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제이 라르고2017.10.27.
“정한 씨……?”
복잡한 낯빛을 한 소현이 자신의 이름 끝을 올려 불렀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냐는 질문이 아니었다. 소현은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을 보다가, 다시 정한을 보았다.
번갈아 오가는 시선은 뜻밖의 상황에 놀란 소현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정말……, 그러니까 그림……, 정한 씨가…….”
언제든 드러날 사실이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숨어들었지만, 소현에게는 일부러 감춘 적 없었다. 기회가 오면 자연스럽게 얘기할 생각이었다.
정한에겐 특별한 사실이 아니었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세계적인 명성과 부가 인생의 전부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사랑하게 된 여자가 우연한 기회에 제 그림들을 접하고 각별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만이 정한에게 큰 의미였다. 가슴이 벅찰 정도로 커다란 기쁨이었다.
“설마 정한 씨가, 설마 그림을, 설마 라르고…….”
“네.”
수없이 이어지는 ‘설마’를 수긍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자신을 본 소현은 놀라서 벌어지는 입을 두 손바닥으로 눌러 막았다.
“제이 라르고, ……맞아요.”
처음으로 라르고로서 그녀의 앞에 섰다.
자신을 살게 한 여자, 자신으로 하여금 다시 그릴 수 있게 한 여자의 앞이었다.
◇ ◆ ◇
귀국하자마자 재언은 본가로 향했다.
본가에 도착한 그를 맞이해준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가족이 아니었다.
정원을 지나 저택 현관에 들어섰을 때 두 명의 가정관리사가 인사를 했다. 이에 재언은 목례하며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가셨습니까?”
“아니, 계시긴 한데요…….”
집 안에서까지 곪을 대로 곪은 부부 사이의 상처를 감추지는 못하였기에 집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내부의 고용인이 바뀌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부모는 입이 무겁고 믿을 만한 사람을 곁에 두고 꽤 신경을 썼다.
많은 월급을 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 천성이 착하고 바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예의 있고 교양 있는 고용주로서의 모습만 보였다.
“서재에 같이 계시는데, 지금 좀 안 좋은 상황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도우미의 말을 들으며 재언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않은 상황이 어디 오늘 하루겠는가.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서로를 무시하던 부모는 평소에도 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말을 잘 섞지 않던 부모가 함께 있다면 지금은 침묵이 아니라 언쟁으로 인해 안 좋은 상황이겠지.
같이 살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불행도 기꺼이 껴안고 살 정도로 그들에게는 돈과 체면이 중요했다.
“식사나 음료, 뭐 준비할까요?”
“아니요, 잠깐 뭐 가지러 온 거라 곧 갈 겁니다.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보세요.”
도우미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재언은 자신이 쓰던 방이 있는 2층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하필 계단으로 가는 길에 서재가 있고, 칼끝처럼 날카로운 부모의 치받는 음성이 터져 나와 재언에게도 다 들린다는 게 애석한 일이었다.
모른 척 외면하고 지나가려던 재언이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들려온 이름 때문이었다.
“당신 이럴 때 보면 진짜 머리가 나쁜 것 같아, 그 머리는 대사 외울 때만 쓰나? 생각이라는 걸 좀 해, 생각을. 소현이가 우리 며느리 되면 좋은 점이 훨씬 많은데 당신은 대체 왜 싫다는 거야?”
“질리는 소리 그만해. 한 번 싫다고 파혼까지 하고 간 여자를 왜 집에 다시 들여? 다른 멀쩡한 여자들이 넘쳐나는데.”
부모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결혼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사람만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의사마저 안중에도 없었다.
“당신이나 아무 여자 다 좋다고 하지, 재언이가 어디 당신 같은 줄 알아? 걔도 지금 소현이 못 놓으니까 그렇게 옆에 끼고 있던 거잖아. 다른 여자들이 괜찮았으면 벌써 만나도 백 번을 만났겠지.”
“재언이한테 관심 하나도 없다가 지금 이러는 거,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용가치 때문이라는 걸 재언도 알고 있었다. 잔인한 현실이었다.
“내가 몰랐으면 몰랐지, 이렇게 알게 된 이상 난 그 애를 꼭 내 며느리로 만들 거야.”
“한심한 년.”
“더 해봐, 그따위 욕지거리에 내가 눈 깜짝이나 하나.”
재언의 부모가 소현을 며느릿감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불쌍한 아이라서.
마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선뜻 아이 입양을 결정하는 부부처럼 소현과의 결혼을 허락했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들이 고려할 부분이 아니라는 듯.
아들의 결혼을 두고 부모는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며느리 배경이나 스펙이 너무 좋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겠어. 사람들한테 완벽하게 보이는 게 뭐가 좋아? 위화감만 들지. 그렇게 모든 면에서 다 처지는 애를 데려와야 당신이나 나나 두고두고 좋은 시부모 소리 듣는다고. 소현이는 부모도 없으니까 얼마나 좋아.”
“누가 몰라? 그 정도 조건 기우는 애는 찾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단 말이야. 왜 꼭 그 애를 고집해, 재수 없게.”
“당신이 가서 한번 찾아봐, 그게 쉬운가. 재언이가 좋아하는 여자니까 금상첨화라는 거지, 결혼이 억지로 시킨다고 돼? 왜 이렇게 상황을 이해를 못 해? 자꾸 그럴 거면 이 좋은 기회 날려먹을 생각 하지 말고 당신은 차라리 죽은 듯이 가만히나 있어.”
참담했다.
이렇게까지 바닥을 보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재언은 더 이상 부모의 대화를 듣고 있을 수 없어 돌아섰다. 자신이 지내던 방으로 올라가서 문을 닫은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끓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재언은 책상 쪽으로 갔다. 공허한 눈으로 구석구석 둘러보지만 쓸쓸함만이 가득했다.
「나, ……갈게.」
자신의 손을 떼어놓으며 몸을 돌리던 소현을 보고야 말았다. 눈앞에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멀어져가던 그녀의 모습이 아프게 맺혔다.
이젠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버렸다.
다른 남자 만나고 오라고, 사랑하고 오라고,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고. 소현의 뒷모습만 보며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그 형벌 다 받겠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조차 그녀에게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었다.
소현을 사랑한다면서, 결국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우고 은연중에 돌아오라 강요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뭘 해도 안 된다는 것만이 정답이었다.
“사진도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10년을 만났어도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는 사이.
소현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좋아하는 색이 뭔지조차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합당한 벌은 기다림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게 사진 한 장 없어…….”
기막혀 중얼거렸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본가에 왔다. 소현을 처음 만나던 시절에 살고 있던 집이니 혹시 모를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자신에게는 기다릴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만 다시 아프게 깨닫는다.
「류재언, 사진 찍으면 얼굴이 닳는 것도 아닌데. 같이 딱 한 장만 찍자, 응?」
「……치워, 카메라.」
재언은 책장 앞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렇게 속을 헤집어놓을 줄 몰랐다. 살아 있는 한 모든 게 회한이었다.
소현을 한 번만, 딱 한 번만 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재언의 눈에 책장 가장 아래 칸에 있는 졸업앨범이 들어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앨범을 넘겨 수많은 동기들의 사진 속에서 소현을 찾았다.
꽃처럼 환히 웃는 열아홉의 소현을 본 순간 재언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아름답던 시절에 우리 함께였는데.
그토록 소중한 시간 속에 언제나 함께였는데.
꽃이 피어난 줄도 모르고 밟으며 걸어왔다. 돌아보지 않았다. 걷고 있는 이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 줄 알았다.
삶은 유한하고 사랑도 한계점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삶이고 소중한 사랑임을. 끝이 있기에 순간이 더욱 찬란함을.
더 많이 사랑하며 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음을.
깨달음이 늦어버린 재언은 웃고 있는 소현의 사진 위로 떨리는 손을 가져갔다. 쓰다듬듯 조심히 어루만졌다. 차갑고 매끈한 종이 질감만이 느껴졌다.
그것만이 재언에게 허락된 전부였다.
◇ ◆ ◇
「제이 라르고, ……맞아요.」
그의 확인사살에 소현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정한이 어떻게 라르고일 수 있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신상에 대해 알려진 게 없는 화가라서, 성별도, 나이도 전혀 몰랐다. 미국 화가라는 것밖에는.
그런데 제이 라르고가 정한이라고?
“금방 내려가려고 했는데, 일찍 일어났네요. 커피 내려줄까요?”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화가가 자신에게 직접 커피를 내려주겠다고 하는 지금이 어떻게 현실일 수 있는가.
소현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지금 커피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저 그림과 정한의 얼굴만 재차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줄래요? 이쪽만 좀 더 손대고 같이 내려가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이 의자를 가져와 놓아주고, 소현의 어깨를 부드럽게 눌러 앉게 했다. 그리고 넋이 나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달라지는 건 없어요.”
안심시켜주듯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
소현의 눈에 정한은 그대로였다. 얼굴도 그대로, 목소리도 그대로, 눈빛도 그대로.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가 엄청난 재능과 부를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사랑 역시 변하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소현이 마주했던 서정한이라는 남자였으니까.
그렇게 정한의 한마디만으로도 소현의 마음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그는 담담하게 캔버스 앞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작업에 몰입했다.
소현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했다.
물감이 잔뜩 묻은 작업용 에이프런도, 작업대 전체를 팔레트처럼 사용하여 쓰는 스케일도, 캔버스 위에 날듯이 움직이는 도구들도, 어마어마한 작업실의 풍경 모두 놀라웠다.
그토록 부드럽기만 하던 정한의 눈빛은 캔버스 앞에서는 날카롭고 예민해졌다. 웃음기가 싹 사라진 그에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뉴욕에 온 후로 앤드류가 아트딜러였다는 걸 알게 되고 느낀 충격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정한이 라르고였다니.
단 며칠 만에 새롭고 엄청난 사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우와, 근데 멋있네…….”
소현은 혼이 빠질 듯한 얼굴로 정한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달라지는 건 없다고 했지만, 달라 보이는 건 있었다.
캔버스 앞에서 무섭도록 집중하는 정한의 모습이 이렇게까지 섹시할 줄 상상도 못 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까지 모두 그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누구든 자신에게는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임에 변함없었다.
소현의 얼굴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 ◆ ◇
“너, 이번에 미국에서도 소현이랑 같이 있었다며.”
사무실로 찾아온 나미정 교수가 대뜸 웃으며 건넨 말에 재언은 순간적으로 소름이 훅 돋았다.
자신의 주변 누구와 연락을 하길래 그 사실까지 알고 있는 걸까. 누가 됐든 그건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간 자신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어머니는 새로운 목적이 생기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잠깐이었습니다. 일 때문에.”
“어머, 엄마한테까지 핑계 댈 필요 없어.”
다 안다는 듯 나 교수는 웃었다.
그냥 혼자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괴로운데, 고통을 얹어주는 어머니의 등장에 재언은 억장이 무너졌다.
며칠 사이 몰라보게 핼쑥해진 아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나 교수는 밝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랑 만나서 결혼하길 바라. 그게 소현이면 더 좋고. 정이라는 걸 무시 못 하겠더라. 소현이한테 정이 너무 많이 들었나 봐.”
재언의 대꾸가 없어도 나 교수는 할 말만 내뱉었다.
“엄마랑 아빠는 너희가 파혼했던 거 잊고 다시 시작하는 거 찬성이야. 괜히 힘들게 감정 쏟지 말고 적당한 때에 얼른 결혼 서둘러. 그러다 또 놓칠라. 엄마가 도와줄게.”
이미 늦었다는 걸, 나 교수가 알 리 없었다.
“소현이 그렇게 착하고 예쁜 애가 여태 고생만 하고. 사기까지 당했었다며. 안쓰러워서 참.”
“…….”
“너희 결혼하면, 내가 소현이 정말 잘해줄 거야. 딸처럼 예뻐해주고, 좋은 곳 다 데리고 다니고, 어디 그뿐이니, 해달라는 거 다 해줘야지.”
“……진짜가 아니잖아요, 그건”
무겁게 깔리는 재언의 음성에 방심하고 있던 나 교수가 흠칫 놀랐다.
“뭐?”
“며느리에 대한 사랑을 일부러 꾸며내실 필요 없어요. 어머니 인생에 별 도움 안 될 겁니다. 생각하시는 것만큼은.”
나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
“너……,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았는데!”
애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은 상처가 안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불행의 발로가 자신이라는 정의가 얼마나 큰 아픔인지.
부모는 이미 말로써 재언을 여러 번 때리고 짓밟았다. 멀리 쫓겨나 위태로운 얼음판 위에 알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춥고, 슬프고, 무서웠다.
“자식 때문에.”
“그래, 너 하나 때문에 내가…….”
“체면 때문에. 돈 때문에. 평판 때문에.”
이어지는 재언의 말에 나 교수의 말문이 막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셨겠죠. 학생들에게도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으셨을 거고. 친구들에게도 언제나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보이고 싶으셨을 거고.”
세상 어디에도 쏟아낼 곳이 없었던 어머니의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너 때문이라고. 그게 다 너 때문이었다고!”
“저 때문이 아니에요.”
재언은 담담히 벽을 쌓아올렸다.
“한순간도 초라해지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 본인 때문이었죠.”
이유는 모두 제 안에 있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상처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면서.
손에 든 방패가 오히려 창칼이 되어 스스로를 찌르고, 그걸 모르고 계속 반복하면서.
그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인해 결국 더욱더 깊이 불행해졌다.
「난 그 애를 꼭 내 며느리로 만들 거야.」
어머니의 결심만이 아니었다.
재언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수단을 가리지 않고라도 소현을 자신의 곁에 묶어둘 수 있었다. 절대 보내주지 않고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
단순했다. 그 외에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을 만큼.
소현이 자신을 바라지 않는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계산 섞인 결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버려야 할 욕심이었다. 놓아야 할 집착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점점 더 명확해졌다.
“어머니 정보력이라면 소현이가 지금 다른 남자 만나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시겠죠.”
“…….”
재언은 거울을 비춘 듯 제 모습과 똑같이 일그러진 나 교수의 마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놓아주세요.”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은소현, 이제 제 사람 아니에요.”
마른 입술 사이로 겨우 내뱉은 말이 재언의 심장을 깊게 찔렀다.
스스로 택한 아픔이었다.
진짜 그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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