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만의 검공-71화 (72/81)

<71. 수련>

시안은 도착하여 가족들과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수들은 자신의 형과 꼭 끌어안고 뜨거운 해후를 나눈 후 그제야 자신에게 시선이 온 것인지 자신이 어디 다녀왔는지에 대하여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였다.

“예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전 도련님이 방랑벽이 있는 줄 알았어요.”

“하하…….”

시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강제로 방랑하였지만 오 년씩 두 번이나 외출을 다녀온 터라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아주 멋지군그래. 지옥 방랑자라니 말이야…….’

붉은 껍질의 안쪽이나 아펜탈이나 지옥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에 시안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오 년 동안 변한 건 시안뿐만이 아니었다. 시안은 보는 순간 느꼈지만, 아까는 이야기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형, 축하해. 그랑-반더라니.”

시안은 진심을 담아 형을 축하했다. 형은 자신이 없는 오 년 사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그랑-반더의 경지에 올라있었다. 시안의 나이가 스물일곱이니 형의 나이는 서른넷이다. 정말 굉장히 빠른 속도. 예전에 스틸 양이 서른의 나이에 그랑-반더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괄목할 만한 속도이다.

리안은 그런 축하를 받으며 멋쩍은 듯 웃었다.

“뭐, 몸에 좋은 것도 많이 챙겨 먹고… 열심히 수련하다 보니 이렇게 되더구나. 경지에 올랐을 때 네 생각이 가장 많이 났었단다. 작년 이야기지.”

그런 형을 바라보며 시안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래도 좀 안심이 되는구나.’

별 이상한 초인 그 녀석만 제외한다면 이제 딱히 자신의 가족을 위협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놓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리안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시안. 너 혹시 조카들 봤니? 아직 인사 안 했니, 혹시?”

“…조카?”

리안의 말에 시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 형! 대단한데!”

시안의 칭찬에 리안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로만가는 대대로 손이 적기로 유명했으니까. 게다가 분명 리안은 조카‘들’이라고 했다.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빨리 소개해 줘! 엄청 궁금한데.”

“그래그래, 잠시만…….”

그리고 리안은 자신의 아내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고 코라-둠을 비롯한 아내들은 각자 어디론가 흩어졌다.

“엄청 기대된다. 진짜…….”

“동생, 아이들 좋아해?”

스틸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시안이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귀엽지 않습니까.”

“후후. 의외네. 나중에 좋은 아빠가 되려나.”

스틸의 한마디에 시안이 딱 잘라 말했다.

“아, 보는 것만 좋습니다. 키울 자신은 영 없어서…….”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찾으러 간 형수들이 한참을 오지 않자 궁금해진 시안이 형을 보며 물었다.

“…왜 안 오시는 거야?”

끽해야 한두 명일 텐데 사라진 형수님 셋이 모두 오지 않자 시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리안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좀 많단다.”

“…음?”

시안은 리안이 그랑-반더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가문은 손이 귀하기로 유명했다. 항상 한 명의 후손만을 보았고 두 명의 후손을 본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나마 태어난 경우에도 한 명은 시름시름 앓다가 금방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내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많은 아내를 얻는다고 로만가의 후손이 많아졌다면 자신들은 아마 구 처 십 첩을 들이며 세력을 키웠을 것이다. 자신들의 가문은 그 정도의 힘은 있었으니까. 이것저것 해봐도 다 안 되니까 포기한 것이다.

지금 자신들처럼 둘이 무럭무럭 잘 자란 케이스조차 로만가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리안의 말을 들어보니 적은 숫자가 아닌 것 같았다.

“허… 몇 명인데……?”

“음… 코라-둠이 나은 아이들이 둘이고.”

“…….”

“베로니카는 몸이 약해서 그런지 하나뿐이 못 낳았어.”

“…….”

“그리고… 쿠크락샤가 좀 많아.”

“…조카가 몇 인데?”

“다섯.”

“…다 합쳐서?”

“아니, 쿠크락샤만.”

“허… 허허허허허…….”

이 초유의 사태에 시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 있던 스틸이 신기하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로만가에서 저렇게 많이 태어날 수가 있나… 그나저나 동생은 분발 좀 해야겠다. 흐하하하. 이러다 검뿐 아니라 이적도 사용할 수 있게 되겠는데.”

“…제기랄.”

물론 절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신은 나름 고생을 하며 대륙을 지켰는데 그 대가로 기다리고 있는 건 대법도사로의 전직이라니.

시안은 이 억울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정의의 용사 역할을 수행하라는 임무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쪼로록 들어왔다. 시안이 그 아이와 차례차례 인사를 하는 동안 스틸은 쭈욱 아이들을 훑어보더니 한 마디 내뱉었다.

“다들 귀엽게 생겼네.”

“형 얼굴을 보십시오. 딸은 아빠 닮는다지 않습니까. 저 아이들은 나중에 형한테 감사해야 합니다.”

“하긴…….”

부인 셋도 미인에 리안이 대단한 미남이었으니 그 아래에서 못생긴 아이가 태어나기도 힘들었다.

다들 귀엽게 생긴 아이들이었다. 특징이 있다면 쿠크락샤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훨씬 더 컸다는 것.

“타르강 부족의 피를 진하게 타고났나 보군. 수인족은 성장이 굉장히 빠르거든. 보통 열 살이면 성인의 모습을 갖춘다고 알고 있어.”

“호오…….”

“맞습니다.”

안 그래도 다섯 살도 안 된 아이들의 덩치가 이렇게 큰 게 말이 되나 아리송해하고 있던 시안이 스틸의 말을 듣고 손바닥을 쳤고 리안이 스틸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크면 좋은 무장들이 되겠네. 다들 재능이 좋아.”

‘하지만… 시안 같은 아이는 없어 보이는군…….’

사실 스틸이 기대했던 부분은 이거였다. 로만가는 전설 속의 신수 같은 시안이라는 괴수를 배출해냈다. 여덟이나 후손을 낳았다면 혹시 그런 괴수가 하나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보니 그런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였다. 보니까 여덟이 모두 무장의 길을 걷는 것 같지도 않았다.

“뭐… 각자의 길을 존중해 줄 생각입니다. 모두가 무장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리안의 말을 들은 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얘들아. 너희는 이런 칼질 익히지 말고 훌륭하게 자라나렴. 이 대륙은 삼촌이 지키고 있으마.’

주위를 둘러싼 알파들을 떠올린 시안은 내일부터 수련을 시작할 생각을 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 ☆ ☆

크로티아 성에 위치한 한 연무장. 그곳은 로만가의 전용 수련장이었기에 다른 이들은 출입하지 않고 있었다. 리안과 로만 백작은 바깥으로 일을 보러 나간 상태였기에 연무장에는 스틸과 시안, 단둘만이 서있었다.

시안은 스틸을 보며 입을 열었다.

“스틸 양도 같이 수련하실 겁니까?”

“응. 개인적으로 동생이 하는 수련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거 나도 따라 하면 동생처럼 되나? 후후.”

“의미 없는 거 아시면서 그럽니까.”

스틸이나 시안 정도의 경지가 되면 남의 수련을 따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직 자신이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갈고닦아 나가는 것이 중요할 뿐.

하지만 시안이 하는 수련이 뭔지 궁금하다는 스틸의 말은 진심이었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수련해야 저렇게 되는 거지……?’

스틸은 현재, 예전 동생이 도달했던 경지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 강대한 힘을. 예전에 라그랑 지방에서 동생은 정말 많이 봐주고 싸웠다는 것을. 지금의 자신이 예전의 자신을 상대한다면 일 분 안에 곤죽을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열일곱에 시안을 지금의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올려놓은 수련방법을. 재능이 있다고, 루크라의 피를 깨워냈다고 이해가 모두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뭐… 저 같은 경우는 그냥 어떻게 하면 강해지는지가 보였는데… 이번에 새로이 경지에 오르면서 좀 더 할 수 있는 게 늘어났습니다. 그걸 이번 수련에 접목시켜보면 어떨까 고민해보았지요.”

“할 수 있는 게 늘어났어? 뭔데?”

스틸이 궁금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시안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별건 아니고. 이제 몸속의 체내계수를 완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한계야 있지만.”

“허… 알파라는 게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이야?”

시안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스틸은 진심으로 놀랐다. 하지만 시안의 별거 아니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싸우는 데에 별 쓸모가 없었기에.

“근데 이거 뭐… 싸우는 데에 별 도움은 안 됩니다. 다양한 적을 상대하는 데에야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한계치라는 것이 있거든요. 저보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하긴…….”

그걸 자기 마음대로 한도 없이 확장할 수 있다면 알파들 간의 우열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쭉쭉 늘린 다음 자신들 마음대로 깡패처럼 활개치고 다녀도 될 테니.

스틸이 이해한 표정을 짓자 시안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수련에 이용할 수는 있겠더군요. 저번에 극한의 산에 산다는 그… 루크라라는 종족의 이야기를 듣고 힌트를 얻었지요.”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강해진다는 루크라.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체내계수가 역으로 적용되며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의 산은 그들에게는 최고의 수련장소이다.

시안이 지금 드라고나나 크로나를 뚫고 극한의 산으로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체내계수를 쥐어짤 수 있다면 굳이 극한의 산까지 갈 필요는 없다.

시안은 지금 그 작업을 수련에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스틸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동생만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알파들은 못 해?”

그러자 시안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이해가 안 가는데…….”

“뭐가요?”

“예전에 그… 루크라들은 극한의 산이 더 이상 효과가 없어서 알파를 사냥하러 돌아다녔다고 했잖아.”

그러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러면 걔들도 그냥 체내계수를 쥐어짜서 죽음의 위기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자 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는 못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죽을 위기로 몰아넣는 건 불가능합니다. 죽을 정도로 체내계수를 쥐어짜면 본능이 먼저 발동하지요. 무의식적으로 그 선에 가기 전에 풀어버립니다.”

“…….”

“그리고 머리로 알고 있지요. 죽을 위기로 계수를 조정한다고 하지만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그런 걸 죽음의 위기라고는 하지 않지요.”

“그러면 동생은 왜?”

그러자 시안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루크라의 피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허…….”

“비록 죽을 위기까지는 못 가니… 효율은 좀 떨어지겠지만 안 걸고 수련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여기 오기 전에 살짝 해보았는데… 효과가 좋더군요.”

그러자 스틸은 오기 전에 시안이 길바닥에서 하던 것이 생각났다. 오면서 잠깐 잠깐 몸의 밸런스를 잃는 게 이상했는데 그런 걸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하던 게 그거였구나.”

“네. 그때는 이동 중이라 가볍게 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아직 익숙지가 않으니…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말을 마친 시안은 몸의 계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죽이는 방향으로.

☆ ☆ ☆

“음… 시안 씨에게 이 즐거운 소식을 전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라가오페는 즐거운 소식이라고는 했지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한창 작업 중이던 콘-라드는 한마디 툭 내뱉었다.

“네가 그 소식 전해주러 가면 진심 살해당할걸.”

그 말에 라가오페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어쩌나… 뭐, 천천히 고민해 보도록 하지요. 시안 씨도 잠깐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지금은 넘어가고 싶어도 넘어갈 수가 없다. 재건하고 있는 키큘러스의 코어와 아크라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해야 대륙을 이동할 만한 에너지를 모을 수 있을 테니.

통신 이적은 적은 에너지가 들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이상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기에 직접 가서 전해주어야 했다.

라가오페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까드드득!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시안은 온몸을 옥죄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토록 든든하던 전신 모든 요소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변해가고 있었다.

혈관을 흐르던 피는 독이 되어 흘렀다.

근육은 몸을 움직이는 방향이 아닌, 온몸을 쥐어짜는 방향으로 변해갔다.

뼈는 부실해져 갔고 신경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시안은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끼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아직 끝까지 온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몸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리고 있었다.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길이 계속해서 변해갔다.

손쉽게 강해질 수 있던, 몸과 기운이 움직이는 길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변해갔다.

몸의 상태가 변하니 강해지는 길도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나 약해진 상태에서는 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다행히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재능은 착실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루크라들이 강한 이유가 있었구나…….’

이런 걸 매일매일 겪는다면 강해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게다가 그들은 실제로 이 수련을 하던 와중 몇 명 죽어나간다고 한다.

다행히 자신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자신의 피 속에는 루크라의 특성뿐만이 아닌, 인간종의 특성도 같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죽지는 않는다. 어차피 자신의 무의식 속의 본능이 죽음의 선까지 계수를 변화시키는 것은 거부할 것이기에. 그렇기에 시안은 거리낌 없이 체내계수를 더욱더 흉악하게 바꾸어 나갔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강해질 수 있을 때 강해져 놓지 않는다면 정말로 위험해진다. 예전에 자신이 수련을 멈추었던 이유는 죽기 싫어서도 있지만 바깥에 어떤 괴물 같은 녀석들이 있는지 전혀 몰랐었기 때문이다. 라-시안 대륙 안에만 있다면 위험할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바깥에 어떤 녀석들이 있는지 뻔히 아는데 손 놓고 가만히 있는다면 그건 멍청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번 수련은 죽을 정도는 아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기는 하지만.

“끄으윽… 끄윽…….”

“동생, 괜찮아?”

온몸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는 시안을 보며 스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안은 대답할 힘도 없는 듯 손사래를 치며 땅을 손으로 짚으며 일어났다.

‘…움직일 수는 있는 건가…….’

스틸의 걱정처럼 시안은 정말 죽기 직전의 상태까지 몰려있었다. 당장 어제 본 조카들이 자신을 때려주려고 덤벼든다면 한 칼에 아작이 날 정도로 자신의 몸은 만신창이 직전까지 몰려있었다. 그 예전, 케르발에서 아펜탈을 뚫고 간신히 탈출해 나왔을 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그 상태로 시안은 자신의 눈앞에 명확하게 보이는, 길을 따라 움직이기 위해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기운을 돌리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자 몸속에서의 공격은 더욱더 거세어졌다. 평소에 그토록 자신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던 기운이 사정없이 자신의 몸을 쥐어짰다.

그렇지만 시안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강해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

‘삽질이 아니어서 다행이군…….’

온몸에 느껴지는 격통을 무시하며 전신을 쥐어짜고 있던 시안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헛된 일이 전혀 아니었으니.

온몸에 느껴지는 거센 압력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루크라와 인간종의 특성은 착실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전신,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가 자신을 쥐어짜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점점 더 그 한계를 확장하고 있었다. 체내계수가 쑥쑥 자랐다. 물론 자란 체내계수는 다시 자신을 공격하는 용도로 바뀌었지만 그 한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 몸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린다면 수련 이전의 자신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것이다.

‘예전 생각이 나네…….’

쑥쑥 강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예전에 수련하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뿌듯했다.

‘아빠? 이거 왜 해야 하는 거야?’

‘이걸 해야 강해진단다… 시안, 뭐 하니?’

‘그거 너무 느려. 그냥 이렇게 움직이는 게 훨씬 빠른걸. 그리고 나 이제 칼에서 빛도 나온다.’

‘맙소사……!’

‘아름다운 추억이구나.’

일곱 살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안은 고통 속에서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떠오른 생각은 짜증이었다.

‘그나저나…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루크라들이랑 드라쿤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야 수련을 멈추든가 하지… 우선은 크로나를 기준으로 잡을까…….’

자신이 직접 보았던 알파는 크로나뿐이었다. 드라쿤들이 날아오는 걸 보기는 했지만 너무 멀리서 왔기에 정확한 전투력을 알 수는 없었다.

죽지 않는다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 자신은 분쇄기에 들어간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온몸의 가장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까지 난도질당하는 느낌.

어서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한 시안은 이를 악물며 수련에 집중했다.

“워… 나는 따라도 못 하겠네.”

옆에서 보면 죽기 직전의 환자가 비틀거리며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스틸은 시안의 체내계수가 몸 안에서 훅훅 변해가는 것을 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안의 바로 옆에 있는 스틸은 그 변화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저 체내계수의 변화가 파괴를 위해 정렬되었다면, 그리고 외부로 그 힘이 표출되었다면 지금쯤 크로티아 지방에는 무저갱이 하나쯤 생겨있었을 것이다.

‘뭐… 시안은 시안이고 나는 나니까.’

스틸은 시안을 놓아두고 자신도 명상에 들어갔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힘이 아니기에 다스리는 데에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바빠서 수련을 하지 못 하였지만 이 수련법은 자신이 예전 라그랑 지방에 살 때 항상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거대한 연무장은 이윽고 적막으로 가득 찼다. 강대한 존재들이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에 시작한 수련은 밤이 될 때까지 계속 지속되었다.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 시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동생, 그거 오래해도 괜찮은 거야?”

스틸이 걱정스러운 듯 몸을 풀고 있는 시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계치까지 수련하던 시안은 더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몸을 쥐어짠 것이리라.

실제로 시안은 체내계수를 정상으로 되돌렸는데도 굉장히 지쳐보였다. 온몸에서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주변의 차원은 일렁거리고 있는 것이 영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시안을 부축하며 스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시안은 그런 스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강해질 기회가 있을 때 강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바보도 아니고… 대륙에 그런 놈들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는데 어찌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제 인생목표 아시잖아요.”

“하긴…….”

시안의 인생목표. 절대 죽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산다.

어찌 보면 엄청나게 간단한 목표였다. 실제로 어느 정도 위치가 되는 귀족들은 저렇게 살 것이고. 하지만 주변의 상황이 시안을 쉴 수 있게 내버려두지를 않았다.

“흐휴… 진짜 제가 세상에서 최고 강한 줄 알았는데 정말 넓군요.”

“그래서… 언제까지 수련할 생각이야?”

스틸이 물어보자 시안이 간단하게 답했다.

“뭐… 드라쿤이고 하리쟌이고 모조리 덤벼들어도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가장 좋겠지만… 일차 목표는 크로나 정도는 일대일로 이기는 것입니다.”

“허…….”

엄청난 목표를 무슨 신년 계획처럼 말하는 시안을 보니 스틸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얼마나 걸리는데?”

그러자 시안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릅니다.”

“으잉?”

“뭐… 이 길이 어디까지 알려줄지를 모르니까요. 더 빨라질 수도 있고… 더 느려질 수도 있고… 만약 가다가 또 다른 벽이 있을 수도 있고… 이 앞은 완전 미지의 세계이니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지금은 수월하게 강해지고 있지만 또 무슨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허…….”

“그래도 이 평화가 오래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때려잡을 수 있을 수준이 되겠지요. 삼천 년을 이렇게 대치상태로 있었다는데 저 하나 알파가 되었다고 그게 무너지겠습니까. 알파가 저 하나도 아니고.”

“하긴…….”

스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가오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갓 알파가 된 시안 하나가 끼어든다고 힘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려면 그 예전의 전쟁신이나 그랑-라, 혹은 악사라이의 수준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목이 마른데 저 구석에 있는 거 좀 마셔도 되려나…….”

시안은 구석에 박혀 있는 금빛 음료들을 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용도가 뭔지 몰랐기에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지나쳐갔다. 혹시나 비싼 것일 수도 있으니.

스틸과 시안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가족들이 머무는 크로티아 성안으로 들어갔다.

“수련은 끝났니? 생각보다 굉장히 조용하구나.”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 있던 리안이 시안을 보며 말을 걸었다. 그랑-반더끼리 수련을 해도 연무장이 박살이 나는데 초인들이 수련한 것치고는 너무나 조용했기에.

그러자 시안이 자신의 형을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뭐… 대련하는 것도 아니고 요란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조카들은 수련 안 해?”

그러자 리안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붙어서 지도해주고 계신단다. 나도 같이 수련을 하고 있지. 손자 손녀를 굉장히 이뻐 하신단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인간적으로 강해진다면서.”

“…….”

“네가 너무 특출 나서 가르칠 기회를 빼앗긴 걸 담아두셨던 모양이다. 하하!”

“아이고…….”

시안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너도 언제 한번 같이 하자꾸나. 조카들이 하는 모습도 한번 지켜보고.”

그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 조카들이 굉장히 귀여웠기에.

“그나저나… 연무장 한구석에 있던 음료는 뭐야? 묘하게 생겼던데.”

시안은 연무장 한구석에 쌓여 있던 금빛의 음료를 떠올리며 형에게 물어보았다.

리안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맞다. 오 년 동안 없었으니 모를 수 있겠구나. 기묘한 기술을 가진 단체들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응.”

조직들의 존재는 이미 예전에 알고 있었다, 아마란과 비슷한 단체.

아마란, 바로카, 마카나.

아마 예전에 라가오페가 하청업체로 부리던 곳이 틀림없으리라. 초인들이 모두 남겨두고 갔으니 이제 자신들을 얽어맬 존재들이 없어져 세상으로 나온 것일 테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기에 시안은 그들이 세상에 어떤 기술을 풀어놓았는지 알고 있지 못 한 상태였다.

갑자기 그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니 이 음료라는 것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형은 그 단체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건… 시라인이라고 하는 것인데… 하리쟌과의 전쟁 시절에 대북벽의 무인들에게 공급되었던 거란다.”

시라인.

‘성스러운 샘’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포션은 대침공의 초창기, 대북벽을 지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후에 벌어진 어떤 사건 이후로 무장들 사이에서 마치 유행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다.

☆ ☆ ☆

<시라인>

인체를 연구하고 그 비밀을 밝혀내는 연구집단, 바로카에서 내어놓은 자신작.

이 약은 예전, 바로카에서 일하던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 의해 제작된다.

<전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력이 아닌 전투력이다. 회복력은 샌님들이나 신경 쓰는 요소이지. 회복을 촉진시키는 약이 아닌, 전투력을 증강시키는 약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놀라울 정도의 마초적 발상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시라인이었다.

이 놀라운 약의 장점은 단 한 가지였다. 애초에 약 자체가 효력을 높이기 위해 단 하나의 목적에 집중했으니.

그 장점. 복용 시 약 한 시간에서 두 시간가량 복용자의 전투력을 상당히 증강시킨다. 몸의 잠력을 격발시키는 것이기에 하루 정도는 기력이 쇠약해지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증강되는 전투력을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할 만하였다.

어찌 되었건 하리쟌들의 대침공 때문에 무장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던 대북벽에 바로카에서 개발하여 들고 나온 신약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두 시간만 전투력을 상승시킨다고 하여도 그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실제로 시라인이 시험적으로 보급된 전장에서 무장들의 사망률은 대폭 감소하였고, 이를 본 각 왕국들은 앞다투어 대북벽에 파견되어 있던 자국의 무장들에게 이 약을 공급했다.

하지만 이 약이 유명해 진 건 그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장들 중 일부는 여전히 약발로 자신의 전투력을 증강시키는 데에 거부감을 가진 자들이 많았으니까.

<이놈들아! 순수한 수련만으로 올린 경지가 진가를 드러낸다!>

이 약이 들판에 퍼진 산불처럼 퍼져 나간 것은 이 약을 미친 듯이 복용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최전선에서 싸우던 그랑-반더, 쿠쿠타란이 초인의 경지에 오른 뒤이다.

브로샨의 그랑-반더였던 쿠쿠타란은 거의 밥처럼 약을 복용해가며 대수림 깊숙이까지 녀석들을 쫓아다니며 싸웠고 그 결과 전쟁이 발생한 지 2년 만에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

그 후 약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시라인이 부가적으로 온몸을 쥐어짜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수련을 돕는 효과도 있었지만 두 시간 수련하고 하루를 쉬면 남는 장사가 아니었기에 수련용으로 부적합했다.

하지만 쿠쿠타란이 초인의 경지에 이른 후 이 약을 수련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증하였다. 물론 쿠쿠타란처럼 초인이 된 사람은 그 뒤로는 전무했고 수련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후 이 약의 인기는 사그라지었지만.

“저 약들은 대침공 당시에 쓰던 것들이란다. 이제 하리쟌들의 침공이 줄어들어 무장들의 수요가 줄어들었기에 먹고 훈련하라고 연무장에 쌓아두었지. 그 당시 이를 수련용으로 사용하는 무장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아 그곳에 쌓아두었는데… 날을 잡아서 정리를 해야겠구나.”

“허어… 신기한데. 이거 나한테도 효과 있으려나…….”

만약 효과가 있다면 나중에 알파들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자 리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초에 몸을 격발시켜야 강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몸의 통제하에 놓여있는 부분이 적다는 것이지. 몸에 대한 통제력이 올라가는 강자들은 이런 것의 효과를 거의 보지 못 한단다. 평상시에도 그 잠력을 모조리 끌어 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랑-반더까지는 효과가 있지만… 시안 너 정도의 강자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있겠느냐.”

“에잉.”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시안은 입맛을 다셨다.

“항상 바로카에게 감사하고 있단다. 이 약 덕분에 수많은 무장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니. 나를 포함해서.”

“허…….”

‘라가오페 씨도 쓸모 있는 일을 할 때가 있군.’

생각해보면 라가오페가 쓸모없는 짓을 한 때는 많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그 것들 대부분이 자신에게 굉장히 쓸데없고 문제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라가오페가 남겨두고 간 유산이 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안 시안은 라가오페에 대한 평가를 조금 상향 수정했다.

‘뭐… 그래도 봐줄 생각은 없지.’

라가오페는 자신의 수명이 오 년 남았으니 봐달라고 동정표를 던졌으나 시안이 보기에 라가오페는 절대 그대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리라.

‘허… 그러고 보니… 전혼옥도 있군. 이 아저씨 정말…….’

시안은 바깥으로 수련을 하러 가며 라가오페를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기대했다.

☆ ☆ ☆

“흠… 한 달 정도 남았나요, 이동 대법진이 완성되려면?”

라가오페는 콘-라드를 보며 물어보았고 콘-라드는 열심히 코어를 손보고 있다가 대답했다.

“뭐… 그 정도? 코어가 그때쯤이면 수리가 될 테니… 그때면 건너갈 수 있을 거야. 그나저나 직접 가려고?”

그러자 라가오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냔 얼굴로 콘-라드를 쳐다보았다.

“저는 아직 살날이 창창하게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 정도면 아마 전혼옥을 떠올렸을 텐데 이 이동법진을 타고 갔다가 대기 타고 있는 시안 씨에게 걸리면 어떻게 합니까.”

“하긴…….”

라가오페가 한 짓을 생각하면 시안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의 소식까지 들으면 더 화를 낼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보낼 거야?”

콘-라드의 말에 라가오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리비아스 씨 입니다.”

“엉? 왜?”

생뚱맞게 나온 리비아스의 이름에 콘-라드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라가오페가 간단명료하게 일축했다.

“가장 일을 안 하고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런 거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리비아스 씨라면 시안 씨의 힘을 목격했으니 가서 까불다가 맞지도 않을 것입니다.”

“흠…….”

그 말에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바노튼이나 카라칼을 비롯한 나머지 동료들은 아직까지 시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시안이라는 친구가 성격이 더럽거나 그러진 않지만 로바노튼이나 카라칼을 비롯한 동료들의 성격은 굉장히 더럽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특히 주변인물들이라도 해코지하면 난리가 나는 것이고. 가서 시비 걸다 괜히 쳐 맞고 오느니 알아서 조심할 리비아스를 보내는 것이 나았다.

“뭐… 큰일 생기겠습니까. 겨우 소식 하나 전해주고 오는 건데. 산책시킬 겸 다녀오라고 하지요. 안 그래도 요즘 기가 좀 죽은 거 같은데.”

자신의 세상에서는 거의 최강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겨우 백작 급이라는 사실이 서글펐는지 요즘 리비아스는 가끔 슬픈 표정을 짓고는 했다. 가서 기분전환이라도 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런데… 거기 있던 아마란이나 이런 건 왜 다 두고 온 거야? 쓸 만한 것들도 많았는데.”

그러자 라가오페가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그걸 어디다 씁니까, 원숭이들한테나 먹히지.”

“하긴.”

콘-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가오페에게 들은 인간종 시절의 이적은 현재의 이적과는 격이 달랐다. 애초에 그 시절에는 탈릭 스톤 같은 것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이 귀족 급이었던 그들은 보구에 자신들의 에너지를 쑴풍쑴풍 집어넣으면 바로 이적이 발현되었으니. 탈릭 스톤 같은 에너지체를 끼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원숭이들만이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래도 공간이동이 남아있는 건 참 다행입니다. 뭐… 쓸 만한 것들이 있으면 가서 좀 들고 오라고 하면 되겠군요. 이곳에서 작동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저항이 있겠지만 그 대륙에서 백작인 리비아스를 막을 자가 있을 리가 없기에 간단하게 들고 올 수 있을 것이다.

“한 달이라… 시안 씨가 그 기간 동안 많이 강해져 있으면 좋겠군요.”

태평하게 말하지만 속이 탔던 라가오페가 살짝 걱정되는 투를 내비쳤고, 콘-라드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으쓱하며 자신이 하던 일에 집중했다.

☆ ☆ ☆

“흠… 그 녀석들이 언제 도착하지? 이제 슬슬 약속한 때가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쿠쿠타란이 자신의 하렘에 있는 노예 하나의 안마를 받으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데카두인이 벌거벗은 노예를 보고 인상을 찡그리려다가 필사적으로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 32일 남았군요.”

“그때랑은 많이 다를 거야.”

까드득!

쿠쿠타란은 그때의 굴욕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이를 갈았다.

초인이 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어 대수림에서 학살을 벌이던 중 만난 그 녀석들.

그때 쿠쿠타란은 느꼈다. 초인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위가 있다고. 초인의 경지는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더 먼 길이 남아있다고.

당장 이번에 본 시안과 스틸이라는 자만 해도 그렇다. 그자들의 무력은 자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강했다 이거지…….’

덤비지 않기를 잘했다. 조사를 해보니 예전에 스탄탈 1세는 시안 그 아이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고 했으니.

방심할 때가 아니었다. 끝없이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둘 중 한 가지를 해야 한다.

자신이 강해지거나.

자신보다 강한 자를 죽이거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쿠쿠타란은 이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쿠쿠타란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이번에는 아군이 있잖아.”

‘같이 죽으면 가장 좋고…….’

이번에 도착한 든든한 아군을 떠올리며 쿠쿠타란은 입꼬리를 올렸다.

☆ ☆ ☆

“어느덧 이곳에 도착한 지 한 달이구나…….”

시안은 수련장에서 온몸에 김을 뿜으며 수련을 마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을 쥐어짜던 체내계수들은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와 시안의 몸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이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회복된 몸은 수련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것이고, 다음 수련 때 더 강렬하게 자신의 몸을 쥐어짤 것이다.

수련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제쯤이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강해진 힘이 모조리 자신을 공격하니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힘을 다루는 데 능숙해지며 체내계수를 죽음의 마지노선까지 조절하는 능력이 더욱 늘어나 고통 받는 정도는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수련에는 속도가 붙었고, 한 달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강해졌다. 시안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비정상적인 속도로.

어느 정도냐 하면 이제 크로나가 쫓아와도 도망은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싸우면 순식간에 죽겠지만. 시안은 만약 크로나와 드라고나 같은 녀석들이 쫓아오면 어디로 도망갈지 대피처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

‘아이고… 서글픈 내 신세…….’

벌써부터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었지만 원래 힘이 없을 때는 그러는 게 마땅하다. 덤볐다가 개죽음 당하느니 나중에 커서 잘근잘근 밟아주면 그만이다.

덕분에 시안은 엮인 적도 없는 드라고나와 라이오나에 대한 분노까지 무럭무럭 커져가고 있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하고 있는 수련은 고통스러웠기에.

돌아온 시안에게 한 통의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안, 네 이름으로 와 있더구나.”

‘아니… 통신 이적이 있는 시대에 이게 무슨 편지…….’

시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편지를 받아들어 읽어 보았다.

“그나저나 이게 뭐야… 초청장?”

정체불명의 편지를 보며 시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0권에서 계속>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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