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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시끄러워서 깼다.
두 사람이 한참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란과 안젤리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목격했다. 신민배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오, 오빠?”
“저, 정신이 들어요?”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신민배의 곁으로 달려 왔다. 그리고 안젤리나는 신민배의 상태를 확인하고 즉시 비상호출 버튼을 눌렀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빠르게 달려 왔고, 이후 신민배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신민배씨. 정신이 드세요?”
의사의 말에 신민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까부터 정신은 들었습니다만? 뭘 이렇게 검사하시나요? 그리고 눈이 좀 부셔서 그런데…… 눈에서 그 전등은 좀 치워주시겠습니까?”
“네? 아. 예. 죄송합니다.”
의사는 그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현재 신민배씨는 7개월 만에 깨어나셨습니다.”
“예에??”
7개월이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는 사람으로써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괴수 사냥을 하시면서 정신을 잃고 저희 병원에서 7개월 동안 입원해 계셨습니다. 그동안 혼수상태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럴수가? 7개월 혼수상태였던 것치고는 너무 멀쩡한데요?”
“그게…… 저희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보통 혼수상태가 되면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데, 신민배씨는 뇌파 측정 결과 통각까지도 유지가 되고 있더군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혼수상태에서 가사상태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계속해서 수면을 취하고 계셨고요. 깨어나지 않는게 문제였지요.”
“그런 일이 가능한건가요?”
“이런 말 드리기 좀 그렇지만, 의사인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능력자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긴 했습니다만, 보고 된 바가 없다보니…….”
의사는 그 어떠한 대답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당장 몸에 무리가 없다고 하시더라도 일주일 정도는 입원하고 계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의사는 그 말만을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두 여자가 신민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신기하네…… 한숨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벌써 7개월이라니…… 머리 많이 길었구나?”
신민배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 이내 시선을 시란에게 돌렸다. 7개월 간 시란의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있었던 것이다.
“오빠…… 정말 괜찮은거지?”
“하하, 그래. 괜찮아. 당장이라도 괴수 때려잡으러 가도 될 것 같지만 참고 있는 중이다.”
시란의 곁에 서 있던 안젤리나와 눈이 마주친 신민배.
“길드장님은 어떻게 하고 있죠?”
안젤리나와는 첫 대면 이후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녀야 7개월 동안 매번 누워있는 신민배를 보았다고 하지만, 민배는 그녀가 낯설기만 했다.
“매일 같이 사냥 다니시죠. 예전의 백호 길드의 위상을 다시 찾겠다고요.”
“위상요?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뭐…… 그때 괴수 사건 이후로 백호 길드의 인지도가 완전 하락했죠. 사냥이라도 안하시면 스스로가 못 견디신다고 할까요? 그래서 사냥할 때도 보면 좀 위험한 순간이 많아요. 마치 물불 안 가리고 괴수에게 덤벼드는 모습 같아서…….”
“죽기 딱 좋겠군요…….”
이후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각기 보호자들에게 전해졌다.
7개월 동안 신민배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총 6명으로 남백호, 임창종, 시현, 시란, 안젤리나, 고창식 정도였다.
모두가 자신들이 보호자라고 접수처에 기재를 해두다 보니, 신민배가 깨어난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소식을 듣고 보호자들이 달려왔다.
“너 이제 멀쩡한거야? 정신이 들어?”
“킁킁? 야…… 가까이 오지마. 땀 냄새나잖아. 어디 막노동이라도 뛰고 온거냐?”
고창식이 신민배 가까이 다가와 마구 부비기 시작했다.
“흑! 이자식아.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이딴 땀 냄새가 대수냐!”
“토 쏠린다고 인마!!”
자신을 진정 걱정해주는 고창식을 보니 ‘그동안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자식이! 7개월 만에 깨어나 놓고는 그게 할 말이냐!”
“야! 너야 7개월이겠지만, 나는 얼마 되지 않은 기억이거든!!”
고창식을 뿌리치며 열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신민배. 그 중 유독 안젤리나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이미 안젤리나에 대한 이야기는 깨어났을 무렵 들었기에 딱히 궁금한 것은 없었다. 다만 왜 그녀가 자신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의문일 뿐이다.
쾌유를 바라는 많은 이들의 환대에 그날 병실이 북적였다.
날이 저물고 모두가 돌아간 후, 시현과 신민배 둘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시현은 19살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힘들었어?”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그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마치 날 한 대 치기라도 할 듯한 그 눈빛은?”
그는 살며시 웃으며 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진짜 한 대 치고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 제가 형한테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죠. 그래서 그냥 말로 하려구요.”
“하하…… 무섭다. 너? 그 짧은 사이에 성격이 좀 많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이야기 해봐.”
시현은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한 어조로 말을 했다.
“형은 왜 그렇게 남을 신경 써요?”
“그게 무슨 말이야?”
“형은 이 나라 최초의 4등급 보조계에요. 그만큼 역량이 높다구요. 누가 뭐라고 해도 보조계에 있어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남을 신경 쓰면서 자신이 손해를 봐야만 해요? 솔직히 우리 가족들 문제만 해도 그래요. 애초에 우리 가족이 형에게 큰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고, 형은 그냥 형의 앞일만 보면 됐어요. 좋은 길드를 가거나 좋은 팀을 찾거나…… 그리고 괴수 문제도 그래요. 그 위험한 상황에서 빨리 도망칠 생각을 해야지. 왜 남을 구하려고 이런 상황까지 맞아야 되는 건가요? 왜 본인의 안위는 신경을 안 쓰세요?”
시현은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면이 신민배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후후…… 나 그렇게 남을 신경 쓰지 않아.”
“그럼 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그냥 버리고 가면 그만이고, 신경 안 쓰면 그만이잖아요? 남들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잖아요? 왜 그렇게 착한거예요?”
약간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시현.
“시현아. 난 착한게 아니야. 그렇다고 마음이 여린 것도 아니고. 다만 신경을 안쓸려고 해도 성격상 어쩔 수가 없는 거잖아? 내가 착해서 너희 가족과 함께 사냥을 하고, 동정심에 너희들을 내가 함께 데리고 산 것 같아? 아냐. 나도 처음에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너희 가족들이 나에게 짐이 될지 아닐지. 이익을 따지기 보다는 오히려 함께 했던 시간들이 좋아서였다. 좋아서 선택한 결정인데 누굴 탓하겠어?”
동정심에 의해 모든 일을 치른 것은 아니다. 연씨 가족의 경우는 남다른 애정도 없지 않아 있었다. 또한 자신을 따르는 시란과 시현 두 명에게는 더욱 각별한 애정이 없지 않아 있었던 그다.
“네가 정 그렇다면 앞으로 조심해서 사냥을 하면 되는 문제네. 내 입장에서 나는 손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리고 이 넓은 세상. 나만을 위해 살아서 무슨 소용 있겠어?”
자신의 가치관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신민배의 말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과연 형을 도와 줄 수 있었을까?’
입장을 바꿔 보았다.
지금이야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동생들이 눈에 밟히지만 민배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 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들과 민배가 아닌 이상 타인에게 과연 자신이 민배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뭐…… 형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조심 좀 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걱정마라. 네녀석의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조심한다.”
시현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짓는 민배.
‘녀석…… 처음 봤을 때는 완전 애 같았는데…… 이제 왜 이렇게 애늙은이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지…….’
귀엽기만 하던 시현이 이제는 징그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길드 사정이 많이 힘든거야?”
“아…… 뭐 힘든 건 아니에요. 다만 예전에 비해서 명성이 없을 뿐이죠. 그리고…….”
“왜? 또 무슨 일인데?”
“음…….”
잠시 고민하던 시현은 천천히 그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A급 괴수 사건 이후로 길드가 이 꼴이 되고 난 뒤에 더 큰 문제는 바로 사냥터에 있었어요.”
“사냥터에서? 왜?”
사냥터에서 능력자들끼리 문제 될 소지는 없다. 서로에 대해 간섭을 안하는 것은 물론, 일정한 지역 내에 능력자들이 사냥을 하고 있으면 그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예의였다.
그런데 A급 괴수 이후로 B급 괴수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면서 많은 이들이 가까이 뭉치며 사냥을 진행했다. 그 이유는 위험한 순간 서로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사냥에 불편을 끼치는 행동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백호 길드의 명성이 하락되면서 오히려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들이 많았다. 노골적으로 괴수를 빼앗는 행동 같은 것은 하지 않았지만, 백호 길드가 사냥하는 루트를 고의적으로 차지하는가 하면 들리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로 인해 7개월 동안 많은 사건들이 터졌었다. 남백호는 다혈질 성격을 이기지 못해 능력자들과 싸움을 벌이면서 경찰서도 자주 드나들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인지도는커녕, 백호 길드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괴수를 사냥함에 있어서 능력자들이 없는 더욱 위험 지역으로 들어가다보니 안전에 대한 위협도 점점 증가하는 것이 현재 백호 길드의 실상이다.
또한 7개월 사이에 백호 길드에서는 5명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더 이상 능력자 생활을 할 수 없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를보며 가만히 있을 수 없던 남백호는 사상자들에게 편안히 생활할 수 있는 돈을 주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은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네…… 조금만 참아봐. 그런데 실력은 좀 올랐어?”
“후후, 네. 능력이 약간 상승했어요. 아직 등급은 그대로지만요.”
“그래? 상당히 잘됐네. 조만간 같이 사냥 가서 얼마나 강해졌는지 직접 봐야겠네?”
그제야 시현의 표정이 예전처럼 돌아온 듯 보였다. 약간 장난기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아이 같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이들이 문병을 와주었다. 모두가 신민배의 안위만을 걱정해주는 말 들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뒤 병원에서는 신민배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퇴원을 하게 된 신민배.
퇴원 날에도 많은 이들이 함께 와 있었다.
“자! 이제 사냥가자!”
남백호는 신민배의 퇴원 날 병원에 무장을 하고 온 상태였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백호 길드원들 역시도 무장을 한 상태였다.
“아…… 무슨 퇴원 하자마자 사냥이야? 너 언제 노예 계약이라도 한 거였어?”
이장수가 불만이 많은 듯 신민배에게 물었다.
“하하, 아뇨. 노예 계약은 무슨. 그런 계약을 지시할 길드장님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내가 좀 착해빠진 길드장이야!! 그러니까 당장 사냥 가자! 너무 오래 누워있었어! 보조계도 신체가 허약하면 안 돼! 너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척추가 굳어 있을거야! 사냥하면서 풀어 줘야해. 당장 가자!”
신민배의 팔을 잡고 이끄는 남백호. 그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신민배의 몸이 붕 뜰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