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9 / 0176 ----------------------------------------------
41. 또다시 모두 함께.
“하하…….”
남백호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저희가 의뢰를 맡을거라고 보십니까?”
“아니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차혁진의 표정이 매우 간절하다. 그 간절함은 백호 길드가 도움의 손길을 내주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차혁진이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대답한다. 남백호는 소파에 등을 기대더니 한 마디 했다.
“거절하고 싶습니다.”
“…….”
이미 이곳에 올 때부터 이러한 상황은 대충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혁진도 별말을 하지 못했다.
“문제는 제가 길드장이지만, 엄연히 민배의 의견이 우선이어야 합니다. 민배가 없는 길드에게 아마 의뢰조차도 하지 않을테니까요. 민배야. 네 생각 좀 말해줄래?”
신민배는 그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애초에 남백호야 대한민국에서 신민배를 잃고 귀화를 했을 때의 심정은 이로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을 알기에 신민배 역시도 선뜻 허락을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또한 지금 신민배는 과거의 사건과 크게 멀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백호 길드가 바꿔 놓은 것은 신민배의 기억으로는 얼마 되지 않은 과거다.
그런데 또다시 국민들이 능력자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자신을 비난하며, 백호 길드를 원망 했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남백호가 귀화를 택했다면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민배가 이 자리에서 차혁진의 의뢰를 거절한다면 그는 대한민국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대한민국에게 한 번이라는 기회를 주었던 신민배. 하물며 그는 대한민국으로 가야만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지금 여기서 받아들여봐야…… 국민성이 크게 바뀌진 않아…… 고마워하는 사람만 고마워할테고…… 비난과 질타를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겠지…… 그게 막상 소수의 인원이라 할지라도…… 그런 소수가 모여서 더 많은 이들을 낳을테니까…….’
선동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섭다.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선동에 휩쓸리게 되면 그것이 옳은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건의 전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애초에 선동을 하는 이들을 찾게 되면, 그것이 정상인줄 알며 그들을 따라가게 된다. 현재의 한국은 그렇다.
비록 나라의 위기를 알고 백호 길드에게 탄원서를 제출한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위기 보다는 백호 길드가 나라를 버렸다는 이유로 오히려 나라의 위기는 안중에도 없이 그들이 한국에 오는 것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결국은 똑같겠지…….’
신민배 역시도 남백호와 의견이 다르지는 않았다.
“죄송하지만 저도 이 의뢰는 맡고 싶지 않습니다.”
“예? 하, 하지만…… 한 번만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신민배는 말까지 더듬으며 자신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저희에게 S급 괴수를 잡아달라고 의뢰를 하러 오신겁니까?”
“그,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의뢰 비용을 얼마나 내놓으실 생각이신가요?”
“예? 그게…….”
차혁진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신민배도 대략 짐작을 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상당히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각종 공장부지가 파괴되고, 수출을 해야하지만 이미 막힌 상황에서 수출도 못하고 있을뿐더러, 식량 부족 현상까지 겪고 있다죠? 그런 나라에서 과연 저희에게 의뢰할 수 있는 비용은 있겠습니까?”
“추, 충분히 가능합니다.”
차혁진도 의뢰 비용에 대해서 모르고 온 것은 아니었다. 현재 백호 길드가 S급 괴수를 잡고 받는 비용은 최소가 1조원이었다.
한 때 10년 전 한국의 괴수 안전 대책 본부에 주어진 재정은 100조원. 그러나 10년의 시간 만에 괴수 안전 대책 본부의 재정은 10조원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괴수 안전 대책 본부에 줄 수 있는 재정가지 확연하게 줄어들었던 것이다.
“정말 가능한가요? 제가 대충 알아보니 10조원의 재정비가 허가 된 상태인 것 같은데요? 더군다나 이미 많은 피해로 인해서 10조원이 모두 소진 되지 않았나요?”
한해 예산으로 받은 10조원은 반년이 못되어서 모두 소진 되어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그게…….”
“결국은 정부에서 지급을 한다는 소린데…… 만약 그걸 정부에서 지급을 하지 않는다면요? 애초에 우리는 그들과 계약을 하고 가는 겁니까? 아니면 괴수 안전 대책 본부와 계약을 하고 가는 겁니까?”
의뢰라는 것은 대다수 각 나라의 정부에서 수주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괴수 안전 대책 본부에서 의뢰비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한 때 대한민국도 그랬던 것이다.
이런 경우 괴수 안전 대책 본부와 계약을 했지만, 의뢰비용을 주지 않는다면, 그 나라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길드는 자원 봉사 단체가 아닙니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으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 이들에게 돈이 들어올지 안들어올지도 모르는 의뢰를 제 결정으로 맡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신민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버리자, 남백호 역시도 소파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 앞으로 갔다.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대한민국에 상당한 불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우리를 욕할 것인데, 목숨걸고 괴수를 잡으면서 솔직히 욕을 먹긴 싫군요. 아마도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만 나가주시지요.”
차혁진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섰다. 그리고 그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신민배가 다시 남백호를 찾았다.
“앉아.”
이미 신민배가 사무실을 나갔을 때부터 뭔가 할말이 있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남백호가 나란히 그와 자리 했다.
“말해봐. 너의 생각을.”
“형님도 아시다시피…… 전 반드시 안젤리나의 신변을 확인을 해야합니다. 그게…… 살았던 죽었던 말이죠…….”
“그렇지.”
“하지만 만약 지금 우리가 이런 결정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에 가지 못한다면…… 저는 평생 후회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지금 현재 신민배의 심정은 안젤리나로 인해서 하루 한 시가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가급적 길드의 상황을 고려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는 않고 있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차라리 다른 길드를 보냈으면 하는데? 예를들어 신성 길드라면 이 일에 가장 적합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S급 괴수를 잡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A급 괴수를 잡아준다는 명목으로 또다시 한국에 가서 그때의 상황을 다시 재확인 해줄 수는 있겠지.”
“아뇨. 그건 안됩니다. 그때 당시의 일은 제가 가장 잘 압니다. 그래서 제 눈으로 직접 그 장소를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음…….”
두 사람은 차혁진의 의뢰를 거절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한국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도가 필요했다.
“나에겐 솔직히 세 가지 정도의 방안이 있다. 말해줄까?”
“예. 형님.”
“그럼 첫 번째부터 말하마. 현재로써 우리는 S급 괴수에 대한 사냥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언론은 우리에게 집중을 하겠지. 그 동안 대한민국은 점차 힘들어질테고, 영토도 점점 잃어가며, 국민들의 마음은 피폐해지겠지. 그 상황에서 과연 그들은 누구에게 의지할까? 정부? 아니면 한국 능력자? 절대 아니다. 그들은 반드시 우리를 찾게 돼. 우리는 최소한 국민들의 사과를 받고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형님은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사과하는 것을 바라시는군요?”
“그래…… 나라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유지 된다. 하지만 국민이 단합조차 안되는 나라는 오래 갈 수 없어. 그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니까. 욕지껄이 하는 놈 한 두 놈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냐? 4천만 인구가 1명을 못 당해낼까? 그건 아니지…… 결국 그 한 명은 고립되고 자신의 소견을 바꿔가게 될거다. 내가 원하는 건 그거지…… 다수가 소수를 이겨나갈 수밖에 없다.”
남백호는 대한민국 자체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한민국이 멸망하게 놔두는 것이다. 아마 지금 상태로보면…… 1~2년도 걸리지 않겠지…….”
“혀, 형님…….”
신민배 역시도 지금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이 멸망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1~2년 이라는 시간은 그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알아. 네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 두 번째 방법은 솔직히 나도 별로다. 한국이 멸망한다면…… 나 역시도 죄책감으로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국민성이 없는 나라가 유지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 째는 대한민국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 결정하는 것이다.”
“예? 달라진 모습이라면?”
“말했지? 다수가 소수를 바꿔버릴 수 있다고. 그 말은 즉 소수가 다수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소수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알면서도 즐기는 사람들이 있겠지……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보면 되는 것이다.”
“형님은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나요?”
“나야 그 어떤 결과가 나와도 상관이 없다. 다만 그 전까지 네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알겠습니다. 형님.”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신민배는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그가 한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
“여보. 또 가실건가요?”
“어쩔 수 없지 뭐. 치유계가 부족해서 괴수들에게 많은 능력자들이 당하고 있나봐…… 이렇게 편하게 집에만 있을 수는 없겠어.”
“하지만…… 많은 능력자들이 당하고 있어요. 당신이 간다고해도 뾰족한 수도 없을지 몰라요. 차라리 우리…… 그분들을 따라 가는 건 어때요?”
현재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바로 임창종과 그의 아내였다.
요즘들어 많은 능력자들이 희생이 강요되고 있으며, 치유계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더 보다 못한 임창종이 결국 괴수 사냥에 가담하게 되었고, 오늘로써 벌써 일주일 째 쉬지 않고 계속 괴수 사냥에 나서는 그였다.
“후후……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 부모님들이 절대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어떻게 자식 된 도리로써 부모님만 위험한 이 땅에 놔두고 갈 수가 있겠어……?”
임창종이 귀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물론 일가친척들까지도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보…… 당신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희는 어쩌구요?”
그녀는 자신의 두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절대로 당신을 혼자 두진 않을테니까.”
임창종이 그렇게 자신의 아내를 안아주었다. 하지만 이런 포옹도 일주일 째 계속 불안감만을 줄 뿐, 그녀에게는 어떠한 위로도 되지 않았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그녀는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봉투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임창종이 남긴 것으로 일종의 유서와 같았다. 하지만 봉투 겉면에는 그 어떠한 글씨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전 백호 길드에 들어가고나서부터 임창종은 이런 봉투를 남겼고, 그녀에게 진중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여보,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이걸 열어보도록 해.]
그녀만이 알 수 있는 유언장.
몇 년이 흘렀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봉투를 열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몇 년 전과 지금의 봉투의 두께가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임창종이 괴수 사냥을 나갈 때마다 봉투를 잡고 기도를 한다.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것이 해를 거듭할 때마다 봉투가 두꺼워져 갔고, 이번에도 두께는 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많은 면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만지면서 확실하게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임창종이 매번 봉투에 자신과 딸을 위한 준비를 해둘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기 때문에 봉투를 열어 보고 싶지도 않았다. 왠지 그 봉투를 열게 되면 눈물부터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제가 이 봉투를 열어보지 않게 해줘요. 여보…….’
그녀는 떨리는 두 손으로 봉투를 꼭 쥘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역시나 한국으로 간다는 떡밥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세워주시네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글의 설정상 안젤리나로 인해서 무조건 한국은 가야 합니다.
다만 무턱대고
"아이고~ 도와줘야겠네."
"아이고~ 내 지인들이 한국에 있지!!"
"아이고~ 난 선량하니까~"
"이렇게 나서야 정의지!!"
이렇게는 절대로 가지 않을 겁니다. 또한 제가 설정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언급한 대로 남백호의 의견대로라면 가도 상관이 없지만, 저는 좀 더 많은 부분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가기 전에 떡밥 몇 개 더 던져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자면.... 백호 길드가 한국에 가면... 한국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백호 길드의 새로운 전환점과 더불어.... 아주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 큰 그림을 그린 사람은 바로 베르나이고요... 베르나와 남백호, 그리고 신민배가 주축이 되어 큰 그림을 만들어가게 될 겁니다.
스포는 여기까지!!!!
혹시나 나중에 한국 갔다가 그걸로 짜증내실 분들이 계실 듯 하기에, 미리 떡밥 던져 드리고, 큰 그림으로 밑장부터 깔고 가겠습니다... 떠나는 분들이 있으면 저도 마음 아프잖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