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68)

[집안 이야기 그 전, 23 입시공부]

정용은 이른 새벽 시간에 저절로 눈을 떴다.

그것은 오랫동안 꾸준히 성균관에서 새벽 운동을 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잠자리 곁에서 잠이든 엄마와 여동생을 두고 아무도 모르게 살짝 잠자리에서 일어나 추리닝을 걸쳐 입었다.

겨울의 새벽 산은 추웠으므로 후드가 달린 추리닝은 필수였다.

당시 한국에서 만든 국산 추리닝은 후드가 달려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질이 엉성하여 싼 티가 팍팍 났다.

그러나 미군부대 옆에 살고 있는 정용은 엄마 덕분에 미 군용 추리닝을 얻어 입기 쉬웠다.

이 미군용 추리닝은 재질이 톡톡한데다가 질겨서 오래 입을 수 있었다.

주로 회색 계통의 면으로 된 옷이었는데, 땀이 차면 무거워지는 것이 흠이긴 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입어보지 못하는 미제 군용 트레이닝복은 입은 것만으로도 기본 좋았다.

게다가 그 트레이닝복 뒤편에는 언제나 [F.E.A.F]란 영문이 박혀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정용이 이 [F.E.A.F]란 로고가 박힌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녀도 그 영어 약자가 뭘 의미하는지 평범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봐도 된다.

는 ‘미 극동공군’이란 의미로 ‘Far East Air Force’란 영문의 약자이다.

이 말을 직역하면 ‘극동공군’이 되지만 미군 애들은 자기네가 지구 방위대란 인식을 갖고 있었으므로 굳이 ‘America’란 말을 넣지 않는데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사실 이 당시 한국군은 공군은커녕, 변변한 육군조차 없었던 때 아닌가?

정용은 이 추리닝과 하얀 운동화, 그리고 검은 가죽 장갑까지 챙기고선 둔덕산엘 오르기 시작하였다.

정용은 중학교 가면서부터 흰색 스파이크 운동화를 즐겨 신었다. 이 운동화는 가볍고 움직이는데 촉감이 아주 좋았다.(당시 우리나라에선 태화고무의 말표 운동화가 절정의 인기였다.)

이 말표 스파이크 운동화는 밑창이 노란색 생고무로 되어 있어 질기고 부드러웠다.

그 때 어린아이들은 주로 검정 고무신을, 어른들은 흰 고무신을 많이 신었기에 운동화는 매우 드물었다.

흰색의 말표 스파이크 운동화는 옆면을 펭킹 가위로 자른 것 같이 올록볼록 뾰쪽한 면이 보이도록 3개의 빨간 선을 넣었다.

(그러나 나중 70년대 아디다스가 상표권 침해로 소송을 일으키게 되어 태화고무는 사양길로 접어든다. 안타까운 일이다.)

둔덕산 위로 올라가는 길 옆 마른 고목과 잡초들 위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정용이 가는 길은 산의 남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민둥한 둔덕산은 정상까지 대략 15분이면 된다.

그러나 거기서 정서쪽으로 약 5분 정도 가면 갈래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그냥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소사역이 나온다.

그러나 다시 북쪽으로 돌면 듬성듬성 펼쳐진 고만고만한 봉우리 몇 개가 만드는 능선이 나오는데, 그 능선을 따라 약 20분 정도 달리면 그쪽의 산자락을 대충 끝나고, 위에서 보면 북쪽으로 서울과 가까운 김포평야가 다 보인다.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경기도와 서울과 경계를 짓는 작은 산들이 보이는데, 거기가 까치울 고개와 시루개 고개가 만나는 곳이다.

거기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멀리 지양산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와룡산이 있다.

내려가면 샛길이 나오지만 아까 온 능선과 조금 다른 옆의 능선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약 20분 정도 내달리면, 처음 올라왔던 길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면 둔덕산 전체를 한 바퀴 돈 셈이 된다.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바로 이 산길을 수도 없이 다녔다. 그 땐, 제이콥과 같이 달렸지만 지금은 그가 없을 뿐이다.

운동할 때 이런 산길을 내달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크고 험한 산은 뛰면서, 내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민둥한 야산의 산길은 운동장이나 평지처럼 내달릴 수야 없지만, 어느 정도 속력을 내어 달리면 옆의 나뭇가지와 바위덩어리, 돌멩이들이 자연적인 장애물이 된다.

장애물을 피해가면서 달리면 저절로 ‘신법(身法)’이 터득된다.

아무도 없는 이 새벽 산길에 헌원심법을 통한 단전호흡과 호보(虎步)로 내달려 보라! 거기서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정용은 어느새 앞서 올랐던 갈림길에 들어섰다. 거기서부터 정용은 자신이 갖고 있는 최대한의 기운을 뿜어내며 번개 같은 속도로 산을 치달려 내려왔다.

누가 보면 그건 마치 제비가 물을 차고 나르는 듯한 재빠르고 신속한 동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매끈하면서도 흠잡을 데 없는,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다. 비연약파(飛燕躍波)!

그리고 집 가까이 다가서자 속도를 천천히 줄이면서도 이제까지의 속력과 운동력을 바탕으로 공중을 한 바퀴 휙 돌아 퀀셋 막사 도장 마당에 공중제비로 몸을 떨어뜨리며 가볍게 착지한다.

그의 착지에는 ‘쿵’하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평사낙안(平沙落雁)!

마치 기러기가 해안가 모래밭에 내려앉는 것처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착지였다.

이를 행운유수(行雲流水)라 하던가?

두어 시간을 뛰고 나니 정용은 자신의 몸에서 기가 쫙 흐르면서, 온 몸의 세포가 활짝 열리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몸 위로 찬물을 확 끼얹는다.

순식간에 그의 몸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방금 운동한 후라 몸에 열기가 뜨끈뜨끈하여 추운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서 퀀셋 막사의 도장으로 들어갔다.

‘지금 상대가 있으면 대련하기 딱 좋은데-- -- ’

정용은 그럴 상대가 없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헌원심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진이가 은지 엄마를 치료할 때 ‘그것도 몰라? -- ’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그는 헌원심법을 전체를 달달 외워버리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그래도 다 외우고 나니 앞에 모르던 것이 뒤에 설명된 부분도 있고, 뒤에 모르던 것이 앞의 내용을 이해함으로써 다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참 동안 호흡법을 연습하던 그는 일어나 심법에 소개된 자세를 시연해 보았다.

서울에서는 새벽에 성균관에 나가 연습을 하던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도장에서 조용하게 혼자 책을 펴 놓고 연습을 하니 오히려 더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침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해가 떠올라 도장 안을 밝게 비쳐준다.

수건으로 다시 머리에서 흐른 땀을 닦았다.

도장 문 앞에 처녀가 다된 한 아가씨가 서서 정용을 ‘오빠!’라고 부른다.

정아가 정용에게 아침을 먹으란다.

세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엄마가 정용의 의견을 물어온다.

“얘, 용아, 혹시 모르니 -- 내가 부대장님을 한 번 만나 볼까?”

정혜는 아들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세요 -- 혹시 모르니까 -- 그러나, 별 신통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게 뻔해요. -- ”

정용은 부대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에 하나 얻을 수 있기만 한다면 얻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측한대로 정용의 엄마는 부대장을 만나기는 했어도 얻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남편을 잃은 여인이 한을 품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정혜는 공연히 부대장과의 면담을 통해 ‘그런 의문이나 부대 주변에서 자꾸 일으키고 다니면 부대 내의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그만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러나 정용은 오히려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뭔가가 있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단 지금은 그가 움직일 때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엄마는 출근 준비를 다 하였다. 원피스를 입은 엄마의 몸매가 무척 아름답다. 엄마는 그 위에 검은 코트를 걸쳤다.

엄마의 날씬한 몸매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길고 매력적인 하얀 다리의 일부는 보였다.

그 날부터 정용은 새벽에는 무예 수련을,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에는 자신의 공부와 함께 여동생의 중학교 입학을 위한 수험 준비에 도움을 주기로 작정하고 엄마와 상의하였다.

엄마 정혜는 사랑하는 아들이 예쁜 딸의 중학교 입학시험을 위한 준비를 해 준다는데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무조건 찬성이다.

여동생 정아 역시 오빠와 같이 서울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기에 오빠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당시 중학교 입학시험은 대개 1월 말에서 2월 초순에 전, 후기로 나누어서 시험이 치루어졌기 때문에 정아와 정용은 시험 전 최소한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정용은 잘만 준비하면 동생의 중학교 시험 준비는 충분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정용은 여동생 정아가 어느 학교를 원하는지 알아보았다.

물론 정아는 오빠와 같은 이름의 여학교를 원하였다.

그러나 정용이 정아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본 결과 인천, 부천 등지에서는 최상급의 실력일지 모르나, 서울에서는 최상급의 실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누이동생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입시의 전형 요강과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스스로 준비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1월 한 달을 보내도록 하였다.

정아는 혼자 공부하다가 막힐 경우가 많았는데, 오빠의 도움으로 중학교 수험 공부를 하니 너무나 좋았다.

그냥 곁에 있어도 좋은 오빠인데, 옆에서 공부까지 도와주니 그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정용은 여자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결과 그냥 시키는 것 보다 상을 내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란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아에게도 똑같은 상을 내걸었다.

정아는 사랑하는 오빠로부터 ‘뽀뽀’를 받기 위해 죽자 사자 공부하였다.

그러자 12월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연말이 다가오고, 새해가 시작될 무렵이 되자 정아의 성적이 놀랄 정도로 올라갔다.

당시 중학 시험은 주로 국어와 산수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국어와 산수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 외 사생과 자연은 암기과목이기 때문에 머리 좋은 애들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최상급의 학교를 지원하는 아이들은 암기과목은 거의 만점이었다.

그러므로 그런 과목에서 실수하여 하나라도 틀리면 그건 죽음이었다.

또 하나 간과하면 안 될 것이 남학교든 여학교든 체력고사가 있다는 점이다.

달리기와 넓이 뛰기, 던지기와 턱걸이로 대변되는 이 체력고사는 만만한 과목이 아니었다.

동점자가 즐비한 마당에 단 1점이 어디냐? 그 당시 입시에 임한 학생들은 죽을힘을 써가며 턱걸이를 했다.

그래서 정용은 정아의 체력 향상을 위해 비장의 처방을 해야 했다.

물론 정아도 아버지와 엄마를 닮아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날씬하며 숙성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체력은 얼마큼 된다고 보나, 정용 자신과 같이 특급 - 전 과목 만점 수준의 체력은 아닌 것 같아 아침에 같이 일어나 둔덕산을 오르는 운동을 하기로 여동생과 합의를 했다.

한 겨울에 두 사람은 날이 새기도 전에 산에 올랐다.

여동생과의 운동과 공부 덕에 정용은 엄마와의 밀회를 나눌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어떨 땐, 엄마가 먼저 정용과의 교접을 위해 저녁을 먹고 난 후 눈짓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정아가 밤엔 12시까지 공부하고, 새벽에는 4시에 기상하는 것을 목표로 앉은뱅이, 사발시계를 틀어 놓고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정용과 엄마 정혜는 정아의 눈을 피해 밀회를 나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정용이 먼저 조용한 시간을 내어 엄마, 정혜에게 정아의 입학시험 기간까지는 ‘집안에서의 교접’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묵시적인 합의를 하게 되었다.

정혜는 딸이 중학교를 가려고 입학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어떤 엄마는 딸을 위해 산에 올라가 백일 동안 치성도 드린다는데, ‘그래, 아랫도리가 허전하여 아들과의 씹을 참지 못한다면 그게 말이 되는 얘기냐?’고 생각하며 정용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그래도 정혜는 매일 축축한 아랫도리가 간질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용도 삼청동 마나님과의 잠자리 이후 여자에 대해서 부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에 와서도 엄마와 황홀한 육체적 교접을 통해 만족스러운 교감을 나누었는데, 정아의 중학 입학시험 관계로 정기적으로 여자의 육체를 통한 사정이 불가능해지자 시도 때도 없이 발기하는 좆 때문에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정용도 참지 못할 사건이 도장을 청소하면서 벌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아와 함께 겨울산을 달리고 온 그는 가마솥에 이미 데워놓은 물로 땀을 씻어 내렸다.

물론 여동생 정아도 아침 운동 후 몸을 간단하게 씻고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을 들었다.

정용은 엄마의 출근을 기다려 도장으로 와 매트리스를 들어내어 햇볕에 말리는 등 전면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 저것 들어내며 쿵탕거리다 보니 저번에 헌원심법을 발견하였던 오목한 곳에서 종이 뭉텅이가 ‘툭’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저번에 숨겨둔 엄마와 아버지의 연애담이 담긴 편지들이다.

“오빠, 그거 -- 뭐야?”

정용이 펼쳐 보기도 전에 언제 왔는지 동생 정아가 묻는다.

정용은 그 내용을 알기에 “아무 것도 아냐---”하며 숨기자, 정아가 잽싸게 다가와 정용의 손에서 착 채어간다.

정용의 손에서 물건을 빼앗는 정아의 솜씨가 대단했다.

물론 정용이 방심한 탓도 있지만 아무 소리도 없이 ‘탁’하고 낚아채는 정아의 그 솜씨는 좀 더 연마하면 나중에 요긴하게 사용할 수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보였다.

정아는 정용이 미처 ‘보지 말라’고 말하기도 전에 벌써 그 편지 뭉텅이를 털어 보기 시작하였다.

“에이, 이게 뭐야?--- 먼지가 이렇게 많아 -- ” 하면서 편지 내용을 읽어 보는 것이었다.

정용은 "안 보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또 "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서 정아의 행동을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대로 있었다.

한참 지나자 정아가 “뭐, 순 이런 것만 있어? -- ”하며 얼굴이 발개지면서 “에이, 오빠나 봐! --- ”하며 넘겨준다.

그런데 정아가 편지 뭉텅이를 넘겨주는 순간 그 안에서 ‘팔랑’하며 종이쪽지가 떨어진다.

그 종이쪽지엔 영어로 무슨 주소인 듯한 글씨가 써 있었다.

아버지의 편지 필체로 미루어 볼 때 그건 분명 아버지의 글씨체가 분명했다.

"400 DENISON ST. HIGHLAND PARK NJ "

정용은 이 글자만 가지고서는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정용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 종이쪽지를 자신의 헌원심경 책갈피에 잘 간수하여 넣었다.

그건 나중에 제인에게 물어볼 작정이다.

그런데 정아가 자신에게 넘겨준 엄마, 아버지의 연애담 편지를 갈무리하게 위해 다른 종이봉투에 넣으려는데, 아주 요상한 문구가 정용의 눈에 띈다.

“어제 저녁 전 너무 외로웠어요. 오빠가 매일 저녁 저를 찾아와 해주던 그 일이 그리웠어요. --- (생략) 제 젖이 이젠 몽우리가 져서 너무 아파요. -- 오빠가 만져줬으면 정말 좋겠어요 -- 아래엔 --- 분비물이 엄청 많아졌어요. (생략) --- 이젠 뱃속의 아기가 발로 차요. --- 얜, 장군이 될려나 봐요. -- 아니면 축구선수? 히히-- ”

아마 그 편지는 엄마가 뱃속에 아기를 갖고 있을 때 쓴 모양이다.

이건 나? 아니면 정아? 그러나 정용은 글의 내용만 보면 은근히 정용의 좆도 꼴린다.

그럼 지금 엄마 젖을 누가 만져 주나? 오늘 저녁 한 번 만져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용은 엄마 아버지의 연애담이 담긴 편지는 적당히 숨겨 두고 천천히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도 꼴린 좆은 어떻게 한담!

그는 나중에 시간이 충분해지면 편지를 샅샅히 훑어 봐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수많은 편지 속에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이유를 밝힐 수 있는 단서가 나올지 모른다.

오늘 당장 영어로 적힌 무슨 주소인지 뭔지 모르지만 영어로 적힌 종이쪽지가 나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지금 당장은 엄마 아빠의 편지 내용은 여동생인 정아가 보기에 너무 낮 뜨거운 내용이 많으니 우선은 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날도 정아는 여전히 열두시까지 공부하였다.

그 다음날은 어김없이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오빠 정용을 깨운다.

산에 올라갈 준비를 하면 다섯 시.

매일 가는 산길이라도 새벽 다섯 시는 매우 어둡다. 차갑고 어두운 산길을 오르려면 후래쉬가 필요하다. 그럴 때 기역자로 꺾인 국방색 미제 랜턴은 참 유용하다.

정아와 함께 북쪽 산자락까지 도달하면 여섯시가 조금 넘는다.

그러면 김포평야가 부옇게 동이 튼다. 그때부터는 후래쉬가 없어도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다.

다시 돌아서 뛰어 내려오면 일곱 시가 조금 못 된다. 이제 동이 완전히 튼다. 그래도 낮이 가장 짧은 동지날 부근에는 일곱 시 반까지 어두운 때도 있다.

엄마는 여섯시 정도에 일어나 불을 피우고 아침을 짓는다.

그러면 정용은 뜨거운 물을 양동이에 담아 펌프대 옆으로 나와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젖은 땀을 씻어낸다. 정아는 부엌 옆에 임시로 마련한 욕실에서 운동한 땀을 닦아낸다.

정용이 이번 겨울 방학 때 집에 와서 한 일 중 가장 보람된 일은 부엌에 개수대를 보강하고, 그 옆에 간이 욕실를 마련한 일이었다.

물론 수도꼭지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서울의 마나님 댁과 같은 욕실 구조는 아니었지만, 부엌 바닥에 고무 다라이를 놓고 씻어야 하는 불편함을 벗어나기 위해 욕조와 하수구를 설치하고 따뜻한 물을 길어다 놓고 쓰면 자유롭게 물이 흘러내리도록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엄청 좋아진 셈이다.

게다가 문을 닫으면 사방이 막혀 따뜻한 물을 쓰기만 하면 겨울에도 춥지 않아 언제든 목욕할 수 있다.

덕분에 큰 아궁이 가마솥에는 언제든지 물을 퍼 쓸 수 있도록 데워 놓고, 연탄을 쓰는 작은 아궁이 위에도 양은솥을 올려놓아 항상 따뜻한 물을 쓰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엄마가 제일 좋아한다.

정용은 방학 내내 정아의 공부와 씨름을 하였다.

엄마가 부대로 출근한 후 안방에서 함께 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것 있으면 가르쳐 주고,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전략을 짰다.

어떻게 된 나라가 매년 중학교 입시과목이 바뀌었다.

60년대 초반에는 전 과목이 입시 대상이었는데, 중반 정도에는 국어와 산수만 본다고 했다가, 다시 또 전 과목을 입시과목에 넣었다.

정아는 국민학교 전 과목 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국어, 산수, 사생, 자연, 음악, 미술, 실과에 체능까지 모두 여덟 과목이나 된다.(결국 1968년에 중학교 입시가 뺑뺑이 돌리기로 바뀐다.)

정아가 가고자 하는 초일류 여중학교에서는 전국에서 뽑힌 수재들만 지원하므로 너도 나도 잘하니 일반 과목에서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술과 음악 같은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지방에서 공부한 애들과 서울에서 공부한 애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났다.

그건 문화적 접근성이 현저히 뒤처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용은 정아의 실력이 서울 애들 보다 못하다고 말하므로 여동생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추운 일월이 다 지나갔다.

정아도 공부에 전념하다보니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가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모양이다.

정용에게 다가와 뽀뽀해달라느니, 안아달라느니 요구가 부쩍 많아졌다.

새벽 운동을 하고 산에서 내려와 부엌에 있는 욕실에 들어가는데, 오빠인 정용이 보는 데도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진다.

정용은 이제 여성으로 변신하고 있는 여동생의 하얀 몸을 힐끗 쳐다보며, 은근히 꼴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정아는 오빠가 자신의 알몸을 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런 정아의 태도가 정용을 황당하게 만든다.

정용은 아직까지 여동생을 여자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매번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이런 꼴을 당하니 여동생을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더욱이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빠, 나 잘했지? -- 나, 상 줘 ---”하며 입술을 내밀고 먼저 입맞춤을 요구할 때면 더욱 곤란해지는데, 여동생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어디서 배웠는지 혀를 쏙 내밀어 키스를 시도할 때면 정용도 정신이 혼몽해지곤 하였다.

정아의 입시가 다가와 정용은 엄마와 함께 부천 집을 잠시 비우고 명륜동 셋집으로 움직였다.

엄마는 부대에 딸이 중학교 시험을 본다고 며칠 휴가를 얻었다.

이들이 부천에서 서울로 오는 동안 두 여자는 정용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조잘대며 서로의 몸을 기댄다.

인천, 영등포간 버스를 타고 온 정용 일행은 영등포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서울역을 거쳐 혜화동에서 내려 명륜동으로 올라갔다.

시험 전날 정용은 동생과 함께 k 여중에 들러 입시 전형 서류의 확인과 함께 수험표를 받았다.

정아와 엄마 정혜는 정동에 있는 이 여학교를 둘러보고 정말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아는 오빠네 학교와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 맘에 걸린다고 한다.

정용은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서울에 왔으니, 삼청동 마나님 집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집에 잠시 들린다 하여도, 잠을 자거나 다른 일을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오직 정아의 입시가 무사히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정아의 중학교 입시 시험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모두 8과목이었지만 교시는 4교시로 나뉘어 시험을 본다.

그러니 두 과목이 한교시에 치루어지는 셈이다.

정아는 국어와 산수 등 일반과목에서는 잘 보았지만, 정용이 걱정한대로 음악과 미술에서 모르는 것이 나왔다고 울상이다.

체능은 필기고사 다음날 중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운동장이 보이는 담벼락을 붙잡고 고개를 빼어들고 체능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을 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쉽게 볼 수는 없었다.

어떤 엄마는 더럽게 자기가 먹다 남은 뻘건 갱엿을 학교 대문인 교문에다 철떡철떡 붙인다.

이들의 마음이야 이해가 되지만 엿을 교문에 붙인다고 합격이 되냐?

정용은 엄마 손을 잡고 체육시험을 치르는 정아를 마음속으로 응원하였다.

엄마인 정혜는 시험을 치르는 정아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자기 옆에 아들 정용이 든든하게 지켜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입학시험을 볼 땐 그 때가 언제더라도 추운 법이다.

정용은 자기 품에 안긴 엄마를 끌어안아 주면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겨울철 입시 추위의 한기를 견뎌낸다.

정용은 엄마와 함께 정아가 입시시험이 치러지는 이틀 동안 정동지역을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엄마가 춥지 않도록 감싸주었을 뿐 아니라 점심 식사 할 곳과 시험을 보고 나온 정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곳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그러나 정동 부근에서는 그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아예 집이 있는 혜화동 근처로 나왔다. 사람이 많기는 혜화동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혜화동 근방도 전기 입시를 보는 학교들이 꽤 많아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정용의 긴 방학동안의 일과가 끝났다. 걱정은 했지만 정아는 k 여중에 무난히 합격하였다.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아의 중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정아도 너무 기뻐 오빠를 껴안고 입술을 부딪치며 고맙다고 연발한다.

정아의 입시가 끝나자 엄마와 정아가 부천 집으로 돌아갔다.

정용의 방학은 1월 말로 끝나지만, 정용의 학교도 똑같이 전기 입시 중학교이기 때문에 정아의 입시 기간과 일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빼먹지도 않고 정아의 입시를 도와 줄 수 있었는데, 입시가 끝나자 그는 등교해야 했고, 엄마는 출근해야 했다.

정아는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따라 부천으로 갔다가 입학식이 있는 3월이 되면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로 약속하고 부천 집으로 내려갔다.

정용은 엄마와 누이동생을 서울역까지 배웅하였다.

정용의 발걸음은 엄마와 정아와 헤어지면서 저절로 삼청동 마나님 댁으로 향하였다.

정용은 이제 자기와 피를 나눈 예쁘고 아름다운 두 여자란 방금 헤어졌건만, 곱고 풍요로운 다른 여인들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지난 한달 동안 거의 한 번도 방사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예쁘고 고혹스러운 얼굴과 빨간 입술, 그리고 말랑말랑한 마나님의 젖을 생각만 해도 그의 좆이 마치 무쇠처럼 단단해진다.

정용은 바지 위로 자신의 좆을 만진다. 불편하게도 그의 좆이 발딱 서서 허리춤 쪽으로 올라붙었다.

남들 보기가 창피하여 손을 꾹 눌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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