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27화 (2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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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검은 구했어?”

류였다. 유감스럽게도 류와는 병원만큼이나 자주 만났다. 덕분에 사람들 안에서 새로 들어온 하녀는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소녀 하녀는 생각 외로 순진해 엘킨 다이브 대장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소녀 하녀를 후원하는 미론의 귀족 세류 키스톤- 그런 구도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망이 없는 엘킨 다이브보다 세류 키스톤과의 사이를 응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이 남자를 내가 일하는 곳에 안내한 게 앤 설리다. 안내하고 다른 일이 있다며 같이 있던 하녀와 눈을 찡긋하고 나가버렸다.

‘...로맨스지향 여자애들이란...’

나는 닦고 있던 무기를 열심히 닦으며 곁눈질을 한다. 내 눈빛이 급 싸해졌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고 내 옆에 앉는다.

“검, 구했냐고.”

“쉬는 날, 히아신스 님이랑 앤 선배랑 같이 사러 가기로 했어.”

“흐음. 솔직히 네가 히아신스 에이나랑 그렇게 친할 줄은 몰랐어.”

“...친하지 않아.”

요즈음은 그렇게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친하다. 친한 게 맞겠지.

떨어져 있어도,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억지로 무언가를 함께 하지 않아도 이제 나는 그녀가 그냥 좋은 것 같기도 했다. 그건 히아신스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런 그녀가 사랑스럽다고도 생각했다. 그게 윤하영의 감정인지 셀리안 크레이누의 감정인지 구분하는 것도 포기했다.

그래도 내가 ‘진짜 내 감정으로서’ 그녀를 좋아해봤자 셀리안 크레이누만큼도 아니며, 그 셀리안 크레이누가 히아신스 에이나를 죽는 걸 방치하는 걸 막을 만큼...의 의지도 없었다.

‘더 멀어져야지. 지금은 물리적으로, 앞으로는 정신적으로.’

나에게 호의있게 다가오는 히아신스 에이나.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나도 당신에게 호의를 가졌지만. 아직은- 무언가를 할 정도는 아니야. 라고, 재차 생각한다.

그것을 재확인 하듯 그의 말을 부정한 것이다.

류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감히 어떻게 에이나님이랑 내가 친하겠어. 그분이 다정한 것 뿐이지.”

덧붙인다. 그러자.

“재미없어라.”

“으헤?!”

그가 내 볼을 주욱 늘린다. 그가 황금빛 눈을 고양이 눈처럼 갸름하게 뜨며 나를 바라본다.

“솔직히, 네가 셀리안 크레이누의 것들과 친한 건 별로 재미있진 않지만.”

“...으헤?”

“그런 얼굴을 하는 건 더 싫어.”

“그...그런 얼굴?”

“...”

그는 조금 생각하는 낯을 하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황금빛 눈동자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왜 싫을까.”

“뭐?”

나는 손을 들어 류의 볼을 늘리기로 한다. 그러나 밉살 맞은 류 자식은 내 손을 가볍게 피하며 물러났다.

*

“세류 키스톤 님, 혹시 기브 앤 테이크라고 알아?”

“그게 뭐야? 어느 나라 언어인데?”

류는 실실 웃으며 내 손을 피한다. 이 빌어먹을 자식. 손을 뻗으면 픽픽 피하며 뒷걸음질 친다. 내가 얘랑 왜 장난을 하고 있지. 분명 제3자가 보면 이건 또 무슨 장난질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한 대만 때리고 싶다. 그래, 한 대만. 한 대만 때리게 해주세요. 하느님.

“제발 한 대만 때리게 해줘.”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문지르며 애원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런 취미 없다니까.”

“...”

애원이 안 된다면... 최근 배운 검술 동작을 생각해낸다.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을 상대할 때 한 방 먹이는 필살의 기법-

그래, 실전을 이렇게 하는 거지.

“잇-”

손을 뻗었다. 뻗었고 나보다 훨씬 훨씬 훨씬 훨씬 강한 상대는 그것을 가볍게 피하며 물러섰다. 결국 중심을 잃은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고꾸라진다. 류는 그것을 그냥 바라본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그렇지.

그는 나에게 호의가 있고, 용납 받고 싶어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이 없었다. 어디서 내가 괴로워하는지 잘 모른다. 알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였다.

나는 칼미온에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지만, 칼미온을 나가 왕궁을 걸으면 병원에서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시선을 받았다. 특히 왕궁 중심부에 속한 하녀들이 심했다. 그녀들은 90% 이상이 하급 귀족 이상이었고 선민의식이 강했다. 자신들이 모시는 귀족이나 높은 분들로 말하자면 히아신스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히아신스의 추천으로 칼미온에 소속된 나에게 더 가혹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가끔 왕궁 쪽 하녀들에게 몇 대 맞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이 새끼가 힐끔 보고 지나간 적이 얼마나 많던지.

지금도 전혀 잡아줄 생각이 없다.

“읏-”

이대로는 바닥에 얼굴을 박는다, 라고 생각하면 갑작스럽게 류가 나를 붙잡았다.

‘웬일로?’

라고 생각해 눈을 깜빡이면 눈앞에는 나에게 뻗어올려고 한 것 처럼 보이는 손이 있다.

아는 손, 내 심장을 또다시 움켜쥘 것 같은 그 손.

“!”

“...다행이네요.”

“흐햣...읍.”

나는 류에게 잡힌 채로 얼른 내 입을 두 손으로 막는다. 이상한 신음이 나갈 뻔했다. 눈 앞에는 엘킨 다이브가 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고 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가버렸다.

가버린 것이다.

왜 아쉽지.

“셀리안의 것들이 널 만지는 것도 솔직히 싫은 것 같아. 큰일이네. 너는 엘킨 다이브를 좋아하는데.”

내가 굳어 있으면 류가 등뒤에서 뭐라고 툴툴 댔지만,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하영, 좋아하는 사람 있어?”

“쿨럭.”

나는 혀가 돌아버리게 달콤한 코코아를 마시다가 히아신스를 바라보았다. 히아신스의 미간이 그녀답지 않게 찌푸려져 있다.

오랜만의 티타임에서 무슨...

“히아신스님, 모르셨어요?”

어느새 함께 하게 된 앤이 즐거운 듯 입을 연다. 아직도 히아신스가 모른다는 것에 놀란 것 같다. 그녀는 이런 점이 둔했다.

“어? 앤은 알아?”

“그게-”

“저, 히아신스님!! ... 무, 무슨 이야기세요? 선배, 저 그런 사람 없잖아요. 없지요? 없어요?”

“..아, 알았어.”

내 기백에 밀린 앤이 입을 다물었지만 실실 웃고 있다. 정말 싫다 이 상황.

“부대장이,”

“...”

“하영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근육 바보가.

부대장 키도스 미실렝... 뭔가, 프랑스 미식 평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지만 요리와는 인연이 없는 상남자 되시겠다. 상마초남인데 근육도 무슨 보디빌더 같고, 구릿빛 피부에 머리는 붉은색 스포츠머리다. 진과는 같은 붉은 머리인데도 느낌이 완전 달라서, 눈가의 길게 찢어진 상처까지 있어서 엘킨 대장과 있으면 미녀와 야수 같은 남자였다. 성격도 얼굴 같아서. 의리 있고, 순박하고, 요령 없고, 농담 잘 하고. 가끔은 어리석은, 전형적인 군인, 형님 같은 스타일의 남자였다.

그리고 배려가 없다.

“미실렝 님이 농담 하신 거예요.”

“...”

“...”

“그렇지?”

히아신스가 안심한 듯 생글 웃는다. 앤이 살짝 한숨을 쉰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만 모를지도 모른다는 건... 물론 하영의 사생활이지만, 섭섭했어.”

찔리게 또 왜 그러시나.

그리고, 안 좋아한다. 그 분에 대한 감정은 셀리안의 감정이다. 그러니까.

“그, 하영. 지금은 안 되지만.”

그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내 손을 잡았다.

“사실 나 반려가 있어.”

“...”

알고 있다. 히아신스 에이나가 황제의 약혼녀란 건 비밀이었지만 칼미온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앤도 알 거고. 나만 모른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조만간 꼭 소개시켜 줄 테니까... 하영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줘. 나 열심히 응원, 아니 도와줄게.”

*

어떻게 하면 칼미온에서 나갈 수 있을까.

빨래 꾸러미를 안고 빠르게 왕궁복도를 걸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빨래에 한해서는 왕궁 공용 빨래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거의 칼미온에서 동선이 한정되는 칼미온 소속들이 왕궁에 나오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였다. 오늘은 내가 담당이었다.

칼미온을 나서면 이상하게 얽혀오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오늘은 차라리 나았다. 칼미온에서 나오고 싶은 기분이었으니까.

괴롭힘을 걱정한 앤이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어린애도 아니고 선배와 매일 함께 다닐 수는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도망칠 수 있을까.’

히아신스에게 내가 엘킨을 좋아하는 걸 들키기 전, 그녀가 자신의 반려를 나에게 소개시키기 전.

조용히, 잘, 탈없이 멀리 나가는 방법을 어서 강구해야 했다.

제일 가능성이 있는 건 류다. 뻔뻔하긴 하지만 류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는 이상하게 나랑 엘킨, 히아신스가 얽히는 걸 싫어했다. 그걸 이용해서...

“우앗...!”

“어머, 실례.”

괴롭힌다고는 해도, 보통은 수군거리거나, 경멸의 시선을 던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다만 때때로 이렇게 말을 거는 사람이 가끔 있다. 다리를 걸며 말을 건다는 게 문제였지만.

고개를 들면 히아신스와 특히 사이가 나쁜 제3왕녀의 왕궁 하녀들이었다. 선왕은 정비인 헤르티아에게서 셀리안을, 후비인 마놀 공주와 세피오스 백작 영애에게서 각각 3명의 공주와 1명의 왕자를 봤다. 제 3왕녀는 후비인 마놀 공주의 여식이며 선왕이 가장 예뻐하는 공주였다. 그녀는 제 오빠 셀리안을 정말 좋아했고 히아신스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가만 보니, 에이나 영애의 총애를 받는 계집이잖아?”

“히아신스 님께서도 독특하시지.”

“같은 검은 머리카락에게 친밀감을 느끼나 보네.”

왕의 반려인 히아신스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그녀들이 제3왕녀의 소속일 뿐 아니라 귀족 출신의 하녀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히아신스가 없을 때마다 나를 향해 말을 걸고 발을 거는 사람들 중 일부였다. 그것도 무리를 지어,

엎어진 빨래 바구니를 보자 암담해진다. 이걸 또 빨아야 할까. 아직 더럽혀지진 않았는데.

“남자들만 꼬시는 게 아니라, 남자 같으면 여자도 꼬실 수 있나봐.”

“무서워라.”

“천민들이 원래 구분이 없잖아.”

쏟아진 빨래감을 묵묵히 줍기 시작하면 푸른 구두 하나가 천을 밟는다. 호호호 웃음소리가 낭랑하게 울린다. 동시에 나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낸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무리 왕궁 하녀라도 나와 그녀들의 계급은 다르다. 상징적인 존재지만 나 같은 천한 여자는 약간의 꼬투리만으로도 내쳐지기 쉬웠다. 왕궁까지 와서는 안 되었다는 이유로.

‘오늘따라 땡기는데.’

그런 식으로 ‘쫓겨나선’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안 되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땡겼다.

'앞으로 살아가려면, 역시 그런 식은 안 되겠지.'

가만히 있자. 게다가 가만히 있는 게 편하다.

분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쓸데없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아.’

다행히 오늘은 직접적으로 때리거나 하진 않고 빨래감을 밟는 정도니까. 상태를 보니 몇 개는 다시 빨러 가긴 해야겠지만 뭐.

나는 입을 다물고 납작 고개를 숙였다. 아카인 영애가 특이했던 거다. 납작 엎드려 입 다무는 인간을 굳이 힘써서 괴롭히는 한가한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

“아, 그래.검은 머리에, 남자‘들’과 친하다니.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가봐.”

설사 주제도 모르는 여자들이 상대라고 해도.

아무리 눈앞에 없어도,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황제의 약혼녀인 히아신스를 모욕하는 이런 멍청한 여자들이지만,

참아야지.

검도 사랑하고 남자 같은 옷도 좋아하지만, 소녀스러운 것에도 동경이 있는 순수한 기사님.  그녀가 이 세계의 결혼 적령기인 23살이 되는 건 2년 뒤니까, 그녀가 셀리안과 결혼하는 게 그때즈음일 것이다. 검을 버리고, 왕비가 되어서도 그녀는 꽤 우아하고 귀여운 왕비가 될 거라고 생각된다. 좋은 왕비가 될 것이다.

그 전에 그녀는 죽지만-

어차피 죽으니까,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조만간 꼭 소개시켜 줄 테니까... 하영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알려줘. 나 열심히 응원, 아니 도와줄게.]

가장 소중한, 지켜야 할 셀리안 크레이누를 언젠가 소개시켜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바보같은 히아신스’

나하고는 관계없다.

나는 관계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좋아하고 호의를 받고 있고 도움도 받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그렇다. 그러니까.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참아야...

“꺅! 너 뭐 하는 거야?”

참아야 하는데, 어쩐지 하녀의 푸른 구두로부터 빨랫감을 휙 뺏어 드는 내가 있다. 하녀는 넘어진 채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조금 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새벽에는... 사실 별거 아니고 저만 부끄러운 일... 그냥 25화를 중복으로 올렸습니다.(꺄르르...o-<-<)

그런데 추천도 같이 줄어서 정신 안 차리고 글을 올려 결국 미움 받았구나!끄앙하고... 다시 생각하니 앱 바꾸고 생겼다는 조아라 오류거나 그냥 이 글의 재미문제 ㅎㅎ

문제는 다들 너무 부둥부둥해주셔서 몸둘바를//// 더 열심히 쓸게여.ㅎㅎ

선추코에는 감사의 마음만 간직하고 항상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쿨한 뇨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게 또 안 되네요ㅜ,-여러분 모두, 감사하고 사랑해요.

그리고 완결초고는... 사실 뼈대라 초고라고 하기도 민망하네요. 심지어 남주인공도 미정인 여러개의 완결 구상만 가지고 있는지라.ㅎㅎ 쨌든~!

뱅구리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후원쿠폰이라니, 눈을 의심했어여!>ㅁ 제 사랑을 먹으세요!!

에이리엘 님 // 항상 잘 읽어주시고 코멘 달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내일 금요일이네요. ㅎㅎ 요즈음 고등학교는 토요일은 다 노시죠?!(부럽) 즐겁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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