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42화 (4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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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번째 생일은, 이전 당신께 두 마리 용이 찾아온 날이랍니다.”

“뭐.”

존재감이 없는 하녀의 밤색 눈이 형형하게 빛난다. 언제나 무표정이었던 하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입술은 마치 애초에 그렇게 고정된 가면과 같다. 가끔씩 어머니가 보여주는 미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섬뜩하다.

“그 분들도 추억을 소중히 여기니, 오늘 올게 틀림없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셀리안은 당혹해서 하녀를 바라보았다.

“꼭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매우 기대하고 있을 거예요.”

“기다려!”

하녀가 어머니를 부축해 문을 나섰다. 셀리안이 불러세웠지만 하녀는 서지 않았다. 문은 닫히고 방에는 홀로 남는다. 찾아온 정적 속에서 역사책에 써있던 글을 생각해낸다.

지긋지긋한 역사서, 어머니가 직접 읽어주고, 꺼림칙해하면서도 확인하듯 읽었던 키오스의 역사서...

[세계의 일부인 두 마리의 용을 부린 단 한 사람의 인간 에피룬 크레이누. 용이 자신들의 이름을 알려준 이 세상 유일한 사람- 허락받지 못한 자들은 용의 이름을 듣는다 해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용은 오지 않아.’

벌써, 12번째 생일은 끝이 나고 있다. 하루가 넘어간다. 올 리가 없다. 용 따위 필요 없다.

온다 해도.

‘이름 따위 듣지 않겠어.’

나에게 들릴 리 없지만, 애초에 말도 못하게 해주겠어.

‘올 리가 없지만.’

어린 셀리안 크레이누는 닫혀 있는 창문을, 문을 안심한 듯 바라본다. 오지 않아, 용따위는 오지 않아.

40

“어두운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누나.”

“?”

뒤돌아보면, 흑안흑발의 남자 아이가 서 있었다. 달빛 아래의 어둠 속에서도 아이의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는 흑요석처럼 빛나고 있다. 귀여운 아이다. 다만, 조금 인간적이지 못한 분위기가 있다. 그게 뭔지는 집어내지 못하겠지만, 약간 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후후, 봐요, 밤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누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두 개나 있잖아요.”

“?!”

아이가 나를 붙잡은 채로 내 뒤를 가리켰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아이는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아니, 아니다. 잘 보면 그 손이 가리키는 허공에는 반딧불 2개, 아니 2마리가 날고 있다.

“저기, 말이야...”

“후후-”

조금 황당해 하는 나에게 아이는 내 옷자락을 잡은 손 그대로 갑작스럽게 폭 안긴다.

모르는 아이에게 갑자기 안기면 아무리 나라도 당황하게 된다. 남자긴 하지만 10살 미만의 아이라 성희롱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기도, 냅다 밀치기에도 애매했다.

“무슨-”

“...”

“...”

아이는 내 허리를 꼭 껴안고 숨을 멈추고 있다. 숨을 들이쉬는 것 같기도 하다.

정지한 것처럼 나를 꼬옥 껴안고 있길 수분.

그것이 무슨 신성한 의식 같이, 손 댈 수 없는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그냥 조숙한 아이의 성희롱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몰라.’

무슨무슨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무지하게 조숙하고 밝히는 아이라든가. 슬슬 떼어놓을까 하고, 바로 행동하지 못한 걸 원망할 찰나 남자아이가 중얼거렸다.

“아, 역시- 이렇게 안으면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뭐?”

그리고 고개를 든다. 그 얼굴에는 환희와 반가움이 가득 차 있다.

“당신이군요- 기뻐, 너무 기뻐.”

그는 마치 잃어버렸던 엄마라도 찾은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기억에 없다. 기억에 없지만 낯이 익다. 왜 낯이 익지.

“...너, 날 알아?”

“알아요. 당연히 알죠. 당신은 아닌가요?”

“...?...아.”

흑발에 흑안. 검은 색 눈동자가 나를 담고. 나는 간신히 그 아이가 병원에 들어설 무렵 리나 테일의 뒤를 따르던 남자아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래서 낯이 익었던 걸까.

“너는 아까-”

“!! 기억해주는 건가요? 기뻐! 정말로!”

아이가 생글 웃는다. 허물없는 아이다. 아니, 거의 초면인데도 그 아이는 내가 자신을 알아본 것에 이상할 정도로 기뻐했다.

“당연히 알지... 병원에서 본지 하루도 안 되었잖아.”

“.....아...그래요. 그랬죠.”

그리고 금시에 시무룩해졌다.

“그외에 뭔가 있니?”

“...으응, 아니요. 없어요.”

아이는 도리질을 치며, 나로부터 물러난다. 아이는 꽤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귀족의 아이일까. 귀족의 아이치고는 조금 너무 분방한 차림새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누나- 밤에 혼자 다니는 건 삼가는 게 좋아요. 아직까지 이 나라의 황제는 밤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흐음, 너야말로, 이 밤에 혼자 다니는 게 위험하지 않을까.”

황실모독적인, 괴상한 발언은 둘째치고 말이다. 내 말에 아이는 다시 놀란듯 눈을 깜빡인다. 그 말을 곱씹듯 몇 번이고 깜빡깜빡.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나를...”

“응?”

“그럼- 같이 갈래요?”

“...”

다시 내 손을 꼭 쥔다.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손으로 한 점 티없이 맑고 호의롭게. 뭐지, 이 헌팅의 달인 같은 아이는.

*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함께 걷고 있다. 우연이라면 너무한데 아이도 성 근처에 있는 마을에 집이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 정도로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아이라면 성 주변에 살 수도 있지만, 아이 혼자 병원까지 왔다는 게 이상하다. 보통은 부모라거나, 여기까지 데려다주는 보호자가 있을 것이었다.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상한 아이라고 느끼면서도 거절할 거리도 생각나지 않아 함께 걷는다.

‘그보다, 뭔가... 이 아이와 걸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돼.’

마치 암시하듯, 같이 가도 된다고 머릿속에서 결론을 내린다. 이상한 감각이다. 흘끔 아이쪽을 쳐다보면 그는 뭐가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띠고 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그야, 하나는 누나와 걷는 거고. 두 번째는- 아무리 힘을 잃었다 해도 ‘당신’에게 내 힘이 통한다는 걸까요.”

“힘?”

“조르는 힘이요.”

“그게 뭐야.”

“후후, 같이 가줘서 기뻐요.”

“...”

이상한 이야기다. 그러나 역시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는 아이로부터 시선을 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다. 달은 태양보다는 훨씬 차갑고 안정된 느낌을 주었다. 이 느낌은 내가 셀리안 크레이누에게 여전히 휘둘리고 있다는 거지만, 실제 그를 본지 일주일도 안 되었으니까.

수도라 한밤의 거리라고 해도 그렇게 한산하지는 않고, 오히려 가로등마다 마법구로 붉이 밝혀져 있다. 간간히 왕궁의 경비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그런데, 병원에는 무슨 일이세요? 누나. 어디 아픈 건가요?”

“응?”

아이가 문득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고, 나는 다시 아이를 보았다.

“아픈 건 아니야. 너는?”

“저는 아는 사람이 병원에 있어서 간 거예요.”

“문병?”

“확인이요. 확인이랑, 확인?”

“그게 뭐야?”

“말 그대론데.. 누나는요? 이유를, 물어도 되나요?”

“음...나도, 확인.”

“같네요!”

상대가 얼버무리길레 비슷하게 얼버무린 건데 아이는 뭐가 기쁜지 또 밝게 웃는다. 웃으며 이번에는 손을 내민다.

“왜?”

“밤이 무서워서 그래요. 손 잡아 주면 안돼요?”

“...”

진짜 이상한 애네. 정색하고 거절하기도 뭐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면 또 행복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 다음부터는 별 말 없이 함께 걸었다.

아이는 여전히 기뻐보였고, 간간히 웃음을 지었다. 귀여운, 묘하게 신비한 웃음이다.

‘역시.... 아니 조금, 진과 닮은 것 같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분위기의 그 미인. 그 남자와 마주할 때 느끼는 감각과 제법 닮은 느낌이다.

그게 뭘까, 멍하니 생각하다 보면 아이와 헤어져야 할 법한 장소에 도착했다.

*

“그럼, 안녕.”

어린애를 혼자 보내기는 좀 그렇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초면의 아이다. 여기까지 함께 온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미련을 갖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아이의 손을 놓고 성으로 향하려고 하면, 손을 꽉 잡아오는 작은 손이 느껴졌다.

“?!”

“안돼.”

다른 한 손도 동원해 가지 못 하게 꽉. 교묘하게 힘이 들어가 손을 꽉 잡는다. 생각보다 체온이 낮은 손이었다. 엘킨도 차가운 편에 속했지만, 아이의 손은 서늘하다는 느낌이었다.

“아, 역시... 안돼.”

“얘?”

아이는 중얼거린다. 신비하다고 느꼈던 검은 눈이 약간 요사스러운 빛을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직감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머리가 멍해지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아이가 중얼거린다.

“내 ‘힘’이 통할 만큼, 연약한 너라니. 어떻게 놓칠 수가 있겠어.”

아이의 목소리임은 변하지 않았지만, 낮게 내부로부터 긁어오는 것 같은 기묘한 목소리다. 다리가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다.

“어차피, 그 영혼은 누나로 마지막이야. 사라지는 것 따윈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진과 달라. 그러니까-”

“...”

잡힌다. 잡혀 먹힌다- 주변이 새까맣게 물드는 것 같은 착각, 밤의 공기가 눅눅하게 머리도 몸도 잠식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누군가가 내 손을 붙든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동시에 머리가 맑아졌다.

“...뭐 하는 거야. 멍청이!”

“!”

비교적 작은 체구의 남자가 번쩍 든 아이를 나로부터 떼어놓는다. 그 후 붉은 손잡이의 단검으로 아이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월요일, 월요일 되는 시점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해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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