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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머리가 아파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머리는 핑핑 돌고 심장은 쿵쾅대고, 눈을 깜빡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몸의 물이란 물은 다 마른 것처럼 건조하다. 그저 의지하는 건 엘킨의 차가운 손뿐이다. 나는 산에게 답을 요구할 때와 비슷하게 조르는 듯한 투로 그에게 당신은-의 그 뒤를 요구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 뒤를 알려주세요.“
엘킨은 조금 미간을 찌푸린다.
나때문은 아니다. 이건 그의 고질병이다. 그는 여성의 연정이나 애교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편이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주는 호의에 감히 귀찮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받아줄 수 없는 만큼 불편해 했다.
레시온 공작의 약혼녀가 떨어진 사건은, 그녀가 무얼 의도했던 엘킨 안에 커다란 흉터를 남긴 것이다.
“...미안해요.”
“?”
괜히 미안한 느낌이 들어 일단 사과를 하기로 한다. 그의 입장에선 소중한 히아신스의 친구인 나를 다른 여자들처럼 거절하기는 이제 쉽지 않을 테니까.
딱히 구애를 한 건 아니고, 당신은-의 뒤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 뿐이지만. 나도 모르게 ‘여자로서’ 애원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울렁거리고 메스꺼운 속을 꾹 참고, 착각일 뿐인 연정을 내 감정이라고 생각하며 말했으니까.
확실히, 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뭐가 말입니까?”
“그게- 음, 그런 눈 하지 말아요. 엘킨-“
아, 또 엘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메스꺼움과 감미로운 황홀함이 최고조에 달한다. 머리가 더더 빙글빙글 돈다. 새빨간 셀리안 크레이누의 눈 같은 붉은 석양의 공간에서 나는 기묘한 기쁨과 역겨움에 휩싸여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심장이 뛴다. 이건 착각인데. 윤하영은 그가 좋아 견딜 수 없다.
” 나는… 아무래도 당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착각?”
“당신을 사랑해서 죽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게 하거나… 절대 안 그럴 테니까.”
“…”
그래, 당신을 사랑해 죽지도, 히아신스를 죽게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이 역겹도록 안온한 공간은 아직, 셀리안 크레이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은 세계니까.
어떻게- 왜- 라는 의문이 연달아 머리를 강타했지만 나는 그냥 그러자고 생각했다. 귀찮지만 그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첫사랑...인 걸. 거짓이지만, 첫사랑은 소중하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이건 셀리안의 죄책감과 애정의 연장선이 아닌, 29살 윤하영이 자신의 첫사랑을 소중히 여기기 위한 감정이다.
“그러니까, 그런 표정하지 말아요.”
“...”
아, 또 애교를 떨고 말았다. 차가운 그의 손이 좋아 좀더 좀더 붙어 있고 싶다. 내치기 전까지 그 정도는 욕심을 내고 싶다.
엘킨은 횡설수설 그의 몸에 기대 중얼거리는 내가 불편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고운 미간이 찌푸려진다. 푸른 눈이 일렁거린다.
이런 표정은 잘 모르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지긋지긋한 셀리안의 기억을 더듬어 그 표정의 의미를 찾는다.
찾아지지 않지만, 열심히. 알고 싶으니까, 당신을.
“당신은- 정말 위태로운 사람이네요.”
“?”
“그겁니다. 당신은-의 뒤는.”
“아.”
“장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겠군요. 일단, 칼미온으로 돌아가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에, 엘킨님-?!“
“이번엔 엘킨님입니까. 정말- 곤란한 사람이네요.“
엥?!
곤란한 사람과 공주님 안기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에, 엘킨님! 내려주세요!”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은데요.”
“그건-”
열도 있지만, 이 자세가-
그는 당황하며 새빨개진 나에게, 싱긋 웃는다. 드물게 짓궂은 웃음 같기도 하다. 그 웃음도 좋아서 나도 모르게 싱긋 따라 웃었지만 이게 아니다.
“아, 아니- 내, 내려주시지 않으면 사람들이...”
엘킨은 내 말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척척 걸어나간다.
“윽...”
급격히 정신이 든 나는 혹시 이 장면을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리번거리다가, 그냥 내 얼굴을 가리기로 했다. 가려봤자 소용도 없겠지만.
*
엘킨이 나를 안고 칼미온에 들어간 날은 생각보다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엘킨의 평소 행실도 있고, 내 얼굴이 엄청났다고 한다.
앤이 이야기하길, 빨간 건 평소 엘킨과 있을 때와 같은데 전반적으로 새하얗고 새파랗고 딱 보기에도 상태가 별로였다는 것이다.
엘킨의 행동도 당연하게 인식될 정도로.
실제로 몸이 안 좋아서 칼미온 소속 의사는 나에게 ‘푹 쉬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하루 꼬박 몸살을 앓았다. 호사도 그런 호사가 없었지만,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질일 수 없이 앓았다. 열이 나고 구토에 시달렸으며 꼬박 하루를 자고도 다시 잠을 잤다.
잠을 자는 내내 다행히 셀리안의 기억따윈 꾸지 않았다. 눈가로 스며드는 새카만 어둠 속에서 나는 아픈 와중에도 평온함을 느꼈다.
하루 동안은 모든 걸 잊고 아프다는 것에 안심했다.
깨어나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 작품 후기 ============================
짧죠. 알아요. 근데 오늘 불금이잖아요. 회사 퇴근하고 지인들이랑 놀다 들어오니까, 너무 졸려서 여기까지가 제 퇴고의 한계여여...ㅜ_ㅡ;ㅎㅎ
케이크는 포장지에는 말차라고 되어 있는데... 말차랑 녹차의 차이가 뭔가열. 맛이 똑같...(<<) 또르르~
뱅구리님~>ㅁ/ 항상 코멘 달아주시고 후원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여~
쿨워터의 매력 님 // 저도 쿨워터의매력님을 좋아해용!! 근데 닉이 너무 기셔요!! 라고 이야기했더니 제 닉이랑 2글자 차이네요.ㅋㅋ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