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16화 (1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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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사탕 먹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히아신스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눈으로 감정이 줄줄 넘쳐 흐르고 있었다.  엘킨 다이브를 동경했던 그녀는 그를 따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존대를 했다. 그 습관을 잊을 정도로 흥분해서 나를 잡아 세운 것이다.

“..."

"..."

조금 어이없어 빤히 그녀를 바라보면, 히아신스는 핫, 하고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짓는다. 당황한 것 같다. 그러다가 솜사탕과 나를 다시 한 번 번갈아 바라보고 결심한 듯 입을 연다.

"그... 솜사탕 먹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먹고 싶냐.

약간 싸해진 마음으로 이걸 어떻게 거절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잇는다.

“역시 (너도) 먹고 싶군요.”

지금 왠지 ‘너도’가 보인 것 같다. 나는 당연히 먹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고, 단 것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솜사탕 같은 설탕뭉치를 먹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내 짐에 손을 댔다. 엥? 짐에?

“저, 뭐 하시는...”

“솜사탕 들어야죠. 그렇게 많은 짐을 가지고는 못 들어요.”

“아뇨, 저는 솜사탕 같은 건... 아니아니, 솜사탕은 이렇게 들면 되요.”

솜사탕 같은 건 별로, 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그녀의 귀가 추욱 늘어지는 듯한 환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그 무거운 짐을 한 손으로 받쳐 드는 진기명기를 펼쳐 보이며, 남은 한 손으로 솜사탕을 잡을 태세를 취해보였다.

“아니요. 솜사탕이 아니더라도, 어린 소녀가 짐을 혼자 들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아니...”

내가 너보다 8살이 많고 기록으로 봐도 1살 차이 날 뿐인데...

“어서 주세요.”

“아니, 히아신스님 그건 좀...”

“자꾸 그러면 명령...”

“아뇨, 역시 반 나눠 들죠.”

“하영 양은 들 필요가 없다니까요.”

“솜사탕 사주시기로 했잖아요.”

나는 얼른 그녀에게 짐을 반 넘긴 뒤 조르듯이 그녀의 팔을 한쪽 팔로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이 다시 솜사탕 노점으로 향했다.

“그렇네요, 솜사탕 사 드릴게요!”

히아신스가 군인스러운 당당한 걸음으로 경쾌하게 주인에게 다가간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짐 반을 사수한 것만으로도 다행일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

셀리안이 그걸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그가 계획에 없던 잠행을 나갔을 때였다. 호위가 된지 3개월 정도 지났나, 여느 때처럼 히아신스가 잔소리를 하며 따라붙었다. 시끄러운 여자,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장을 지나면 지날수록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히아신스가 훌륭한 검이나 갑옷을 볼 때와 같은 빈도로. 아니 어쩌면 대놓고 좋아할 수 없었기에 더욱 절박하게 디저트나 프릴 달린 드레스를 선망 어린 시선으로 보는 걸 알았다.

무표정한 얼굴인데 눈만은 도저히 소녀스러운 소품들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딱딱하고 고지식한 얼굴만 하던 여자가, 여전히 딱딱하고 고지식한 얼굴로 눈만 반짝이며 생크림 딸기 케이크와 커다란 리본이 달린 분홍색 드레스를 바라본다.

그게 묘하게 재미있었다.

그 후 셀리안은- 종종 그녀에게 소녀 취향의 물건이나 디저트를, 놀리듯이 사줬다. 그녀는 자존심 상한 듯 얼굴을 굳히려 했지만, 그런 것들을 보며 실실 풀리는 입가를 억누르지 못했었다.

*

나를 끌고 오긴 했지만 그녀는 조금 머뭇거렸다. 아니 흥분한 것 같기도 하다.

“저, 저 여기 귀여운 아가씨를 사주려고 하는데-”

뭐지, 이 ‘사촌 조카 사주려고 하는데요.’ 하면서 문방구에서 유O왕 카드를 사는 고등학생을 보는 기분은...

“네, 골라보세요.”

“그럼...”

그녀는 본보기 모형으로 만들어진 동물 모양을 주욱 둘러본다. 주황색 다람쥐, 붉은색 사자, 푸른 새, 분홍색 토끼... 하나하나 보던 그녀의 눈이 분홍색 토끼에서 멈췄다. 멈춘 채 입을 뻐끔거린다. 내 핑계를 댄 만큼 가장 귀여워보이는 걸 그냥 이야기하면 될 텐데... 이상하게 적들을 물리치는데는 가감이 없으면서 이런 것들에 한해서는 소심해지고는 했다.

“저 귀여운 아가씨라면 분홍색 토끼겠죠.”

“그, 그렇죠?”

다행히 아저씨가 한 수 거들어주었다. 그로서는 ‘딱딱한 기사님’이 도저히 골라주질 못하자 조언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히아신스는 어쩐지 기뻐보인다.

“그럼 만들겠습니다. 귀여운 아가씨랑 멋진 여기사님이 오셨으니 특별히 토끼귀에 꽃모양도 만들어 보겠습니다.”

현대의 솜사탕 기계와 비슷한 느낌의 기구로 노점상 주인은 재주 좋게 분홍색 토끼모양을 만들어낸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는 건 생각보다 재미났다.

곧 내 손에 앙증맞은 분홍색 토끼 모양의 솜사탕이 들려진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약간 부끄럽지만- 이걸로 된 건가 싶어 차라리 후련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어요.”

“...”

“...”

“...”

맛있지도 않지만 맛있게 먹을 수가 없다...

그녀가 솜사탕을 든 나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흐믓하게, 조금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

계속, 계속 바라보고 있다. 토끼 몸에 구멍 뚫리겠다 싶을 만큼 뚫어지게.

“하아...”

“하영양?”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그런 그녀를 보자 괜히 한숨이 나온 나도 문제였다. 찜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먼 옛날 히아신스에게 소녀스러운 소품을 안겨주던 셀리안의 기분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기분 나쁜데도 그녀를 무시할 수 없어서.

“저도 하나 사드릴게요.”

“네?”

“기다리세요.”

나도 모르게 다시 솜사탕 가게로 향하고 있다. 이쪽 대화를 들은 듯 솜사탕 장수는 조금 달래듯 이야기한다.

“마음은 알겠지만, 기사님은 이런 거 안 좋아할걸. 아가씨가 좋아한다고 상대도 좋아하는 건 아니야.”

눈치 없긴.

“그래요, 하영. 나는... 이런 거 별로 안...안 좋아해요.”

안 좋아하긴 무슨!! 나 아무래도 병 걸린 것 같다. 그녀는 분명 무표정하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는데 나는 히아신스가 울 것 같이 보인다.

“원래 여자친구끼리는 똑같은 걸로 먹는 건데요, 얼른 주세요.”

“고집은.”

노점상 주인은 쯧쯧 혀를 차며 다시 앙증맞은 토끼 솜사탕을 만들어낸다.

히아신스의 눈이 기대로 반짝 거렸고, 머뭇머뭇 완성된 솜사탕을 받아 든다. 그리고, ‘여자친구...’하고, 천민이 공작가의 영애에게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주제 넘는, 문제가 될 그 단어를 감격한 것처럼 중얼거렸던 것이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 히아신스와 함께 걷고 있다. 나도 히아신스도 한 손에는 토끼 모양 솜사탕을, 다른 한손에는 장 본 짐을 나눠 들고 있다.

“달아, 여자애들은 이런 걸 매일 먹는구나.”

“글쎄요.”

매일은 아닐 거다.

“맛있어.”

“...”

윽, 정말 달다. 그녀는 행복하게 달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끔찍한 달콤함에 미칠 것 같다. 현대의 솜사탕보다는 세련된 단 맛이었지만, 그래도 달았다.

확실히 히아신스는 곧잘 무지무지하게 달기로 유명한 슈크림을 먹고 싶어했었다. 셀리안이 반 변덕으로 사줄 때면 그 자리에서 한 박스를 다 먹어버렸다. 물론 그에게도 권유하긴 했는데 그때는 ‘윤하영’보다 단 걸 더 싫어해서... 엄청 끔찍해 했던 기억이 있다.

“후후. 좋구나.”

히아신스가 솜사탕을 우물거리며 자연스럽게 웃는다.

“솜사탕이 그렇게 좋아요?”

“하영도 그렇잖아요.”

“하하하.”

“그리고...”

“?”

“친구랑 함께 하니까 더 기쁜 것 같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죄송합니다. 아까 그건 그냥...”

“친구죠?”

“...”

그녀는 나를 향해 꽃처럼 웃었다. 대답을 원하진 않는다. 천민이 그걸 감히 이야기할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으니까. 천민이 아니어도 나는 다시는 그 말을 입에 담지 않겠지만...

새삼 아까 실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멍하니, 어색하지 않은 그녀의 그 자연스러운 웃음을 바라보았다. 기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녀에게는 드문, 그러나 진실되게 자연스러운 미소. 셀리안이 그녀에게, 반려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도 그녀는 이렇게 웃었다.

‘히아신스 에이나는 셀리안 크레이누를 사랑했나?’

모른다, 물은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검을 쓸 때의 생기 있는 웃음도 좋지만, 이런 수줍은 웃음도... 셀리안 크레이누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랑스럽다고 생각 한 적이...

‘나와는 상관없어.’

세뇌하듯 되뇌인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일이 또 있지는 않으리라, 확신하듯 소망하며.

*

않아야 하는데...

똑똑하고, 절도 있는 노크소리에 문을 열면 이제는 어느새 익숙해진 ‘내 방 문앞의 히아신스’가 펼쳐졌다.

“좋은 아침이네요, 하영! 지금 비는 시간이라고 들어서.”

어떻게 내 비는 시간을 아는 걸까...

“이게 요즈음 유행하는 프릴이에요. 왠지 하영 양에게 어울릴 것 같아서...”

아니, 정정. ‘내 방 문앞에서 소녀 소품을 추천하는 히아신스’로 정정하도록 하자.

지체높은 에이나의 영애가... 노예 소녀의 방에 이렇게 자주 드나들어도 되는 건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은 오늘도 갈 곳을 잃었다.

에휴...

============================ 작품 후기 ============================

리코멘 많이 신청 주셔서 완전 좋아요. 왜이렇게 제 어리광을 잘 들어주세요, 저 기쁘잖아요///

ㅎㅎ 오타 지적 부분은 다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카레이든 님 // 남주는 순간순간 제 안에서 달라지는데 때로는 그렇기도 하답니다.ㅎㅎ

Ryumafld 님 // 제 마음 속에선 그때그때 왔다갔다 해요/ㅁ/

MS1007 님 // 재미있게 봐주셔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해요!>ㅁ< 열심히 써서 계속 재미있게 봐주시도록 노력할게요!!

로베인 님 // 제 몸 하나 지킬 능력도 없는 여주, 여주에게 미안하지만 제 취향이...(<<)

셀니 님 // 제가 '평범했는데 사실 먼치킨!!' 이런 주인공을 별로 안 좋아해요.ㅠㅠ 이건 순전히 취향이네요. 차라리 처음부터 먼치킨인 주인공은 좋아합니다만, 하영이는 처음부터 먼치킨이 아니었던지라...; 상대적으로 고생하게 되네요.ㅠㅠ

스쯔아 님 // 제 성격이 나빠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ㅠ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올 님 // 셀리안하고는 어... 아직 멀었어요.; 저도 빨리 만나게 하고 싶어서 소개글에 먼저 등장시켜보았습니다. 아직은 요연...;;

엘류드 님 // 히아신스는 하영이랑 완전 다른 타입이 될 예정이랍니다. 성격도 외모도, 괜찮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강꽁 님 // 나중에는 행복해지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단은 아직 더 멘붕해야(<<)

SxLine 님 // 더 나올 예정입니다. 사실 너무 장편이 되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지금 진도가 잘 안 나가네요.ㅠㅠ 빨리 다 등장시키고 그래야 하는데...

중점에서서 님 // 남주는 나왔을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고... 고민중입니다. ㅎㅎ 일단 나온 애들은 다 가능성이...

쪼꼴락 님 // 솜사탕은 몰라도 단 건 정말 좋아합니다!>ㅁ<

lokoko 님 // 설마가 사람을 잡게 하고 싶...(<<)

쏠라씨레몬씨 님 // 하루드입니다. 고쳤어요.ㅠㅠ ㅎㅎ 제가 짓고 제가 헷갈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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