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Side story 2 =========================================================================
Side story2
"어머, 에이나 영애네요."
"오랜만이네요, 이런 연회에 나타난 건."
반짝반짝 빛나는 샹들리에 아래에 히아신스 에이나가 서 있다. 쥐털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공작가의 수치-라고 영애들은 수군거렸지만, 그녀가 칼미온 기사단의 에메랄드, 전장의 녹음 등으로 불리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
"전장에서 그렇게 이름을 날리시더니, 왠지, 말이죠."
"그렇네요,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나요. 땀냄새인지, 피냄새인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아요."
소곤소곤, 황제의 약혼녀가 된 히아신스를 대놓고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걸 꺼리고 있어도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고, 대부분은 입을 다문다. 꽤 세력이 있거나 그냥 생각이 없거나, 제3왕녀쪽 사람들만이 삼삼오오 모여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소곤거렸다. 욕을 하지 않는 자들조차 자신들이 무시하던 에이나가의 수치가, 황제의 약혼녀가 된 것에 반감이 많았다.
"호호, 저 드레스는 또 뭐람."
"아무리, 에이나 가에 안주인 자리가 비어있다 해도 그렇지요."
간만에 연회에 나온 히아신스의 드레스는 퍽 유행에 뒤쳐보였고, 지나치게 수수했다. 그것도 흉이 되었다. 다만, 기사 훈련을 통해 배운 그녀의 자세만큼은 어떤 귀족 영애들보다도 눈에 띄는 면이 있었다. 쭉 펴진 등과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 사실 어색해보이는 드레스도 워낙 미인인지라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아아, 그에 비해 영애는 너무 아름다우세요."
"성인식을 거치고 나니, 이제 여성의 성숙함까지 묻어나신다고 해야할까."
"막 피어나는- 그래, 복숭아꽃 같으세요."
"이번 아카인의 복숭아 향수는 정말 최고랍니다. 역시 아카인의 감각은 믿을만하네요."
아카인 가는 현재 귀족들 중 꽤 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귀족취향의 무역물품을 중심으로 상업을 키워 명예와 권력 뿐 아니라 부까지 손에 쥐었다. 그 가문의 금지옥엽 외동딸, 벌굴색 머리카락이 최대의 자랑인 어리고 똑똑한 앨리자베스 아카인은 사교계의 작은 꽃이었다.
"다음 신제품도 이미 개발중이랍니다, 부인들께서도 의견을 아끼지 말아주세요."
"아카인 후작은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호호"
앨리자베스 아카인은 노련한 부인들과 막 데뷔를 마친 젊은 귀족 영애들 속의 중심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아카인은 귀족가문, 그것도 모두가 경시했던 상업으로 급부상한 가문이다. 귀족들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서도, 그들과 누구보다 친분을 유지해야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언제나 주지시켰던 말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다른 영애들이 비웃는 히아신스 에이나에게 시선이 간다.
당당한 눈동자, 늠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바른 자세. 그럼에도 어쩐지 '남성미'보다는 청순하고 청초한 '여성미'가 다른 어떤 귀족 영애보다도 강하다. 아름답고 아름다운 여기사.
게다가- 황제의 약혼녀가 아닌가.
그야말로 소설이나 연극 속의 여주인공이다.
'아름다워.'
여자들 사이에서 경시되고 싶지도 않고 기사가 되어 남자처럼 고된 훈련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 성인식을 마친 앨리자베스 아카인은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칼미온의 에메랄드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
성인식을 치루고 나면 맞이하겠다고 한 산은 오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산에게 어린 앨리자베스는 귀여운 귀족아가씨일뿐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니까. 그 때 자기 나이만 해도, 연애대상으로 보기에는 한참 어렸다.
앨리자베스는 지온으로 가는 마차에서 손거울에 비친 예쁘장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예쁘세요, 아가씨."
"그래? 눈은 좀 흔해빠진 것 같은데."
가끔 히아신스 같은 녹음의 눈동자였다면 제법 자신의 머리카락과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지는 않는다. 자신의 유모는 흑안흑발에 대한 지독한 혐오주의자였고, 그 아카인 영애가 히아신스 에이나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것은 말할만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무슨 소리세요. 아가씨의 눈동자가 얼마나 신비로운데요."
"...그야 유모 눈에만 그렇지."
"아니요, 예쁘세요!"
"정말- 유모도 콩깍지라니까."
사실, 그녀는 '특별하게' 예쁜 축에 속했다, 수도에서 아카인 영애를 칭송하던 영식들은 그저 그녀의 배경에만 매료된 게 아니었다. 그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래. 적어도 대상외였던 어린 시절의 베스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리라고 앨리자베스는 재차 스스로에게 암시한다. 게다가, 자신은 예쁘기만한- 인형같은 귀족여자도 아니다. 아카인은 많은 귀족 영애들과 어울리면서도 인형 같이 정숙하고 머리가 텅텅 빈 소녀들을 비웃곤 했다.
아버지는 외동딸인 앨리자베스에게 자신의 일을 두루두루 가르쳐주었다. 실무는 아카인 후작의 부하들이 처리할 것이지만, 귀한 딸이 허수아비가 되는 것도 그는 싫었다. 영애는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내부에서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교육 받았다. 아카인 후작에게 '믿을 수 없는' 미래의 사위 따위는 꼭두각시로 충분했다.
결국, 그녀는 온실 속의 화초였지만 마냥 화초는 아니었고 다른 영애들보다 과감한 면이 있었다.
어릴 적 사랑인 산을 직접 맞이하러 가자고 생각한 것도 그런 성장배경에서 나온 대범함이었다.
아버지의 지온 방문에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던 날을 떠올려본다. 못마땅해하는 후작은 허락 후에도 준비할 것이 있다고 느릿느릿 일정을 진행했지만, 앨리자베스는 허락이 떨어지자 유모와 호위 몇 명의 단촐한 일행들을 데리고 먼저 지온으로 출발했다. 하루라도 빨리 산을 만나고 싶었다.
"에휴, 후작님과 함께 오셨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소리 하지 마, 화낼 거야."
"네~네~"
지온을 구한 용감한 청년이라고는 하나, 그는 평민이었다. 어린 시절 앨리자베스에게 산만큼 멋지고 대단한 왕자님은 없었지만 실제로 그는 왕자가 아니다. 앨리자베스도 알고 있다.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리고 따라온 유모조차 언짢은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기다려, 산-'
이래저래 저항은 있겠지만 이런 경우 신분이 낮은 자보다 신분이 높은 자가 움직이는 게 낫다고, 다시 만난 산과 앨리자베스는 분명 사랑에 빠질 거라고- 그녀는 강하게 믿었다.
*
지온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참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이 산의 고향이구나, 산이 지키고 싶었던 곳이구나-라고, 감탄한 척 이야기했지만 내심 그렇게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기다려."
"네."
호위를 물리고, 조심스럽게 산이 일하는 식당 근처에 선다.
유모는 지온의 기후가 맞지 않는지 도착하자마자 꼼짝도 못 하고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럴만도 했다. 정말이지 지저분하고-
'산을 만나는데만 집중하자.'
심장이 뛴다. 짜증나는 모래바람도, 주위에 돌맹이처럼 구르는 깡 마른 어린애들에 대한 불쾌함도 점점 사라져간다. 이제 곧 산을 만난다! 그 마음만으로도 이 지독한 장소즈음은 참을 수 있었다.
어떤식으로 만나면 좋을까. 어떻게 깜짝 놀래켜 주면 좋을까, 그런 생각에 가슴을 설레고 있으면 식당의 문이 열리고 산이 나왔다.
"아-"
앨리자베스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산이다, 늘 꿈꿔왔던 산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줬던 그와 다르지 않다. 얼굴생김새, 미소- 오히려 시간이 지나 막 성인이 되었던 그때의 산보다 어른스러워보이고 멋있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달려가자. 어쩌면 기쁜 듯이 저 듬직한 팔을 벌려 자신을 안아줄지도.
"산-"
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식당 안쪽에서 누군가가 산의 이름을 대신 불렀다. 앨리자베스는 멈칫했다. 누군가 있다. 산이, 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 먼저 나와 문을 열어준 것임을 깨달았다. 누군가를 에스코트하듯이.
"문 정도는 내가 열 수 있어요, 진짜-"
"우리 식당의 꽃한테 이 정도는 기본이지."
"어휴, 말만 늘었어요. 우리 사장님."
곧 문 밖으로 여자가 나왔다.
"..."
크지 않은 키, 미인은 아니지만 오밀조밀하게 귀여운 느낌의 얼굴, 앨리자베스보다는 나이를 먹은 것 같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도 않은 여자.
자연스럽게 산이 열어준 문으로 걸어 나오며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
'검은 머리카락-'
천하고 불길하다-라는 생각보다는 히아신스 에이나가 떠올랐다. 곧 저런 천박한 여자가, 어떻게 히아신스랑, 이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
채찍질을 하며 앨리자베스는 웃었지만, 짜증스럽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채찍을 맞으면서 비굴하게 몸을 숙이고 있다. 몸을 웅크리고, 벌레처럼.
하지만 언뜻 언뜻 보이는 눈빛이 짜증스럽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강하게- 다시 히아신스 에이나가 떠올랐으나 그녀는 얼른 부정했다.
다르다, 히아신스는 제대로 사람을 응시하고 제대로 마주한다. 앨리자베스가 관찰한 눈앞의 천한 여자 윤하영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계산적인 눈동자로 누구보다 심드렁하게, 산에게 호의는 있지만 앨리자베스와는 명백하게 다른 마음이면서도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이면서 뻔뻔하게.
'기생충-'
앨리자베스의 손이 좀더 거세진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하고 구경꾼들이 수근거렸지만 화가 난다.
윤하영의 존재를 알고 고민할 즈음에는 첩 정도는-이라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아량있는 부인이라면 남편의 처첩정도는 봐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저런 천한 여자, 첩은커녕 갖고 노는 여자로 끝날 게 뻔하니 한때의 애인으로 용서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앞을 지나가다가 언뜻 본, 그녀를 보는 산의 애절한 눈동자를 보고 마음에 불이 일었다. 그를 누군가와 나누다니, 불가능해.
그리고, 곧이어 산의 눈동자를 비스듬히 피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불편한 걸 마주했다는 시선을 하는 윤하영을 발견했다.
'니가 뭔데?'
이런 여자, 이런 여자- 용납할 수 있을리 없잖아?
*
윤하영을 태운 마차가 황제에게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카인 후작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는 한 발 먼저 수도로 돌아가 있었는데, 진즉 수도로 딸을 끌고 가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더불어 당장 수도로 돌아와 자중하라고 딸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앨리자베스 아카인은 떠날 수 없었다. 떠날 생각도 없었다. 미친 듯이 윤하영을 찾는 산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손가락을 깨물며, 그 모습을 지켜본다.
도둑이야.
창녀야.
산을 속인 거야.
어느새 마을 사람들도 다같이 윤하영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쓰레기로 매도했지만 산은 계속해서 그녀를 찾아헤맨다. 물고 있던 손가락에서 툭툭 피가 떨어진다.
그 여자를, 죽였어야 했는데.
노예로 만들어서, 성노로 만들어서, 쓰레기처럼 몸을 굴리게 한 뒤, 저 남쪽 지역의 '아기공장'에 보낼 생각이었지만 욕심이었다. 욕심을 부렸다.
죽여야 했다. 죽여서 없애야 했다. 산에게 그 시체를 보여줘야 했어.
'자살로 꾸미고 죽였어야 했어.'
앨리자베스의 눈동자에 핏발이 선다.
*
하루 일찍 수도에 도착했다. 앨리자베스는 산의 수속을 핑계로 산보다 먼저 수도에 들어왔다.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윤하영을 봤다는 암살자의 신호가 사라졌다.
노예마차가 황제에게 걸렸다. 그렇다면 그녀는 수도에서 나라의 도움을 받고 있을 터, 그럼에도 자취를 알 수 없는 건 이상했다. 이상해서 개인적으로 암살자를 움직였다. 어떻게 사는지는 아무래도 좋다, 관심도 없다.
죽여라- 죽여. 보자마자 죽여.
한참 소식이 없던 암살자가 드디어 그녀를 찾았다고 보고한 게 그제다. 소식편에서는 그녀 자체가 무얼 경계하는지 인적이 드문 곳으로는 다니지 않는다는 보고도 섞여 있었다. 적당히 기회를 잡아 죽이겠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유능한 암살자였다. 인파 사이에서 소리없이 죽이는 것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고 안심했다.
안심했건만.
암살자가 사라졌다.
남은 건 그 여자가 살아서, 수도에 있다는 것 뿐이었다. 수도에, 어쩌면 어쩌면 나라의 비호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부 말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라에서는 아카인가와 노예마차의 관계를 알아내고 여자의 호소까지 들어- 어쩌면 암살자도-
'산이 알게 된다면-'
그럴리 없어.
아버지는 별 말이 없었다. 단지 자중하라고만 하셨다.
산도 그녀 곁에 있다, 아직은 아직은 말이다.
'찾아서, 죽여야 해.'
산이 알기 전에- 집안을 생각하기보다는 그게 제일 중요했다.
호위들과 함께 윤하영을 발견했다는 광장을 지나 왕궁 근처의 까페거리를 돈다.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신분을 숨기고 수수한 옷을 입었다곤 하나 그 시선을 볼 때마다 짜증스럽다. 못 쓰게 된 다리를 보정마법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거라 자세가 구부정해졌다. 그녀의 아버지인 후작은 백방으로 치료법을 찾고 있지만- 지금은 아예 안 움직일 뻔한 다리를 절룩거리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다리가 짜증나고 수치스러웠다. 다리를 못 쓰게 된 날, 자신이 고용했던 멍청한 놈들의 사지를 찢어 죽였다. 죽였지만, 그날부터 산이 엘리자베스의 옆에 머물게 되었다. 수치스럽고 짜증나지만 고치고 싶지는 않아졌다.
그녀가 구부정거리며 걸으면 산은 뭐라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고 그녀에게 좀더 다정해지곤 했으니까. 그러니까.
"!"
그때 그녀의 눈에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뛰는 게 보인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여자가 미친듯이 뛰어 골목으로 들어간다.
"아가씨?!"
앨리자베스는 사람들의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호위들이 기민하게 따라온다. 앨리자베스는 그들을 뒤로 하고 여자가 사라진 골목으로 들어왔다.
이상한 골목- 인파가 적고 미로처럼 섞인 골목길.
낮에는 개미 한 마리 없지만 밤에는 이곳에서 더러운 매매가 오고간다는 걸 알고 있다. 왕궁 근처의 비밀스러운 골목- 귀족이 사용하고 서민이 사용되고, 황제가 '아직은' 묵인하고 있는 더러운 거래들이 오가는 골목.
"나 따라오지 말고, 흩어져!"
"네?"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의 여자- 찾아! 찾아서 죽여!!"
앨리자베스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호위들은 머뭇거렸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진다. 한 명정도 그녀의 뒤로 모습을 감추고 뒤따르게 하고.
앨리자베스는 절뚝절뚝 걸었다. 골목을 돌고 돌고 돌아, 사라진 여자를 찾고 찾는다.
다리가 아프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윤하영은 뛰고 있었다. 앨리자베스는 뛸 수 없다.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아, 죽여야 하는데.
산이 오기 전에 죽여야 하는데.
죽여야 하는데.
죽여야.
눈앞의 골목을 비척비척 돌았을 즈음이었다.
"죄송합니다."
"...찾았다."
눈을 들면 새까만 머리카락과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괘씸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앨리자베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다시금 뛴다.
이제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앨리자베스는 조용히 그 등을 쫓는다. 골목을 돌아 사라지면 그 골목을 기억해 조심스럽게 돌아 다시 그 등을 발견한다.
숨이 턱까지 차고,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뒤따라오는 호위는 아가씨를 대신해 흑발흑안의 소녀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다행히 호위가 마음을 정하기 전 윤하영이 멈췄다. 무언가 놓친 것처럼 허탈하게.
앨리자베스가 가까이 다가간다. 천천히 천천히. 아버지에게 배운 사냥법, 토끼를 사냥하는 법.
토끼라니, 앨리자베스는 눈앞의 검은 머리 여자가 뱀처럼 느껴진다.
자- 이제 바로 등 뒤야.
앨리자베스는 다리를 절면서 가지고 다니게 된 지팡이를 고쳐쥔다. 버튼을 누르면 검이 나온다.
"아아-"
이 여자만 없으면, 모든 건 비밀이 된다. 이 여자만 없으면, 산은 나를-
손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여자의 심장 부근을 향해 칼을 내리 꽂았다.