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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BL소설이 싫다.
BL소설이라 하면, 잘생긴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이야기다. 이 망측한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한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즈음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이니 미성년이기도 했고 나는 딱히 소설이나 영화 등의 창작물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이 장르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그당시 나는 내게 근원적으로 따라다니는 환상이라고 할까, 망상이라고 할까, 하여튼 내 고질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게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런 시기에 BL소설까지 봤다면 멘탈이 깨졌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너덜너덜한 멘탈이긴 했지만 자진해서 고민거리를 늘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문제는...
내 소꿉친구이자 단짝에게 고등학생 무렵 생긴 취미가 바로 이 BL소설 읽기였던 것이다. 요 웬수가, 혼자 즐기면 될 것이지, 당시 유행하던 BL 소설을 한 편 소개 시켜준 것이 계기. 사촌언니 아이디로 간신히 들어가 발견한 명작이라며 어찌나 설득하던지.
“완전 명작이야.”
“...”
나는 껄끄러웠다. 그리고 대략적으로 BL이 어떤 건지 들었을 때는 분명히 거절했다.
“응? 제발? 제발~”
하지만 친구는 더 끈질겨서...
결국, 그런 류의 창작 소설이 내 ‘고질병’을 고쳐줄 충격요법이 될 거라는 합리화까지 해,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 것이었다. 아마 나도 입시 스트레스가 심했나 보다. 그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BL 장르의 소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내용은... 그 장르에는 흔하다는, 킹왕짱 센 폭군 ‘남자’왕이 제 ‘남자’기사에게 집착적인 광애를 불태우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평범한 판타지소설 같아서, 읽고 읽다가 중간에 가서야 어떤 내용인지 파악을 했다. 파악한 나는 그 소설을 접고 싶었다. 절실히 접고 싶어했지만, 빠순이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13여년의 우정을 걸고 끝까지 읽으라고 종용하는-그녀는 끝까지 읽으면 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친구의 강요에 마지막까지 읽었다.
“하아.”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내뱉은 한숨은 가벼웠지만 그 무게는 무겁기 그지없었다는 걸- 내 옆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던 그녀는 알았을까.
“어땠어?”
“어흐.”
“마지막이 완전 감동이지!”
“...감동?”
몰랐던 것 같다. 대체 내 소름 섞인 한숨에 대해 어떻게 그런 대꾸가 가능한지. 싸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감상을 이어나갔다.
간단히 말해 마지막에는 기사가 임신한다. 남자인데. 남자인데 임신하고 결국 왕을 사랑하게 되어 해피엔딩.
“역시 좋았지! 필력도 장난 아니고 내용도 감동적이고. 아아~ 세피님!”
참고로 세피는 그 폭군왕의 이름이다. 하필이면 앞글자에 ㅅ들어가...
“나 집에 간다.”
나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뭔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하는 친구를 두고 도망치듯 학원으로 달려갔다.
*
내가 BL 소설에 그처럼 학을 뗀 건 결코 내가 동성애에 편견이 있다거나,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그런 류에 혐오감을 갖는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면 미친 사람 같지만...
전생에 나는 게이였다... 게이였던 것 같다.
============================ 작품 후기 ============================
6월이네요, 잘 부탁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