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45화 (45/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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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라는 남자에 대해 내가 아는 건 물론 한정되어 있겠지만, 의외로 충분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격은 느물느물한 마이페이스, 상식이 없고 남들과 감각이 다르다. 왠지 나에게 호의가 있지만, 내가 다치거나 상처 입는데 공감하질 못한다. 죽는 건 싫어하는 듯 하다.

키스톤가의 차남이며 마나를 알아볼 수 있는 것 같고, 강한 악력을 가지고 있다. 히아신스의 말에 따르면 무예에도 조예가 깊다. 의외로 정치나 궁중예법에도 익숙하다.

무슨 목적인지 노예마차에 타고 있었고, 현재는 칼미온에 사절과 비슷한 느낌의 도우미로 파견되어 있다.

그리고, 친한 지인이 둘 있다.

한 명은 진, 굉장한 미인으로 무뚝뚝하지만 의외로 남을 잘 돌보는 남자.

두 명째는 ‘친구’, 그의 입을 통해 몇 번 언급되었다.

[응? 응. 아. 그래, 싫은 것 뿐이지 닳는 것도 아니잖아?]

류가 내가 강간 당할 뻔한 일에 대해, ‘닳는 것도 아니’라는 비상식적인 말로 대응하게 한 배경이고

[그러니까, 검 같은 것보다는 말이야. ‘칼미온에 가면 꼭 엘킨님을 덮쳐 첩 자리를 노리도록 해. 재능 있는 쪽으로 해야지. 갈고 닦은 기술 있지?’]

검술에 재능이 없는 나에게 갈고 닦은 ‘닳고 닳은 여자로서의’ 기술을 이용해 엘킨을 꼬시라고 조언하도록 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일련의 이야기로 나는 류의 친구가 껄렁하고 천박하며 무례한 성인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누나- 자?”

“...”

내 위를 누르는 묵직한 느낌에 혹시 ‘히아신스’의 가위인가 싶었던 게 무색해지는 목소리다. 오늘 만난 목소리. 류의 그 천박한 친구-

'히아신스의 가위인줄 알고... 역사가 바뀐 줄 알았잖아.'

다행인지...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나 의문이긴 한데. 어쨌든 지금 내 위에 있는 건 흑안흑발의 천진하게 웃는 꼬마다. 외관과 다르게 제법 나이가 있을 인외생명체.

"나 때문에 깼으면 미안해. 그치만 너무 보고 싶고, 변명도 하고 싶고."

그는 빙글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상하게도 다같이 쓰는 하녀방이지만 아무도 깨지 않는다. 그보다 대체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걸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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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어둠 속에 스미듯 사라진다. 이를 갈며 엘킨을 향해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누나한테 손 대면 죽을 줄 알아, 하프엘프."

라고. 손 대는 게 나일까봐 무서울 지경인데 엘킨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괜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면 류가 손뼉을 친다.

"자~ 끝."

"뭐가 끝이라는 겁니까. 키스톤 경."

엘킨의 말은 무감하지만, 평상시보다 날카롭다. 언제나 상냥한 말투를 고사하는 엘킨을 생각하면 더욱.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지만 그의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여러모로 피곤한 하루였다. 그의 얼굴을 보고 정신적으로 더 피로해지고 싶지 않다.

"방금 '그것'은 키스톤 경의 소유물로 보입니다만."

"...으음-"

류는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나 왠지 지어낸 낯 같다.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금시에 예의를 차린 웃는 표정이 된다.

"맞습니다. 그것은, 제 소유의 '인외생명체'랍니다, 다이브 경. 소유라고 하기도 부끄럽습니다만..."

"키스톤가가 '인외생명체'와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인외생명체-

‘그냥 중세시대 비스무리하게 느끼다가도 가끔씩 저런 판타지한 게 튀어나온다니까.’

마나니 마법이니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가 내가 있던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증명-

여기서 인외생명체란 인간 외의 모든 생명체, 단 계약을 맺을 지능이 있는 생명체를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마수나 신수들인데 인간은 이 인외생명체와 마법으로 계약을 맺어 사역마로 부릴 수 있다.

인간은 지성이 있는 다른 생명체가 보기에는 한없이 덧없지만 가장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생명체가 보기에는 말이다. 인간이 가진 강렬한 생명력, 지식, 탐욕에 매료된 인간 외 생명체 중 몇몇이 작은 유희의 일종으로 인간과 계약을 맺으며 시작된 게 마법구속에 따른 계약- 그들의 심심풀이에 불과했던 계약은 오만한 인간의 구미에 꽤 잘 맞아서 세월이 갈수록 인간 우위의 계약이 되어간다.

셀리안의 기억에 의존한 지식이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계약이라고 하니까.

'대체 뭘 하는 놈이야.'

하지만, 그것도 계약자가 상당한 마나와 카리스마를 가져야 성립되는 것이다. 왠만한 마법사는 손도 댈 수 없다. 대부분은 가문 전체가 계약인에 마력을 공급해 가문 대 인외생명체로 사역하는 게 보통이다. 인간이 인간보다 기본적으로 우위인 다른 생명체를, 그들의 허락을 넘어 완벽히 지배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개인적인 일입니다. 키스톤은 마법과는 인연이 없지만, 저는 꽤 관심이 있어서... 이리저리 공부하고 시험하다 우연히- 인외생명체인 그 아이의 마음에 들어버려서요. 운이 좋았지요."

류는 어느새 세류 키스톤으로서 조리있는 설명을 시작했다. 세류 키스톤으로서의 류야 나는 영 볼 기회가 없긴 하지만, 이럴 때의 류는 평소에 상식부족이라거나 설명에 약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계약이라기보다는 '친구'입니다."

"..."

"때문에... 나쁜 녀석은 아닙니다만, 제법 여자를 밝히고 분방해 가끔 제 통제를 벗어나네요. 아무래도 인외생명체를 완벽히 지배하기에는 제가 부족해서요."

자신이 인외생명체를 가문과 상관없이 소유한 이유부터 마음껏 부릴 만큼 대단한 힘은 없어 통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설명까지. 모든 걸 포괄한, 이치에 맞는 이야기. 조금 거짓말 냄새가 나는 이야기.

이럴 때면 류가 나에게 하는 청순한 뇌의 대화는 모조리 못된 장난이 아닐까 싶다.

"하영양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류는 나를 본다. 모르는 눈이다. 이런 흉내를 나에게 내는 건 처음이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송구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윤하영 양, 소유물에 대한 감독 소홀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금 전 입맞춤도- 제 소유물의 마법을 제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만"

“...”

“여성분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용서를... 나중에 한 번 더 정식으로 사과 드리겠습니다.”

적응 안 되네. 진짜.

"...알겠습니다."

"..."

왠지 뒤가 서늘하다. 줄곧 류를 보고 있었을 엘킨의 시선이 나에게 닿는다. 그로서는 수상한 인외생물과 세류 키스톤의 문제를 덮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류의 말을 수용한 내가 마음에 안 들겠지만- 덮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나는 빠지고 싶다.

나중에 한 대 때리긴 해야겠지만-

"윤하영 양의 넓은 이해에 감사드립니다."

류는 생글 미소 지으며, 허리춤의 그 이상한 장식품 같은 검은 단검을 쓸어내린다. 뜬금없는 행동이다.

"미숙합니다만 최선을 다해 그 아이를 제대로 단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검은 단검에 속삭이는 것처럼. 그를 유심히 본 건 아니지만, 아까까지 그의 단검은 붉은 손잡이의 단검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엘킨님도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현재 키오스의 궁에 있습니다. 따로 이야기 하지 않으신 '인외생물'을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더군다나 사람을 현혹시키는, 통제도 못하는 생물 따위를..."

"...흐음, 가능하면 봐주셨음 합니다만... 아, 그래! '족쇄의 인'을 달겠습니다. 물론, 인은 엘킨님이 정하신 분께 맡기겠습니다. 엘킨님이 소유하셔도 좋고요."

“...족쇄의 인을?”

엘킨이 미심쩍은 목소리로 묻는다.

“네- 족쇄의 인을 쓰면 제 소유의 '인외생명체'를 소유하신 분과 공유하게 됩니다. 계약을 유지할 마력은 제가 부담하지만, 엘킨님도 사역할 수 있죠. 물론, 이용하셔도 됩니다. 저는 키오스를 돕기 위해 파견되었으니 오히려 영광입니다.”

"...통제 못하는 생물에게 '인'을 새기겠다고요?"

"친구니까요. 이번 일은 그 아이도 반성할 거고, 통제는 못해도 꽤 저에게 약하답니다. 사랑받고 있어서요."

"...자신감이 굉장하시군요."

"하하, 부끄럽습니다."

거짓말 냄새. 모순된 이야기를 하는 주제에 당당했고- 교활한 이야기였다.

'족쇄의 인'은 인외생명체와 계약을 맺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거짓말냄새가 나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이상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떻게 '최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엘킨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됐습니다. '족쇄의 인'까지 언급하셨다면 물러서는 게 일단은 맞겠지요."

"알아주셔서 기쁩니다."

류가 어깨를 으쓱하며 예를 표했다.

*

류는 그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느물느물 웃으며 이야기했다. 또다시 검은 단검을 살짝 쓰다듬으며- 내일 중으로 족쇄의 인을 맺으러 왕궁에 돌아오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엘킨과 둘이 걷고 있다.

"..."

"..."

원래도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유난히 말이 없는 걸 보면 엘킨은 나에게 기막혀 하고 있는 듯 하다.

'기막히기도 하겠지.'

한밤중에 마물에게 사로잡힐 뻔하고, 세류 키스톤과 키스하고, 손쉽게 류를 용서하고 넘어가고.

멋대로인, 도움이 안 되는 여자라고 생각할까.

어쩌면 헤프다고 생각할지도.

그는 내 기록이 거짓이란 걸 알까.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쓸모없는 상념과 더불어 더더욱 그를 볼 수 없어졌다. 같이 돌아가서 조금 기쁘다고 느끼는 반면- 아까 의도적으로 그를 보지 않았던 것과 겹쳐져 그를 볼 타이밍을 놓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내가 의도하긴 했지만 거의 처음 나타났을 때 빼고는 보질 못 했으니까!

'으-다른 생각, 다른 생각.'

왕궁 바닥은 역시 되게 깨끗하고 고급스럽다- 같은 시덥잖은 생각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엘킨이 나를 어떻게 볼지-같은 생각은 확실히 지치는 일이었다. 바닥을 보고 그것만 생각하며 걸어본다.

"일찍 일찍..."

"네?"

간신히 마음을 다스리는데 엘킨이 말을 걸었다. 다행히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되물을 수 있었다.

"...다니라고 했습니다만."

"...죄,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나갔는데... 마치고 오니 어째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바닥만 보고 이야기하면 예의에 벗어나는 거긴 한데. 나야 원래 엘킨과 시선 맞추는 건 버거워하곤 했으니까.

바닥에 정들 것 같아.

"...개인적인 볼일..."

"...네..."

그리고 다시 침묵, 바닥의 돌맹이를 세며 걷는다.

어차피 곧 칼미온이고, 이 불편한 자리도 끝날 것이다.

곧 끝이다.

"대체-"

"...네?"

바닥, 바닥만이 구원인데.

“...언제까지 바닥만 보고 있을 겁니까?”

“에?”

엘킨이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드는 순간 그의 푸른 눈과 마주친다. 엄밀하게는 그가 말을 시켰기에 고개를 든 거지만 엘킨의 눈이 흔들린다. 놀란 것 같이-

어쩐지 메스껍다.

“...”

“...”

엘킨은 무언가 말할 듯 화가 난 듯 답답한 듯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엘킨님?”

역시 얼굴 보기는 나에게 고난이도였나 보다, 그런데도 시선을 뗄 수 없고, 메슥거림도 심해졌다.

"..."

"저-"

“...저는 폐하께 보고할 게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엘킨은 끝내 말을 하지 않고 나로부터 등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어가버렸다.

방금 전까지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습에 다행이라고 느끼기보다는 조금 섭섭해진 내가 있었다.

*

'바닥만 보는 건 너무 예의가 없었던 것 같아.'

그 엘킨이 불쾌해하며 말도 못 이을 정도이니- 하지만 그런 고민이나 섭섭함과는 별개로 피곤한 하루였다.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고 눕는 순간 엘킨의- '셀리안 크레이누'도 모를 미묘한 표정이 어른 거렸지만 곧 시야가 점멸했다.

수마로 빠져든다-

“누나- 자?”

“...”

빠져들기 전에 깨어났다.

"나 때문에 깼으면 미안해. 그치만 너무 보고 싶고, 변명도 하고 싶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 작품 후기 ============================

표현에 대해... 아, 진짜 신경쓰던 부분을 콕콕 찝어주시는 예리한 독자님들... 저도 고치고 싶은데...ㅜㅜ 앞으로 좀더 좀더 신경 쓰겠습니다만, 신경 못 써도 걍 이뻐해주세요.(배짱) 고쳐야 하는데... 또르르... 게름게름...

그리고 맨날 이 간식이 맛있다, 저 간식이 맛있다라고 후기를 쓰는데, 그건 그냥 제가 단거에 환장하기 때문입니다.(진지) 결코 모 회사들과 관련성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또르르... 그런 의미에서 편의점에서 파는 허니0터아몬드가 맛있어요.ㅜㅜ

아자부주방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후원쿠폰에 복과 사랑밖에 드릴 게 읎다...ㅜㅜ

에이리얼 님 // 시험은 끝나셨나요!>ㅁ ㅎㅎ 그리고 엄밀히 말해 OO스빈입니다.ㅋㅋㅋ 상표는 가려봅니다만, 왠지 웃긴 이름이 되었네요.//// 저는 올해 처음 'ㄱㅊ'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버블티에 최근 빠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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