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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탈퇴
여러 결정들이 내려 진 후, 신민배에게 두 사람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형…… 무슨 일이시길래 그래요?”
“오빠, 우리에게 말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잖아?”
길드 탈퇴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는 두 사람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신민배는 두 사람에게 탈퇴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도 그의 가족이기 때문에 사실에 대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신민배는 그때부터 에릭과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1등급…… 능력자라고요?”
“그래. 그 능력은 실로 대단해. 넌 보지 못했겠지만, 시란이라면 아마도 알거야.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
끄덕.
시란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위험이 닥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자세한 내막에 대한 부분은 모두 지우고, 간략하게만 그들에게 설명했다.
“해서 현재의 나로써는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없었고, 나 역시도 1등급 능력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게 되는거야.”
시현은 그 말을 듣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이 그렇게 노력한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함께 갈게요.”
“나도 갈게! 어차피 이제 모델 일 집어쳐 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두 사람은 신민배를 따라 함께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니들이 같이가게 되면 동생들은 누가 책임져? 그러지마. 그리고 백호 형님이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서 길드는 탈퇴를 하고 가는거야.”
“그렇지만 형…….”
시현이 아쉬운 듯 그를 바라본다.
“걱정마라. 다 잘 될테니까.”
시현은 언제나 그에게 불만이 많았다.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가 맞이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형. 우리도 가족인데…… 형에게 문제가 생기면 저희는 어떻게 해요?”
“후후…… 니들이 무슨 애들이냐? 이제 다들 성인이잖아?”
아직까지 자신의 앞에서는 영락없는 아이 행세를 하는 시현과 시란.
두 사람 나이도 30대이면서 여전히 예전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민배는 그런 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마라…… 다 잘 될테니.”
시현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마음을 그가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은하고 있었다.
시현을 먼저 들여보내고 신민배는 시란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고 두 사람의 머리를 타고 흐른다. 시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란아…….”
신민배는 그런 시란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으응?”
그녀는 조심스럽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그 말을 듣고 시란의 표정이 잠시 멍해지고 만다.
왠지 지금 그 말은 마치 작별을 고하는 듯한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오, 오빠 무슨 소리야……? 고마웠다니? 앞으로 안볼 사람처럼 왜 그래?”
“후후…… 그런가? 난 그냥 갑자기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거지 뭐.”
표정이 계속해서 굳은 채로 시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매번 신민배의 웃는 모습을 보아온 그녀지만, 오늘 따라 그의 미소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그리고 나도 그 마음에 보답하려했고…….”
시란의 눈동자가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반드시 확인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그래서 난 미국으로 갈거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기회가 온다면…….”
“오빠!”
신민배의 말을 듣고 있던 시란이 그의 말을 자르며 급히 그를 불렀다.
“미국 잘 갔다 오면 돼. 뭐 안올 사람처럼 그래? 잘 갔다오고, 몸조심히만 와. 알았지?”
그녀의 표정은 간절했다. 신민배의 입이 다음 말을 하지 않도록.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을까? 신민배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았어. 잘 다녀올게.”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시란에게 다가갔다.
움찔!
그런데 시란은 그 순간 평소와 다른 불안감에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신민배에게 시란이 부끄러운 듯 말하기 시작했다.
“아…… 오빠! 나 배아파. 빨리 들어가봐야 할 것 같다. 나 먼저 들어갈게.”
그녀가 몸을 ‘휙’ 돌리며 그대로 사라졌고, 잠시 그 자리에서 시란의 뒷모습만 응시하고 있는 신민배였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신민배는 마지막 그녀에게 전할 말도 있었다. 비록 지금에 와서야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으나, 그녀에게만은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사라진 그녀의 모습에서 이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길게 한숨이 흘러 나왔다.
“휴…….”
백호 시티 내부에 거대한 저택이 존재한다. 이 저택은 신민배의 가족들만이 사는 저택으로 남백호가 신경써서 지어준 저택이었다.
2층 높이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일반 4층 건물에 해당할 만큼 높은 건물이었다. 넓은 정원은 한 때 베르나의 저택만큼이나 웅장하게 꾸며져 있었다.
신민배는 시란이 사라지고 홀로 저택을 거닐기 시작했다. 저택이 완성되고 이렇게 홀로 걸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밤하늘의 별과 달이 빛나고 있기에 주변에는 어느 정도 빛이 내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신민배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집중을 했다.
달빛을 머금어 빛이 나고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에 시선이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
(원하던 것을 찾았나?)
“응. 찾긴 했는데 말이야…….”
어두운 장소. 그곳에는 괴수로 변해버린 안젤리나와 어둠속에 가려진 이가 있었다.
“혹시…… 나의 심장이 왜 그녀석에게 있었는지 알고 있어?”
(그거야 나야 모르지. 애초에 처음부터 너를 보아왔던 것은 아니니까.)
“그래? 그런데 말이야…… 그녀석 나를 아는 눈빛을 하더라고? 그리고 나를 안젤리나라고 부르던데?”
(안젤리나? 인간이었을 때의 너의 이름인가보군.)
“응. 그런가봐…… 그런데…… 나도 뭔가 이상해서 말이야. 분명 만나 본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안젤리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다.
“아참? 그런데 인간들 중에 나보다 강한 녀석들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렇지. 인간들 중에서 너보다 강한 자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지.)
“그래? 그럼 이상하잖아?”
안젤리나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무리 인간이 강하다고 해도 너와 호각을 이룰 정도라고?)
“뭐 호각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분명 지금까지의 능력자들과는 확실히 틀리긴 했지. 보통 녀석들은 나의 움직임조차도 감지하지 못할 정돈데, 그녀석은 나를 따라올 정도의 능력을 가졌으니까.”
그 말에 어둠속에 있던 이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거 이상한 노릇이군. 인간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을텐데…….)
너무나 어두워 대상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런 이에게 안젤리나가 말했다.
“그런데 나의 심장을 찾게 되면 난 더 강해질 수가 있는 건가?”
(물론이지. 애초에 너의 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심장이야. 그것만 있다면 지금보다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겠지.)
안젤리나.
그녀는 신민배에게 능력을 사용 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로 그녀가 숨을 거둔 순간 괴수 하나가 탄생했다.
괴수는 안젤리나와 신민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고, 살아 있는 신민배를 뒤로하고 안젤리나의 시신만을 이곳으로 가져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안젤리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전 그녀가 가졌던 기억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다. 오로지 지금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는 이의 말만을 들으며 그가 행하는 말에 따를 뿐이다.
“세르데치니. 그런데 괴수 녀석은 어딜 간거지?”
세르데치니라고 불리는 의문의 인물. 그는 결코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고, 그녀에게 말만 전할 뿐이다.
(네가 나갔을 때 따라 간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 그럼 왜 날 도와주지도 않은거지? 하여간…… 짜증나는 녀석이야. 뭐든지 지멋대로군.”
(모르지. 그녀석도…… 지금까지의 녀석들과는 달라. 별개로 태어난 녀석이니까. 아주 신비로운 녀석이지. 특이하게도 그녀석은 너를 잘 따른다는 것일 뿐.)
“흥! 어딜봐서 날 따른다는거야? 사사건건 날 감시하는 듯한 모습만 보이잖아?”
(글세? 감시라고 할까? 내가 느끼기엔…… 그녀석도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긴한데……?)
둘의 대화에서 나오는 괴수는 바로 은색의 털을 지닌 괴수를 의미한다. 또한 은색 털의 괴수는 안젤리나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세르데치니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의 말을 들으면 앞으로 인간들이 더 강해질거란 말인가?)
“글세 그렇다니까? 인간들은 발전을 한다며? 그 발전이 자신들을 망칠 때 망치더라도…… 결코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
(그렇군…… 그럼 나 역시도 너의 동료를 만드는게 좋겠군.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재료를 두 개만 좀 구해다 줄 수 있겠어?)
“음…… 뭐 그러지.”
안젤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모습이 사라졌다. 어둠속에서 세르데치니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뿐이었다.
***
“저, 저건?”
한때 대구에서 보았던 은색 빛의 털을 가진 괴수가 분명했다.
눈으로 쫓기도 힘든 스피드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알려진 적이 없는 미스테리의 괴수. 하물며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지도 않았었다.
“대체…… 여긴 어떻게 온거지?”
그때는 우연치 않게 괴수를 만났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곳은 어떤 곳보다 보안이 철저한 백호 시티의 내부다. 더군다나 백호 시티의 외각에는 수많은 능력자들과 경비대들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싱크홀이 아닌 상태에 괴수가 백호 시티 내부로 들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물며 싱크홀에 대한 방비 역시도 이미 백호 시티는 이루어져 있는 상태이며, 대다수의 도시 전체가 시스템 설치로 인해서 싱크홀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시에 곧장 센서가 발동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신민배에게는 그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는데, 괴수가 이곳에 그것도 자신의 저택 안에 있다는 것은 백호 시티의 외각을 넘어 왔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대체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거지?”
은색 털의 괴수를 바라보며 신민배는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비록 괴수라고 하지만, 자신에게 살기가 없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이미 다른 괴수와는 차원이 틀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민배는 두려웠지만 조심스럽게 은색의 괴수를 향해서 걸음을 걸었다.
은색의 괴수가 약간 움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그 모습에 가던 걸음을 멈춘 신민배는 괴수의 눈치를 보며 다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처음 괴수를 발견한 거리가 대략 150미터 이상이 되는 거리였다. 그리고 이제는 고작 10미터 정도를 앞에 두고 있다.
대구에 처음 발견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이 밤에 다시금 괴수를 바라보니, 예전 보았던 것에 비해서 은색의 털은 너무나 매끄러워 보일 지경이다.
‘무슨…… 샴푸라도 하는거냐? 이 윤기는 대체 뭐야?’
이상하게도 신민배는 괴수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오래 알았던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주인을 잘 따르지 않는 고양이를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코앞에까지 다가온 괴수를 바라보니, 멀리서 봤을 때보다 확실하게 컸다.
그는 괴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괴수 역시도 신민배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너…… 뭐니?”
사람에게 말을 걸 듯 그는 괴수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보았다.
괴수는 아무런 말을하지 않고 그를 바라만 보고 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약간 숙여 보였다.
그 모습에 신민배는 천천히 손을 괴수의 머리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사라라락~!
괴수의 털이 신민배의 손을 스쳐가고 있다.
‘이건…… 털이라고 비도는 사람 머리카락 같은 느낌이……?’
그리고 그때 뭔가 아련한 기분이 동시에 교차되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지금 이 기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안젤리나……?’
그렇다. 분명 그가 안젤리나의 머리를 쓸어 넘길 때의 느낌과 지금 괴수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느낌은 너무나도 똑같다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