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아주머니, 아들은 없으세요?2017.08.18.
하루 만에 다시 오전 비행기로 오아후 섬으로 되돌아온 소현과 애주는 호텔에 이른 체크인을 하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서정한을 만나더라도 길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얼굴만 보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좋을 것 같았으니까.
「모레까지 어떻게 기다리죠.」
그날, 손을 잡고 걸으며 조용한 음성으로 그가 말했었다.
「내일 건너뛰고 바로 모레였으면 좋겠는데.」
아쉬운 눈빛으로 소현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 돌리며 보고 싶을 것 같다, 나직하게 중얼거리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소현이 일정을 바꾸어 오아후로 돌아온 것을 알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보고 싶은 건 결코 당신만이 아니었음을 전하면, 이토록 완벽한 확신을 주는 행동에 그의 마음은 어떨까.
이런 만남은 생각도 못 하고 있을 테니 당황은 하겠지만 그래도 내심 기뻐하지 않을까.
기대를 담뿍 품은 채 소현은 와이키키 해변으로 나갔다.
청쾌하고 맑은 날씨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여기 동상 있다. 언니 그때도 이쯤이었죠?”
“응, 맞다, 여기.”
와이키키 인증샷 성지인 듀크 카하나모쿠의 동상 앞을 지나자 소현은 감회가 새로웠다.
하와이 사람들의 전통 놀이였던 서핑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 근대 서핑의 창시자, 서핑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은 이 사람의 동상 앞에서 소현도 즐겁게 사진을 찍었었다.
듀크의 축복일까. 괜히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짜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는 남자와 이렇게 인연이 닿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동상 뒤쪽의 해변에서 서정한을 처음 보았었다. 와이키키 비치에서 가장 유명한 동상이기에 다시 그를 찾아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정한을 만나러 바다 쪽으로 가는 걸음에 두근두근 설렘이 묻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그를 바로 발견할 수는 없었다.
“지금 강습시간은 아닌가 보다.”
“그러게요. 어차피 시간도 모르고 와본 거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좀 더 찾아봐요.”
애주는 더욱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오전에 강습 끝내고 벌써 간 거 아닐까. 다시 안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에이, 강습이 오전에만 잠깐 있었으면 어떻게든 언니랑 같이 있을 시간 더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적극적이었는데.”
하긴, 그는 너무나 아쉽다는 모습을 보였었다.
“오전에 왔다 갔더라도 오후에 다시 강습하러 올 수도 있으니까, 실망하긴 아직 이르죠.”
“그래, 그렇겠다.”
“서핑샵 가서 물어봐도 되겠어요. 이따 근처에 있는 곳들 한번 돌아봐요.”
결국 비치에서는 서정한의 머리카락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서려는 때였다.
애주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 저번에 우리한테 말 걸었던 그 서퍼 맞죠, 저 사람?”
서프보드를 끼고 걸어 나오는 한 외국인이 보였다.
전에 애주와 소현이 서정한을 보고 있을 때 말을 걸어왔던 그 사람.
「저 친구는 강습 예약이 꽉 찼어. 아마 안 될걸? 놀면서 해서 몇 타임 하지도 않거든.」
분명 서정한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저 사람한테 물어봐요. 친한 거 같은데.”
“그래.”
소현은 그 외국인에게로 걸어갔다. 잠깐, 하고 불러 세워 돌아본 그에게 혹시 한을 아느냐고 물었다.
『알지. 우리 샵 스타인데!』
역시 같은 서핑샵에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혹시 오늘 나왔었나요? 이따 오후에 또 오는지 알 수 있어요?』
소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외국인 서퍼는 흐음, 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오전에 끝내고 갔는데, 오후에는 안 와. 왜? 너희도 한에게 관심 있어?』
‘너희도’라는 말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그 정도 외모에 여자가 안 따를 리 없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외국인 서퍼는 단호히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꿈 깨는 게 좋을 거야. 걔 좋다고 줄 선 여자가 하나둘이 아니거든.』
『당연히 그렇겠죠.』
소현도 지지 않고 대답했으나, 외국인 서퍼는 이내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다고 백날 따라다녀봐야 소용없을 거다. 미모의 애인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기도 바쁜 사람을.』
당황한 표정의 소현과 애주를 두고 돌아서는 외국인 서퍼는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자연스러웠다.
몇 걸음 떨어져 다른 서퍼와 마주친 그는 이쪽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을 했다. 상황을 알겠다는 듯 또 다른 서퍼남은 웃음을 터트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한은 절대 바람 안 피울걸! 차라리 너희들 나랑 놀래?』
실컷 놀리듯 말한 그들이 웃으며 이내 저만치 멀어졌다.
그때까지 소현은 혼이 나간 얼굴로 서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주야, 내가 아무래도 리스닝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데. 잘못 들은 거 맞지……?”
“언니, 저는 원래 대충 알아듣지만 이번엔 더 대충 알아들었어요. 뭘 들었든 잘못 들은 게 맞는 같아요…….”
미모의 애인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바쁘다니.
절대 바람 안 피울 거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오해가 있나 보다. 아니면 저 사람들이 장난을 치는 거겠지.”
“그, 그래요! 그럴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점심이나 먹자!”
소현은 애써 활달하게 웃었다. 폭탄처럼 떨어진 말들을 못 들은 셈 치고 애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중요한 건 점심 메뉴뿐이라는 듯.
“‘치즈버거 인 파라다이스’ 갈까요? 여기서 가깝던데. 저쪽으로 쭉 걸어가면 나올 거예요, 아마.”
“응, 배고프다. 지금도 많이 기다려야 할까?”
“시간이 애매해서 괜찮을 거예요. 가서 우리 칼로리 보충이나 합시다!”
“그래, 아침부터 서두르느라 너무 진 뺐다. 얼른 가자.”
소현은 애주와 팔짱을 끼고 밝게 웃었다.
서정한에게는 내일 자세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저녁에 만나면 그 다음 날 서울에 돌아가야 하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최선일 듯했다.
그리고 와이키키 맛집으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어, 애주야. 저 아주머니!”
맛집과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선, 수영복과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오가는 여유로운 길이었다. 그 길을 걷던 중 소현은 도착 첫날 공항에서 보았던 여인을 발견했다.
찻길 맞은편으로 비치 바깥을 따라 낮은 구름, 야자수가 길게 이어진 도로 쪽에 그녀는 어떤 여자, 그리고 큰 개 한 마리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리 공항에서 만난 그 아줌마 맞죠? 우와!”
애주도 그녀를 발견했다.
신호 앞에 선 두 사람은 이내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반가워서 인사라도 할 요량이었다.
첫날 너무도 친절히 안내해준 덕분에 여행이 더 즐거웠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교민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맛집에 갈 때마다 너무도 만족스러워서 꼭 다시 인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반갑고 기뻤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란 말이 역시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쌓인 우연의 순간들이 삶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주머니!”
한국어로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돌아보았다. 옆에 있던 그녀보다 나이가 적어 보이는 여자, 그리고 순하게 생긴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도 걸음을 멈추었다.
“지난번에 본 아가씨들이네.”
소현과 애주를 알아본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여행 잘하고 있어요?”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우연히 또 만나다니, 너무너무 반가운 거 있죠.”
“아주머니 알려주신 곳들 다 정말 좋았어요. 꼭 감사인사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봬서 좋네요.”
“좋았다니 다행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나한테 ‘아주머니’라고 부르네요.”
“네?”
“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는데 자꾸 ‘아주머니’라고 하고. 나 그렇게 늙어 보이나?”
그녀의 말에 소현과 애주는 잠시 멍해졌다. 이 지역에서는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게 실례인가…….
피부가 상당히 곱긴 하지만 분명히 사오십 대로 보였다. 아주머니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뭘 잘못한 거지?
게다가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는데.’라니. 소현과 애주는 이십 대인데, 엄마뻘인 중년 여인에게서 나이 차 어택이 들어올 줄이야.
우, 우리를 혹시 사십 대로 보시는 건 아니겠지.
그녀가 잠시 골든 리트리버의 상태를 살피러 몸을 낮추어 앉았을 때, 옆에 있던 여자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우리 언니가 너무 젊게 살아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말아요.”
여동생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고, 소현과 애주도 농담으로 이해하여 기분 좋게 응수했다.
“아, 그럼 저희도 언니라고 부르면 되겠어요.”
“이렇게 젊고 예쁘신 분한테 아주머니라니, 우리가 잘못했네. 당연히 언니지.”
소현과 애주의 말을 듣고, 쪼그려 앉아 있던 교민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햇살에 부서지듯 환한 미소가 퍼졌다. 아이처럼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웃음이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가득 배어 있는 미소.
웃는 아주머니를 내려다보던 소현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도.
“이 개 너무 예뻐요.”
황금빛 고운 물결처럼 윤기가 흐르는 털을 바라보며 소현이 대화를 이었고, 애주가 기다렸다는 듯 아주머니의 곁에 자신도 몸을 낮추어 앉아 말을 섞었다.
“진짜 예뻐요, 엄청 순한 것 같고. 아주머, 아니, 언니가 키우시는 개예요?”
그 말에 아주머니는 아까보다 더욱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우리 애인이 키우는 개. 우리 강아지 참 예쁘죠. 원래 동네에서 산책시키는데, 오늘은 이쪽으로 데리고 나왔어요.”
“아아, 그 공항에서 기다리셨던 애인분.”
애주가 반갑게 대꾸하자, 아주머니의 여동생이 놀란 얼굴로 대화에 참여했다.
“언니, 나 없이 공항에 나갔었어?”
앗, 비밀이었는데, 하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는 입술을 닫으며 고운 눈망울을 반짝였다. 약간의 장난기가 스치는 아주머니의 얼굴과 다르게 여동생은 식겁했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혼자 절대 나가지 말랬지. 언제 나간 거야?”
“걱정 마, 잘 들어왔었잖아. 별일 없었어.”
타인의 뜻 모를 대화 배경을 유추할 만한 정보가 전혀 없기에 소현과 애주는 그저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다.
길에서 잠시 만난 사이에,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며 깊게 관여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여튼 애인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지. 진짜 못 말린다.”
그런데 아주머니의 애인이라.
그때도 의아했지만 지금도 그랬다. 이상한 기운이 팔을 스치며 미약한 전율이 일었다.
소현은 애인의 개라는 골든 리트리버를 바라보았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 개구나. 너무 예쁘다, 지금 몇 살이에요?」
「두 살이에요.」
「이름은요?」
「루시.」
전날 밤 서정한과 걷던 중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가 키우는 개도 골든 리트리버였는데.
카마올레 해변공원 근처에서 강아지와 함께 밤 산책을 나온 사람을 보고, 소현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이야기를 꺼냈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너무 슬퍼서 일주일 넘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내내 울기만 했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후로는 아예 강아지를 다시 키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나도 그랬어요.」
서정한 역시 어릴 때 떠나보낸 강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님이 연애시절부터 함께 키워서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가족으로 존재했었다던 개.
밤이 아니었다면 그 쓸쓸해진 눈빛을 완연히 느낄 수 있었을까.
「못 잊어서 또 키우는 거예요?」
게다가 똑같은 견종인 골든 리트리버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떠나보낸 강아지를 잊지 못해 다시 키우는 사람도 있고, 잊지 못해 결코 키울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소현과 그는 달랐다. 한 가지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다.
식구를 잃었다는 깊은 상실감만큼은 꼭 같았다.
서정한은 개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모래사장에서, 서정한이 골든 리트리버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웃으며 찍은 사진.
휴대전화가 아닌, 인화한 종이 사진이었다.
예쁘다며 나이와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그가 대답했었다. 두 살, 이름은 루시라고.
그리고 지금.
아주머니와 애주 곁으로 몸을 낮추어 내린 소현은 개의 목걸이 펜던트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LUCY]
“이 개, ……몇 살이에요?”
소현의 질문에 아주머니는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두 살이에요.”
사진 속 서정한 옆에 얌전히 있던 루시가, 지금 눈앞에 있다.
“혹시 아주머니, 아들은 없으세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서정한이 키우는 루시. 그리고 아주머니의 애인이 키우는 루시. 그렇다면 서정한이 아주머니의 애인이란 말인데.
이름과 나이와 외모가 일치하는 개를 키우는 하와이 교민 두 사람, 그중 아주머니는 딱 어머니들 나이대로 보였고, 이런 우연도 흔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너무도 다정하고 상냥한 분이니 아들을 애인이라 칭할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소현은 혹시 이 아주머니가 서정한의 어머니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유추했다.
하지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시집도 안 갔는데 내가 무슨 아들이 있겠어요?”
당황스러웠다.
아주머니가 시집을 안 갔다? 아들이 없다?
소현은 아주머니의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가 처녀라는 말이 사실인가요, 하는 얼굴로.
“그래, 애인이랑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아들은 무슨 아들. 아직 아들 생길 때는 아니지.”
여동생은 아주머니의 말을 그대로 받으며 수긍했다.
‘아, 그럼 내가 착각했나.’
소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 처녀라는 아주머니에게 서정한 같은 큰 아들이 있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루시야 뭐, 동명이견일 수도 있지. 하와이 하늘 아래 두 살의 루시가 어디 이 개 하나뿐일까.
그러나 애인과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머니는 조금 더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요즘 좀 속상하거든요.”
“네? 왜요?”
“우리 애인이, 내가 결혼하자, 하자, 노래를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해서.”
길에서 만나 이런 얘기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어디 자리라도 잡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이는 좀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라 내가 잡는 게 싫은가 봐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내버려뒀는데,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지. 내가 더는 안 되겠어서 요즘은 결혼하자고 엄청 조르는 중이에요.”
이렇게 키우는 개를 대신 데리고 나와 산책할 정도면 집에도 드나드는 사이일 텐데.
아주머니 나이가 이렇게 되도록 결혼도 안 해주고 버티는 애인이라니,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 아저씨 좀 너무하네.
소현은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남의 연애사에 자신이 뭐라고 첨언을 하겠는가.
그저, 정말 속상하시겠어요, 하고 공감을 해줄 뿐.
이에 민망한 듯 여동생이 덧붙였다.
“아가씨들이 이해해요. 우리 언니가 원래 이렇게 한탄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에이, 괜찮아요.”
이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소현은 생전의 엄마가 슈퍼든 목욕탕이든 어디든 장소 가리지 않고 처음 본 사람들과도 온갖 이야기 다 나누며 쉽게 말을 트는 것을 기억했다.
지금 아주머니를 보니 소현의 마음에 왠지 모를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우리 사는 동네는 관광지도 아니고 한국인도 별로 없거든요. 특히 여기 하와이에서 동양인은 일본인이 대부분이고 해서, 언니가 한국인만 만나면 그렇게 반가운가 봐요. 그래도 이런 얘기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못 살아.”
“아녜요, 정말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소현은 이내 웃으며 이어 말했다.
“아주머, 아니, 언니, 꼭 결혼 골인하세요.”
아주머니의 바람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꼭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소현은 축복의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나이를 잊게 할 만큼 화사하고 깨끗한 웃음이 가득히 퍼지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소현의 마음마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에 식당에서 서정한 씨를 본 거예요. ……아주머니랑 만나는.”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천천히 풀어놓는 소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정한이 말했다.
“힐튼 빌리지 근처에 있던 식당이겠네요. 일본인이 주인이고 2층에 있던 곳. 거기도 그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신 식당이었을 거구요.”
“……맞아요.”
“알고 보니 난 아주머니 아들이 아니라 애인이었고.”
소현이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때의 모습은 그랬다.
팔짱을 끼는 아주머니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토닥이고,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정한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개쓰레기 맞네.”
정한이 태연하게 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소현은 혼란스러웠다. 이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가.
“…….”
“적어도 그날의 은소현 씨한테는.”
하지만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세상 더없이 떳떳한 얼굴이었다.
그저 소현의 오해를 이해한다는,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였다.
“은소현 씨한테, 결혼하고 싶은데 못 해서 속상하다고까지 얘기했었구나.”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그가 앞서 생략한 주어를 덧붙였다.
“우리 어머니께서요.”
“……네? ……어머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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