 할 제안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안이 궁금해서 물었다. 라가오페라는 남자는 자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는 했지만 이제까지 어떠한 제안도 자신에게 하지 않았다.

단지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에 대답해 주기만 할 뿐.

그 말을 들은 라가오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이야기는 좀 이따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조금 이따 베로니카 양과 리마이누 군이 만나면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때 이야기를 드리면 될 것 같군요. 지금 제안을 해서 시간이 지체되면 일초라도 빨리 동생을 만나고 싶어 하는 베로니카 양이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뭐, 그것도 그렇군요. 이따가 천천히 듣지요.”

조금 걸어 들어가다 보니 탑 내부의 수직 이동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가 존재하고 있었다. 옆의 거대한 물자 수송용이 아닌, 오직 탑승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인지 그 크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세 명 정도 태우기에는 충분했고 이윽고 빠른 속도로 탑의 최상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탑의 최상층에 도착한 베로니카는 떨리는 눈길로 주변을 살폈다.

정체를 모를 기기에 도면, 책들과 자료로 가득한 넓디넓은 방.

그런 방의 입구에 서서 라가오페는 큰 소리로 리마이누를 불렀다.

“리마이누 군! 선물이 있습니다.”

그러자 책장 사이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가오페 씨 오셨습니까? 프로젝트 진행 사항을 체크하러 오신 거라면…….”

“어허,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니까요.”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책장에서 책을 잔뜩 들고 나오며 라가오페를 바라보았고, 이윽고 라가오페의 옆에 두 사람이 더 서있는 것을 보고 의외의 인물들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을 툭 하고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 어어어… 어? 누나?”

“만우야!”

어안이 벙벙해 있는 리마이누를 가서 끌어안는 베로니카를 보고 라가오페는 탄성을 질렀다.

“후후. 감동받을 줄 알았습니다. 캬! 이래서 리마이누 군이 말한 산타라는 자가 이런 행위를 하는가 보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쪽의 초인인 듯한데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했는데.”

“…….”

“뭐, 저희는 자리를 피해주도록 할까요. 두 분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십시오! 시안 씨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러고는 라가오페는 최상층의 한구석에 붙어 있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 문을 열고 앞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옥상이 나타났다.

시안은 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쭈욱 살폈다.

상당한 규모의 섬.

섬은 구석구석 시설들로 채워져 있었고 끊임없이 빛과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제작하고 있었다.

“장관이지요, 시안 씨?”

“그렇군요. 여기가 어디입니까?”

“음… 콘 왕국 남쪽으로 쭉 가면 있는 섬입니다. 지금은 우샤란 왕국인가요? 일반인들은 모르는 곳이죠.”

그 말을 들은 시안이 북쪽을 바라보았지만 시안의 안력으로도 육지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

하지만 시안은 본론이 궁금했기에 라가오페에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무슨 제안을 하려고 한 겁니까? 저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고요?”

“뭐… 그건 이야기가 긴데 일단 제안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조직에 들어오라는 유치한 제안은 아니겠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자신의 성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랬으니 자신의 가족들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을 터.

“시안 씨, 혹시… 보험 하나 드실 생각 없습니까?”

“……?”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시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험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보험.”

“…혹시 제가 죽거나 다치면 돈으로 보상해 준다는 그 보험 말씀이십니까?”

시안은 이 남자가 자신에게 잘못 맞아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닌 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런 표정을 라가오페도 눈치챘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저희가 제안하는 게 그런 것일 리 있겠습니까?”

“하긴…….”

턱이 또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이 외딴 섬까지 자신을 불러서 저런 제안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희가 제안하는 것은 일반적인 노후 보장 보험… 이런 허접한 것이 아닙니다.”

“……?”

“자그마치 사후 보장 보험이란 말이지요! 하하!”

굉장히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하는 라가오페의 표정에 시안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는 말은 완전 헛소리였지만 이만한 섬에 이런 시설을 지어놓고도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은 적이 없는 라가오페였다.

하지만 지금 권하는 보험상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라가오페의 얼굴에 자신감이 그득그득 넘치는 걸로 보아 평범한 것은 절대 아닐 것 같았다.

시안이 호기심을 가지자 라가오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 ☆ ☆

예전, 아주 예전, 위대한 천재가 있었다.

그 천재는 아주 당연하게도 라-반더의 경지에 올랐다.

너무나도 강했기에 평생 적수를 모르고 살았던 그는 자신이 절대 이길 수 없는 강대한 적과 맞닥트리게 된다.

죽음.

아무리 라-반더라고 해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론상 죽을 이유가 없었지만 그는 어느 순간을 넘게 되니 급속도로 생명력이 감소하는 것을 느꼈고 300살이 한계일 것을 깨달았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평생 패배라고는 몰랐던 그는 죽음도 자신을 피해갈 줄 알았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그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안다면 방법이야 찾으면 되는 법.

평생 실패를 몰랐던 남자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그는 전 대륙을 모조리 헤집기 시작했다. 불로와 불사에 관련된 자료는 모조리 긁어모았고, 신기한 종족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대륙 끝이라도 쫓아갔다. 아무리 죽어가고 있어도 그보다 강대한 존재는 없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어느 신비한 종족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심장과 칼에 자신의 힘을 계승하는 대수림의 칼-굴족>

<뼈와 혼을 통해 새로이 되살아나는 하늘산맥의 그라나인족>

희망에 가득 차 그들과 교류를 시도한 남자는 곧 엄청나게 실망하고 만다. 그들의 특수한 불사성은 오로지 자신들 종족에게만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인 남자는 그 방법을 시도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남자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기도 전에 수명이 다 되어서 죽어버렸다.

☆ ☆ ☆

“……?”

“안타까운 결말이죠? 가슴이 아픕니다.”

기승전결에서 이상한 구조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를 듣던 시안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엄청 잘난 척하고 있길래 이야기에 등장하는 천재가 눈앞의 이 남자인 줄 알았다. 사실 그렇게 안 강해 보였지만.

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죽어버렸고 눈앞의 라가오페라는 자는 살아있으니 아무래도 자화자찬은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요?”

“후후. 그럴 리가요. 2부가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이건 조직에 들어온 사람들한테만 이야기해주는 건데 시안 씨는 특별하니 그냥 공개하지요.”

그리고 라가오페는 다시 말을 이었다.

☆ ☆ ☆

놀랍게도 남자는 다시 태어났다.

환생한 채로. 게다가 그 놀라운 천재성까지 그대로 가지고 가진 채로.

어느 정도 자라며 살펴보니 자신이 죽은 후 100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이전의 방법으로는 죽음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힘만 셌지 그걸로 죽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남자는 힘을 키우던 도중 자신이 새로 태어난 몸에 존재하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다.

세상을 바꾸고 비트는 힘.

남자가 새로 태어난 몸은 훗날 엑사르라고 명명된 이능에 특화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욕심이 많았던 남자는 굳이 자신이 하나만 수련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둘 모두 수련을 하였다. 한번 가 보았던 길이기에 빠르게 라-반더의 경지에 올라선 남자는 엑사르까지 수련하고 연구하여 요즘 말로 대법도사라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남자의 목적은 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 생에야말로 죽음을 이기기로 결심한 남자는 칼-굴의 힘과 그라나인의 힘을 열심히 연구하였다. 다행히도 힘만 세지는 반데르와 다르게 법도와 이적은 이런 연구에 매우 유용하였다.

그리고 죽기 전에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전혼옥>

남자의 모든 기술력과 지식, 재료를 결집시켜 탄생시킨 대보구.

죽은 자조차 저승에서 이승으로 불러오는 작은 구슬.

이 전혼옥만 있으면 죽음에서도 되돌아올 수 있다.

남자는 성공하였다. 죽음조차 이겨내는 데에.

☆ ☆ ☆

“캬!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아직 3부는 제작 중이기에 없지만요. 엄청나지 않습니까?”

“세상에, 놀랍군요. 그럼 그 천재라는 남자는 설마… 지금까지 살아있습니까?”

시안은 진심으로 놀랐다. 죽음조차 이겨낼 생각을 하고 거기에 성공하다니! 자신도 한 재능 하는데 그 남자의 재능과 노력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니요. 죽었어요.”

“…….”

“뭐, 힘이 세도 까불다가 더 센 놈 만나면 죽는 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그 남자는 깔끔하게 죽었습니다. 차라리 반데르나 엑사르 둘 중 하나만 팠으면 괜찮았을 텐데 말이지요.”

“허허… 거참…….”

맞는 말이긴 한데 무언가 허무한 결말에 시안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뭐, 시안 씨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닐 겁니다. 그 전혼옥의 제작 방법은 남자가 죽었어도 전해내려 왔으니까요.”

“정말입니까?”

그제야 시안은 조직이 말한 ‘사후보장 보험’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요. 예전에 시안 씨도 한번 보신 적이 있었을 겁니다. 예전에 데카론이라는 소년을 만난 적이 있지요?”

기억을 더듬던 시안은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아, 그러면…….”

“네. 그 데카론이라는 소년이 들고 있던 것이 전혼옥입니다. 그 전혼옥은 리비아스 씨의 소유였지요. 지금은 되살아나서 잘 살고 계시답니다. 그 분도 저희 조직 소속이지요.”

시안은 라가오페의 말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저것만 얻는다면 이제까지의 걱정이 한 번에 해결된다. 물론 저걸 믿고 죽을 자리에 걸어 들어가 위험한 수련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세상사 모르는 일. 그 붉은 구체 안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만 해도 자신보다 강한 놈이 있으랴 했는데 또다시 붉은 구체 안에 갇히지 않았는가?

두 번 일어난 일이 세 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본 시안에게 라가오페는 웃으며 결정타를 꽂아 넣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례 없는 특혜까지 드릴까 합니다. 이게 다 시안 씨 정도 되는 강자이니 제공되는 것이지요.”

“……?”

“가족 연계 보험이라고… 들어 보셨을는지…….”

“그렇다면……?”

“후후. 시안 씨의 가족들까지 전혼옥을 제작해 드리겠다… 이 말입니다. 이거 만들기 엄청 힘들기는 한데 시안 씨의 가치는 그 이상이니까요. 다 시안 씨를 조사하고 나온 맞춤형 플랜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시안은 자신이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가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보호할 수 있다!

비록 가족들이 순순히 죽음에 응한다면 자신의 욕심으로 되살릴 생각까지는 없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가족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자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라가오페의 제안은 그러한 걱정을 완벽하게 제거해 준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관문이 남아있었다.

달콤한 제안에는 비수가 숨어 있는 법. 처음 보는 자신에게 저렇게 과한 제안을 하다니. 뭔가 그 대가로 엄청난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만약… 받아들인다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후후. 뭐, 받아들이실 줄 알았습니다. 이제까지 제안을 거절하신 분이 없었거든요.”

‘이제까지……?’

“게다가 듣고 뿌리치신 분이 없단 뜻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대가도 별것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흠…….”

“놀랍게도 저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만들어 드려요.”

“…….”

하지만 그 제안을 들은 시안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라가오페를 쳐다보았다.

“만들기 엄청 힘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그렇지요. 요즘은 만들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가족들 것까지 만들어 준다면?”

“뭐, 네 개가 필요하겠지요. 혈연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시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들이야 소중하긴 하지만 형의 부인이기에 소중한 것이지 가족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네 개를 다 공짜로 준다고요?”

“흠… 그러니까 이게 좀 복잡한데… 우선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시안 씨, 저희가 이런 제안을 어떤 분들에게 할 것 같습니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리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특이점이라고는 단 하나뿐이니.

“혹시 초인들에게 제공합니까?”

“맞습니다! 그 귀중한 재능과 놀라운 힘! 초인이야말로 너무나도 소중한 재원이지요. 저희는 라-반더나 대법도사 같은 살아 있는 초인이 있으면 가서 이 보험을 제공합니다. 리비아스 씨도 전혼옥의 혜택을 받았지요.”

“거기까지는 이해했습니다.”

“우리의 모토는 단 하나입니다. 절대 강제하지 않는다. 우리 조직의 특성상 강제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모두 스스로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게 저희 모토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험 하나 들어주고 들어오라고 하면 엄청 좋긴 하지만 협박 같지 않습니까?”

“흠…….”

듣고 보니 그랬다. 보험은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사실 초인은 가만 내버려두어도 죽을 일이 거의 없다. 초인끼리 싸워도 서로를 아끼기에 죽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 예전에 스틸 양이 했던 말도 들었다. 늙어죽는 것이 껄끄럽다고 해도 강제로 조직에 들이려고 하면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뭐… 아시겠지만 초인들 성격이 좀 더럽습니까. 아휴… 아주 그냥 난리도 아니지요.”

“뭐…….”

당장 스틸 양만 봐도 각이 나온다.

“그래서 저희는 우선 보험만 제공을 합니다. 그러면 어차피 조직에 들어 올 수밖에 없거든요. 후후.”

음흉하게 웃는 라가오페의 다음 말이 궁금해진 시안은 귀를 쫑긋 세우고 라가오페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혹시 그 전혼옥이라는 걸 만들면 세뇌가 된다거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초인이 세뇌라니요. 하하. 그런 한심한 초인은 있어도 초인으로 안 쳐주겠지요.”

‘하긴…….’

강하기에 초인이 아니라 독존하기에 초인,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순간 초인이 아니다. 말 잘 듣는 강아지일 뿐.

“그러면 어떻게 말을 듣게 되는 것인가요?”

“흠… 이게 그러면 또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아까 2부로 이야기가 끝났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거기에 외전이 또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의 이야기라고 할까요. 그것참, 오늘 설명할 게 참 많군요. 그래도 다 들으셔야 올바른 선택을 하실 수 있겠지요.”

그리고 라가오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안에게 외전을 말해주었다.

☆ ☆ ☆

새로운 삶을 얻은 남자는 마음이 급했다.

저번 생에서 안 해 본 것이 없었기에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성과를 보여야 했다. 이번처럼 재수 좋게 환생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

알다시피 마음이 급하면 행동도 과격해진다.

남자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동안 아주 가벼운 마찰들이 있었다. 물론 남자의 입장에서이다.

남자가 나아가는 방향 아래서 살고 있던 자들은 모조리 박살 나고 뜻이 꺾인 채 날아갔다. 강자가 가겠다는데 약자가 무슨 재주가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무대포로 살면서 자신보다 약한 녀석만 만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개중에는 자신만큼, 혹은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만약 그자가 자신을 피해간다면 모르겠지만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또는 피하지 못 할 이유가 있다면 충돌이 벌어지는 법.

그 일이 남자에게 벌어졌다.

다행히 남자가 동원할 수 있는 힘은 상대가 동원할 수 있는 힘보다 좀 더 강했고 상대는 피눈물을 흘리며 도망가야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남자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피눈물을 흘리며 도망쳤던 상대가 되돌아온 것.

더 큰 문제는 상대가 복수의 대상을 잘못 잡았다는 것에 있다. 이래서 사람이 편을 잘 먹어야 한다.

그 미친놈은 되돌아와서 인간의 초인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더 재수 없는 일은 그 미친놈이 강하기는 엄청 강하고 게다가 늙어 죽지도 않았다.

그 이후로 대륙에는 인간의 초인을 사냥하려고 드는, 늙어 죽지도 않는 사냥꾼이 하나가 탄생하게 되었다.

무장 사냥꾼, 켈-두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초인 사냥꾼.

이 미친놈은 혼자 다니는 초인이 있으면 대륙의 어디에 있건 쫓아가서 죽였다. 보통 초인이 숨기로 작정하면 찾지도 못 하는데 이 녀석은 무슨 재주가 있는지 기어이 찾아왔다.

“불행히도 리비아스 씨도 그때 사망하셨지요. 후후. 다행히도 저희 보험 상품에 가입해 계셨기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고요.”

“…왜 그런 미친놈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몰랐지요?”

“그 미친놈이 초인 말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니까요. 사실 인간이야 뭐, 개미 수준이지요. 그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 활동시기가 짧습니다. 불사의 페널티인지 모르겠지만… 리비아스 씨는 재수 없게 그 활동시기에 걸렸을 뿐이고.”

“흐음…….”

“후후. 그런 미친놈이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초인이라도 별 재주가 있겠습니까? 일대일로는 그냥 탈탈 털립니다. 엄청 강하거든요. 활동 시간이 짧은데도 꼭 한 명씩은 죽었어요. 저희는 항상 전혼옥을 만들어 드리고 이 이야기를 미리 해 드리는데 초인들 반응이 항상 어찌나 똑같은지… 거참…….”

‘죽은 놈들은 약하니까 털린 거겠지! 나는 강하니까 혼자 싸워도 그 미친놈을 이길 수 있다!’

“제가 라-반더치고는 약한 축이라 그분 강냉이를 털어놓고 너 정도 수준이라면 털린다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참 안타깝습니다.”

“…….”

“뭐, 이 정도 되면 대충 짐작하시겠지요?”

“알겠군요.”

보험을 공짜로 들어준다고 하는데 싫어할 초인은 없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저 이야기를 들으면 초인들은 콧방귀를 뀌며 조직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돌아다니겠지.

그러다 저 사냥꾼이라는 녀석을 만나 한번 털리고 되살아나면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다구리를 놓아야겠구나.>

실제로 저 초인 사냥꾼이라는 놈은 조직 소속은 건드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피해 다니면서 홀로 다니는 초인만을 노린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한번 위의 경험을 겪고 되살아난 모든 초인들은 조직에 가입을 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저희 조직이 꾸준히 스카우트를 해 가고 있는 것이지요. 거참… 그냥 들어오면 참 좋을 텐데 꼭 위의 과정을 신고식처럼 거친다니까요. 아까운 전혼옥만 날리고. 리비아스 씨도 모가지가 댕겅 날아가고 되살아난 다음에서야 가입하셨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시안은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중 가장 궁금한 것을 먼저 질문하기로 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시지요.”

“그 사냥꾼이란 놈이… 저보다 강합니까?”

시안은 그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자 라가오페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게 문제이지요. 아마 시안 씨가 더 강할 겁니다. 이제까지 써 먹던 완벽한 방법을 써 먹을 수가 없어요. 흐휴… 그래서 저희가 전례가 없는 가족 연관 보험까지 준비하는 겁니다.”

“흠…….”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을 조직에 들이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는데 자신은 조직의 구성원이나 목표, 심지어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가입의사를 보이면 자세히 알려줄 생각인 것 같은데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또 궁금한 것이 있으니까.

“왜 잡아 죽이지를 않지요?”

“뭐, 저희도 노력합니다. 우선 보이면 쫓아가서 공격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몇 번 쫓아낸 경우도 있지요. 그다음에는 혼자 다니는 자를 다시 습격하니 문제지만. 무슨 수를 쓰는지 엄청 잘 찾아냅니다. 결국 혼자 다니는 분들은 모두 죽더군요.”

“흠… 죽이지를 않고요?”

“문제가… 도망을 엄청나게 잘 가거든요. 절대 못 잡습니다. 시안 씨도 보시면 알 겁니다. 그냥 쫓아내고 다시 동면에 들어가는 걸 기다리는 게 최선입니다. 그러면 한동안은 편하니까요.”

시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처음 설명을 들을 때는 무슨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자 같은 이미지였는데 상당히 치졸한 녀석이었다. 뭉쳐 있는 녀석들은 절대 안 건드리고 이길 만한 녀석들만 때려 주고 죽을 것 같으면 그냥 내빼버리고.

“별 녀석이 다 있군요.”

“어떻게 보면 현명한 것이지요. 복수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최고의 복수를 위해서는 우선 사는 것이 먼저이니까요. 안 뭉쳤으면 초인들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겠지요. 실제로 저희가 못 살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 뒤로도 시안은 이것저것 질문을 하였고 결론을 내렸다.

“특이한 자군요.”

“뭐… 특이하다면 특이하지요. 아직도 비밀이 많습니다, 그 녀석에 대해서는. 궁금한 점은 다 해결되셨습니까?”

“뭐… 대충이요. 그렇다면 지금 대륙에는 그 미친놈이 돌아다니고 있습니까?”

그러자 라가오페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활동기가 아닙니다. 몇십 년 전에 쫓아내고 동면기에 들여 놓았지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혼자 돌아다니지요. 그 시기에는 여러 명이 뭉쳐 다닙니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시안은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틸 양이 연락이 안 되어 이 사냥꾼이라는 녀석에게 당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활동기가 아니라면 안심이다.

‘그런데 스틸 양은 이제까지 왜 안 죽었지? 이제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직에 들어 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활동기가 짧아서 그런가?’

의문이 생겼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이야기대로라면 혼자 돌아다니던 초인을 쫓아다녔다는 것 같은데.

“흠… 그럼 마지막으로 정리해 드리지요. 전혼옥은 그냥 만들어 드립니다. 저희 조직에게 초인은 중요한 인재이니까요. 가입 안 해도 동족에 대한 배려입니다. 가입은… 우선 전혼옥이 만들어진 다음에 결정해 주십시오. 자세한 사항도 그때 알려드리지요.”

“흠…….”

“이건 규칙이라 궁금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비밀스러워 보이려고 안 가르쳐 드리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너무나도 후한 조건. 시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게 다입니까?”

“네. 그게 다이지요. 저희는 강제하지 않습니다. 조직에 대한 정보는 가입을 결정한 후 알려드리는 게 규칙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보통 한 번 죽고 오면 가입을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알게 되지만 시안 씨가 죽을 것 같지는 않으니… 저희가 조건을 걸어도 되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저희가 너무 손해이니까요.”

차라리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에 시안은 귀를 기울였다.

“무엇입니까?”

“아까 말씀드렸지요? 이 전혼옥이라는 게 상당히 만들기가 어렵다고.”

“네.”

“사실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단지 재료가 상당히 구하기 힘들 뿐이지요.”

“재료라면…….”

“아까 말씀드렸지요? 천재였던 남자가 그라나인족과 칼-굴족과 교류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 내었다고.”

“그러셨지요.”

“그렇기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칼-굴의 심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라나인족이 아끼는 라브네의 샘물. 칼-굴이나 그라나인이라면 이럴 필요도 없었겠지만 인간은 둘 다 필요합니다. 그래야 뼈 위에 피와 근육을 입히고 기운을 세우고 혼을 들일 수가 있어요.”

“…….”

시안은 그라나인족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 그라나인족이 살던 산맥이 무너진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라브네는 모조리 말라있더군요. 그것참, 누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그 덕분에 저희가 진행하던 프로젝트 몇 개도 완전 정지되었습니다.”

“…….”

“음?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어쨌거나 심장은 보관해 놓은 게 여유가 좀 있는데 샘물이 똑 떨어졌어요. 쓸모가 굉장히 많거든요.”

“그러면 못 만드는 것 아닙니까?”

“후후. 제가 그러면 시안 씨를 불렀을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이제 샘물은 없어도 됩니다. 대체품이 있습니다. 대체품이라고 하니 말이 이상하군요. 그걸로 만들면 품질은 더 좋거든요.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저희가 하고 있는 연구가 다 돈 낭비가 아닙니다. 전혼옥을 어떻게 좀 더 개량해 볼까 고민하다가 찾은 결과이지요. 원래부터 하고 있는 연구였는데 5년 전에 샘물이 마른 후 대폭 연구 진행을 가속하여 최근에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라가오페는 대체품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시안 자신의 입장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음…….”

“가족에게 선물한다는 셈 치고 구하러 다녀오시면 되겠습니다. 전혼옥이 만들어진 다음 조직에 들어오시면 좋겠지만 물건만 충분히 구해다 주시면 저희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닙니다.”

“아, 그런데 혹시 볼일 먼저 보고 찾아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저희도 제작에 필요한 다른 작업을 준비하려면 몇 달 걸립니다. 그 전까지만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리지요. 누구를 찾으시지요?”

“허… 너무 도와주시는 거 아닙니까?”

“그게 다 시안 씨를 들이려는 저희 노력이라고 생각해 주시지요. 투자라고나 할까요.”

실제로 시안은 마음이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다. 아직 다 듣지도 못 했지만 가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조심해야겠지만 이야기한 게 모두 사실이라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흠…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스틸 양이라고…….”

“스틸 양? 누구입니까?”

라가오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시안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스탄탈 1세입니다.”

“아… 그 라그랑 쪽에 머물고 있던…….”

“아십니까?”

그러자 라가오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혼옥을 만들고 조직에 아직 가입 안 한 유일한 분이니 알지요. 후후. 보통 죽고 나서 가입 조건을 듣기에 그분은 아마 조직의 정체도 잘 모를 겁니다.”

그제야 시안은 예전에 스틸이 말해 주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아… 그로인 그 영감탱… 아저씨가 샘물 한 바가지 떠가지고 가서 자기들이 대단한 걸 만들어 주겠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말도 더듬어서 잘 알아듣지도 못 했어. 짜증 나서 다음에 온 리비아스 아저씨랑은 한 판 붙었지. 지금은 뭐… 다들 살아있으려나 모르겠네. 150년 전이니 죽었겠지 뭐.’

“허… 이미 만들었군요.”

“샘물 옆에 있는 분인데 이미 제안을 했지요, 가지러 간 김에. 제가 간 건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분은 전혼옥을 본 적도 없을 겁니다. 그냥 만들어 놓고 보관만 하고 있지요. 아마 저희 정체도 모를 겁니다.”

라가오페는 그로인이 전해주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아저씨! 그런 거 해줬다고 생색내려면 꺼져! 필요 없으니까! 아니다. 거기 딱 그대로 있어! 오늘 몸 한번 풀자!’

“뭐, 특이한 일도 아닙니다. 대부분 그러지요. 그러다 죽고 나서 가입하는데… 어쩐 일인지 200년도 넘게 잘 살아 있기에 그로인 씨가 간 이후로는 저희도 접촉하진 않았습니다.”

‘조직 규칙이 참 특이하네…….’

시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뭔가 상대를 원하지만 강렬하게 찾지는 않는다.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릴 뿐.

어찌 되었건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들은 그 후 스틸 양을 만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흠… 원점으로 돌아왔군요.”

시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은 되지만 이러면 찾을 방법이 없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우선 아래로 내려가 보지요. 대화가 거의 끝나가는 듯하군요.”

아래층의 대화가 끝나가는 것을 들은 라가오페가 시안에게 말했고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올라왔던 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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