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만의 검공-73화 (74/81)

<73. 도주>

시안이 알파의 경지에 오르고 라-시안 대륙에 와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단 하나였다.

<만약, 드라고나 등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지 못 하였는데 그 전에 걸린다면 도대체 어디로 도망가야 할 것인가?>

사람이 항상 경우의 수에는 모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자신의 운세를 볼 때 왜인지 모르지만 뭔가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스틸 양에게는 1차 목표를 드라고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하기는 하였지만 시안의 우선적 목표는 저것이었다. 어딜 가야 걸리지 않고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인지.

오랜 시간 고민하던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루크라의 땅으로 가자.>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동맹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곳에서 숨어 힘을 키우는 것이다. 만약 루크라의 땅으로 가게 된다면 강제로 동맹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터이니. 그런 면에서 라가오페가 자신을 이 땅으로 보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태라는 것이 있다. 만약 이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걸리게 된다면,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전 대륙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은 루크라의 땅, 극한의 산이었다. 삼천 년간 종족전쟁의 평형을 유지해 온 그 안이라면 드라고나나 크로나, 드라쿤들도 그 안으로 섣불리 들어올 수 없을 테니.

목표를 정했으니 이제 수단이 중요하다.

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저 건너편, 돈-나시안 대륙 쪽으로 들어가든가, 혹은 자신이 살고 있는 라-시안 대륙 쪽에서 들어가든가.

당연히 처음 방안이 훨씬 더 안전하다. 자신의 힘만 숨기고 건너간다면 드라쿤들도 모를 테니. 그렇기에 처음에 시안이 생각한 건 공간이동으로 우선 돈-나시안 대륙으로 이동한 후 극한의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좌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아 갈 수 없는 것을 깨닫고 낙심하며 포기한다. 라가오페가 설치해놓은 법진은 양방향 라-샤르-로아가 아닌 일회용 법진이었기에 다시 그곳을 타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라가오페를 향해 투덜거려보았자 이미 답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향은 단 하나이다. 크로나와 드라고나를 뚫고 루크라들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것.

그렇기에 시안의 1차 목표는 그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실력만이라면 모자랄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움직일 길을 알려주는 자신의 재능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오래 도망칠 수는 없겠지만 오래 도망칠 필요도 없다. 루크라의 영역 안까지만 도망가면 되니까.

그리고 여럿이 자신을 쫓아올수록 좋다.

네크라의 기억을 읽어본 결과 그 셋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으니.

어차피 걸린 이상 거리낄 것도 없다. 이제는 속도전이다. 시안은 이제까지 수련한 자신의 에너지를 모조리 뿜어내며 속도를 쭉쭉 올려갔다.

체내계수뿐만 아니라 주변의 환경까지 자신을 위해 조절되고 변해갔다. 공간이 접히고 어그러졌고 시안은 그 사이를 넘나들며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시안의 몸은 반투명한 상태로 공간을 넘나들며 미칠 듯한 속도로 쭉쭉 대수림을 향해 나아갔다.

시안은 라이오나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알리며 크로나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버티면… 루크라의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

대수림은 광대하기 그지없었지만 자신의 속도는 엄청났기에 관통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드라고나와 크로나들은 자신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었지만.

시안이 믿는 점은 하나였다. 자신이 드라고나와 크로나, 라이오나 그 셋 모두에게 탐스러운 존재라는 것.

크로나의 기억을 읽었을 때 그 셋은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가 충돌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하지만 드라고나는 그걸 무시하고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그걸 감수할 만한 정도로 자신이 맛있어 보인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둘에게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그 셋이 견제하는 틈을 노리고 도망간다…….’

이 모든 것이 추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추측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만약 지금 기운을 숨기고 대륙 안에 숨는다면 괴수 놈들은 자신을 찾기 위해 대륙 전체를 쓸어버릴 것이다.

‘제기랄… 공간이동만 가능했어도…….’

라-샤르-로아까지 도망가는 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대수림 너머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시안은 이를 악물며 크로나의 숲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 ☆ ☆

<…꽤나 영악한 놈이군.>

드라고나는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녀석의 기운을 느끼며 녀석이 달리는 방향을 추측하고 이채를 띠었다.

녀석은 정확히 라들이 살고 있는 영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크로나의 영역을 관통해서.

라의 영역에 들어가면 놓칠 수밖에 없다. 그 안은 자신들도 들어가기 껄끄러웠으니. 그 전에 잡아야 한다.

아니, 잡지는 못 해도 다른 놈이 먹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녀석과 자신의 차이가 벌어지게 될 테니. 배가 아파서라도 절대 그렇게 놓아둘 수는 없다.

<크흐흐… 뭐, 우리 셋도 안 본 지 오래되었지. 오랜만에 다들 인사나 하겠구먼.>

드라고나는 더 속도를 올리며 녀석의 뒤를 쫓아 크로나의 영역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에인켈 지방의 라-샤르-로아를 지키던 라룬은 뒤에서 나는 기묘한 소리에 또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빠지직. 빠지지직.

“으잉……?”

라룬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뒤에서는 어디선가 본 듯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또야?”

두 번째 겪는 일이라 내성이 생겼는지 라룬은 그때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조용히 주변으로 가서 엄폐물 뒤로 엎드렸다.

빠지지지직!

공간이 얽히고 접히더니 이윽고 강렬한 푸른빛이 솟아나왔고 예전에 한 번 보았던 푸른 구체는 점점 더 커지더니 안에서 또 한 번 사람을 뱉어내었다.

‘이번에는 또 누구냐…….’

라룬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안에서 걸어나온 인영은 주변의 먼지를 흩어버리며 입을 열었다.

“흠… 어디서 그 시안이라는 자를 찾나. 우선 로만가로 가면 되려나…….”

사내, 리비아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일단 오기는 했는데 어디서 그자를 찾아야 할지가 막막했다.

“라가오페 치사한 자식…….”

아무리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빈둥거리고 있었다지만 이렇게 위험한 임무를 자신에게 떠넘기다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때 붉은 구체를 찢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며 괴성을 지르던 시안을 떠올리니 리비아스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래. 설마 소식만 전하는데… 나한테 무슨 짓을 하겠나.’

그 소식이 썩 안 좋은 소식이라는 게 조금 안타깝긴 했지만 자신은 아무 죄도 없었고 시안이라는 자는 적어도 그런 면에선 철저하다고 했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와중에 웬 원숭이 녀석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있는 것을 본 리비아스는 잘 되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기… 너, 이리 와 보아라.”

“넵!”

‘…응?’

보통 이런 기현상이 생기면 놀라서 나자빠져야 할 텐데 녀석의 태도가 왜인지 모르게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 태도를 본 리비아스는 좋은 소식 하나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혹시 여기로… 한 달 전쯤에 다른 사람이 튀어나왔느냐?”

그러자 눈앞의 원숭이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한 달 전쯤 다른 두 분이 이곳으로 나오셨습니다.”

“좋군.”

단번에 단서를 찾게 된 리비아스가 아주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그 둘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나?”

“네. 크로티아 성의 로만가로 가셨습니다.”

라룬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했고 그에 기꺼워진 리비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좋아. 우선 그쪽으로 가봐야겠구먼.”

리비아스는 로만가가 있다는 크로티아 지방으로 몸을 날렸다.

이틀 정도 걸려 도착한 크로티아 지방에서 리비아스는 별로 달갑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아저씨, 오랜만이야. 여긴 무슨 일이야?”

‘이 망나니도 여기 있었군…….’

리비아스는 눈앞의 스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둘이 도착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했는데 시안이라는 자를 따라 여기까지 왔던 모양이다. 못 본 새에 뭘 먹었는지 이제 자신은 상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콘-라드가 말하길 이제 콘-라드 자신보다 조금 약할 거라고 하길래 설마 하였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안 믿을 수도 없었다.

“시안이라는 자에게 전해줄 말이 있어서 왔지. 그자는 어디에 있니?”

리비아스가 스틸을 보며 물었고 스틸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동생? 무슨 볼일이 있다고 라그랑 지방으로 간다고 하던데. 금방 돌아올 거긴 한데… 내가 대신 전해줄까?”

그러자 리비아스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라그랑 지방까지 가려면 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스틸이 이야기를 대신 전해준다면 그자의 분노를 자신이 뒤집어 쓰게 될 확률이 크게 낮아지게 된다.

자신도 아마란과 바로카 등에 들러 챙겨올 물건이 있으니 이곳에서 스틸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떠나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한 리비아스는 스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대신 좀 부탁하마. 다른 건 아니고… 시안 그자에게 우선 이걸 전해다오.”

“이게 뭔데?”

리비아스가 건네어 준 작은 알 같은 물체를 보며 스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건 아니고… 루크라들의 땅 바로 옆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좌표가 들어있는 아티팩트이다. 라-샤르-로아 가운데에 이 알을 던져놓고 작동시키면 극한의 산 바로 옆의 키큘러스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군. 극한의 산 안쪽으로는 공간이동이 안 되니 그 옆에 내려서 걸어가면 된다고…….”

“…그런데 이걸 왜 주는 거야?”

그러자 리비아스가 라가오페에게 들은 바를 전했다.

“루크라들이 요구했다더군. 시간이 얼마 없으니 동맹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지만… 개죽음당하면 안 되니 우선 자신들이 수준을 보고 적당한 요구를 하겠다고 자신들의 영토로 들어오라고 하더군. 자신들은 나갈 수 없으니.”

“허…….”

“뭐… 시안 그자는 가기 싫어하겠지만 안 갈 수는 없겠지. 어차피 루크라들이 무너지면 모두 죽는 건 마찬가지이다.”

“휴…….”

과연 시안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높아지는 혈압에 뒷목을 움켜잡았을 것이다.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끌려가서 동맹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니. 앞으로 고생문이 훤히 열린 시안이 안쓰러워진 스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야기와 알을 전해주려고 왔다. 이 알이 없으면 드라고나와 크로나를 뚫고 지나가야 할 테니. 그러면 그 시안이라는 자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

“…라고 라가오페가 전해달라더군. 어차피 싸울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드잡이질 할 필요는 없으니 올 때는 편하게 오라고 말이야.”

“뭐… 오면 전해줄게. 뭐… 볼일은 더 없고?”

그러자 리비아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다. 시안이라는 자에게 알과 말을 잘 전해다오.”

“알겠어. 잘 가.”

그나마 동생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 스틸은 고개를 끄덕이며 리비아스를 배웅했다.

시안이 라그랑 지방에 도착하기 정확히 반나절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한참을 달려가던 시안은 눈앞의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자신이 움직여야 할 길이 격렬하게 꺾이고 꼬이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별일 없으면 최단거리로 뻗어나가야 할 길이 이렇게 꼬일 이유는 단 하나뿐이기에.

“왔구나…….”

시안은 이를 악물고 길을 따라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길은 자신이 따라 하기 벅찰 정도로 굉장히 격한 동작을 요구하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다가오고 있는 위기가 그 정도는 해주어야 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시안이 몸을 비틀어 피한 자리로 무언가가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와 적중했다.

파괴의 범위는 결코 크지 않았다. 사람 하나 정도 간신히 빠져들어갈 정도의 구멍.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있다면 결코 눈치 못 챌 정도의 변화.

하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본 시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격이 적중한 자리의 시공이 모조리 파괴된 것도 모자라 주변의 공간들이 허물어지듯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에게 공격을 한 자의 기감은 아직 느껴지지도 않았다. 저 먼 거리에서 이 정도의 파괴력과 정밀도를 가진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저 안에 빠져들었다면 죽지는 않아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다.

‘상상 이상이구나…….’

보아하니 죽이려고 하는 공격 같지도 않았다. 맞으면 확실히 불구가 되겠지만. 저것만 보아도 지금 공격을 하는 자는 자신을 먹어치우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하고 있었다.

질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이를 꽉 악물고 황급히 길을 따라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체내의 모든 계수가 생존을 위해 길이 요구하는 동작을 따라가기 위해 정렬되었다. 수련으로 몸과 계수를 완벽하게 다루는 능력을 올려놓지 않았다면 길이 요구하는 동작을 몇 번 따라 하지도 못 하고 저 공격에 격중 당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길은 자신에게 사력을 다해서 움직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시안이 요리조리 몸을 틀며 움직일 때마다 기묘한 구체가 저 멀리에서 날아와 적중하며 시안 주변의 공간을 퍽퍽 파내고 있었다. 시안은 마치 무너져가는 절벽 위의 길을 달려가듯 필사적으로 달리며 머릿속으로 이런 대파괴를 벌이고 있는 괴수가 누구일지를 떠올렸다.

‘누구 공격이지… 드라고나? 라이오나?’

아직 크로나의 영역까지는 도달하지도 못 하였다. 그렇기에 시안은 이 공격이 둘 중 하나의 공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둘 중 누가 되었건 간에 자신에겐 지극히 위험하다는 것 하나였다.

필사적으로 피하던 시안은 갑자기 길이 한 층 더 복잡하게 꼬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 더 왔구나!’

시안은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저 둘이 협동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다면 길은 더 단순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피할 수도 없었을 테니. 그대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받고 그대로 한 줌 핏덩이로 변한 후 녀석들에게 삼켜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길은 더 복잡해졌지만 피하기는 훨씬 더 수월해졌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움직여도 그 길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으니. 물론 아까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뜻이지 방심할 수 있는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도 금방이라도 갈려 들어갈 것 같았던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아주 적절한 순간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시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더욱 빠른 속도로 크로나의 영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빌어먹을 자식…….>

저 멀리서 훼방을 놓고 있는 라이오나를 보며 드라고나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동시에 저 앞에서 도망치는 녀석의 머리가 꽤 좋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걸렸다 싶은 순간 사방으로 기파를 뿌리며 라이오나를 끌어들였다. 아마 라이오나도 엄청난 속도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녀석이 꽤나 잘 피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아니, 오히려 기껍기까지 하였다.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이 먹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아질 테니.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녀석을 향해 공격했다. 잘 피하고 있기는 했지만 저 정도면 완전히 손을 벗어나기 전에는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멀리서 푸른색의 광선이 쏘아져 나오면서 자신의 공격을 어그러트리는 동시에 저기 있는 맛있는 먹잇감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기 있는 저 녀석을 먹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목적은 나머지 두 녀석을 먹어치우는 것이니.

<해보자는 거지… 그래, 셋은 너무 많지. 이 기회에 좀 줄이는 것도 좋겠군. 아주 그냥 두들겨주마.>

어차피 처음 드잡이질을 벌이는 것도 아니었다. 드라고나는 속도를 유지하며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무차별적으로 먹잇감과 라이오나를 향해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 ☆ ☆

‘좀 더 편해지는… 이런 제기랄!’

시안은 조금 더 편해지는가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다시 빡빡해지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자신의 길옆으로 구멍을 뻥뻥 뚫어놓는 공격은 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 옆에 새로운 공격이 추가되었기에 결국 그게 그거였다.

새롭게 추가된 공격은 공간에 구멍을 뚫어놓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흉험함은 더욱 심했다. 저 멀리서 날아오는 빛과 같은 광선이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시안은 필사적으로 몸을 틀며 피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 녀석은 별로 자신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인지 정말 죽일 생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어 한층 더 까다로웠다.

시안의 몸을 스쳐 지나간 광선 한 줄기가 땅으로 파고 들어갔다.

파슥!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빛줄기는 마치 호수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땅을 쑤욱 뚫고 들어갔다.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시안의 기감으로도 그 끝이 잡히지가 않았다.

‘크윽…….’

이리저리 피하던 와중 시안은 공격 하나를 얻어맞고 비틀거렸다.

‘커억……!’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에 시안은 이를 악물었지만 여기서 쓰러지면 정말로 죽는다. 다행히 그동안의 훈련으로 고통에 대해 굉장한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체내계수를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는 몰라도 공격의 강도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기에 한 대 맞았지만 어느 정도 버티며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실력이 계속 올라가는구나…….’

계속해서 닥쳐오는 죽음의 위기가 시안의 몸속에 있는 루크라의 특성을 맹렬하게 발동시켰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실력은 쑥쑥 증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도망치기 편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와중 시안은 갑작스럽게 엄청난 각도로 꺾이는 선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한 마리 더 왔구나…….’

왼쪽으로 급격하게 꺾이는 선은 저 멀리, 오른쪽에서 어떤 강대한 존재가 달려오고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분명 크로나일 것이다. 시안은 맹렬하게 자신의 주변을 박살 내는 공격들을 피하며 잽싸게 방향을 왼쪽으로 꺾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이게 웬 떡… 이 아니군. 빌어먹을 놈. 맛있어서 그런가, 뭘 이렇게 홀리고 다녀.>

크로나는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온 녀석을 보며 반색했다. 예전에 자신이 놓친 그 녀석의 기파와 정확히 일치했기에. 게다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월등하게 강해진 상태였다. 그 당시 녀석을 놓칠 때는 먹어도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기에 잡아놓고 키워서 먹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대로 홀랑 삼켜도 큰 도움이 될 정도로.

문제는 그 뒤를 맹렬하게 따라붙으며 공격을 퍼붓고 있는 드라고나와 라이오나였다. 녀석들은 누가 성질 더러운 녀석들 아니라고 할까 봐 서로를 엄청나게 공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먹잇감을 놓칠까 봐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점점 서로에게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는지 오히려 먹잇감에 대한 공격은 줄고 서로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고 있었다. 먹잇감을 압박은 하고 있었지만 저러다가는 놓칠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크로나는 최대한 빠르게, 전력을 다해 먹잇감을 향해 달려갔다. 저 두 녀석들이 멍청하게 드잡이질을 하는 동안 녀석을 홀라당 집어삼키기 위해.

하지만 그 순간, 녀석에게 쏟아지던 공격이 무자비하게 크로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크로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는지 앞발을 휘돌려 맹렬하게 기파를 쏘아내며 그 공격을 막아갔다.

<이… 이 멍청한 녀석들! 우선 잡아야 나눠먹든가 할 것 아니냐!>

물론 나눠먹을 생각은 한 푼도 없었지만 크로나는 열이 받아 외치며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들을 쳐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뺨다구를 후리고 간 녀석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열심히 쫓아갔지만 더더욱 거세지는 공격에 결국 열이 받은 크로나는 결국 먹잇감을 쫓던 와중 저 멀리 날아오는 라이오나와 드라고나를 향해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 이 새끼들아. 한번 해보자!>

어차피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자신들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이다. 그곳은 라의 영역이니.

자신이 전력을 다해 쫓는다면 잡을 수 있겠지만 저 뒤의 성격 더러운 두 녀석은 그걸 가만히 보지 않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본 밉상인 저 녀석들이나 두들겨 패주어야겠다고 생각한 크로나는 전력을 다해 허공에 떠있는 드라고나와 라이오나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 ☆ ☆

“후… 살아남은 건가…….”

더 이상 자신에게 위기를 강요하지 않고 눈앞의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을 보며 시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멀리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거대한 산이 보였다. 아마도 저게 극한의 산이라는 곳이리라. 기묘한 느낌이 나는 묘한 산은 척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뒤에서는 세 괴수들이 격하게 치고받고 있었지만 다행히 대수림 안쪽에서 피해가 끝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라-시안 대륙 쪽에는 이득이리라. 하리쟌들이 쉽게 건너갈 수 없을 테니.

당장의 문제는 자신이었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뒤의 저 난장판을 뚫고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저 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박살 나고 있었다. 저런 녀석들이 전력으로 자신을 잡으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는 불 보듯 뻔했기에 시안은 다시 한 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저쪽으로는 못 돌아가겠군…….’

시안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산을 보며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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