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눈물에 번진 달빛이 참 밝았다.2017.11.13.
“손채린? 그 손채린? 우리나라를 완전 씹어 먹고도 남을 정도로 인기 많았던 그 손채린?”
“대단했지, 진짜. 아무리 하태랑이 한류네, 톱스타네, 여신이네, 해도 그 당시 손채린 인기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손채린이 드라마만 나왔다 하면 최고 시청률 찍고, 장난 아니었지 정말.”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다들 엄청 궁금해했었는데. 방송국에서도 못 찾는다고 여러 번 나오지 않았어?”
“그러니까.”
“근데 참 나, 미혼모로 숨어서 살고 있었다니.”
“진짜 불쌍하다. 못 나오게 협박도 엄청 받았다면서.”
“마크 윤 개새끼. 여자 하나 인생 망쳐놓고 자기는 또 장가가겠다고 저러네. 그것도 하태랑한테.”
“그렇게 돈이 많은데 어디 여자 하나만 망쳤겠어. 수십 명 아닐까? 근데 하태랑도 별수 없네. 거기 넘어가다니.”
“하태랑은 지가 돈도 잘 벌 텐데 왜 그런 쓰레기랑 결혼하려던 거지?”
“20조라며. 하태랑이 아무리 벌어봐라.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돈밭에서 구르는 인간들을 어떻게 따라가냐. 그 세계에 그냥 결혼으로 자동 편입하는 게 편하지.”
“그렇게 돈이 좋을까. 어휴.”
두 사람 이상 모였다 하면 하태랑과 마크 윤, 손채린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그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연일 새로운 소식이 쏟아졌다.
그 중심에는 15년 전 자취를 감추었던 스타 손채린이 있었다.
인터뷰 기사가 떴음에도 불구하고 매스컴과 주요매체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다루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손채린은 한 인터넷 매체를 택하고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 어떤 계기로 이렇게 나타나게 되신 건지.
- 다른 건 다 참겠는데, 그러니까 제 인생을 짓밟은 거나 딸을 버린 거나, 그런 건 다 괜찮은데요. 이렇게 다른 사람 망가뜨려놓고선 자기만 행복하게 살겠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 마크 윤을 말씀하시는 거죠?
- 네.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시골에 절 처박아놓아서, 전 15년을 미친년처럼 살았는데.
- 아, 네.
- 어쩜 자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고, 또 멀쩡한 여자 꼬셔서 결혼까지 하려는 건지. 이게 말이 되나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손채린은 강한 어조로 쏟아냈다.
활짝 피어나던 스무 살에 마크 윤을 만나 사랑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얘기.
그때 마크 윤도 이십 대 초반이었고 그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결혼을 피하며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버렸다는 얘기.
한국에 있는 부모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그곳에서 아이만 키우며 살았다는 얘기.
그는 돈으로만 책임을 졌을 뿐, 완전히 버림받아 자신의 인생은 망가졌다는 얘기. 한때 알코올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얘기까지.
이미 기사로 나왔던 이야기들이 다시 손채린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렇게 자신을 망가뜨린 건 바로 마크 윤이라고.
- 이렇게 해도 마크 윤 씨는 타격을 받기 힘들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 어차피 그 사람은 제가 뭘 어떻게 해도 안 돼요. 무너뜨리기 힘든 사람이에요. 그걸 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겠죠. 제가 마크 윤을 고소하고, 신고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결이 될까요? 아뇨, 안 돼요. 설령 마크 윤이 범죄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 인생에는 하나도 영향을 주지 않을 거예요.
- 그런데 왜 이제……?
- 하태랑 씨 때문이에요.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 불쌍한 하태랑 씨. 정신 차리시라고요. 아직 마크 윤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만약 알고도 결혼하는 거라면 하태랑 씨도 똑같은 사람이겠지만.
- 그러니까 하태랑 씨를 걱정해서 나서게 되셨다는 말씀이죠?
- 네. 어떤 여자들은 마크 윤이 누구든, 어떤 과거가 있든, 상관없이 만나서 결혼해 잘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태랑 씨는 아닐 거예요. 제가 그 자리에 있어봤잖아요. 떨어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데요. 제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마크 윤이랑 결혼해서, 똑같은 연놈이라는 소리 들으면서 하태랑 씨가 살 수 있겠어요? 이미지로 먹고사는 사람이잖아요. 하태랑 씨 지금 정말 잘나가고 이미지도 좋은데, 그거 지키려면 마크 윤이랑 결혼해서 살 수는 없을 거예요.
- 따님은 알고 계시는지.
- 알아요. 제 딸도 이제 이게 무슨 얘기인지 다 알아들을 정도로 컸어요. 아빠를 찾아오면 죽인다거나, 사람들 앞에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게 바로 생부가 하는 협박이라는 것도…… 애가 이제는 다 알 정도예요.
- 그렇다면 혹시 이런 인터뷰나 심경을 밝히시는 일도 위험한 것은 아닌지요.
- 만약 저나 제 딸이 화를 입는다면 이제 다들 누가 그랬는지 잘 알겠죠. 그런데 섣불리 움직일 수 있을까요? 시대가 달라졌어요. 제가 무슨 말이 하고 싶다 해도 다른 사람이 억지로 막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저는 이제 계속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했어요.
- 어떤 식으로요?
- 이렇게 인터뷰도 할 거고, 제가 살아가는 모습도 자주 노출시킬 거예요. 어릴 때는 너무 무서워서 숨어만 있었는데 이제 제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저를 지키고, 제 딸을 지킬 겁니다. 그렇게 바보처럼 당하고 숨어 있지 않을 거예요. 저는 절대 자살하지도 않을 거구요. 제가 잘못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이제 관심 갖고 지켜봐주세요. 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위험해졌다는 얘기예요.
- 세간에는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싶어서라는 말도 있는데.
- 못 할 건 없어요. 이제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제가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할 거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거예요.
손채린의 말대로 마크 윤은 타격받을 게 없었다. 도의적으로 여자를 버렸다고 하여 사업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 축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태랑과의 결혼은 수포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결국 그게 타격이었다.
마크 윤이 원하는 결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런 의도로 손채린은 대중 앞에 나서게 되었고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 인터뷰 사양하지 않으니 어디든 연락 주세요.
억눌려 있던 모든 것이 폭발한 듯, 그녀는 관심을 원하고 또 원했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너무도 어린 나이에 짓밟혀 스러지고 만 한(恨)을 그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위험한 발언을 덧붙였다.
- 참. 이 일을 세상에 드러나게 해주신, 그 웨딩플래너님께 감사드려요. 하태랑의 결혼과 예비 신랑이 마크 윤이라는 걸 밝혀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이렇게 나설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나섰던들 금방 묻혀버렸겠죠. 아니면 제가 잘못되었든가. 아무튼 정말 감사해요.
거짓의 굴레가 진실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게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 ◆ ◇
겁이 났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도 이미 자신이 한 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일들이 마구 벌어졌다.
소현은 며칠째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잘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아니라고 말하고,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면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류재언의 말대로 이미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하태랑 결혼…… 안 할 건가 봐요.”
노트북 화면을 보던 애주가 기사 하나를 클릭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현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태랑이 결혼을 이야기하며 미소 짓던 모습.
좋아하는 라르고의 그림을 배경으로 결혼식을 꾸며달라 말하던 모습.
탐미재가 마음에 든다며 꼭 그곳에서 결혼하게 해달라 진심으로 부탁하던 모습.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 결국 결혼을 포기하게 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괴로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녀에게 연락도 해봤지만 당연히 목소리를 들을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만나고 싶지도 않겠지. 끔찍하겠지.
자신이 겪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관심 속에서 괴롭고 힘이 들 텐데.
“언니 뭐 좀 먹어요. 밥 차릴까요?”
“아니, 지금은 생각 없는데.”
“그럼 배고프면 얘기해요.”
“너는?”
“난 괜찮아요. 초콜릿 잔뜩 먹었잖아요.”
사무실에는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애주는 계속 소현의 집으로 출퇴근 중이었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스캔들이고, 그 시초가 소현이라는 걸 알게 된 신부 몇 명은 애주를 통해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아니, 뭐. 진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그냥 경황이 없어서 제 결혼식 준비는 좀 힘드실 것 같아서요.」
신부들의 마음을 당연히 이해했다.
진실이야 어쨌든 논란의 핵인 사람에게 일생 한 번뿐인 결혼식 준비를 안심하고 맡길 수는 없었을 테니.
다만 케이크샵 신해수 대표의 친구인 이소미 신부는 계약을 철회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저랑 오빠도 회사일이 조금 바빠져서 준비는 좀 여유 있게 하려고 했어요. 저희는 상관없으니까 일단 대표님 일부터 신경 쓰세요. 해수가 그러는데 대체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고, 은 대표님은 절대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아닌데 하면서요.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 잘 풀릴 거예요.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기시구요!」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는 강렬한 믿음.
소파에 힘없이 앉은 소현은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애주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마워…….”
“앗, 깜짝이야.”
다가가 뒤에서 애주를 포옥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백허그에 화들짝 놀란 애주가 물었다.
“고맙긴 뭐가요.”
“그냥 다.”
내 옆에 있어줘서.
날 믿어줘서.
“언니.”
애주는 몸을 돌려 소현을 마주 보았다.
“기운 내요. 언니가 이렇게 힘들어할 필요 없어요.”
끊임없이 수렁에서 날 건져줘서.
그래서 고마워. 전부 다.
“나 때문에 일이 잘못돼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힘든데, 나는 더 괴로워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기운을 차리면 그건 너무…….”
“언니가 언제 하태랑이 내 신부라고 자랑하고 다녔어요? 하태랑 남편 될 사람이 마크 윤이고 재산 20조라고 떠벌리고 다닌 적 없잖아요. 일이 이렇게 된 건 언니 탓이 아니에요. 언니가 잘못한 거 절대 없어요. 알았죠? 그런 소리 또 하면 이제 때려줄 거야. 아니면 정한 씨한테 이르든가.”
내 탓이 아니라면 누구의 탓일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화는 아직 확인 안 했죠? 정한 씨가 계속 물어보던데. 언니 전화 안 받는다고. 좀 어떤지. 괜찮은지. 밥은 먹었는지.”
애주야 막무가내로 집에 쳐들어와 있으니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정한에게는 괜찮다고만 하고 사실상 얼굴 보기는 피하고 있었다.
그에게 지금의 안 좋은 마음들을 모두 쏟아내고 싶지 않았다.
감정의 쓰레기통도 아닌데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그걸 다 받아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시작하는 단계라 더욱 조심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소현은 그저 정한에게 괜찮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침에 괜찮다고 했었는데.”
“안 괜찮은 거 아니까 그렇겠죠.”
애주는 걱정 어린 얼굴로 소현을 바라보았다.
“정한 씨 여기로 오라고 할까요?”
“에이, 아니야. 좀 더 괜찮아지면 그때 보면 되지.”
마음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을 때, 얼굴은 그때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 ◇
그날 밤.
잠든 애주의 옆에서 소현은 무릎을 세워 몸을 동그마니 말고 앉아 있었다.
시간은 어쩜 이렇게 부지런히 흘러갈까.
지금 힘든 시간들이 다 지나면 또 웃을 수 있을까.
수없이 겪은 힘든 일들도 결국 다 지나가기는 했지만, 마치 지금의 터널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것만 같았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며 자꾸만 가시에 찔리는 아픔.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홀로 이겨내야 하는 몫.
자신이 왜 가해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소현의 마음은 더없이 힘들었다.
차라리 무얼 잘못했는지 안다면 무릎 꿇고 용서라도 구할 텐데.
어쩌면 그건 마음이 편해지고 싶은 자신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황조차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인 건데.
소현의 죄책감이 깊고 또 깊어질 때, 휴대전화가 드르륵 울렸다.
사실 겁이 나서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떤 얘기가 있을지, 어떤 소식이 들어온 건지, 무슨 말이 있을지 몰라서.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휴대전화로 손을 뻗었다.
깊은 안도감을 주는 이름, 정한이었다.
[소현 씨, 보고 싶어요.]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해 보냈을 한마디겠지만, 보고 싶다는 말이 소현을 애틋하게 부르고 있었다.
불 꺼진 방에서 오로지 정한의 그리움을 담은 화면만 환히 빛났다.
어둡고 긴 터널의 끝처럼.
간절히 다다르고 싶은 세상처럼.
소현은 잠옷 위에 니트 카디건을 걸쳤다. 휴대전화와 지갑을 급하게 챙기는데 애주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언니? 어디 가요?”
목이 메었다.
정한만큼이나 먹먹한 그리움에 소현도 가슴이 메었다.
“……정한 씨한테.”
그때부터는 정신이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어떻게 내려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애주가 택시를 잡아준 것 같았다.
기사에게 탐미재 주소를 불러주고 택시비도 먼저 건네고 잘 부탁한다고 연신 말하는 것도 같았다. 자신의 손을 꼭 붙들었다가 놓아준 것도 같고, 이내 어둠 속에서 택시가 멈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순간이 영원 같고 영원이 순간 같았다.
택시가 멈추었다.
“아가씨, 도착했어요.”
그제야 문을 열고 내리는데, 고개를 들자 그 앞에 거짓말처럼 정한이 서 있었다.
어두운 골목에 달빛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이 퍼졌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택시는 떠나고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
“잘 왔어요.”
아릿한 눈빛이 온전히 제게로 향했다.
“오라고 했는데, 내가. ……소현 씨한테.”
“…….”
마치 울듯한 눈빛 속에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소현 씨 너무 보고 싶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서. 안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힘을 내라는 말이 아니라 보고 싶다는 말.
네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말.
내게로 오라는 말.
“그런데 역시, 소현 씨 보니까 이제 좀 살겠어요.”
너로 인해 살겠다는 말.
누구라도 듣고 싶은 말.
정한은 그런 말들을 들려주곤 했다.
뻔하지만 들어서 행복한, 정말로 행복한 그런 말을 해주었다.
급하지 않아도, 서두르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이리로, 내게로 오라고.
기어이 손짓하여 언젠가는 이리로 오라고. 사랑하니까 힘든 건 모두 나눌 수 있다고.
그리하여 소현이 그에게로 갔을 때 품에 안아주며, 어깨를 두드리며,
천천히, 토닥토닥.
고마워, 이리로 와줘서 고마워, 라고.
“정한 씨가 왜 고마워요……. 내가 고마운데…….”
마침내 왈칵.
그 품에, 그 눈빛 속에, 그 사랑 안에 온전히 들어와 있는 것이 너무도 기뻐서 울음이 터지도록.
참고 참았던 눈물이 기어이 쏟아지도록.
정한은 나직하고도 느릿하게 고맙다고 말하며 하염없이 토닥, 그리고 또 토닥 두드렸다.
그저 오라니 온 것뿐인데 그게 뭐 그리 고맙다고 하여 결국 이렇게 사람을 울리냐며 소현은 애꿎은 원망을 삼켜야만 했다.
그가 몸이 부서질 듯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단단한 팔 안에 완전히 갇혔다. 사랑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품이 따뜻했다.
눈물에 번진 달빛이 참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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