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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그들의 시작.
“지금 장난하는거야? 우리더러 그 짓거리를 하라고?”
“물론이에요.”
“때려죽어도 싫다면? 알지? 내가 한국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물론 알아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 명심하세요. 당신의 행동 하나로 미래가 바뀌며, 신민배씨의 안위 또한 바뀌게 됩니다. 하물며 백호 길드에게도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남백호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은 매우 놀랍기도 했지만, 자신이 선택하기 싫은 말을 다 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자금이 천문학적으로 소모되는 말을 늘어놓았으니 남백호로써는 기가 찰 노릇이다.
“우선 생각 좀 해봐도 될까요? 솔직히…… 저도 약간 황당해서…….”
“알겠어요. 어차피 선택은 두 분이서 하실 겁니다. 전 약간의 조력자 역할을 할 뿐이죠. 하던 하지 않던, 두 분의 결정에 미래는 달라집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예? 벌써요? 방금 전에 도착했다면서요?”
“더 있어봐야 뭐 있나요? 제 할 일을 했으면 다시 돌아가는게 낫겠죠. 그리고 한국은…… 외로워서 싫어요.”
베르나는 어릴때부터 거의 혼자 생활해 왔었다. 신성 길드의 길드장이 된 이후에는 더욱 특별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했다. 항상 외로움과의 싸움이었으나, 영국 자체가 외롭지는 않았다. 허나 대한민국은 틀렸다. 안젤리나의 기억을 지닌 그녀로써는 신민배와의 추억으로 인해 과거를 추억한다기 보다는 이미 없어져버린 안젤리나에 대한 외로움만이 자리 잡혀 있을 뿐이다.
특이하게도 베르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안젤리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신탁이 내려지진 않았다. 최후에 안젤리나가 신민배를 살리며 죽은 장소까지에 대한 기억 뿐. 그 어떠한 미래도 보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받은 신탁으로 인해서 신민배를 위한 안배로 그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 왔지만, 이번 신탁에도 안젤리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딜 간걸까?’
그녀 역시 신민배 만큼은 아니었으나, 안젤리나의 안위와 행적에 대해서 상당한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전 이만 가볼게요. 그리고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이딴 일을 지시해 놓고 도움도 안주려고 했었나? 제기랄…….”
남백호는 짜증이 나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살짝 미소만 짓고는 방문을 열고 사라졌다.
“휴…… 미치겠네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인마! 시킨대로 해야지!”
“예? 하지만 형은 한국과 관계 만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잖아요?”
“씨발…… 누군들 좋아서 이러겠냐? 최소한 하지 않으면…… 너에게 문제가 생긴다잖아!!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창종이까지 살리러 온 것 같고 말이야.”
남백호 역시도 짜증을 내고는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신민배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임창종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상태는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의 눈빛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 파로스가 나서며 말했다.
“사라진 팔과 다리는 내가 평생을 사용해도 될 정도의 좋은 로봇 팔, 다리로 만들어줄게. 걱정하지마.”
생글생글 거리며 신민배에게 하는 말에 남백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파로스를 때릴 뻔 했다.
악의가 없는 것은 알지만, 이런 상황에서 웃으며 말을 하는 파로스가 너무나 생각 없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로스의 경우는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축복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인간이 괴수들을 만나서 팔과 다리 한쪽만 잃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겠는가?
“다 잘 될거야…… 걱정하지마.”
파로스는 신민배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그가 말한 로봇 팔,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VIP 병실로 옮긴 곳은 매우 넓었다. 임창종이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국의 한 호텔로 이동했고, 병실에는 임창종의 아내와 신민배. 그리고 남백호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만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임창종이 눈을 떴다.
“여, 여보!”
그 목소리를 듣고 신민배와 남백호도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것이 아직도 기운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보…… 여긴 어디……?”
그 말에 빠르게 아내가 답했다.
“벼, 병원이에요. 당신 많이 다쳐서…… 흑흑.”
그녀가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임창종은 천천히 느껴지는 자신의 감각에 팔과 다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살짝 고개를 들어 살펴본다. 그리고 이내 슬픈 눈빛이 감돌며 입을 열지 못했다.
“그, 그런데…… 두 사람이 어떻게 여길?”
“다, 당신이 편지를 남겼었잖아요.”
언제나 열어보지 않기를 바랬던 봉투. 그곳에는 임창종이 남긴 유언장과 재산으로 남긴 것들. 그리고 최근까지 바뀐 남백호의 연락처와 그의 길드 연락처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바뀐 편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적어놓을 수가 있어요? 내가 정말 당신 죽고나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미안…….”
쓴 웃음을 짓고 자신의 아내를 달래주려는 임창종. 하지만 편지를 읽었던 아내의 심정은 이로 말할 수가 없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소 이랬다. 자신이 죽고나면 많은 재산으로 생활할 수는 있지만, 여자로써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드니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잘 살라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남자로써는 자신이 없는 가족들이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글을 읽은 아내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질 정도였다.
“두, 두 번 다시 그 런거 적지 말아요. 알겠어요? 이제 그런 걸 남기면 바로 찢어버릴테니까!!”
임창종의 아내가 매우 화를 내며 울상을 지어보였다.
아내는 임창종의 눈빛을 바라보며 뭔가를 느꼈는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병실에 남은 세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살았다니…… 기적 같은 일이군요…….”
“그래 인마. 기적이었지. 그 기적을 민배가 다왔고.”
“예? 민배씨가요?”
“그래. 의사도 수술을 포기했는데…… 내참…… 황당하게 일반 의사가 버프를 받고 수술을 해서 네가 겨우 살아났다. 마지막에는 베르나가 도우기도 했었고.”
그의 말에 임창종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고맙습니다. 민배씨…….”
“그런 말씀하지마세요. 저희가 어디 고맙다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사이인가요?”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임창종은 웃으며 어깨가 쑤셔 오는지 잠시 오른 쪽 팔을 움찔해 보였다.
“팔은…… 파로스 녀석이 좋은 걸로 해준데. 그러니 걱정하지마…… 알잖아? 그녀석 팔이 얼마나 비싸고 좋은건지…….”
“후후…… 어떻게 보답을 해드려야할지…….”
임창종이 기운이 없게 대답을 하고 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잃은 것을 보고 용기를 북돋으며 대화를 이어 갈 수 있겠는가?
그에게는 당장 시간이라는 약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당분간…… 한국에 있을거다. 그러니까 계속 찾아올게. 올때마다 네놈한테 잔소리도 좀 해야하고.”
“한국……에요? 하지만 길드장님은 한국에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뭐 그렇게 됐다. 그리고…… 좀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고. 우선은 네가 좀 다 낫고 나면 이야기하도록 하자. 간다.”
신민배와 남백호가 자리를 비우고 임창종의 아내가 병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울음소리만이 병실 바깥으로 전해질 뿐이었다.
백호 길드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에 한국 측 정부와 네티즌들이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드디어 백호 길드가 한국에 괴수를 잡아주기 위해서 왔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백호 길드는 그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았고, 언론은 연신 기사를 꾸며가며 매 시간 마다 보도를 할 정도였다.
차혁진은 백호 길드가 머무는 길드로 즉시 찾아왔다. 그리고 임창종과 신민배 또한 백호 길드 전원이 모인 상태에서 차혁진이 다시금 그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차혁진으로써는 임창종에 대한 사고 소식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협상을 하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강경한 대책을 내세우고 있더군요. 그러다가 큰 난리가 날텐데 말입니다.”
남백호의 말에 차혁진은 쓴 미소를 지었다.
“큰 난리가 나기 위해서 그런 강경책을 쓴 것입니다…… 단순하게 쿠데타 정도로 끝날지 모르는 국민들의 의지와 괴수에 의해서 멸망을 하는 상황……. 저에게는 나라의 존속이 우선입니다.”
“하하, 그 말을 국민들이 들었다면 아주 난리가 날 법하네요.”
“한 두 명 살리자고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이 모두가 국민을 위한 일이지요. 국민들도 시간이 지나면 알 것입니다…….”
“글쎄요…… 선동을 하루 이틀 당하는 국민들도 아니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또 의뢰를 하러 오신 것입니까?”
남백호의 말에 차혁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그럼 그 일 때문에 한국에 오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설마요? 저희가 그 문제로 한국에 올 리가 있겠습니까? 급한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고…… 오히려 찾아오셔야겠죠…….”
이미 백호 길드 앞에서 자존심이라고는 모조리 뭉겐 상태의 차혁진이었기에 이런 말은 전혀 도발로도 들리지 않았다.
“그, 그럼 대체…… 왜 한국으로……?”
남백호의 성격상 절대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에 올 리가 없다. 하물며 현재 한국은 관광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라로, 괴수로부터 가장 위험한 나라로 선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있었습니다. 옛 동료가 크게 다쳐서 병문안으로 오게 되었지요. 목숨이라도 살아 있어서 천만다행으로 여겨지더군요. 단지 그것뿐입니다.”
차혁진은 다시금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대했던 대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 그렇다면……?”
“생각하는게 맞습니다. 의뢰 따윈 생각지도 않았으니까요. 우선 나가주시죠? 길드원끼리 할 말이 있으니까요.”
정부로부터 일하는 차혁진에게 이런 수모를 겪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하물며 다른 나라의 길드장들도 이정도로 그를 막대하진 않는 것이었다.
차혁진은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호텔을 나섰다. 그가 나서기를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은 쏜살 같이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백호 길장과의 만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의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어떠한 대답을 들으셨습니까? 한 말씀만 해주시죠.”
하지만 그들은 차혁진에게 그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차혁진이 나가고 남백호는 앞으로 백호 길드가 한국에서 해야만 할 일들을 모두에게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길드원들의 눈이 상당히 커져간다. 또한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나 엄청난 말에 대한 부작용인 것이다.
“기, 길드장님.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래.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게 해야만하는거고.”
“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하신겁니까?”
길드원들은 조금씩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너희들에게 손해보는 짓 따윈 하지 않겠다.”
그들은 남백호가 어떠한 결정을 하던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두 가지의 이야기 중 두 번째 이야기가 너무나 터무니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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