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 패러독스-49화 (4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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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나 당혹스러움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게 인간일까. 엔실렌에게 느꼈던 기묘한 위화감과, 내가 실수를 했다는 곤혹스러움도 시간이 흐르자 옅어져 갔다. 아니 뒤로 밀어두었다는 것에 적합하겠지만. 그렇게, 사탕을 먹거나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던 엔실렌은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 사라졌다.

무심코 창에 시선을 줘, 멍하니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잘대던 엔실렌의 목소리가 줄어가는 TV 소리처럼 희미해져, 기차가 멈춘 순간 그는 내앞에 없었던 것이다.

*

변경이어도 수도는 수도였다. 다만, 아직은 중심부보다 덜 개발이 되어 여기저기서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첫 번째 범인이 일한다는 곳도 다리를 만드는 공사장이었다. 황제의 숲 아셀란과 수도 사이의 작은 하천을 연결하는 다리였다.

병원에서 알아본 토목소로 가는 약도를 보며 공사장 근처를 걸었다. 그의 거주지, 인부들이 모여산다는 숙소는 비어 있었고, 대놓고 그의 이름을 호명할 수 없는 이상 발품을 팔아야 했다. 나는 평범한 메이드에 불과하다. 그 남자를 찾을 구실도, 그리고 찾은 걸 남기는 것도 찝찝했다.

수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공사장을 가로질러 가야 하는 식당을 목표로 천천히 걷는다. 변경 땅은 개발 지역으로 이방인의 유입도 많고 여기저기가 공사지역이다보니 목적지로 가기 위해 그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들도 제법 되었다.

다행히 남자가 일하는 구역을 가로지르다 보면 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셀리안에게 중요한 인물도 아닌, 평범한 갈색머리의 그 남자가 금방 눈에 들어온 건 더운 날씨에도 그가 뺨까지 감싸는 커다란 천을 목부터 둘둘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으며 말 걸 타이밍을 생각한다. 마침 그의 허리춤에서 수건이 떨어졌다.

“저-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

남자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얼핏 천 사이로 노예의 낙인이 보인다. 그는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 때문에 지친 것도 있겠지만, 다른 인부들보다 확연히 진한 다크써클이 눈에 띈다. 그 눈은 불안한 듯 퀭하게 나를 본다.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듯 신음했다.

“히익...”

“?”

“...여자...”

“네?”

“가, 감사합니다.”

한순간 놀랐다가 안심한 것처럼 중얼거린 남자는 곧 빼앗듯 내게서 손수건을 받는다. 받은 후에도 그의 시선은 내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약간 두려운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곤란하네, 흑발흑안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때문일까. 다른 것에 대한 편견이나 이질감은 때때로 두려움을 낳는다. 첫 번째 범인이란 생각에 남자에 대해 두려워했었는데 그 남자가 나를 두려워하니 기묘한 느낌이다.

“죄, 죄송합니다.”

“아뇨.”

그는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수건을 주워준 나에게 실수 했다는 듯한 느낌이다. 심약하고, 생각보다 상냥한 성품일지도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한다.

나는 그가 망설이는 걸 기회로 좀더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저어, 실례입니다만, 이곳에서 오래 일하셨나요?”

“에?”

“이쪽으로 언젠가 이사를 생각하고 있어서요. 이곳이 살기에 어떤지 궁금해서요.”

이건 진심. 언젠가 칼미온을 떠날 것이다. 수도에서 가까운 수도 변경이 목적지가 되지는 않을 테지만.

나는 새로 주거지들을 짓고 있는 공사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도에서 살고 싶지만 중앙까지는 올 수 없는 사람들, 많은 공사에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어떤 의미로 이 변경땅은 중앙만큼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있었다.

“...몇개월 있었을 뿐이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일자리도 있고, 공사가 많이 있긴 하지만 편의시설은 대부분 있어요...”

의외로 그는 매끄럽게 이야기했다. 이야기할수록 그의 시선은 평범해졌다. 평범하게 설명을 하고 꾸벅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그의 거주지도 직장도 이 근처다. 마법마차로 와도 서너시간은 걸리는 길을 어떻게- 몇번이고 수도까지 와, 사람을 동상에서 밀어낼 수 있을까. 정말 저 사람이 범인인 걸까.

뒤돌아서 걷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는 비틀비틀 걷고 있다. 불안해보이는 발걸음이다.

“...윽.”

“아!”

흙밭을 걷던 다리는 아무것도 없는데 비틀 휘어진다.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는다. 남자가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아, 다행히 둘다 넘어진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아, 또... 고, 고맙습니다.”

“아, 아뇨. 피곤해보이시네요.”

“어이구, 짐- 또구만.”

“죄, 죄송합니다.”

“탓하는 게 아냐. 요즈음 너무 안 좋아보이는데... 한숨 자는 건 어때?”

“자, 자는 건...”

남자가 나로부터 몸을 떼며 머뭇거리며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갔다. 그를 걱정했던 또다른 인부가 쯧쯧 혀를 찬다.

“요즈음 통 잠을 못 자는 것 같다니까. 잠을 자긴 하는 건가.”

“...”

잠을 자긴 하는가, 라고. 확실히 남자는 지나치게 피곤해보였다. 퀭한 눈, 비틀거리는 걸음거리. 그것도 잠을 자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에서 주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조건이 가혹할리도 없을 텐데.

나는 약간 불안한 눈으로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

“저...”

“다, 당신은.”

점심시간,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서 배급으로 나온 음식을 먹고 있었다. 손이 살짝 떨리고, 먹으면서도 기운이 없어보인다. 마음을 먹고 다시 다가가 말을 걸자 그가 흠칫한다. 평범해졌던 시선이 다시 불안한 듯 내 흑발흑안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비슷하지만 달라.”

“네?”

“아, 아닙니다. 저 또 무슨?”

어떻게 할까. 주변을 보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있는 쪽과도 멀지도 않고 곳곳에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아뇨. 혹시 일주일 전에... 수도에서 뵌 일이 있으신가 해서요. 실례지만, 낯이 익어서 그만.”

직구- 과연 어떻게 나올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사람이 범인. 나는 떠보듯이 이야기했다. 조금 위험한 느낌이 들었지만-

“!”

남자가 눈에 띄게 떤다. 툭 하고, 땅바닥으로 그의 배급 받은 주먹밥이 떨어진다.

“없습니다!”

“?!”

“없습니다, 저, 저는- 이 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없는 게 분명하니까.”

“!”

남자가 내 어깨를 붙잡을 듯 가까이 다가왔다.

“하루종일 일한다고요! 휴일에도 동료들과 주점에 있으니까, 수도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한 것 같...”

“그럴리 없어, 수도에 내가 갔을 리가-”

어깨가 붙잡힌다.

‘실수였던 걸까.’

어깨가 아프다.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이곳을 보긴 했지만 선뜻 도우러 오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큰 반응, 두려워하는 눈.

‘뭐지.’

문제는 변명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납득시키는 것 같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생각해보면 공간이동 마법스크롤도 있기는 하다. 애초에 나중에 그의 집에서 부유 마법 스크롤이나 셀리안의 마법을 깰 수 있는 마법 등이 발견되었던 걸 보면 공간이동 스크롤도 이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마법 스크롤, 그것도 그런 고액의 스크롤을 이 남자가 살 수 있다고?

‘역시 배후에는 다른 사람이 있는 거야.’

이 사람을 첫 번째 범인으로 이용하고, 후에 다시 두 번째 범인을 만들고, 혹은 자신이 직접 범행을 저질렀던 자가.

남자는 내 어깨를 붙잡은 채 부르르 떨다가 당황한 듯 내 어깨를 놓으며 사과를 했다. 역시 생각과는 다르다.

“...나, 나를 봤습니까? 정말로?”

“...착각인 것 같긴 하지만.”

그 눈이 절박하게 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물어온다.

“정말, 나였습니까? 수도 중앙에 내가 있었습니까? 혹, 혹시 시간대는...”

“...시간은 새벽이었던 것 같아요. 수도의 광장에서 본 것 같습니다만, 역시 착각...이겠죠.”

“광장... 황제폐하의 동상이 있다는...”

“...”

엄밀히 말하면 초대황제의 동상이지만, 이렇게 착각하는 사람은 많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말에 그는 비틀비틀 나에게서 도망치듯 뒷걸음질 쳤다. 두려운 진실을 마주한 것처럼- 그 눈이 절망에 물들고 떨리는 입이 벌어진다.

“사, 사실은-”

“?”

처음 본 여자가 구원줄이라도 되는냥, 무언가 변명할 것처럼- 벌어지다가 문득 그의 눈이 크게 떠진다. 내 뒤쪽을 보고 크게 눈을 떴다.

“거, 거짓말. 자고 있지도 않은데?”

“네?”

“히...히익!!”

“꺄악?!”

남자가 뒤로 넘어진 건 순간이다. 그는 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뒤를 확인하면 아무도 없다. 아니, 뒤에서부터 사람들이 달려오긴 한다. 인부들이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의 저 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이, 짐-”

“아가씨 괜찮아?”

“히, 히익-”

“저보다, 저 분이.”

“어이, 짐- 짐?”

인부들 중 몇이 남자를 흔들며 가볍게 그의 뺨을 치지만, 남자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느새 짐이라는 남자가 까무룩 기절했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주말이 끝난다. 그게 제일 무서워요.ㅜㅜ 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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